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조사 피하려다 국민 헌터의 계약 연인이 되었다

1화. 빚더미 영주 에블린, 던전 '슬라임 카페'로 대박을 터뜨리다
"꺄악! 너무 귀여워!"
"이것 봐, 이쪽 슬라임은 딸기 우유 색깔이야! 만지면 진짜 말랑말랑해!"
제국 북부의 척박한 변방, 에셀 영지. 1년 전만 해도 이곳은 굶주린 마수들의 울음소리와 파산 직전 영주민들의 한숨 소리만이 가득했던 버려진 땅이었다. 하지만 지금, 에셀 영지의 입구는 난데없이 터져 나오는 아가씨들의 비명에 가까운 환호성으로 들썩이고 있었다.
에블린 에셀은 입가에 걸리는 미소를 숨기지 않은 채, 콧등에 걸친 안경을 치켜올렸다. 그녀의 눈앞에는 '던전'이라는 으스스한 이름이 무색할 만큼 화사하고 달콤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어서 오세요, 에셀 '슬라임 카페'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입장권은 마법 구슬 앞에 제시해 주세요."
입구에서 안내를 맡은 영지민들이 능숙하게 손님들을 맞이했다. 원래라면 농사지을 땅이 없어 나무껍질이나 씹으며 죽음을 기다렸을 이들은, 이제 깨끗한 제복을 갖춰 입고 제국 전역에서 몰려든 귀족 영애들과 부유한 상인들에게 '슬라임 체험권'을 팔고 있었다.
"세상에, 던전이 이렇게 예쁠 수도 있는 거였어?"
"말도 마. 저번 달에 제국 수도에서 열린 '그리핀 쇼'보다 여기가 훨씬 재밌는걸!"
에블린은 던전 입구 옆에 설치된 거대한 마법 구슬을 슬쩍 훑었다. 실시간으로 집계되는 금일 방문자 수와 예상 수익이 금빛 숫자로 떠올라 있었다.
[금일 방문자: 1,242명]
[실시간 매출: 18,630 골드]
[기념품 판매액: 4,200 골드]
"나쁘지 않네. 아니, 최고야."
혼잣말을 내뱉은 그녀는 만족스러운 고개를 끄덕이며 던전 깊숙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일반인들은 접근할 수 없는, 영주만이 들어갈 수 있는 전용 관리 구역이었다.
벽면에 손을 대자 푸르스름한 마력의 파동이 일더니, 공중에 투명한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에셀 던전 관리 시스템 - v1.4]
- 테마: 몽글몽글 슬라임 천국 (적용 중)
- 몬스터 배치: 핑크 슬라임(450), 민트 슬라임(300), 라벤더 슬라임(100), 자이언트 마시멜로 슬라임(1)
- 환경 설정: 기온 24도, 습도 45%, 은은한 바닐라 향기
- 난이도: 극최하 (전투 금지, 촉감 체험 및 사진 촬영 전용)
에블린은 능숙하게 손가락을 휘둘렀다. 마치 태블릿 PC를 다루듯 익숙한 몸짓이었다.
"내일은 주말이니까 민트 슬라임 비중을 좀 더 늘려야겠어. 요즘 수도에서 민트색 드레스가 유행이라니까 깔맞춤하고 싶은 영애들이 많을 거야. 그리고 슬라임 점성(粘性)은 15% 정도 더 낮춰. 저번에 어떤 후작 영애가 드레스에 슬라임이 묻었다고 울먹이면서 나갔단 말이야. 클레임은 수익의적이라고."
[설정을 반영합니다. 마나가 80 소모됩니다.]
이것이 에블린이 가진 유일한 권능이자 비밀이었다. 험악한 몬스터들이 튀어나오고 피 튀기는 전투가 벌어지는 마굴(魔窟)을, 그녀는 마치 게임 에디터처럼 주무를 수 있었다.
사실 2년 전, 에블린이 이 몸에 빙의했을 때만 해도 상황은 최악이었다. 전대 영주였던 부모님은 제국 중앙 귀족들의 사기적인 투자 권유에 넘어가 영지 전체를 담보로 막대한 빚을 지고는, 그 충격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돌아가셨다.
에블린에게 남겨진 것은 산더미 같은 채무 증서와, 당장 내일 먹을 양식조차 없는 헐벗은 영지민들뿐이었다.
