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보는 세가의 미친개

36화: 화로가 부른 화마
마교(魔敎) 호북 분타의 정문이 흑곰과 쇠말뚝 폭풍에 박살 나자, 무림맹과 무당파의 무사들은 파죽지세로 요새 내부를 휩쓸었다.
분타의 수장인 '귀록 장로(鬼祿 長老)'는 아군이 밀리자 요새 지하 깊숙이 마련해 둔 비밀 통로를 통해 탈출할 준비를 서둘렀다. 그의 손에는 분타의 극비 문서들과 탈취한 보물들이 들려 있었다.
한편, 원정대의 명예 사령관 남궁성은 무사들이 요새 내부로 진격해 들어갈 때, 가장 안전해 보이는 텅 빈 접견실 구석에 슬그머니 자리를 잡고 앉았다.
'싸움판 한가운데는 위험해. 여기 구석진 곳에 서 있으면 아무도 안 오겠지.'
남궁성은 안전을 확신하면서도, 지독한 두통을 견디며 만약을 위해 눈을 감았다.
대략 1각(15분) 뒤의 미래.
접견실 구석의 양탄자 아래에 숨겨져 있던 무거운 석판 해치(비밀 문)가 열리며, 마교의 귀록 장로가 튀어나온다. 그는 문앞에 멍하니 서 있던 남궁성을 발견하고, 마교의 절예인 '혈마장(血魔掌)'을 날려 남궁성의 가슴을 쳐서 심장을 터뜨려 죽여버리고 유유히 탈출하는 비참한 미래가 선명하게 보였다.
"으악! 하필이면 탈출구 문턱에 앉아 있었잖아!"
남궁성은 기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통이 머리를 세차게 찔렀지만 살아야 했다.
'저 석판 문이 열리고 귀록 장로의 머리통이 튀어나오는 순간, 그를 완벽하게 저지해야 해. 마침 해치 문 바로 옆에는 불타오르는 숯이 가득 담긴 거대한 청동 화로(火爐)가 놓여 있군.'
남궁성은 예지를 미세하게 수정했다.
석판 해치 문이 아래에서 흔들리며 열리려는 찰나, 남궁성이 비틀거리며 도망치다 바닥에 쏟아진 등유(램프 기름)를 밟고 미끄러져 청동 화로를 들이받는다.
화로가 기울어지며 펄펄 끓는 뜨거운 숯과 붉은 재 폭풍이 열린 해치 문 구멍 아래로 사정없이 쏟아져 내린다.
마침 해치 문을 밀어 올리고 머리를 내밀던 귀록 장로는 날아든 뜨거운 숯덩이와 불길을 얼굴과 입안으로 직격당한다. "앗 뜨거워!" 하고 비명을 지르며 불길을 삼킨 귀록 장로는 눈이 멀고 기도가 막혀 비밀 통로 아래 계단으로 데굴데굴 굴러떨어져 기절하는 미래가 나타났다.
'좋아, 불지옥을 선사해 주지!'
남궁성은 바닥에 흘러내린 등유의 흔적을 밟고 비틀거릴 타이밍을 쟀다. 머리가 쪼개질 듯 아파왔다.
드르륵.
접견실 바닥의 양탄자가 들썩이더니, 그 아래에 덮여 있던 무거운 석판 해치 문이 밑에서 서서히 밀려 올라오기 시작했다.
바로 그 순간!
남궁성은 다급하게 몸을 돌리며 도망치려다, 바닥에 쏟아져 있던 미끄러운 램프 기름을 밟고 뒤로 홱 자빠졌다.
"우왓?!"
미끄러지며 넘어지던 그의 어깨가 해치 문 옆에 놓여 있던 거대한 청동 화로의 기둥을 세차게 들이받았다.
쾅!
화로가 기우뚱하더니 옆으로 풀썩 쓰러졌다.
그와 동시에 석판 해치 문이 아래에서 번쩍 열리며, 음침한 귀록 장로의 머리통이 밖으로 튀어나오려 했다.
"흐흐흐, 무림맹 개새끼들…… 으아아악?!"
해치가 열림과 동시에, 기우뚱한 청동 화로에서 뿜어져 나온 수백 도의 펄펄 끓는 빨간 숯더미와 연기 폭풍이 열린 구멍 안으로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치이이이익!
"커헉! 끄아아악! 내 눈! 뜨거워!"
머리를 내밀던 귀록 장로는 얼굴과 가슴에 쏟아진 숯덩이 폭풍을 정타로 얻어맞고 불타올랐다. 그는 불길을 피하려다 중심을 잃고 비밀 통로 계단 아래로 콰당탕 굴러떨어졌고, 계단 밑에서 거대한 보물 더미와 함께 기절하여 신음했다.
비밀 통로 안은 순식간에 매운 숯 연기로 꽉 들어차 봉쇄되었다.
접견실 문을 깨부수고 남궁휘와 설영 도장이 원정대 무사들과 함께 들이닥쳤다.
"형님! 자객입니까?!"
그들이 마주한 것은, 양탄자가 타오르는 숯 연기로 가득 찬 어수선한 방 안에서, 쓰러진 화로 옆에 엉덩이를 짚고 앉아 아픈 어깨를 주무르고 있는 소가주 남궁성이었다.
그리고 열린 비밀 통로 구멍 아래에서는 마교의 수장 귀록 장로가 불타버린 몰골로 신음하며 뻗어 있었다.
남궁휘는 타들어 가는 숯과 열린 비밀 통로를 보고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형님…… 귀록 장로가 도망칠 비밀 해치의 존재를 미리 파악하시고, 화로를 쓰러뜨려 퇴로를 불바다로 만드신 게로군요! 적의 수장이 손가락 하나 대지 못하고 도망치다 타버리게 만들다니…… 정녕 소인의 머리로는 헤아릴 수 없는 전술이옵니다!"
설영 도장 역시 숯 연기에 눈물을 흘리며 경탄했다.
"화마(火魔)의 이치까지 계산하여 매복의 수장을 잡으시다니…… 남궁 소협의 신산은 정말 끝이 보이지 않는구려."
남궁성은 기름 묻은 옷자락을 털어내며, 뇌맥을 관통하는 편두통 속에서 눈물을 흘렸다.
'어깨 부러지는 줄 알았다고…… 뜨거운 숯 때문에 엉덩이가 다 타는 줄 알았네…… 나 진짜 미끄러진 거라니까…….'
남궁세가의 공식 미친개 남궁성은, 그렇게 마교의 호북 분타 수장마저 뒤뜰 구석에서 화로 하나로 구워버리며 강호의 모든 마교 놈들에게 피할 수 없는 '천적'으로 단단히 각인되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