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보는 세가의 미친개

24화: 연회장의 은빛 식기
낙양 무림맹 분타에 입성한 남궁성 일행을 위해, 그날 저녁 성대한 환영 연회가 열렸다.
대연회장에는 낙양 인근의 정파 명숙들과 무림맹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하여 자리를 빛냈다. 탁자 위에는 낙양의 이름난 요리들이 가득했고, 향기로운 술 냄새가 연회장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남궁성은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낙양에 들어오는 길에도 살수를 만났는데, 설마 여기선 안전하겠지? 무림맹 분타 안이잖아.'
남궁성은 혹시 모를 위험을 대비하기 위해 음식이 차려지는 동안 눈을 지그시 감았다.
대략 1각(15분) 뒤의 미래.
연회가 무르익어 갈 즈음, 턱에 큰 점이 있는 시종 하나가 남궁성에게 다가와 귀한 녹차(綠茶)가 담긴 청자 찻주전자를 들고 찻잔에 차를 따른다. 남궁성이 그 차를 기분 좋게 들이켜는 순간, 차에 섞여 있던 무색무취의 극독 '단장산(斷腸散)'이 작용하여 목을 움켜쥐고 피를 토하며 쓰러진다. 연회장은 순식간에 비명과 혼란에 휩싸이고, 남궁성은 사경을 헤매게 되는 미래였다.
"헉……!"
남궁성은 또다시 뒷목에 서늘한 소름이 돋았다.
'진짜 너무하네! 무림맹 분타 내부까지 사파 첩자가 침투해 있단 말이야?! 규율 장로인 백현 장로가 보면 뒷목 잡고 쓰러질 일이군.'
남궁성은 터질 듯한 편두통을 견디며 음모를 분쇄할 방도를 찾았다.
독은 청자 주전자에 들어 있었고, 자객은 턱에 점이 있는 시종이었다.
'차를 따르기 전에 주전자를 박살 내고 저 시종의 정체를 밝혀야 해.'
만약 시종이 다가왔을 때, 남궁성이 갑자기 손을 휘저으며 주전자를 쳐서 쓰러뜨린다면?
그냥 쳐서 떨어뜨리면 단순히 덜렁거리는 멍청이로 보일 뿐이었다. 하지만 쏟아진 찻물이 탁자 위의 다른 식기, 예컨대 은(銀)으로 도금된 개인 접시 위로 정확하게 흘러내리게 만든다면 어떻게 될까?
독물은 은과 반응하면 검게 변하는 성질이 있었다.
새로운 미래가 뻗어 나갔다.
턱에 점이 있는 시종이 차를 따르려 다가온다. 남궁성이 몸을 일으키며 옷자락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는 척 소매를 세차게 휘두른다.
소매 끝이 시종의 손목을 툭 쳤고, 당황한 시종이 청자 주전자를 떨어뜨린다.
주전자가 깨지면서 쏟아진 녹차가 남궁성 앞에 놓인 은빛 개인 접시 위로 흘러내린다.
찰나의 순간, 은빛 접시가 시커멓게 변색하며 거품을 일으키고, 이를 본 무사들이 기겁하여 시종을 포박하는 미래가 나타났다.
'좋아, 역시 은식기는 거짓말을 하지 않지.'
남궁성은 은빛 개인 접시의 위치를 미세하게 조율하며 자리에 앉았다.
이윽고 연회가 시작되었고, 분타주 조필광의 환영사와 함께 술잔이 오갔다.
대략 1각의 시간이 흘렀을 때, 턱에 검은 점이 있는 시종이 은반지 위에 청자 찻주전자를 얹고 남궁성에게 다가왔다.
"삼공자님,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낙양의 명차인 죽엽청(竹葉靑)이옵니다. 한 잔 드시지요."
시종의 손끝이 아주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남궁성은 그가 찻잔을 들고 주전자의 주둥이를 대려는 바로 그 찰나,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이고, 몸이 찌뿌둥하군!"
그는 기지개를 켜며 양 팔을 앞으로 세차게 내뻗었다.
툭!
남궁성의 넓은 소매 자락이 시종의 손목을 강하게 쳤다.
"앗?!"
시종은 비명을 지르며 주전자를 놓쳤고, 청자 주전자는 허공을 날아 청석 바닥으로 떨어지기 직전, 기가 막히게도 남궁성 앞에 놓여 있던 은빛 개인 접시를 들이받으며 박살이 났다.
와장창!
깨진 청자 조각과 함께 뜨거운 녹차가 은빛 접시 위로 흥건하게 쏟아져 내렸다.
그 순간.
치이이익!
기분 나쁜 증기와 함께, 맑고 투명하던 녹차가 접시에 닿자마자 시커먼 검은색 물로 변하며 거품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은빛 접시는 마치 불탄 것처럼 흉측하게 그을려 버렸다.
연회장에 있던 모든 무사들이 그 광경을 보고 얼어붙었다.
"독, 독이다! 은식기가 검게 변했어!"
"자객이다! 시종을 잡아라!"
분타주 조필광의 사자후와 함께 무림맹 무사들이 턱에 점이 있는 시종을 덮쳤다. 시종은 독약 병을 깨물어 자결하려 했으나, 대장로 남궁벽이 날린 젓가락이 그의 턱관절을 명중시켜 이빨을 바스러뜨려 자결마저 봉쇄했다.
조필광 분타주는 안색이 백纸처럼 하얘진 채 남궁성 앞에 무릎을 꿇었다.
"소가주 소협! 제 분타의 관리가 부실하여 소협의 목숨을 위태롭게 할 뻔했습니다! 천하에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옆에 있던 Mount Hua(화산파)의 장로는 수염을 바르르 떨며 감탄했다.
"아니, 조 분타주. 삼공자는 이미 알고 계셨던 것이오! 저 시종이 다가올 때의 미세한 살기와 주전자의 무게 중심이 어긋난 것을 보시고, 일부러 기지개를 켜며 독차를 은식기에 쏟아부어 음모를 백일하에 드러내신 것이오!"
"그렇소! 소란을 피우지 않고 물증을 완벽하게 확보하기 위해 은식기의 위치까지 계산하시다니, 삼공자의 통찰력은 실로 무섭구려!"
남궁휘는 감격에 젖어 벽해검을 꽉 쥐었다.
"형님…… 연회장에서도 가문의 안위를 위해 한 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으시는군요. 소생, 형님의 그 무거운 책임감에 다시 한번 머리를 숙입니다."
남궁성은 깨진 청자 조각과 거품이 이는 검은 물을 보며, 뇌맥을 스치는 편두통 속에서 눈물을 삼켰다.
'기지개 켜다 손이 미끄러진 건데…… 진짜 차 마셨으면 요단강 건널 뻔했네…… 나 그냥 방에 가서 자면 안 될까…….'
남궁세가의 공식 미친개 남궁성은, 그렇게 무림맹 분타의 환영 연회마저 첩자 소탕의 무대로 바꾸어 놓으며 낙양의 정파 고수들에게 경악과 깊은 경외를 동시에 선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