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보는 세가의 미친개

44화: 호두가 연 보물상자
사곡 미로를 엉덩이 진동으로 깨부수고 직선 고속도로로 개척해 낸 남궁성 일행은, 획득한 가죽 열쇠로 지하실의 두꺼운 철문을 열고 마침내 대도 태고귀도(太古鬼盜)의 중앙 석실에 진입했다.
중앙 석실의 석조 의자에는 이미 수년 전에 노환으로 타계하여 미라처럼 말라붙은 태고귀도의 시신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앞의 석조 탁자 위에는, 화산파가 백 년 동안 찾아 헤매던 무학의 정수 '자하진경(紫霞眞經)'이 쇠사슬로 꽁꽁 묶인 기이한 청동 상자인 '구룡암기상(九龍暗器箱)' 안에 갇혀 있었다.
상자의 표면에는 용, 호랑이, 거북이 등 9가지 영수의 조각이 복잡하게 얽힌 지압 단추들이 빽빽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백화도인은 상자를 보고 침을 삼켰다.
"저 상자는 천기(天氣)의 배열을 맞춰 비밀번호를 누르지 않고 억지로 열려 했다가는, 내부의 독수(毒水-강산성 액체)가 뿜어져 나와 책을 녹여버리고 만천하에 극독 바늘을 발사하는 가공할 자폭 상자요. 소협, 부디 저 복잡한 기문 비밀번호를 해독해 주시오."
남궁성은 골치가 아파왔다.
'내가 저 복잡한 톱니바퀴 조각을 어떻게 맞춰! 기문 진법이고 나발이고, 머리 아파 죽겠는데!'
남궁성은 숨을 깊게 쉬며 눈을 감고 미래를 보았다.
대략 1각(15분) 뒤의 미래.
백화도인이 자신의 얕은 지식을 동원해 조각들을 건드렸다가, 삐익 소리와 함께 함정이 작동한다. 상자에서 뿜어낸 강산성 액체가 자하진경을 녹여버리고, 사방으로 독바늘이 사정없이 뿜어져 나와 원정대원들 수십 명이 독침을 맞고 비명을 지르며 나자빠지는 비참한 미래가 보였다.
"으악! 진짜로 녹아버리네! 독침은 또 왜 사방으로 날아오는 거야!"
남궁성은 지독한 두통을 견디며 상자의 정답 비밀번호를 예지로 추적했다.
정답은 아주 기괴했다. 상자의 측면에 새겨진 용(龍) 조각, 호랑이(虎) 조각, 그리고 거북이(龜) 조각을 특정 순서대로 강하게 충격을 주어 눌러야 잠금이 풀리는 구조였다.
'용, 호랑이, 거북이를 차례대로 눌러야 해. 하지만 내가 직접 신중하게 누르면 장로들이 또 귀신같다고 호들갑을 떨 텐데…… 귀찮은 건 싫단 말이지.'
그때, 남궁성의 품 안에는 어제 주막에서 간식으로 챙겨두었던 딱딱하기 그지없는 '북망산 야생 호두(胡桃)' 한 알이 들어 있었다. 껍질이 강철처럼 단단하여 돌멩이로 내리치지 않으면 깨지지 않는 녀석이었다.
남궁성은 배가 출출하기도 했고, 손끝에 만져지는 호두를 보니 어떻게든 깨 먹고 싶다는 원초적인 욕망이 솟구쳤다.
'저 청동 상자의 튀어나온 조각 돌기들에 호두를 대고 쾅 쾅 때려서 깨 먹으면 어떨까?'
남궁성은 예지를 미세하게 수정했다.
그가 호두를 들고 청동 상자 앞으로 다가간다.
호두의 단단한 껍질을 깨기 위해, 상자 측면의 용 조각에 호두를 대고 주먹으로 쾅! 때린다.
호두가 깨지지 않자 짜증이 나, 이번에는 호랑이 조각에 호두를 대고 쾅! 때린다.
마지막으로 거북이 조각에 호두를 대고 온 힘을 다해 쾅! 내리친다.
새로운 미래가 요동쳤다.
호두가 쩍 하고 깨지며 고소한 알맹이가 드러난다.
그와 동시에 용, 호랑이, 거북이 조각이 정확한 압력 벡터로 순서대로 눌리며, 상자 내부의 톱니바퀴들이 철컥! 철컥! 소리를 내며 잠금이 해제되고 뚜껑이 번쩍 열리는 미래가 선명하게 그려졌다.
'좋아, 등 긁는 것에 이어 이번에는 호두 깨기다!'
남궁성은 지독한 두통 속에서 호두 알을 만지작거리며 다가갔다.
"백화도인, 무릇 보물이란 머리를 쓰는 자에게 열리는 것이 아니오."
도인들은 그 장엄한 서막에 숨을 죽였다.
남궁성은 품에서 호두를 꺼내 상자의 '용 조각' 돌기 위에 얹었다. 그리고 자신의 무거운 놋쇠 같은 주먹으로 호두 위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쿵!
"앗, 안 깨지네."
남궁성은 혀를 차며 이번에는 호두를 '호랑이 조각' 돌기 위로 옮겼다. 그리고 더 강하게 내리쳤다.
쾅!
"제길, 왜 이리 단단해?"
남궁성은 짜증이 극에 달해, 예지력의 두통 패널티로 흔들리는 다리를 억누르며 호두를 '거북이 조각' 돌기 위에 얹고 온 힘을 다해 주먹으로 쾅! 들이받았다.
콰직!
드디어 단단하던 북망산 호두 껍질이 쩍 갈라지며 고소한 호두 알맹이가 밖으로 튀어나왔다.
바로 그 순간.
철컥! 드르르륵!
청동 상자의 구룡 조각들이 스스로 회전하더니, 내부의 사슬들이 풀리며 뚜껑이 번쩍 열렸다.
상자 안에서는 강산성 독수 대신, 백 년 동안 밀폐되어 있던 맑고 시원한 자하(紫霞)의 영기가 뿜어져 나왔고, 그 안에는 화산파가 그토록 갈망하던 비급 '자하진경' 서책이 손상 하나 없이 고스란히 안착해 있었다.
지하실 안의 모든 도인들이 경악에 차 비명을 지를 뻔했다.
"이, 이럴 수가……! 상자 내부의 압력 센서가 용, 호랑이, 거북이의 궤적으로만 해제되게 설계되어 있었거늘!"
"그걸 호두를 깨는 기이한 안목을 빙자하여, 각 영수 조각의 정확한 깊이와 탄성을 손끝으로 계산해 내시다니!"
"삼공자님은 이미 기문기계(奇門機械)의 원리마저 손가락 하나로 통제하시는구려!"
남궁휘는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
"형님…… 화산파의 비급을 해제하기 위해 호두의 껍질 두께와 상자의 파괴 강도까지 계산하여 힘을 조율하시다니, 형님의 계산은 진정 삼라만상에 미치지 못하는 곳이 없습니다!"
남궁성은 갈라진 호두 알맹이를 입에 쏙 집어넣고 우물거리며, 뇌맥을 관통하는 편두통 속에서 피눈물을 흘렸다.
'호두 껍질이 너무 단단해서 상자 모서리에 대고 깬 건데…… 호두 맛있네…… 고소하다…….'
남궁세가의 공식 미친개 남궁성은, 그렇게 태고귀도의 밀실마저 호두 깨기 한 번으로 자하진경의 봉인을 해제하며 화산파 백 년의 원한을 해결한 '화산파의 대은인'이자 무림 최고의 기인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