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조사 피하려다 국민 헌터의 계약 연인이 되었다

2화. 수익을 지키는 가장 완벽한 방법
"영, 영주님! 이, 이걸 보십시오! 저 도둑놈들이 벌써 작년 겨울 창고 대장까지 모조리 압수해 갔습니다!"
집사 한스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집무실 문을 쾅 열고 뛰어들어왔다. 그의 가슴팍에는 재무부 특별 감찰국장 베르나르의 직인이 선명하게 찍힌 붉은색 압류 예고 서류들이 한가득 안겨 있었다. 바들바들 떠는 한스의 등 뒤로, 복도 저편에서 들려오는 감찰반원들의 딱딱한 군화 소리와 거칠게 서류 상자를 뒤지는 소음이 유령의 울음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한스, 진정해. 세무조사 나온 공무원들이 장부 좀 뒤적이는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에블린은 태연하게 따뜻한 홍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찻잔에서 피어오르는 은은한 국화 향이 집무실 안의 팽팽한 긴장감을 조금이나마 가라앉혀 주었다. 하지만 안경 너머 그녀의 녹색 눈동자만큼은 사냥감을 노리는 고양이처럼 차갑고 예리하게 빛나고 있었다.
"하루 이틀이 문제가 아닙니다! 저 베르나르라는 자, 정말로 우리 영지 자산을 통째로 동결할 생각입니다! 이대로 가다간 다음 주에 던전 직원들 월급은커녕 당장 오늘 저녁에 쓸 빵 살 돈도 묶이게 생겼어요!"
"그러니까 머리를 써야지."
에블린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뻔뻔하게 미소 지었다.
"한스, 제국의 세법을 꼼꼼하게 읽어봤는데, 재무부가 추적하고 과세할 수 있는 건 오직 제국 공식 화폐인 '골드 크라운'의 거래 내역뿐이야. 만약 손님들이 우리 던전에서 골드를 쓰지 않는다면 어떨까?"
"예? 골드를 쓰지 않는다니요? 그럼 공짜로 입장시키겠다는 말씀이십니까?"
한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에블린은 깃펜을 들어 백지 위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아니, 입장할 때 골드를 받아서 우리 영지에서만 쓸 수 있는 마법 주화로 교환해 주는 거지. 이름은... '에셀 코인'으로 하자. 던전 내부의 모든 체험, 음료 구매, 그리고 캐릭터 굿즈는 오직 이 에셀 코인으로만 결제할 수 있게 만드는 거야. 손님들은 들어올 때 '마법 주화 교환소'에서 교환을 진행하는 것뿐이지."
"그, 그게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아주 큰 차이가 있지. 제국 상법 제4조 3항에 따르면, 영지 자체 발행 토큰 및 마법 임시 화폐는 '단순 물품 교환 매개체'로 분류되어 직접 과세 대상에서 제외돼. 게다가 던전 내부에서 일어나는 모든 거래는 '던전 자치 조약'에 따라 제국 재무부의 직접 감사 권한이 미치지 않는단다."
한스는 턱을 쩍 벌렸다. 제국 세법의 해묵은 허점을 이토록 정확하게 짚어내다니. 현대의 치밀한 비즈니스 감각과 회계 지식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물론 저들이 억지를 부리며 소송을 걸어오겠지. 하지만 황실 법원에서 판결이 날 때까지 최소 3년은 걸려. 그 3년 동안 우리는 던전을 더 키우고, 수익을 합법적으로 세탁할 시간을 버는 거야. 그리고 그 세탁의 완성은 바로..."
에블린의 손가락이 책상 위에 놓인 신문 1면을 가리켰다. 제국 최고의 S급 헌터, 카일 폰 델마르의 얼굴이 박힌 기사였다.
"그의 후원금 계좌를 통하는 거지. 하지만 그전에, 당장 우리 지하 금고에 있는 진짜 금화들부터 숨겨야겠어. 감찰반에 소속된 마법사들이 탐지 마법을 돌리기 시작하면 금방 발각될 테니까."
"하지만 영주님, 그 많은 금화를 어디로 옮긴단 말씀이십니까? 성벽 뒤에 묻기라도 할까요?"
"아니. 가장 안전하고, 내가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보낼 거야."
에블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시선이 집무실 벽면에 걸린 에셀 던전의 상세 지도로 향했다.
던전 깊숙한 곳, 일반인의 출입이 완전히 통제된 제0구역 관리실.
차가운 돌벽에 손을 얹자, 에블린의 마력에 반응한 푸른색 시스템 창이 매끄럽게 공중에 떠올랐다.
