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릇 나쁜 요리사가 성찬을 고친다

3화: 해 뜰 때까지
도윤은 물통을 주방 바닥에 내려놓았다.
꺼진 줄 알았던 화덕 재 속에서 푸른빛이 한 번 더 번졌다. 눈을 깜빡이자 사라졌다. 방수 노트 표지와 같은 색이었다.
"뭘 봐?"
미라가 등 뒤에서 물었다.
"재가 덜 꺼진 것 같습니다."
"거짓말이면 재 속에 처박아 줄 거야."
도윤은 대답하지 않고 물통을 기울였다. 바닥에 엉겨 있던 기름막이 얇게 밀렸다. 검은 가루와 채소 껍질이 물 위로 떠올랐다.
"이 상태로는 못 합니다."
"뭘?"
"장사요."
미라의 열쇠 꾸러미가 허리에서 흔들렸다.
"해 뜨기 전까지 먹을 걸 만들라고 했지 주방을 새로 짓자고 한 적 없어."
"새로 짓는 거 아닙니다. 칼집부터 씻습니다."
도윤은 칼을 하나씩 뽑았다. 칼날은 그나마 닦여 있었다. 손잡이와 칼집 안쪽은 달랐다. 마른 기름이 손톱 밑에 끼었다. 칼집 바닥에서는 희미한 쇠비린내가 났다.
아이의 그릇에 남아 있던 냄새와 닮았다.
그는 노트에 적었다.
칼집 안쪽 묵은 찌꺼기. 쇠비린내 약함. 의심 재료와 접촉 가능. 먼저 세척.
"또 적어?"
"안 적으면 같은 짓을 반복합니다."
"같은 짓이라는 말 조심해. 여긴 우리 여관이야."
도윤은 고개를 들었다. 미라의 눈 밑이 붉었다. 화가 아니라 밤새 버틴 피로에 가까웠다.
"그래서 씻자는 겁니다."
홀에서는 아직 사람들이 떠나지 못했다. 아이의 어머니는 식은 죽 그릇을 끌어안고 있었다. 아이는 잠들었지만 숨이 아주 얕았다. 손가락도 완전히 펴지지 않았다.
나은 게 아니었다.
멈춘 것뿐이었다.
도윤은 젖은 헝겊을 짜서 칼집 안쪽을 닦았다. 첫 헝겊은 금방 회색이 됐다. 두 번째에서도 냄새가 났다. 세 번째에서야 기름막이 줄었다.
도마는 더 나빴다.
나무 홈 사이에 검은 선이 박혀 있었다. 물을 부으면 선이 잠깐 부풀었다가 다시 가라앉았다. 도윤은 칼등으로 홈을 긁어 냈다. 묵은 전분과 탄 냄새가 함께 올라왔다.
"그 도마는 아버지가 쓰던 거야."
미라가 낮게 말했다.
도윤의 손이 멈췄다.
"버리자는 말 아닙니다."
"그럼?"
"쓰려면 먼저 살려야 합니다."
미라는 더 묻지 않았다.
도윤은 도마를 끓는 물로 데우고 마른 천으로 눌러 닦았다. 완전히 깨끗해진 건 아니었다. 그래도 젖은 홈에서 올라오던 차가운 냄새는 줄었다.
씻은 도구를 놓을 자리도 없었다.
선반마다 바구니와 포대가 얹혀 있었다. 어떤 바구니에는 먹을 수 있을지 모를 뿌리채소가 섞여 있었고 어떤 포대에는 알곡이 바닥 먼지와 함께 들어 있었다.
"전부 꺼내야 합니다."
"미쳤어?"
"분류해야 합니다."
"그걸 해 뜨기 전에?"
"안 하면 해가 떠도 못 씁니다."
미라는 욕을 삼키듯 입술을 깨물었다. 잠깐 뒤 바구니 하나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도윤은 그것을 허락으로 받아들였다.
뿌리채소는 세 무더기로 나뉘었다.
흙냄새가 분명하고 가벼운 것.
겉은 멀쩡하지만 쇠비린내가 남는 것.
껍질이 젖은 것처럼 차갑고 손에 들면 이상하게 묵직한 것.
세 번째는 빈 항아리에 넣었다.
"그건 다 버려?"
"먹이면 안 됩니다."
"버리면 아침에 뭘 팔아?"
도윤은 남은 무더기를 보았다. 양은 적었다. 껍질과 끝을 잘라 내면 더 줄어들 터였다.
"묽게 갑니다."
"손님한테 물죽을 팔라고?"
"안전한 한 그릇이 필요합니다. 배부른 한 그릇이 아니라."
미라가 웃었다. 웃음에는 힘이 없었다.