'그때는 정말... 소금물로 배를 채우면서 장부를 정리했었지.'
에블린은 쓰라린 과거를 회상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제국 은행은 매달 피도 눈물도 없이 이자를 뜯어갔고, 영지민들은 하나둘씩 고향을 떠나 노예 시장으로 흘러 들어갔다. 영주로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는 대신, 영지 구석에 방치된 골칫덩이 '에셀 던전'에 주목했다.
보통 던전이라 하면 강력한 몬스터를 사냥하고 마나 석을 캐내는 곳이지만, 에블린은 현대의 경영 지식을 접목해 발상을 전환했다. 헌터들이 목숨 걸고 싸우는 장소를, 제국 최초의 '체험형 테마파크'로 리모델링한 것이다.
"영주님! 영주님! 여기 계셨군요!"
관리 구역을 나오자마자 집사 한스가 얼굴이 벌게진 채 달려왔다. 그의 손에는 두툼한 가죽 주머니 여러 개가 들려 있었다.
"오늘 오전 입장료와 슬라임 굿즈 판매 대금 정산입니다! 세상에, 영주님! 이건 기적입니다! 지난 10년간 우리 영지가 거둬들인 세금 총액보다 이번 주 수익이 더 많아요!"
"한스, 진정해. 옷매무새가 다 흐트러졌잖아. 이건 기적이 아니라 정당한 비즈니스의 결과야."
에블린은 한스가 건넨 주머니를 받으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묵직한 무게감과 함께 주머니 속에서 들려오는 금화 부딪히는 소리. 그것은 에블린에게 있어 그 어떤 연가보다 감미로운 음악이었다.
"다음 달에는 '슬라임 캐릭터 팝업스토어'를 제국 수도 근처에 열 거야. 그리고 던전 2구역에는 '숲속의 요정 티파티' 테마를 준비하고 있어. 한스, 쉴 틈 없어. 영지민들 교육 더 철저히 시켜."
"넵! 영주님! 아, 그리고 저기... 마을 사람들이 영주님을 위해 작은 잔치를 준비했다고..."
"잔치는 수익률 200% 달성한 다음에 해. 지금은 노를 저어야 할 때니까."
에블린은 뻔뻔하게 대답하며 영주 성으로 향했다. 이제야 부모님의 빚을 절반 정도 갚았고, 영지민들에게 따뜻한 고기 수프를 먹일 수 있게 되었다. 이 평화와 수익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그녀는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하늘은 그녀가 안심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기분 좋게 집무실로 돌아와 개인 장부를 정리하던 에블린의 귀에, 마른하늘의 날벼락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영주님! 큰일났습니다! 제국 재무부에서... 재무부에서 감찰단이 들이닥쳤습니다!"
에블린의 펜촉이 장부 위에서 '찌익' 소리를 내며 멈췄다. 등줄기를 타고 서늘한 오한이 스쳐 지나갔다.
"재무부? 정기 감사는 아직 반년이나 남았잖아. 무슨 소리야?"
"그게... 이번에는 일반 세무 공무원들이 아닙니다. 교단에서 파견된 '감찰 사제'들까지 함께 왔다고 합니다!"
'사제'라는 단어에 에블린의 미간이 깊게 파였다. 델마르 제국에서 재무부와 교단은 사실상 경제권을 쥐고 흔드는 거대 카르텔이었다. 그들이 예고 없이 움직인다는 건, 단순히 장부를 확인하러 온 게 아니라 '털러' 왔다는 뜻이다.
쾅!
거칠게 문이 열리고, 은색 자수가 놓인 화려한 제복을 입은 중년 남자가 거만하게 걸어 들어왔다. 그 뒤에는 검은 사제복을 입고 차가운 눈빛을 한 사제들이 그림자처럼 늘어섰다.
"에블린 에셀 영주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아니, 이제는 '슬라임 여왕님'이라고 불러드려야 할까요?"
말은 정중했지만, 남자의 눈빛은 먹잇감을 발견한 늑대처럼 탐욕스럽게 번뜩였다. 그는 에블린 앞에 제국 황실의 문장이 찍힌 붉은 서류를 내던지듯 내려놓았다.