[에셀 던전 관리 시스템 - v1.4]
- 관리 권한: 영주 에블린 에셀 (Dungeon Master)
- 현재 가용 마나: 4,500 MP
에블린은 망설임 없이 손가락을 휘둘렀다. 마치 정교한 도면을 편집하는 설계사처럼 그녀의 손길은 막힘이 없었다.
"Zone 3, 영지 비밀 금고실의 물리적 좌표를 차원 격리 아공간으로 이동한다."
[명령을 수행합니다. 공간 왜곡 마법을 시전합니다. 소모 MP: 1,500]
[Zone 3 - 비밀 금고실의 좌표가 아공간(Sub-dimension)으로 이전되었습니다. 던전 마스터의 고유 마력 신호 없이는 물리적 진입 및 탐지가 불가능합니다.]
눈앞의 공간이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더니, 이내 단단하고 평범한 돌벽으로 되돌아왔다. 이제 그 어떤 대마법사가 금속 탐지 마법을 쓰더라도 이곳에 막대한 금화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없을 터였다.
"그리고 원래 금고실이 있던 자리에는..."
에블린의 입가에 짓궂고 독한 미소가 걸렸다.
"우리 감찰국장님을 위한 아주 달콤하고 끈적끈적한 선물을 채워 넣어야겠어."
[Zone 3 입구 포탈의 리다이렉트 설정을 변경합니다. 대상: 자이언트 마시멜로 슬라임 서식지. 소모 MP: 300]
[자이언트 마시멜로 슬라임 속성 변경: 점성 80%, 친밀도 100%, 크기 300%로 상향 조정합니다. 소모 MP: 200]
[설정이 완료되었습니다.]
"자, 이제 귀하신 손님들을 마중 나가볼까."
"에블린 영주님. 저희 감찰반의 탐지 마법사들이 이 던전 내부 제3구역 방향에서 비정상적으로 거대한 금속 반응을 감지했습니다."
던전 관리 구역에서 나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베르나르가 거만한 태도로 에블린의 앞을 가로막아 섰다. 그의 뒤에는 로브를 뒤집어쓴 재무부 소속 마법사 세 명이 마법 지팡이를 거머쥔 채 살기등등한 눈빛을 흘리고 있었다.
"신고되지 않은 자산 은닉은 명백한 제국법 위반입니다. 지금 당장 현장을 수색하여 압류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영주님도 동행하시지요."
"은닉이라니요. 정말 오해십니다, 국장님."
에블린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생긋 웃어 보였다.
"제국의 성실한 영주로서 당연히 협조해야지요. 마침 저도 던전 내부 점검을 하려던 참이었으니, 직접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베르나르는 에블린의 너무나 순순하고 당당한 태도에 묘한 의구심을 품었지만, 탐지 마법의 반응이 워낙 확실했기에 코웃음을 치며 그녀의 뒤를 따랐다. 마법 지팡이의 끝이 정확히 가리키는 곳은 두꺼운 철문이 가로막고 있는 제3구역의 방이었다.
"이 문 뒤로군."
베르나르가 철문 앞에 서서 위풍당당하게 소리쳤다.
"문 열어라! 재무부 특별 감찰국 이름으로 내부의 모든 자산을 압..."
철컥, 에블린이 문고리를 돌려 문을 열자마자 베르나르의 목소리가 해괴한 비명으로 조각나 흩어졌다.
"뀨우우-!"
문이 열림과 동시에 그들을 맞이한 것은 번쩍이는 금화가 아니었다. 방 안을 가득 메우고 있다 못해 터져 나올 기세였던 거대한 분홍빛 젤리 덩어리들이었다. 일반 슬라임보다 세 배는 더 거대해진 '자이언트 마시멜로 슬라임'들이었다.
"뀨뀨!"
에블린이 미리 설정해 둔 '친밀도 100%, 점성 80%'의 슬라임들은 문이 열리자마자 가장 마력 밀도가 높은 베르나르와 마법사들에게 반갑다는 듯 몸을 날렸다.
"이, 이게 뭐야! 으악! 저리 치워! 떼어내란 말이다!"
"국장님! 으아악! 지팡이가... 지팡이가 끈적거려서 마법을 쓸 수가 없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던전 통로는 핑크빛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베르나르의 화려한 세무공무원 제복과 사제들의 검은 로브는 온통 끈적끈적하고 달콤한 딸기 향 점액질로 뒤덮였다. 마법사들이 어떻게든 슬라임을 떼어내려 했지만, 점성이 워낙 높아 손을 대면 댈수록 더 깊숙이 달라붙을 뿐이었다.
"어머나, 세상에! 국장님, 괜찮으신가요?"
