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식하는 요리사가 식독을 고친다

4화 이름부터 적겠습니다
미라는 문을 반쯤 열어 둔 채 홀을 훑었다.
새벽빛을 따라 들어온 사람은 셋이었다. 마부 차림의 남자와 짐꾼 둘. 셋 모두 빈 솥보다 먼저 주방 바닥을 보았다.
도윤은 깨끗한 숟가락 세 개와 작은 종이쪽을 탁자 위에 놓았다. 바닥은 밤보다 덜 미끄러웠다. 그렇다고 안전해진 것은 아니었다.
"앉기 전에 이름부터 적겠습니다. 어제 여기서 드신 게 있으면 그것도요. 속이 메스껍거나 입안이 저리면 먼저 말씀하시고요."
마부가 찌푸린 얼굴로 도윤을 봤다.
"죽 한 그릇 먹는데 이름까지 내놔야 해?"
"나중에 아픈 사람이 생기면 누가 무엇을 먹었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럼 아프게 만들지 마."
미라가 장부를 펼쳤다.
"이름 안 적으면 안 팔아요. 오늘은 선불이고 그릇은 여기서 먹어요."
"값은 어제처럼 깎아 줄 거고?"
"어제처럼 쓰러질 재료는 안 써요. 값도 안 깎아요."
마부는 한동안 서 있었다. 문밖은 차가웠고 다른 여관까지 가려면 수레를 돌려야 했다. 그는 욕을 삼키고 이름을 말했다.
도윤은 소리를 흉내 내어 적었다. 낯선 글자는 여전히 반쯤밖에 읽히지 않았다. 조리와 몸 상태에 얽힌 말만 이상하게 손에 붙었다.
드로. 어젯밤 묽은 국 반 그릇. 입안 저림 없음. 구토 없음.
도윤은 남자의 얼굴을 한 번 더 봤다. 입술이 푸르지 않은지, 손끝이 굳지 않은지, 눈동자가 흐리지 않은지.
"뭘 그렇게 봐?"
"아픈 기색이 있는지 봤습니다."
"내가 멀쩡한 건 보이잖아."
"그래서 멀쩡하다고 적었습니다."
짐꾼 하나가 피식 웃었다. 마부는 더 말하지 못하고 자리에 앉았다.
미라는 두 사람의 이름도 장부에 받아 적었다. 글씨는 도윤의 노트보다 훨씬 빠르고 날카로웠다. 그녀는 동전을 손바닥에 쏟아 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남은 물로 두 솥은 못 해. 한 솥 더 끓이면 바닥이야."
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노트 한쪽에 줄을 그었다.
아침 첫 솥. 물통 두 통 반. 장작 짧은 것 일곱. 알곡 한 바가지 반.
"그걸 적어서 물이 늘어나?"
"안 적으면 얼마나 못 하는지 모릅니다."
미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가장 작은 동전 하나를 장부 귀퉁이에 올려 두었다.
"이건 그릇 깨지면 못 돌려줘요."
"그릇 깨뜨릴 사람 없어요."
"오늘은 다들 처음이라서요."
아이 보호자는 벽 쪽 의자에 앉아 아이의 이마를 만지고 있었다. 아이는 눈을 감은 채 숨을 고르게 쉬었다. 손가락은 아직 담요 끝을 약하게 쥐고 있었다.
도윤은 그쪽을 보다가 냄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이에게 냈던 죽보다 더 묽게 끓였다. 치료를 흉내 내는 음식이 아니라 남은 사람을 굶기지 않기 위한 아침 메뉴였다.
뿌리채소 속살은 손톱만 하게 잘랐다. 알곡은 세 번 헹군 뒤 물을 넉넉히 잡았다. 냄비 가장자리에서 올라온 거품은 숟가락으로 걷어 냈다.
강한 불을 쓰면 빨랐다. 냄비 바닥이 눌어붙으면 다음 솥까지 망칠 수 있었다.
도윤은 화덕 가장자리로 장작을 밀었다.
미라가 손님들에게 말했다.
"처음 그릇은 적게 나가요. 먹고 이상 없으면 더 드려요."
"죽이 모자라서 그러는 거 아냐?"
"모자라기도 해요. 그러니 더더욱 아무한테나 퍼 줄 수 없죠."
그 말에는 변명이 없었다. 손님들은 불평하면서도 그릇을 받았다.
도윤은 세 그릇을 동시에 내지 않았다. 마부에게 먼저 한 그릇을 건넸다. 그가 첫 숟가락을 삼키는 동안 짐꾼의 그릇에 죽을 담았다.
마부가 두 숟가락째를 넘긴 뒤 혀를 찼다.
"텁텁하군. 이게 또 이상한 거 아냐?"