"빚쟁이한테도 그렇게 말해 봐. 안전하게 굶었다고."
도윤은 미라가 바닥에 편 작은 장부를 보았다. 동그라미와 선이 가득했다. 글자는 절반도 읽지 못했지만 손님 수와 그릇 수를 표시한 칸은 알 수 있었다.
미라는 손가락으로 장부를 두드렸다.
"남은 손님 여섯. 아이랑 보호자 둘. 위층에 자는 손님 셋. 해 뜨면 문 앞에서 욕할 사람 최소 넷. 장작은 반 묶음. 물은 두 통 반."
"먹일 수 있는 사람부터 나누죠."
"팔 수 있는 사람부터 나눠야 해."
둘은 잠깐 서로를 보았다.
도윤이 먼저 시선을 내렸다.
"그럼 둘 다 적어야 합니다."
"뭘?"
"먹이면 안 되는 재료. 팔 수 있는 양. 남은 물."
미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장부를 그의 쪽으로 조금 밀었다.
알곡은 물에 띄웠다.
가라앉는 것은 남겼다. 위에 뜨는 것은 건져 냄새를 맡았다. 묵은 자루 냄새는 참을 수 있었다. 시큼한 냄새가 나는 것은 버렸다. 먼지는 씻으면 사라졌지만 시큼한 냄새는 물을 갈아도 남았다.
"또 버려?"
"이건 섞으면 전체가 망합니다."
"망할 전체도 없어."
"그러면 더더욱요."
미라는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그때 홀에서 의자가 끌리는 소리가 났다.
"우린 돈 못 내."
새벽 내내 구석에 있던 중년 남자가 문가에 섰다.
"새벽솥 음식 먹다 애가 쓰러졌는데 돈을 내라고?"
미라의 얼굴이 굳었다.
"먹은 것값을 받겠다는 말 안 했어요. 아직 아무도 못 나갑니다. 누가 뭘 먹었는지 적어야 해요."
"우릴 붙잡겠다고?"
"붙잡는 게 아니라 살려 두려는 거예요."
도윤은 미라를 보았다. 방금 말은 그의 말과 닮아 있었다. 손님이 알아들을 수 있게 바뀌어 있었다.
뒷문이 두 번 울렸다.
쿵.
쿵.
홀이 조용해졌다. 문틈 아래로 붉은 끈이 묶인 종이가 밀려 들어왔다. 미라는 한동안 그것을 집지 않았다.
"벌써?"
"누구입니까?"
"해 뜨면 오는 사람들."
"빚쟁이요?"
"그 사람들이 직접 온 건 아니야. 심부름꾼이겠지. 겁주러 먼저 보내는 거야."
도윤은 종이를 집어 들었다. 글자는 흐렸지만 몇 단어는 들어왔다. 새벽솥. 해 뜰 때. 문. 인도.
미라가 종이를 빼앗았다.
"주방으로 가."
"메뉴 정해야 합니다."
"알아. 그러니까 가."
도윤은 다시 주방으로 돌아갔다.
먹을 수 있는 뿌리채소는 작았다. 껍질을 벗기면 손가락 두 마디만 남았다. 그는 속살을 잘게 썰었다. 두껍게 넣으면 씹는 시간은 늘겠지만 지금은 소화와 냄새가 먼저였다.
알곡은 세 번 헹궜다.
첫 물은 회색이었다. 두 번째는 흐렸다. 세 번째에서야 손바닥에 남은 냄새가 연해졌다.
냄비는 금이 간 작은 것뿐이었다. 도윤은 금 아래까지 물을 채우지 않았다. 물이 끓기 전 뿌리채소를 넣고 냄비를 불 가장자리로 밀었다.
"왜 가운데 불 안 써?"
미라가 돌아와 물었다.
"빨리 끓이면 냄새가 한 번에 올라옵니다. 걷어 낼 틈이 없습니다."
"손님은 빨리 달라 할 거야."
"미라 씨가 막아야 합니다."
"나한테 명령해?"
"부탁입니다."
미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홀로 나가며 목소리를 높였다.
"죽은 바로 안 나가요. 냄새 걷고 나가요. 먹을 사람은 기다리고 못 기다릴 사람은 이름 적고 가요."
손님들이 웅성거렸다. 누군가는 욕을 했고 누군가는 그대로 앉았다.
도윤은 냄비 옆을 지켰다.
거품이 떠올랐다. 첫 거품에서는 흙냄새가 났다. 괜찮았다. 두 번째 거품 끝에 약한 쇠 냄새가 걸렸다. 그는 그 부분을 바로 걷어 냈다.
노트에 적었다.
안전 무더기에서도 약한 이물감. 끝부분 혼입 가능. 거품 제거 후 냄새 감소.
손이 잠깐 굳었다.
