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감독, 축구 신이 되다

21화: 이긴 팀의 계산서
라커룸 문이 닫히자마자 소리가 터졌다.
물병이 벽을 두드렸다. 젖은 유니폼이 머리 위에서 돌았다. 조나 박은 양말 한쪽도 벗지 못한 채 벤 오리어리의 어깨에 매달렸다.
"봤지? 내가 코너 플래그까지 가면 아무도 못 잡는다니까."
"잡혔잖아."
"그래서 파울을 얻었지."
웃음이 한 번 더 터졌다.
서시우도 짧게 숨을 뱉었다.
이긴 건 맞았다.
전광판에 남은 1-2는 거짓말이 아니었다. 선수들이 서로를 밀치고 껴안는 것도, 원정 라커룸 밖에서 아직 꺼지지 않는 이스트베리 팬들의 노래도 진짜였다.
하지만 시우의 시선은 곧바로 아래로 내려갔다.
조나는 웃으면서도 왼쪽 종아리를 계속 문질렀다. 벤은 손바닥으로 허벅지를 눌렀고, 리암 스콧은 자기 자리 앞에 서서 양손을 무릎에 얹고 있었다.
공을 보는 눈이 아니었다.
아직도 문을 보고 있는 사람의 눈이었다.
그리고 마커스 리드.
주장은 얼음주머니를 무릎에 댄 채 벤치 끝에 앉아 있었다. 라커룸 안이 흔들릴 만큼 시끄러운데도, 그의 얼굴은 묘하게 조용했다.
"캡틴!"
조나가 소리쳤다.
"한 말씀 하셔야죠. 저 팀 잡은 주장 아닙니까."
마커스가 얼음주머니를 내려놓고 일어나려 했다.
그 순간 왼쪽 무릎이 아주 짧게 꺼졌다.
시우가 먼저 움직였다.
"앉아."
라커룸의 소리가 반 박자 늦게 줄었다.
마커스는 아무렇지 않은 척 웃었다.
"이 정도로 앉으면 내 체면이..."
"체면은 오늘 충분히 세웠어."
시우는 그의 앞에 섰다.
"이제 무릎 세워."
마커스의 입가가 조금 굳었다. 선수들이 그제야 시선을 피했다. 승리 뒤에 가려져 있던 대가가 라커룸 한가운데로 끌려 나온 것처럼 공기가 무거워졌다.
의무 담당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감독님, 리드부터 봐야 합니다. 그리고 스콧, 오리어리도 체크해야 합니다."
"셋 다."
시우가 바로 대답했다.
벤이 손을 들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네가 괜찮은 건 다음 공을 볼 때고."
시우가 그를 봤다.
"지금은 다음 경기를 봐야 해."
벤은 입을 다물었다.
리암은 그 말을 듣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감독님."
"왜."
"마지막 공에서..."
리암은 잠깐 말을 찾지 못했다.
"공이 오는 줄 알았는데, 길이 먼저 보였습니다."
마커스가 조용히 웃었다.
"그게 문이야."
리암은 그 말에 고개를 숙였다.
벤도 뒤늦게 자기 오른발을 내려다봤다.
"저도 중앙으로 차면 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랬으면 끝났을 수도 있지."
시우가 말했다.
"어느 쪽으로 끝났을지는 아무도 모르고."
벤의 얼굴이 굳었다.
그는 그제야 자신이 마지막에 찬 것이 걷어내기가 아니라 선택이었다는 걸 이해한 듯했다.
시우의 시야 한쪽에 푸른 창이 떠올랐다.
[선수 상태 경고]
- 마커스 리드: 경기 지속 불가 / 정밀 검사 필요
- 리암 스콧: 과부하 경고 / 48시간 고강도 훈련 금지 권장
- 벤 오리어리: 근육 피로 누적 / 회복 세션 권장
승리의 숫자보다 먼저 뜨는 경고.
그게 오늘의 계산서였다.
의무실 앞 복도는 라커룸보다 훨씬 조용했다.