미라의 손이 장부 위에서 멈췄다.
도윤은 대답하지 않고 그릇을 받아 들었다. 죽 냄새에는 쇠비린내가 없었다. 바닥 가까이에 남은 알곡도 끈적이지 않았다. 그는 냄비 뚜껑을 열어 김 냄새를 다시 맡았다.
"입안이 저립니까?"
"그 정도는 아니야."
"목이 조이거나 숨이 짧습니까?"
"아니. 그냥 텁텁해."
"손 보여 주세요."
"뭐?"
"확인만 하겠습니다."
남자가 마지못해 손을 내밀었다. 손끝은 따뜻했고 손가락이 굳은 데도 없었다. 도윤은 손목을 오래 잡지 않았다. 한 번 보고 놓았다.
그는 빈 그릇 안쪽을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미세한 기름막과 함께 오래 젖은 천 냄새가 묻었다.
물통 쪽으로 가자 마개로 쓰던 헝겊이 눅눅하게 축 처져 있었다. 가장자리에는 검은 얼룩이 박혀 있었다.
"죽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마부가 코웃음 쳤다.
"또 말 돌리는군."
"입안이 저리거나 숨이 막히는 증상은 없습니다. 텁텁한 냄새는 그릇을 헹군 물 쪽이 더 가깝습니다."
미라가 물통을 들여다봤다.
"어젯밤에 끓인 물인데."
"물통 안에 남은 냄새가 옮았습니다. 이 헝겊은 쓰면 안 됩니다."
"그럼 물을 다 버려?"
"마실 물은 남기고 헹군 물부터 바꾸겠습니다."
도윤은 마개를 집어 들었다. 천은 겉보다 안쪽 냄새가 더 심했다. 뜨거운 물에 적셨다가 식은 채로 물통 입구를 막았던 냄새였다.
그가 천을 내려놓자 미라는 곧장 빈 양동이를 들었다.
"그릇은 내놔요. 새 물로 다시 헹궈 줄 테니까. 대신 다 먹고 불평해요."
"물을 새로 길어 오면 죽은 언제 나와?"
"지금 지은 건 나가요. 다음 그릇부터는 새 물로 헹궈요. 그게 싫으면 드로 씨가 처음 그릇을 다 드시고 결정해요."
마부는 자기 이름이 미라 입에서 나오자 잠깐 멈췄다. 그는 죽을 한 숟가락 더 떠먹었다.
"맛이야 없진 않군."
"맛있다는 말로 적을까요?"
도윤이 물었다.
"그건 적지 마."
짐꾼 둘이 웃음을 터뜨렸다. 홀의 공기가 아주 조금 풀렸다.
그때 문이 쾅 울렸다.
문턱 밖에서 장작상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미라 벨! 묶음 두 개 값은 오늘 받아야겠어!"
미라의 얼굴이 굳었다. 그녀가 대답하기도 전 뒷문 쪽에서 다른 발소리가 들렸다. 가볍고 느린 걸음이었다.
마른 남자가 붉은 끈을 손가락에 감은 채 홀로 들어섰다. 그는 손님보다 먼저 봉인 항아리를 봤다.
"아직도 문을 열었군."
미라가 젖은 물통을 내려놓았다.
"문 닫으라는 종이는 안 받았어요."
"정오 전까지 값을 마련해. 아니면 안에 든 것까지 함께 넘겨."
"안에 든 건 증거예요."
남자는 항아리를 발끝으로 툭 건드렸다.
도윤이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손대지 마십시오."
남자의 눈이 가늘어졌다.
"새 주방장이군."
"오늘 하루예요. 주방 일만 맡았어요."
도윤이 말하자 미라가 바로 끊었다.
"새벽솥 주인은 나예요. 항아리도 손님도 내 책임이고요."
그녀는 봉인 항아리를 들어 주방 안쪽 선반으로 옮겼다. 끈 매듭이 손님들 눈에 보이도록 항아리 입구를 돌려 놓았다.
"그 안에 든 건 팔 물건이 아니에요. 먹인 재료와 먹이지 않은 재료를 나눈 기록이에요."
심부름꾼이 작게 웃었다.
"기록이 밥을 사 주진 않지. 장작상인도 기다리더군. 불 꺼지면 손님이 알아서 나가겠어."
그는 물통을 발끝으로 차고 나갔다. 남은 물이 바닥에 얇게 번졌다. 붉은 끈 끝이 문밖에서 한 번 흔들렸다.
문이 닫힌 뒤에도 미라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정오까지라네."
"들었습니다."
"돈은 여덟 그릇 팔아도 모자라. 장작은 두 묶음 더 필요하고 물도 길어야 해."
