미래를 보는 세가의 미친개

5화: 연무장의 미친개
푸른 하늘 아래, 남궁세가의 정가 연무장에는 가문의 무사들과 장로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있었다.
가주 남궁태황의 특별 지시로 삼공자 남궁성이 오랜만에 무복을 제대로 갖춰 입고 연무장 한복판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 맞은편에는 남궁세가 젊은 세대 중 무공으로 독보적인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남궁휘가 목검을 쥔 채 굳건히 서 있었다.
남궁휘의 눈빛에는 질투와 억울함이 가득했다.
'남궁성…… 무공 수련은 밥 먹듯 거르고 저잣거리에서 뒹굴던 녀석이, 머리를 다치더니 갑자기 신산(神算)이니 뭐니 하며 추앙받는다고? 제갈세가의 소저마저 그를 현자라 불렀다니 말도 안 된다. 무인은 오직 무(武)로써 증명하는 법!'
남궁휘는 목검을 꽉 쥐며 포권을 취했다.
"사촌 형님, 오늘 대련을 통해 형님의 진정한 실력을 배우고자 합니다. 부디 사양하지 마시고 손속에 자비를 두지 마십시오."
남궁성은 울고 싶었다. 그의 손에 쥐어진 목검은 쇳덩이보다 무겁게 느껴졌다.
'배우긴 뭘 배워, 이 미친놈아! 난 기초 검법인 창공검법 1식도 제대로 못 외웠다고! 네가 검 한번 휘두르면 난 그대로 요단강 건너는 거야!'
하지만 가주와 장로들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었다. 남궁성은 살기 위해 지그시 눈을 감고 예지력을 가동했다. 뇌리가 징하게 울리며, 대략 일각 뒤의 미래가 펼쳐졌다.
환영 속의 대련은 처참했다.
남궁휘가 가문의 정묘한 신법인 구천현녀보를 펼치며 쇄도했고, 창공검법의 3식 '창공진풍(蒼空疾風)'으로 남궁성의 목검을 날려버린 후 그의 턱을 들이받았다. 남궁성은 강냉이가 서너 개 날아간 채 바닥에 처박혀 기절하는 미래였다.
'으악! 왼쪽 턱이 으스러지는 미래잖아!'
남궁성은 침을 삼켰다. 미래를 바꾸어야 했다.
남궁휘가 창공진풍을 펼치기 위해 왼쪽으로 발을 디디는 찰나, 자신이 먼저 오른쪽으로 몸을 날려 피하면 어떨까?
대련 시작을 알리는 징소리가 울렸다.
"시작하라!"
남궁휘의 신형이 흐릿해지며 벼락같이 쇄도했다. 목검이 바람을 가르며 날카로운 궤적을 그렸다.
남궁성은 미리 본 미래를 바탕으로, 남궁휘가 검을 휘두르기도 전에 미리 오른쪽 바닥으로 몸을 던졌다.
스어억!
남궁휘의 목검이 남궁성의 머리카락 한 가닥을 스치며 허공을 갈랐다. 남궁휘의 눈이 번쩍 뜨였다.
'내 신법의 방향을 미리 읽고 피했다고?!'
하지만 인과율은 실시간으로 요동쳤다. 남궁성이 엉뚱하게 바닥으로 뒹굴자, 남궁휘는 본능적으로 검초를 거두고 뒤로 돌며 종방향으로 검을 내리쳤다.
'어라? 미래가 바뀌었다!'
남궁성은 구르면서 다시 한번 눈을 감았다 떴다. 이번에는 머리 위로 떨어지는 검날이 보였다. 그는 굴러가던 탄력을 이용해 엉덩이를 하늘로 치켜들며 기괴하게 몸을 비틀었다.
퍽!
남궁휘의 목검이 남궁성의 가랑이 사이 바닥을 강타했다. 한 끗 차이로 고자(鼓子)가 될 위기를 모면한 남궁성은 식은땀을 폭포처럼 흘렸다.
"어이쿠!"
남궁성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남궁휘는 더욱 경악했다.
'이 기묘한 보법은 대체 무엇인가? 품격이라고는 전혀 없지만, 내 검의 흐름이 닿기 직전에 가장 완벽한 각도로 피해 가고 있어!'
사실 남궁성은 예지력의 시간 축 어림이 미세하게 어긋나는 바람에 0.5초 늦게 피하느라 온갖 해괴망측한 몸개그를 선보이고 있었다. 엉덩이를 뒤로 빼고, 엎어지고, 재채기를 하면서 고개를 숙여 검날을 피했다.
하지만 이 짓을 단기간에 반복하자 육체적 패널티가 미친 듯이 밀려왔다.
뇌맥이 터질 것 같은 극심한 두통. 머릿속이 쇠망치로 쾅쾅 두들겨 맞는 것 같았다. 남궁성의 얼굴은 순식간에 종잇장처럼 하얗게 질렸고, 입술은 파르르 떨렸으며, 이마에서는 비 오듯 땀이 흘렀다.
"헉…… 헉…… 머리, 대가리가……."
남궁성은 목검을 간신히 땅에 짚은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본 장로들의 눈빛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아……! 저것은……!"
"삼공자가 지금 무공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니로군!"
"그렇다! 삼공자는 휘아의 검초를 피하기 위해 매 순간 강렬한 천기(天機)를 읽고 있는 것이다! 검의 궤적을 뇌내에서 수천, 수만 번 시뮬레이션하느라 혼신(魂神)을 불태우고 계시는 게야!"
가주 남궁태황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성아…… 정녕 네가 휘아를 다치지 않게 하면서도,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기 위해 저리도 가혹한 정신적 대가를 치르고 있단 말이냐! 그 대가리가 터질 듯한 고통을 견디면서까지 가문의 아우를 배려하다니……!"
대련 상대인 남궁휘 역시 몽둥이로 머리를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목검을 짚고 피를 토하듯 숨을 몰아쉬면서도, 자신을 바라보는 남궁성의 눈빛(사실 두통 때문에 초점이 풀려 있는 눈)에는 원망이나 분노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자비롭고 초월적인 현자의 시선처럼 보였다.
'형님은…… 나를 다치게 하지 않으려고 무공을 쓰지 않으시는 거였다. 단지 신산(神算)의 능력만으로 내 검을 받아내며, 자신에게 가해지는 엄청난 정신적 고통을 묵묵히 감내하고 계셨던 거야…….'
남궁휘의 눈에 굵은 눈물이 고였다. 그는 목검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털썩 무릎을 꿇었다.
"형님! 제 어리석음을 용서해 주십시오! 형님의 깊은 뜻을 알지 못하고 감히 검을 겨누었습니다. 형님은 이미 무(武)의 경지를 넘어 도(道)의 희생을 실천하고 계시거늘, 제가 어찌 감히 가당치 않은 질투를 품었단 말입니까!"
"어? 아니, 나 진짜 아파서 쓰러지기 일보 직전……."
남궁성은 말을 다 마치지 못하고 뇌맥의 통증을 이기지 못한 채 그대로 연무장 바닥에 픽 쓰러져 버렸다.
"성아!"
"삼공자님!"
연무장은 순식간에 눈물바다와 경악의 도가니로 변했다. 남궁성은 쓰러져 정신을 잃어가는 와중에도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제발…… 날 그냥 좀 내버려 둬라, 이 미친 오해 괴물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