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보는 세가의 미친개

49화: 연회장의 구리 바가지
사천당가의 관문을 통과하고 장원 내부로 진입한 남궁성 일행은, 당가 장원 중앙에 마련된 거대한 약초 전시관에서 열리는 '만약대회(萬藥大會)'에 참석했다.
전시관 내부는 천하 각지에서 모여든 신묘한 영약들과 기이한 독물들로 가득했고, 무림의 의원들과 명숙들이 삼삼오오 모여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보물은 당가가 자랑하는 만병통치의 명약, '정심수련(靜心水蓮-독을 정화하고 내공을 안정시키는 연꽃 모양의 보물)'이었다.
정심수련은 전시관 중앙의 높다란 옥대 위에 전시되어 있었고, 그 밑에는 기문둔갑의 방어 진법이 설치되어 있었다.
남궁성은 곁에 차려진 과일 접시의 청포도를 씹어 먹으며 한가롭게 서 있었다.
'맛있는 약초는 널렸는데, 왜 다들 무섭게 독초 얘기만 하고 있는 거야…… 빨리 밥이나 먹고 내 방에 누워 자고 싶다.'
남궁성은 지루함을 견디다 못해,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대략 1각(15분) 뒤의 미래.
전시관을 구경하던 손님들 틈에 섞여 있던 당가 내당 집사로 위장한 마교의 첩자가 소매 속에 숨겨둔 스프링 가압식 극독 가스탄인 '천혼진(天魂塵)'의 줄을 당긴다. 백색의 유독 가스가 순식간에 전시관 전체를 뒤덮어 사람들이 눈이 멀고 비명을 지르며 나자빠진다. 그 혼란을 틈타 자객이 정심수련을 훔쳐 달아나고, 남궁성은 가스에 중독되어 며칠 동안 목이 아파 고생하는 끔찍한 미래가 그려졌다.
"으악! 또 독가스 테러야?! 여기는 경비가 왜 이리 부실해!"
남궁성은 머리를 관통하는 두통을 견디며 음모를 분쇄할 방법을 찾았다.
독가스탄은 첩자의 오른쪽 소매 속에 장착되어 있었고, 손가락의 연결 고리를 통해 수동으로 줄을 당겨 가동되는 구조였다.
'가스를 뿜어내기 전에 저 첩자의 손목을 타격해서 방아쇠를 엉뚱한 방향으로 누르게 하거나 무력화해야 해.'
남궁성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침 첩자 바로 옆에는 전시된 독초를 씻기 위해 물을 담아둔 거대한 구리 물항아리가 있었고, 그 항아리 주둥이에는 묵직한 '구리 바가지(銅瓢)'가 얹혀 있었다.
만약 그가 청포도를 씹다 미끄러운 포도 껍질을 밟고 앞으로 자빠지면서, 본능적으로 허공을 짚으려다 구리 바가지를 쳐서 날려 보낸다면?
새로운 미래가 요동쳤다.
남궁성이 비틀거리며 구리 바가지를 들이받는다.
날아간 구리 바가지가 회전하며 첩자의 오른쪽 손목을 깡! 하고 강타한다.
충격으로 손목의 기맥이 막힌 첩자는 자신도 모르게 소매 속의 방아쇠 고리를 잡아당기는데, 손목이 꺾여 있던 탓에 가스탄의 총구가 첩자 자신의 얼굴 방향으로 꺾여 발사된다.
천혼진의 유독 가스를 안면에 직격당한 첩자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쓰러져 거품을 물고 자폭하는 미래가 선명하게 나타났다.
'좋아, 구리 바가지의 탄성을 믿어보자!'
남궁성은 지독한 두통 속에서 청포도 껍질 하나를 발밑에 슬그머니 흘려두고 눈을 떴다.
당가 집사 복장을 한 첩자는 은밀하게 정심수련이 놓인 옥대 바로 앞까지 접근하고 있었다. 그의 손끝이 소매 속으로 쑥 들어갔다.
남궁성은 앞으로 한 걸음 내딛다가, 흘려두었던 청포도 껍질을 밟고 앞으로 휙 자빠졌다.
"으와앗!"
넘어지던 그의 오른손이 벽 구석의 물항아리에 걸쳐져 있던 묵직한 구리 바가지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깡!
구리 바가지는 요란한 회전음을 내며 허공을 날아갔다.
슝-!
바가지는 첩자의 오른쪽 손목 부분을 매섭게 강타했다.
팍!
"윽?!"
첩자는 손목에 전해진 강한 충격에 본능적으로 주먹을 쥐었다. 그 순간, 손가락 고리에 연결되어 있던 가스탄의 고정 장치가 뽑혔다.
그러나 바가지에 얻어맞아 그의 손목이 안쪽으로 꺾여 있었기에, 가스탄의 총구는 첩자 자신의 콧구멍을 정면으로 조준하고 있었다.
퓨우우우웅!
"커헉! 아아악! 내 눈! 콜록! 쿨럭!"
백색의 독가스 천혼진이 첩자의 얼굴에 직사로 뿜어졌다.
첩자는 눈을 감싸 쥐며 비명을 질렀고, 바닥에 뒹굴며 온몸에 마비독이 퍼져 거품을 물고 뻗어버렸다. 그의 품에서 마교 분타의 비밀 증표들이 와르르 쏟아져 내렸다.
전시관 안은 순간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도, 독가스 자객이다! 마교의 세작이다!"
당가 무사들이 순식간에 자객을 포박했다.
당외 가주는 바닥에 뒹구는 자객의 시체와 구리 바가지를 보고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소가주 소협! 장원의 철통같은 경비 속에서도 마교의 첩자가 독가스를 피우려던 찰나를 감지하시고, 바가지 하나로 자객의 자폭을 이끌어내시다니! 이 어찌 기이하고도 두려운 신산이란 말이오!"
설영 도장 역시 감탄을 금치 못했다.
"구리 바가지의 투사 각도를 계산하여 첩자의 기습을 원천 차단하시다니…… 남궁 소협의 지혜는 정말 우주를 다 품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남궁성은 먼지 가득 묻은 옷자락을 털어내며, 뇌맥을 관통하는 편두통 속에서 피눈물을 흘렸다.
'청포도가 너무 끈적거려서 미끄러진 건데…… 바가지는 왜 날아간 거며…… 내 꿀물은 왜 또 쏟아진 거야…….'
남궁세가의 공식 미친개 남궁성은, 그렇게 사천당가의 약초 전시관마저 구리 바가지 하나로 첩자를 때려잡으며 강호 전체에 '살아있는 구세주'이자 절대적인 '독무(毒無)의 전설'로 다시 한번 이름을 드높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