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보는 세가의 미친개

4화: 천재 책사와의 어설픈 두뇌 싸움
제갈세가의 천재 책사이자 소저인 제갈연은 의복을 대충 정돈한 후에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입술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천하의 제갈연이 남궁세가에 들어서자마자 환골탈태한 거위에게 똥 습격을 당하고 바닥을 뒹굴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하지만 그녀는 명망 높은 지략가답게 평정심을 되찾으려 애쓰며 남궁성을 매서운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남궁성…… 저 자가 제갈세가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간파하고 있었다고? 소문에 의하면 가문의 망나니이자 무능력자라 하던데, 분명 무언가 거대한 음모를 숨기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제갈연은 소매에서 옥으로 만든 바둑판과 바둑돌 통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남궁 가주님, 그리고 삼공자. 갑작스러운 방문에 결례를 범해 송구합니다. 본래 가문의 서신을 전달하러 왔으나, 항간에 삼공자께서 대단한 혜안을 지니셨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이에 소녀, 미천한 지혜로나마 삼공자와 바둑 한 판을 두며 가르침을 얻고자 합니다."
이것은 명백한 도발이자 시험이었다. 제갈세가의 천재 지략가인 자신이 직접 상대해 보면 저 녀석이 정말로 천기를 읽는 고수인지, 아니면 그저 운이 좋았던 사기꾼인지 단번에 간파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남궁성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바둑이라고? 나 바둑 규칙도 잘 모른다고! 오목이라면 어떻게 해보겠는데!'
그는 거절하려 했으나, 아들의 활약상을 더 보고 싶어 안달이 난 아버지 남궁태황이 껄껄 웃으며 먼저 선수처리를 해버렸다.
"좋다! 성아, 제갈 소저의 청을 거절하는 것은 남궁세가의 예법이 아니지. 한 수 보여드리거라!"
"아니, 아버님……."
제갈연은 냉소적인 미소를 지으며 흑돌을 쥐었다.
"삼공자께서 양보해 주신다면 제가 먼저 두겠습니다. 흑선(黑先)입니다."
탁, 하고 첫 돌이 화점에 놓였다.
남궁성은 땀을 삐질 흘리며 백돌 통에 손을 넣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다. 그는 지그시 눈을 감고 대략 일각 뒤의 미래를 엿보았다. 뇌맥을 타고 흐르는 자르르한 두통을 견디며 시각을 집중했다.
환영 속에서 남궁성은 정석대로 바둑을 두다가, 제갈연의 현란한 포석과 함정에 걸려들어 불과 서른 수 만에 백돌 전체가 몰살당하고 바둑판을 엎어버리는 굴욕을 겪고 있었다. 제갈연은 비웃음 섞인 목소리로 "남궁세가의 용자라는 분이 이토록 기본기가 없으시다니 아쉽군요"라며 쐐기를 박았다.
'안 돼, 정석대로 두면 무조건 진다! 미래를 바꿔야 해!'
남궁성은 머리를 굴렸다. 제갈연이 십수 뒤에 둘 공격 포인트를 미리 읽어내어, 그 자리에 미리 백돌을 툭 떨어뜨려 놓으면 어떨까?
그는 미래의 환영 속에서 제갈연이 '이곳에 돌을 놓아 백의 숨통을 끊겠다'고 생각하는 좌표를 확인했다. 우하귀 화점에서 한 칸 빗겨 난 엉뚱한 자리였다. 아직 판의 초반이라 아무도 그 자리에 돌을 놓을 리가 없는 맹지였다.
현실로 돌아온 남궁성은 제갈연이 두 번째 돌을 놓자마자, 머릿속으로 어림잡은 타이밍에 맞춰 백돌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바둑의 정석이고 나발이고 다 무시한 채, 환영에서 보았던 제갈연의 미래 표적 자리에 돌을 탁 내려놓았다.
제갈연의 손길이 공중에서 굳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이, 이게 무슨 수지?'
보통 바둑의 오프닝에서는 귀를 점령하고 변으로 나아가는 것이 철칙이다. 그런데 남궁성이 놓은 돌은 바둑판 정중앙도 아니고, 귀뚱퉁이의 뜬금없는 허허벌판이었다. 초보자도 두지 않을 최악의 똥수이자 자살행위처럼 보였다.
하지만 상대는 방금 전 거위의 폭주를 이용해 자신을 골탕 먹인 '신산(神算)' 남궁성이 아닌가. 제갈연의 머릿속에서 폭풍 같은 계산이 시작되었다.
'설마…… 내가 우하귀를 통해 삼십 수 뒤에 펼치려던 '십자매화진(十字梅花陣)'의 봉쇄망을 벌써 간파한 것인가? 아니야, 그 진법은 우리 제갈세가의 비전 기보에만 나오는 극비의 포석이다. 남궁세가의 망나니가 그것을 알 리 없다. 하지만 만약 알고 둔 것이라면…….'
제갈연은 남궁성이 둔 백돌과 바둑판 전체의 유기적인 흐름을 재배치하며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10수 후, 20수 후, 30수 후……
놀랍게도 남궁성이 둔 뜬금없는 백돌 하나 때문에, 제갈연이 자랑하는 십자매화진의 진로가 미세하게 굴절되어 도리어 자신의 흑돌들이 사지로 몰리는 결과가 도출되었다!
'말도 안 돼! 단 한 수로 나의 삼십 수 앞을 완벽하게 무력화했다고?!'
제갈연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그녀는 백돌을 내려다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남궁성의 수는 정교한 계산의 산물이 아니라, 우주의 판도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압도적인 직관의 결과물처럼 느껴졌다.
사실 남궁성은 규칙을 몰라서 그냥 그 자리에 놓은 것뿐이었다.
제갈연이 10분이 넘도록 돌을 놓지 못하고 장고에 빠지자, 남궁성은 뇌맥을 조여오는 두통에 머리를 짚고 끙끙 앓기 시작했다.
"으으…… 머리야……."
남궁성이 머리를 짚으며 괴로워하자, 제갈연은 그것을 심오한 정신력을 소모하여 바둑판 너머의 차원을 조율하는 '심도(心道)의 전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해석했다.
'나와의 싸움을 위해 이토록 정신력을 쏟아붓고 계시다니……! 내 지혜가 그에게 미치지 못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구나.'
제갈연은 천천히 바둑돌을 내려놓으며 포권을 취했다.
"소녀, 기권하겠습니다. 삼공자의 신산귀모(神算鬼謀)에 온몸이 오싹해지는군요. 바둑판 위에 천지 우주의 이치를 담아내시다니, 제갈세가의 부끄러운 천재라는 별명은 오늘부로 반납해야겠습니다."
"예? 기권이라고요? 이제 세 판 뒀는데?"
남궁성이 벙찐 표정으로 묻자, 제갈연은 씁쓸하게 웃었다.
"백이 두신 그 한 수로 이미 제 모든 변화수가 원천 봉쇄당했습니다. 더 두는 것은 구차할 뿐입니다. 삼공자의 깊은 지혜에 경의를 표합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가주 남궁태황은 벅차오르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하고 의자를 내리쳤다.
"하하하! 과연 내 아들이로다! 천하 제일의 책사라는 제갈 소저를 바둑 서너 수 만에 무릎 꿇리다니!"
남궁성은 멍하니 바둑판 위의 뜬금없는 백돌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동네 천재들은 왜 이렇게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하는 거지?'
어쨌든 세가의 미친개 남궁성은, 천재 지략가 제갈연마저 울고 가게 만든 '강호 최고의 숨겨진 현자'로 또 한 번 강렬한 인상을 남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