도윤은 바닥의 물을 보고 장작 묶음을 세었다. 짧은 장작 일곱 개. 긴 장작 두 개. 화덕 가장자리의 불은 아직 살아 있었다.
"지금 불로 한 솥 더 가능합니다. 많이 끓이면 안 됩니다."
"그걸 계산하는 게 지금 할 말이야?"
"모르면 더 못 팝니다."
미라의 눈가가 굳었다. 도윤은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빈 접시에 남은 알곡을 부어 손바닥으로 양을 가늠했다. 손님이 먹을 수 있는 분량과 물을 끓이는 데 쓸 분량은 같지 않았다.
민재가 쓰러졌을 때도 누군가는 빨리 내보내라고 했다. 도윤의 손이 냄비 손잡이 위에서 잠깐 굳었다.
그는 손을 놓고 노트를 폈다.
남은 알곡 한 바가지. 장작 짧은 것 일곱. 긴 것 둘. 헹굴 물 부족. 봉인 항아리 한 개.
글자를 적고 나서야 손끝이 움직였다.
미라는 장부를 덮지 않았다. 그녀는 바닥의 물을 걸레로 닦고 손님들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한 솥 더 나가요. 먼저 적은 사람부터요. 물 길어 오는 동안은 그릇 안 깨고 자리 비우지 마요."
"정오에 여관을 뺏긴다는데 밥을 팔겠다고?"
드로가 물었다.
"정오에 뺏길지라도 아침은 먹어야 하니까요."
그 말은 손님보다 미라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도윤은 봉인 항아리를 가리켰다.
"이건 팔지 않습니다. 먹을 재료는 이쪽뿐입니다. 물이 모자라면 죽도 더 못 냅니다."
"그래도 한 그릇 더 되는 거지?"
드로가 빈 그릇을 들었다.
미라가 손을 내밀었다.
"됩니다. 동전부터요."
드로는 못마땅한 얼굴로 동전을 올려놓았다. 미라는 동전을 세지 않고 장부 옆에 밀어 두었다. 손님 수가 아니라 물과 불이 먼저 모자란다는 것을 그녀도 알고 있었다.
아이 보호자가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우물은 뒤 골목 끝이야."
도윤이 돌아봤다.
"그리고 그 뿌리채소 말인데. 어제 행상이 동쪽 시장 어귀에서 풀었어. 수레 바퀴에 파란 흙이 묻어 있었지."
미라가 눈을 들었다.
"그걸 왜 이제 말해요?"
"아이를 안고 있어서 정신이 없었어. 상자 하나를 넘어뜨렸는데도 못 봤지."
보호자는 잠든 아이의 담요를 여몄다. 그 손이 아직도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나는 건 그뿐입니까?"
"행상이 물은 안 팔았어. 뿌리와 알곡만. 수레는 우물 쪽 길을 타고 왔고."
도윤은 노트에 적었다.
의심 뿌리채소. 동쪽 시장 어귀 행상. 수레 바퀴 파란 흙. 우물 쪽 길.
미라가 빈 물통을 보며 말했다.
"혼자 갈 생각은 하지 마요. 당신은 길도 모르잖아."
"주방을 비우면 손님을 놓칩니다."
"그럼 내가 가고 당신이 여기 있어."
도윤은 고개를 저었다.
"어제 재료를 본 건 저입니다. 물통도 제가 확인해야 합니다."
"우물물에 뭐가 있으면?"
"모릅니다. 그래서 더 봐야 합니다."
미라는 입술을 다물었다. 그녀는 홀과 주방, 장부와 아이를 차례로 봤다. 어느 하나도 비워 둘 수 없었다.
도윤은 손에 든 물통을 들어 보였다.
"우물까지만 갔다 오겠습니다. 물 색과 냄새를 보고 가져온 뒤에 시장 이야기를 정하죠."
"돌아와요."
"돌아옵니다."
"그 말은 장부에 적어 둘까?"
도윤은 잠깐 미라를 봤다.
"물 두 통. 우물 위치. 동쪽 시장. 돌아와서 확인."
그는 그대로 노트에 적었다.
미라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물통 두 개만. 시장까지 가지는 마요. 정오 전에 또 그자가 올 테니까."
도윤이 빈 물통 하나를 더 집어 들자 화덕 재 속에서 아주 작은 푸른빛이 번졌다가 꺼졌다. 방수 노트 표지 가장자리도 같은 색을 머금었다.
그는 걸음을 멈췄다.
"왜 그래?"
"아닙니다."
빛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재는 평범한 회색으로 돌아갔다.
도윤은 노트 마지막 줄 아래에 짧게 덧붙였다.
물의 출처부터 확인.
그리고 빈 물통을 들고 뒤 골목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