"제국 재무부 특별 감찰국장, 베르나르입니다. 에셀 영지의 최근 급격한 수익 증가에 대해 '부당 이득 취득 및 신성 던전 모독, 그리고 대규모 탈세 의무 위반' 혐의로 특별 세무조사를 통보합니다."
"탈세라니요? 저희는 제국법에 명시된 대로 70%라는 말도 안 되는 세율을 다 지켜가며 성실히 납부하고 있습니다. 증빙 서류도 완벽해요."
에블린이 차갑게 쏘아붙였지만, 베르나르는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집무실을 둘러보았다.
"그건 저희가 판단할 일이죠. 던전은 제국의 신성한 자원입니다. 그런데 영주님은 그곳을 고작 계집애들의 놀이터로 타락시켜 부당한 이득을 취했더군요. 교단에서는 이를 '이단적 행위'로 규정했습니다. 따라서 지금까지 얻은 모든 수익에 가산세 500%를 부과하며, 조사가 끝날 때까지 영지의 모든 자산을 동결합니다."
"500%?! 그건 우리 영지 사람들을 전부 길거리로 내앉히라는 소리잖아요! 이건 조사가 아니라 강탈입니다!"
에블린이 책상을 탁 치며 일어섰다. 하지만 베르나르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녀에게 다가와 낮게 속삭였다.
"억울하면 힘을 기르셨어야죠, 영주님. 만약 다음 주까지 벌금을 납부하지 못하신다면, 에셀 영지는 제국 직할령으로 귀속될 것이며 영주님은... 글쎄요, 지하 감옥의 차가운 바닥에서 장부를 정리하게 되실지도 모르겠군요."
그는 에블린의 책상 위에 놓인 금화 주머니를 탐욕스러운 손길로 툭 건드리고는, 비웃음을 흘리며 방을 나갔다.
그들이 폭풍처럼 휩쓸고 지나간 집무실에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에블린은 떨리는 손으로 책상 모서리를 꽉 쥐었다.
'이 파렴치한 놈들...!'
피땀 흘려 일해서 이제 막 영지를 살려놓으니, 제국이라는 거대한 괴물이 빨대를 꽂아 한꺼번에 빨아먹으려 하고 있었다. 500% 가산세는 사실상 죽으라는 선고나 다름없었다.
제국 재무부와 교단에 대항하는 건 자살 행위였다. 그들은 법과 종교 위에 군림했고, 무엇보다 그들 뒤에는 제국의 최첨단 무력인 'S급 헌터'들이 버티고 있었다.
에블린은 멍하니 창밖을 보았다. 멀리 던전 광장에 세워진 거대한 마법 전광판이 보였다. 그곳에는 제국 모든 여성의 선망이자, 제국 최고의 스타 헌터인 '카일 폰 델마르'의 입체 화보가 상영되고 있었다.
[제국의 빛, 카일 폰 델마르 - '델마르 재단' 기부 총액 1억 골드 돌파!]
바람에 흩날리는 은발과 얼음처럼 차가운 청안. 전광판 속의 그는 인간이라기보다는 신의 창조물에 가까운 완벽한 모습이었다.
그의 눈부신 활약을 보던 에블린의 뇌리에, 마치 번개가 치듯 섬뜩하고도 짜릿한 아이디어가 스쳤다.
'기부... 후원금... 면세!'
제국 재무부의 칼날이 유일하게 닿지 않는 성역. 그것은 바로 헌터 개인에게 직접 전달되는 후원금과 기부금이었다. 특히 카일 같은 거물 헌터의 자금 흐름은 재무부조차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불문율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구름 위의 존재였다. 변방의 이름 없는 영주가 감히 말을 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아니, 방법은 있어. 비즈니스라면 말이야.'
에블린의 녹색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녀는 펜을 들어 깨끗한 새 장부를 펼쳤다. 장부의 첫 페이지에는 그녀의 이름과 함께, 아직은 빈칸인 상대방의 이름이 적혔다.
"나를 털겠다고? 어디 한번 해보시지. 내 돈 한 푼이라도 건드리는 놈은 지옥 끝까지 쫓아가서 청구서를 날려줄 테니까."
그녀의 입가에 비즈니스적인, 아주 독하고 치밀한 미소가 걸렸다.
제국 최고의 스타와 세상을 속일 거대한 사기극— 아니, 인생을 건 계약 연애의 서막이 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