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감독, 축구 신이 되다

15화: 미끼가 된 그림자
원정 라커룸의 문이 닫히자 함성이 벽 너머로 밀려났다.
그래도 소리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웨스트햄 홈 관중의 야유는 콘크리트 벽을 타고 낮게 울렸다. 전반 0-0. 이스트베리에게는 기적 같은 숫자였지만, 라커룸 안 선수들의 얼굴에는 웃음보다 피로가 먼저 묻어 있었다.
마커스 리드의 유니폼에는 잔디 자국이 겹겹이 번져 있었다.
벤 해리스는 물병을 비우고도 한동안 숨을 고르지 못했다.
토미 밀러는 벽을 보고 서 있었다.
"저건 골이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다.
벤이 옆에서 대답했다.
"알아."
"뒤에서 출발했습니다."
"나도 봤어."
토미가 천천히 돌아섰다.
"그런데 점수판은 안 바뀌었잖아요."
라커룸이 조용해졌다.
그 말은 모두가 하고 싶었지만, 누구도 꺼내지 못한 말이었다.
아서 웰스 구단주는 문가에서 손수건을 쥔 채 입술만 달싹였다. 전반을 버틴 감격과 빼앗긴 골의 분노가 그의 얼굴에 동시에 걸려 있었다.
존 코치가 먼저 현실로 돌아왔다.
"보스, 후반 초반이 위험합니다. 저쪽은 리암을 노릴 겁니다. 전반 끝나기 전부터 작정하고 건드렸습니다."
"압니다."
한시우는 전술판 앞에 섰다.
"그래서 후반 첫 10분은 리암이 미끼입니다."
리암 오코너의 눈이 굳었다.
시우는 흰 자석 하나를 박스 앞에 놓았다. 전반 막판, 리암이 공을 낚아챘던 자리였다.
"웨스트햄은 이 자리를 의식합니다. 동시에 리암을 흔들고 싶어 합니다. 경고를 만들거나, 발을 뻗게 하거나, 그냥 겁먹게 만들고 싶겠죠."
시우는 자석을 반 걸음 위로 밀었다.
"그러니 보여줍니다. 리암이 조금 올라온 것처럼."
존 코치의 눈썹이 올라갔다.
"그럼 박스 앞 문이 비어 보입니다."
"비어 보이게 하는 겁니다."
시우는 벤의 자석을 리암의 뒤가 아니라 왼쪽 사선으로 옮겼다.
"웨스트햄 10번이 달려들고, 수비형 미드필더가 따라 나오면 벤은 뒤로 빠지지 않습니다. 옆으로 빠집니다. 그들이 방금 버린 길을 쓰는 겁니다."
벤이 전술판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리암이 물리면, 제가 사선에서 받는다."
"정확합니다."
리암의 목소리가 낮게 갈라졌다.
"제가 빼앗지 못하면요?"
시우는 리암을 바라보았다.
"빼앗으려고 하지 마."
리암의 손가락이 움찔했다.
"물게 만들고 버텨. 잡아먹히는 미끼가 아니라, 상대가 물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미끼다."
마커스가 물병을 내려놓았다.
"신입."
리암이 돌아보았다.
"넘어져도 쫓아가지 마라. 네가 가야 할 곳은 공이 아니라 자리다."
짧은 말이었다.
하지만 리암에게는 전술판의 선보다 더 선명했다.
토미가 주먹을 쥔 채 물었다.
"그러면 저는요?"
시우는 토미의 자석을 터치라인 가까이에 놓았다.
"너는 전반에 빼앗긴 걸 되찾으려고 뛰지 마라."
토미의 턱이 굳었다.
"그럼 뭘 합니까?"
"다시 넣으려고 뛰어."
그제야 토미의 눈빛에서 항의가 빠졌다.
분노는 남았다.
하지만 방향이 바뀌었다.
후반 시작 휘슬이 울렸다.