에블린은 입을 손으로 가리며 깜짝 놀란 척을 했다. 하지만 안경알 너머 그녀의 초록빛 눈동자는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 아이들이 마력 밀도가 높은 분들을 워낙 좋아해서요. 제국의 일류 마법사들과 국장님이 오시니 반가워서 흥분을 주체하지 못했나 봅니다. 원래 거기가 저희 슬라임들의 특별 힐링방이거든요."
"에블린... 에셀...! 당신, 감히 제국 감찰반을 조롱하고..."
베르나르가 얼굴에 덕지덕지 묻은 분홍색 점액을 닦아내며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조롱이라니요. 국장님이 가리키신 방을 성실히 열어드렸을 뿐입니다. 혹시 조사가 더 필요하신가요? 아, 하지만 그 전에 옷부터 갈아입으셔야겠네요. 그 슬라임 점액은 특수 세제가 아니면 평생 지워지지 않아서, 제국의 고귀한 공무원분들 품위에 손상이 갈까 우려됩니다."
결국 베르나르는 온몸에서 단내를 풍기며 비참하게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멀어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에블린은 속 시원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하지만 이 통쾌한 장난도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베르나르는 곧 황실에 보고하여 대규모의 이단 심문관이나 고위 마법사들을 불러올 것이 뻔했다. 그들이 오면 아무리 아공간 격리 마법이라 해도 강제로 뜯어낼 위험이 있었다.
'확실하고 합법적인 방패가 필요해. 제국 재무부조차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
집무실로 돌아온 에블린은 책상 위에 제국 신문과 온갖 찌라시들을 가득 펼쳐 놓았다. 그녀의 목표는 단 하나, 제국 최고의 S급 헌터이자 만인의 우상인 카일 폰 델마르였다.
그녀는 카일의 최근 동향이 담긴 신문 기사들을 조목조목 분석해 나갔다.
[제국의 영웅 카일, 최근 던전 레이드 직후 급격한 마력 난조로 쓰러져...]
[교단, 성자 카일의 건강 이상설에 대해 '일시적인 피로'라며 선을 그어.]
[은발의 기사 카일, 과연 그의 성흔은 안전한가?]
"카일은 빛 속성의 S급 검사야. 성검을 다루는 과정에서 엄청난 마력 마찰과 왜곡을 겪고 있겠지."
에블린은 검은 잉크를 묻힌 펜으로 기사 속 핵심 단어들에 동그라미를 쳤다.
'S급 헌터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단순한 포션이 아니야. 몸 안의 뒤틀린 마력 회로를 달래줄 극도로 순수하고 깨끗한 마력 환경이지.'
보통 제국 내의 던전들은 몬스터가 내뿜는 탁하고 흉포한 마력으로 오염되어 있고, 교단이 독점하는 정화 시설은 인위적이고 삼엄한 감시 속에 놓여 있다. 만약 그가 교단의 통제를 벗어나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완벽한 정화 구역이 있다면 어떨까?
"그렇다면 내가 직접 만들어주면 되지."
에블린의 녹색 눈동자가 차갑게 번뜩였다. 그녀는 다시 던전 시스템 창을 열어 스크롤을 내렸다.
[던전 샵 - 환경 특수 설정]
- 상품명: 마나 정화의 성소 (Luna Sanctuary)
- 효과: 범위 내 마력 오염도 0%, 순수 마나 농도 극대화, 영혼 및 마력 회로의 안정 효과.
- 구매 비용: 3,000 MP
"현재 가용 마나가 3,000 MP 딱 남았네. 슬라임 카페로 번 마나를 여기에 전부 투자한다."
[구매를 완료했습니다. 3,000 MP가 차감됩니다.]
[던전 제5구역(심층부)에 '마나 정화의 성소' 설정을 반영합니다.]
에블린은 성소 내부에 아주 맑은 마력을 내뿜는 희귀 마법 약초인 '루나 글라스'의 씨앗을 뿌렸다. 그리고 던전의 환기 시스템을 조작하여, 성소의 순수한 마력이 던전 외부로 아주 미세하게 흘러나갈 수 있도록 '마나 미풍(Mana Breeze)' 필터를 설정했다.
"S급 헌터의 뛰어난 마력 감지 능력이라면, 에셀 영지 근처를 지나갈 때 이 기묘하리만치 순수한 마력을 절대 놓칠 리 없겠지."
바람을 타고 은은하게 번지는 맑은 마력의 파동을 느끼며, 에블린은 입가에 깊은 미소를 지었다.
"자, 카일 폰 델마르. 미끼는 던져졌어. 이제 네가 물 차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