벽 너머에서 선수들의 노랫소리가 희미하게 넘어왔다. 원정 팬들의 함성도 아직 완전히 꺼지지 않았다.
마커스는 침대에 앉아 무릎을 굽혔다 폈다.
의무 담당의 얼굴이 좋아지지 않았다.
"터진 건 아닙니다."
마커스가 먼저 말했다.
"그럼 됐네."
"됐다는 말은 제가 합니다."
시우가 끊었다.
의무 담당은 차트를 접었다.
"급성 파열 소견은 없습니다. 다만 부종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내일 오전 스캔을 잡아야 합니다. 최소 2주는 경기 명단에서 빼는 게 맞습니다."
"최소?"
마커스가 되물었다.
"스캔 결과에 따라 늘어날 수 있습니다."
마커스는 웃으려다 실패했다.
"감독."
"안 돼."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네가 할 말은 하나잖아."
마커스는 잠깐 천장을 봤다.
"팀이 지금 올라가고 있어. 이럴 때 빠지면..."
"오늘 네가 빠져서 팀이 살았어."
시우의 목소리는 낮았다.
"그리고 네가 쉬었다고 팀이 멈추면, 그건 팀이 아니라 네 무릎 하나에 매달린 거야."
마커스의 표정이 바뀌었다.
그 말은 위로가 아니었다.
주장에게 가장 아픈 지점이었다.
시우는 바로 덧붙였다.
"그러니까 네가 빠져 있을 동안 버틸 자리를 만든다. 네가 돌아올 자리도 같이."
마커스는 한참 뒤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 자리를 빼앗으려고?"
"네 무릎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복도 끝에서 조 코치가 다가왔다. 그의 손에는 일정표가 있었다.
"보스. 리그 경기가 사흘 뒤입니다. 컵 재추첨 일정도 곧 나옵니다. 마커스가 빠지면 센터백 조합이 얇습니다."
"알아."
"리암을 내리면 중원 문이 비고, 리암을 올리면 박스가 비죠."
"그래서 보강이 필요해."
시우는 복도 창밖을 봤다.
아일스필드의 조명이 하나씩 꺼지고 있었다.
경기장은 끝났다.
시장은 이제 시작이었다.
버스 안은 늦게 조용해졌다.
앞좌석에서는 조나가 잠든 척을 하다가 자꾸 웃음을 흘렸다. 벤은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있었고, 리암은 손바닥을 펴고 접었다.
그의 손은 아직도 누군가의 길을 막고 있었다.
시우는 맨 앞자리에서 태블릿을 켠 척했다.
실제로 본 것은 다른 창이었다.
[미션 완료: FA컵 3라운드 업셋]
- 보상: 18,000 SP
- 현재 보유 SP: 26,000
- 리암 스콧 카드 적응률: 71%
- 겨울 시장 스카우트 목록 갱신
26,000.
많아 보이는 숫자였다.
하지만 부족했다.
리암에게 장착한 B급 카드 하나가 28,000이었다. 회복 아이템 하나로 피로를 덮을 수는 있어도, 무너진 수비 뎁스를 시즌 끝까지 가릴 수는 없었다.
시우는 스카우트 목록을 열었다.
[겨울 시장 후보 일부]
1. 노아 그랜트 / 20세 / 왼발 센터백 / U23 잔류군
- 강점: 라인 뒤 공간 예측, 첫 패스, 낮은 블록 적응
- 약점: 공중 경합 미완성, 성인 무대 경험 부족
- 예상 조건: 6개월 임대 가능
2. 칼 에반스 / 27세 / 센터백-풀백 겸업
- 강점: 즉시 전력, 몸싸움, 롱스로인
- 약점: 느린 전환, 높은 주급
- 예상 조건: 완전 이적만 선호
3. 밀란 페트로비치 / 31세 / 골키퍼
- 강점: 크로스 처리, 라커룸 영향력
- 약점: 반사 신경 하락
- 예상 조건: 단기 계약 가능
노아 그랜트.
시우의 시선이 첫 번째 이름에 멈췄다.