흰 조리복. 바닥에 번지던 소스. 쓰러지는 소리. 누군가가 그냥 내라고 했던 목소리.
도윤은 숟가락을 다시 쥐었다.
넘어가면 못 본다.
못 보면 늦는다.
알곡을 넣자 죽이 묽게 풀렸다. 든든한 음식은 아니었다. 그래도 냄새는 잔잔했다. 따뜻한 김이 올라오자 홀의 소음이 조금 낮아졌다.
아이의 어머니가 주방 문가에 서 있었다.
"그 냄새."
도윤은 숟가락을 멈췄다.
"불편합니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아이의 손가락은 여전히 완전히 펴지지 않았다. 그래도 손목은 딱딱하게 굳어 있지 않았다.
"아까보다 무섭지 않아."
도윤은 죽을 작은 그릇에 덜었다.
"아이에게는 아직 조금만입니다. 손님용은 따로 냅니다."
"알아."
그녀가 그릇을 받아 들었다. 미라는 그 모습을 보다가 장부에 표시를 하나 했다.
첫 그릇은 손님에게 가지 않았다.
도윤은 자신이 먼저 한 숟가락을 입에 넣었다. 맛은 거의 없었다. 뿌리채소의 단내가 물에 흩어졌고 알곡은 오래된 냄새를 겨우 지웠다. 혀끝을 찌르는 느낌은 없었다.
그는 숨을 내쉬었다.
"손님에게 낼 수 있습니다. 약합니다."
"약한 건 내가 말할게."
미라는 그릇을 들고 홀로 나갔다.
"오늘 새벽솥은 진한 스튜 못 내요. 아이가 쓰러진 재료는 따로 묶었고 먹는 재료는 여기서 씻고 끓였어요. 못 믿겠으면 안 드셔도 됩니다. 드시는 분은 이름이랑 몸 상태 먼저 말해요."
"몸 상태?"
"밤새 배 아팠는지. 입이 쓴지. 손이 저린지."
미라는 도윤의 말을 그대로 옮기지 않았다.
더 짧게 만들었다. 더 세게 만들었다.
그래서 손님들이 알아들었다.
중년 남자가 투덜대며 앉았다.
"한 그릇만."
다른 손님도 손을 들었다.
"나도. 대신 돈은 반만 낼 거야."
"반값이면 물값도 안 나와요."
"그럼 안 먹어."
"이름 적고 가세요. 나중에 아프다고 와도 책임 못 져요."
손님은 욕을 삼키고 다시 앉았다.
도윤은 두 번째 냄비를 바로 올리지 않았다. 같은 냄비를 씻어 다시 끓였다. 느렸다. 손님들의 시선이 등에 꽂혔다.
그래도 바꾸지 않았다.
해가 밝기 전 주방 바닥은 전보다 덜 미끄러웠다. 칼은 깨끗한 천 위에 놓였다. 의심 재료가 든 항아리는 끈으로 묶였고 미라는 그 위에 새벽솥 표시를 그렸다.
붉은 끈 독촉장은 물통 옆에 놓여 있었다.
도윤은 빈 그릇 수를 세었다.
"여섯 그릇. 아이는 별도. 의심 재료 보관 한 항아리. 버릴 뿌리채소 세 바구니."
"폐기가 아니라 봉인."
미라가 말했다.
"성찬원이든 빚쟁이든 오면 보여 줘야 하니까."
"그럼 봉인이라고 적겠습니다."
도윤은 노트에 썼다.
미라가 그의 손목을 보았다. 타이머가 아직 차갑게 빛났다.
"그 물건도 적어?"
"제 건 적지 않습니다."
"왜?"
도윤은 잠깐 멈췄다.
"어디까지 설명해야 할지 모릅니다."
"그럼 나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겠네."
맞는 말이었다.
미라는 장부를 덮었다.
"하루."
도윤은 그녀를 보았다.
"오늘 해 질 때까지. 주방은 당신이 맡아. 대신 조건 있어."
"말씀하세요."
"버리는 양을 속이지 마. 손님 앞에서 재료 숨기지 마. 아이가 다시 나빠지면 제일 먼저 말해. 그리고 도망치지 마."
"도망갈 곳 없습니다."
"그 말 두 번째야. 세 번째 들으면 거짓말로 칠 거야."
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문틈으로 푸른 새벽빛이 들어왔다. 화덕 재 속의 빛은 보이지 않았다. 방수 노트 표지의 색만 이상하게 선명했다.
미라가 홀 쪽으로 턱짓했다.
"오늘 하루 주방장."
그 호칭은 가볍지 않았다.
"첫 손님 받아."
도윤은 깨끗한 숟가락을 집었다.
"일단 이름부터 적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