웨스트햄은 전반보다 더 거칠게 들어왔다. 첫 패스부터 속도가 붙었고, 홈 관중은 전반 0-0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듯 함성을 밀어붙였다.
리암은 시우가 지시한 위치에 섰다.
박스 앞 16m보다 반 걸음 높게.
작은 차이였다.
그러나 웨스트햄의 눈에는 빈틈처럼 보였다.
웨스트햄 10번이 공을 받자마자 몸을 돌렸다.
"또 왔네, 문제아."
리암은 대답하지 않았다.
10번은 일부러 공을 길게 밀었다. 발을 뻗으면 닿을 거리였다. 동시에 웨스트햄의 수비형 미드필더가 뒤에서 올라왔다.
리암이 태클하면 둘이 한꺼번에 엉킬 위치.
태클밖에 모르는 놈.
낡은 목소리가 다시 올라왔다.
리암의 발끝이 잔디를 긁었다.
그때 마커스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꽂혔다.
"자리!"
리암은 발을 뻗지 않았다.
대신 몸을 낮추고 10번의 다음 패스 길을 막았다. 공은 잠시 멈췄고, 웨스트햄 10번은 리암의 어깨를 밀며 안쪽으로 들어오려 했다.
리암은 밀리지 않았다.
공을 빼앗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웨스트햄의 공격은 그 자리에서 반 박자 죽었다.
스윽.
[리암 오코너 - 미끼 압박 유도]
- 상대 10번 접근
- 수비형 미드필더 전진
- 중앙 후방 공간 발생
시우가 즉시 외쳤다.
"벤, 옆!"
벤은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리암의 왼쪽 사선으로 빠졌다. 웨스트햄 선수 둘이 리암에게 붙은 순간, 벤은 텅 빈 길 위에 서 있었다.
리암의 발끝이 공을 살짝 건드렸다.
완전한 탈취는 아니었다.
공의 방향을 반 박자 늦춘 것뿐이었다.
그러나 벤에게는 그 반 박자면 충분했다.
벤이 달려들어 공을 잡았다.
벤 해리스의 첫 터치는 길지 않았다.
그는 전반의 3초를 기억하고 있었다. 리암이 회수하고, 자신이 열고, 토미가 뛰는 그 짧은 시간.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웨스트햄의 수비형 미드필더가 리암을 물고 나온 탓에 중앙은 비었지만, 센터백들은 이미 토미를 의식하고 있었다.
벤은 정면이 아니라 바깥쪽을 골랐다.
"토미!"
공은 터치라인을 따라 빠르게 굴렀다.
토미는 기다렸다는 듯 출발했다.
전반의 깃발은 아직 그의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부심을 보지 않았다.
공만 보았다.
웨스트햄 풀백이 급히 몸을 틀었다. 전반의 취소된 골 장면이 떠오른 듯, 그는 먼저 뒤로 뛰었다.
그 반응이 오히려 공간을 만들었다.
토미는 공을 세우지 않았다.
툭.
바깥으로 한 번.
안쪽으로 반 박자.
풀백의 중심이 흔들렸다.
홈 관중의 함성이 한순간 낮아졌다.
그러나 프리미어리그 수비수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풀백은 손을 쓰지 않는 척 어깨로 토미의 진로를 막았다. 토미의 몸이 밀렸고, 공은 라인 쪽으로 흘렀다.
"버텨!"
벤이 외쳤다.
토미는 넘어지지 않았다.
오른발 끝으로 공을 살리며 풀백의 다리 사이로 밀어 넣었다. 그 순간 센터백 하나가 커버에 들어왔다.
쾅!
공은 센터백의 정강이에 맞고 튀었다.
코너킥처럼 보였지만 부심은 스로인을 가리켰다.
토미의 팔이 반쯤 올라갔다.
멈췄다.
그는 부심에게 가지 않았다. 공을 주워 벤에게 던졌다.
"한 번 더."
벤의 입가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
기록지에는 슈팅도, 유효 슈팅도 남지 않을 장면이었다.