마커스처럼 공중을 지배하는 선수는 아니었다. 당장 박스 안에서 상대 장신 공격수와 부딪치면 밀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줄을 읽는 수치가 높았다.
라인 뒤 공간.
첫 패스.
낮은 블록.
이스트베리의 진흙 피치와 리암의 문, 벤의 바람을 연결하기에 가장 가까운 재료였다.
[전술 적합도]
- 현재 이스트베리 4-1-4-1 낮은 블록: 82%
- 마커스 리드 부재 시 보완 효율: 76%
- 즉시 주전 안정성: 48%
- 성장 기대치: 높음
즉시 주전 안정성 48%.
위험했다.
그러나 완성품은 비쌌다. 완전 이적은 더 비쌌다. 이스트베리가 돈으로 완성된 수비수를 살 수 있는 팀이었다면, 애초에 시우가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다.
임대.
6개월.
마커스가 쉬는 동안 버티고, 승격 레이스가 끝날 때까지 팀의 등뼈를 하나 더 세울 수 있는 조건.
"보스."
조 코치가 옆자리로 몸을 기울였다.
"오늘 관계자석에 있던 회색 코트 말입니다."
시우는 창을 닫지 않았다.
다만 시선을 현실로 돌렸다.
"봤어?"
"전반엔 아일스필드 쪽 분석관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종료 뒤에도 우리 선수들을 보고 있더군요."
"누구."
"리암하고 벤."
예상한 이름이었다.
그래도 직접 들으니 목 뒤가 차가워졌다.
"소속은?"
"모르겠습니다. 기자는 아닙니다. 기자라면 경기 끝나고 회장님부터 붙잡았을 겁니다."
시우는 버스 뒤쪽을 봤다.
리암은 잠들지 못했다.
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아직 자신들이 어떤 경기에서 이겼는지도 다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미 누군가는 그들의 이름을 적었다.
이긴 팀은 더 이상 숨어 있을 수 없었다.
버스가 경기장 주차장을 빠져나가기 직전 멈췄다.
경비원이 차량 출입구를 열고 있었다.
그 짧은 시간, 시우는 창밖에서 그 남자를 다시 봤다.
회색 코트.
가로등 아래에 서서 전화를 하고 있었다. 한 손에는 작은 수첩이 들려 있었다. 표지는 검은색이었다.
남자는 버스를 보지 않는 척했다.
하지만 시선은 리암이 앉은 창 쪽에서 한 번 멈췄다.
그다음 벤이 있는 줄에서 다시 멈췄다.
시우의 시야에 작은 창이 떠올랐다.
[외부 관찰 기록 증가]
- 대상 추정: 리암 스콧 / 벤 오리어리
- 관찰자 소속: 확인 불가
- 위험: 비공식 접촉 가능성
확인 불가.
시스템도 모르는 것이 있었다.
그래서 더 현실적이었다.
앤서 데스가 앞좌석에서 몸을 돌렸다. 그는 아직도 승리의 열이 빠지지 않은 얼굴이었다.
"감독. 오늘 상금만 해도 숨통이 트일 겁니다. 다음 라운드 중계가 잡히면 더..."
그는 시우의 시선을 따라 창밖을 봤다.
회색 코트 남자가 막 등을 돌리고 있었다.
"누굽니까?"
"아직 모릅니다."
"우리 선수를 보러 온 겁니까?"
시우는 잠깐 대답하지 않았다.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회색 코트는 가로등 뒤로 작아졌다.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앤서의 얼굴에서 웃음이 빠졌다.
"우리는 선수를 사야 하는데요."
"네."
시우는 다시 앞을 봤다.
"동시에 지켜야 합니다."
그때 조 코치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는 화면을 확인하고 눈썹을 찌푸렸다.
"보스."
"뭔데."
"프런트 공유 메일입니다. 중개인 쪽에서 전달됐답니다."
"무슨 내용."
조 코치가 화면을 내밀었다.
제목만으로도 충분했다.
벤 오리어리 선수 관련 비공식 문의
시우는 한참 동안 그 제목을 봤다.
승리는 끝났다.
계산은 이제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