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보는 세가의 미친개

43화: 엉덩이로 풀린 미로
괴도 호접귀 비영을 제압하고 자하단을 회수하는 데 성공했지만, 수사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체포된 비영은 목숨을 구걸하며 화산파의 진짜 잃어버린 신물, '자하진경(紫霞眞經-화산파의 잃어버린 상고 심법)'이 자신의 사부이자 전설적인 사파의 대도 '태고귀도(太古鬼盜)'의 비밀 본거지에 보관되어 있다는 극비 정보를 털어놓았다.
본거지는 화산 인근의 기이하고 음산한 계곡인 '사곡(死谷)'의 험난한 미로 속에 위치해 있었다.
"소가주 소협! 가문의 시조님이 남기신 자하진경을 되찾는 것은 화산파 백 년의 염원이오. 부디 그 험난한 사곡 미로를 돌파할 방법을 가르쳐 주시오!"
장문인 백화도인이 눈물을 흘리며 엎드렸다.
남궁성은 속으로 통곡했다.
'아유, 도둑놈 잡았으면 끝내야지, 왜 계속 수사 범위를 넓히는 거야! 등산도 힘들어 죽겠는데 미로까지 가자고?!'
하지만 이미 남궁성의 위명에 눈이 먼 무사들은 그를 가마에 싣고 사곡 계곡 앞으로 진격했다.
계곡 입구는 기괴한 모양의 돌벽들이 얽혀 있는 천연의 진법 미로인 '기석진(奇石陣)'으로 막혀 있었다. 잘못 진입했다가는 숨겨진 쇠창살과 굴러떨어지는 철구(쇠탄환) 덫에 깔려 몰살당하기 딱 좋은 구조였다.
'입구에서 대충 쉬는 척하며 진법을 해제할 구멍을 찾아보자.'
남궁성은 지친 몸을 이끌고 가마에서 내려 눈을 감았다.
대략 1각(15분) 뒤의 미래.
원정대 선봉 무사들이 기석진 미로의 왼쪽 길로 진입한다. 그러나 그것은 함정 길이었고, 절벽 위에서 수천 근 무게의 철구들이 굴러떨어져 아군 무사들을 깔아뭉갠다. 미로는 철구들로 막혀 영구 폐쇄되고, 남궁성은 사곡에 갇혀 노숙해야 하는 비참한 미래가 펼쳐졌다.
"으악! 또 쇠구슬이야?! 무슨 무덤들이 다 이따위 장치를 달아둔 거야!"
남궁성은 지독한 두통을 견디며 미로를 안전하게 붕괴시키고 길을 개척할 방도를 찾았다.
철구 함정은 절벽 위에 고정되어 있었고, 입구 바닥의 특정한 '지압 석판(압력 플레이트)'을 밟으면 방아쇠가 당겨져 발사되게 설계되어 있었다.
'저 압력 플레이트를 우리가 미로 안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작동시켜 철구를 다 빼내야 해. 마침 입구 옆에는 넓적하고 평평해서 앉아 쉬기 딱 좋은 바위 하나가 놓여 있군. 저 바위 밑에 진안 압력판이 숨겨져 있구나.'
남궁성은 예지를 미세하게 수정했다.
그가 피곤해서 넓적한 바위에 털썩 걸터앉는 순간, 압력판이 작동하며 쇠사슬이 가동된다.
남궁성은 기겁하여 일어서려다 발이 미끄러져 비탈길 아래로 데굴데굴 구르는데, 구르는 과정에서 절벽 옆에 늘어져 있던 굵직한 밧줄(자객들이 타던 줄)을 힘껏 붙잡는다.
줄이 팽팽하게 당겨지면서 절벽 위의 철구 고정 문이 번쩍 열리고, 수십 개의 거대한 쇠구슬들이 아직 진입하지 않은 텅 빈 미로를 쓸어버리며 쾅쾅쾅 굴러내려 간다.
쇠구슬들이 미로의 굳게 닫혀 있던 돌벽들을 다 깨부수고 직선 고속도로(?)를 개척하며, 동시에 흙더미 속에 묻혀 있던 태고귀도의 비밀 열쇠가 든 주머니를 밖으로 튕겨내 배달해 주는 미래가 나타났다.
'좋아, 내 소중한 엉덩이를 믿어보자!'
남궁성은 지독한 두통 속에서 꼼지락거리며 입구의 넓적한 바위 앞으로 걸어갔다.
"아우, 다리야. 내 잠시 여기서 쉬어야겠다."
남궁성은 무표정하게 넓적한 바위 위에 엉덩이를 철썩 들이밀며 걸터앉았다.
딸깍!
바위가 아래로 쑥 내려앉는 불길한 소리가 들렸다.
남궁성은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났으나, 예지력의 두통 패널티로 다리가 꼬여 비탈 아래로 휙 굴러떨어졌다.
"으앗! 살려줘!"
비탈을 굴러 내려가던 그의 손이 절벽 벽면에 매달려 있던 두꺼운 위장용 밧줄을 본능적으로 꽉 붙잡아 당겼다.
지지직! 쾅!
밧줄이 당겨지며 절벽 위의 고정 못이 뽑혔고, 수천 근 무게의 쇠구슬 수십 개가 벼락치는 소리를 내며 좁은 미로 안으로 쾅쾅쾅 쏟아져 내렸다.
쿠쿠쿠쿠쿵!!!
거대한 철구 폭풍은 미로의 기괴한 돌벽들을 사정없이 때려부수며 직진했고, 복잡하던 기석진 미로는 단 3초 만에 완벽하게 뚫린 직선 고속도로로 개변되었다.
철구가 멈춘 구석진 자리에서는, 흙먼지와 함께 태고귀도의 표식이 새겨진 가죽 열쇠 주머니가 허공을 날아 남궁성의 발밑으로 툭 떨어졌다.
원정대 무사들은 입을 쩍 벌린 채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남궁휘는 뚫려버린 일직선 미로와 떨어진 열쇠 주머니를 보고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었다.
"형님……! 미로의 복잡한 진법을 계산할 필요도 없이, 엉덩이의 압력과 밧줄의 인장력을 이용해 적의 함정 자체를 철거 장비로 사용하시다니! 이 어찌 천하를 내려다보는 신산이 아니겠습니까!"
설영 도장 역시 멍하니 뚫린 길을 바라보았다.
"미로 자체를 무너뜨려 직선 통로를 만들고 열쇠까지 튕겨내다니…… 남궁 소협의 무위는 정말 기문둔갑의 창시자 수준이군요."
남궁성은 흙 묻은 엉덩이를 문지르며, 뇌맥을 관통하는 편두통 속에서 눈물을 흘렸다.
'엉덩이가 조각난 것 같네…… 쇠구슬 소리에 귀가 먹먹하고…… 나 진짜 편하게 쉬려고 앉은 건데…….'
남궁세가의 공식 미친개 남궁성은, 그렇게 사곡의 죽음의 미로마저 엉덩이 비비기 한 번으로 고속도로로 개척하며 무림 역사상 가장 해학적이고도 무시무시한 파괴신으로 등극하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