하지만 웨스트햄 수비수들은 뒤로 뛰었다.
4부 리그 윙어 하나 때문에.
후반 52분.
웨스트햄은 더 노골적으로 리암을 겨냥했다.
스로인 이후 이스트베리가 공을 잃자, 웨스트햄은 곧장 중앙으로 몰고 들어왔다. 10번은 리암을 향해 공을 끌었고, 수비형 미드필더도 다시 전진했다.
시우는 손목시계를 보았다.
후반 첫 10분 중 7분이 지났다.
조금만 더 물게 만들면 된다.
웨스트햄 10번이 공을 발밑에 두고 리암 앞에서 멈췄다.
"아직도 안 달려드네."
리암은 숨을 고르고 있었다.
"겁먹었냐?"
공이 다시 길게 밀렸다.
이번에는 더 가까웠다. 발끝이 닿을 만큼 가까웠고, 10번의 정강이도 함께 걸릴 만큼 위험했다.
리암의 몸이 먼저 반응했다.
그러나 그는 발이 아니라 어깨를 움직였다.
공으로 들어가는 길이 아니라, 10번이 빠져나갈 길을 막았다.
10번은 기다렸다는 듯 몸을 부딪쳤다.
쿵!
리암이 잔디 위로 넘어졌다.
홈 관중은 곧장 야유했다.
"일어나!"
주심의 휘슬은 울리지 않았다.
웨스트햄 10번이 공을 잡으려는 순간, 리암은 손을 짚고 몸을 돌렸다. 일어나 달려들지 않았다. 대신 무릎을 접어 공이 안쪽으로 흐르는 길만 막았다.
그 작은 방해 때문에 웨스트햄의 다음 터치가 길어졌다.
마커스가 이를 악물고 달려들었다.
"벤!"
벤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길어진 공을 낚아챈 벤이 한 번에 몸을 열었다. 웨스트햄 수비형 미드필더는 아직 리암 쪽에 묶여 있었다.
중앙에 다시 길이 열렸다.
스윽.
[상대 압박 과집중 감지]
- 리암 주변 압박 인원: 3명
- 웨스트햄 수비형 미드필더 복귀 지연
- 전방 전환 권장: 토미 밀러
"토미!"
패스가 나갔다.
토미는 이번에도 먼저 뛰고 있었다.
웨스트햄 센터백이 급히 따라붙었다. 전반의 장면 때문에 그는 물러서지 못했다. 토미를 돌려세워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였다.
토미가 박스 앞에서 공을 받았다.
첫 터치가 길어 보였다.
센터백이 다리를 뻗었다.
토미는 기다렸다는 듯 공을 오른쪽으로 툭 밀었다. 수비수의 발이 잔디를 긁고 지나갔다.
다음 순간, 수비수의 무릎이 토미의 발목을 스쳤다.
삐이익!
이번에는 휘슬이 울렸다.
토미가 잔디 위를 굴렀다. 웨스트햄 선수들이 두 팔을 벌리며 항의했지만, 주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박스 바로 바깥.
이스트베리의 프리킥.
원정 벤치가 동시에 일어났다.
토미는 잔디 위에서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은 더 이상 부심을 찾지 않았다.
공이 놓일 위치를 보고 있었다.
리암도 천천히 일어났다.
무릎에는 잔디가 묻어 있었다. 그는 공을 빼앗지 못했다. 화려한 태클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웨스트햄은 그를 물었다.
그리고 이스트베리는 상대 골문 앞에 섰다.
시우의 눈앞에 푸른 창이 떠올랐다.
[세트피스 상황 발생]
- 위치: 웨스트햄 박스 전방 우측 19m
- 수비벽 예상 배치: 4명
- 약점 후보: 골키퍼 시야 차단 / 먼 포스트 침투
존 코치가 숨을 삼켰다.
"보스."
시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공이 놓일 지점과 웨스트햄 수비벽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후반 첫 10분.
리암은 미끼가 됐다.
그리고 웨스트햄은,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