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천재 외과의는 신의 손을 가졌다

85화: 위선자의 몰락, 판을 뒤흔들다
“음해……! 이건 명백한 음해이자 억측입니다! 메디바이스의 인공 심장은 미 식품의약국(FDA)의 엄격한 가이드라인을 통과했습니다!”
리차드 힐 박사의 목소리가 발악하듯 높아졌다. 그의 떨리는 손끝이 그가 느끼는 거대한 극도의 충격을 대변하고 있었다.
하지만 백강현은 가볍게 한숨을 쉬며 턱을 괴었다.
“FDA 승인이요? 로비와 데이터 조작으로 얻어낸 승인이 무슨 가치가 있습니까.”
강현이 태블릿을 조작하자, 콘퍼런스 룸의 대형 화면에 영문으로 된 극비 문서들이 줄지어 나타났다.
[Medivise M-Heart V3: Internal Clinical Failure Report (Confidential)]
[메디바이스 M-Heart V3: 내부 임상 실패 보고서 (기밀)]
화면에는 인공 심장을 이식받은 환자 120명 중 18명에게서 심각한 혈전증과 우심부전이 발생했다는 통계와 함께, 이를 은폐하고 단순 심부전 합병증으로 처리하라는 메디바이스 이사회의 지시 문건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이, 이걸 어떻게……!”
힐 박사의 비서와 수행 연구원들은 사색이 되어 서로를 쳐다보았다. 본사 보안팀조차 접근할 수 없는 최고 기밀 서버의 자료였다.
“전생…… 아니, 오태민 전 병원장의 비리를 캐는 과정에서 덤으로 엮여 나오더군요.”
강현이 냉소했다. 실제로는 전생에서 메디바이스가 5년 뒤 수조 원대의 글로벌 소송에 휘말려 파산 직전까지 내몰렸을 때 공개된 소송 문서의 내용을, 강현이 미리 알고 역추적해 확보해 둔 자료였다.
“리차드 힐 박사님. 만약 이 자료가 월스트리트 저널과 런던 증권거래소에 배포된다면 메디바이스의 주가가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그리고 진행 중인 수조 원 규모의 투자 펀딩은 어떻게 될까요?”
강현의 조용한 질문에 힐 박사는 이마에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그가 평생을 바쳐 쌓아 올린 학문적 명성과 메디바이스라는 거대한 제약 제국이, 한국의 한 일개 레지던트의 손끝 하나에 인질로 잡힌 꼴이었다.
“……백강현 선생.”
힐 박사가 붉게 상기된 얼굴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독대를 요청해도 되겠습니까?”
이사장실 옆의 작은 접견실.
단둘만 남게 되자, 리차드 힐 박사는 거만하던 가면을 완전히 벗어 던졌다. 그는 강현을 보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원하는 게 뭡니까? 돈입니까, 명예입니까? 메디바이스 본사 연구소의 종신 부소장 자리와 500만 달러의 연봉을 보장하겠습니다. 미국 시민권과 하버드 의대 정교수 임용도 약속하지요. 그 정도로 부족하다면…….”
“딜을 하자는 거군요.”
강현이 차갑게 말을 끊었다.
“그 제안을 수락하면, 우리 연구소의 이종 이식 특허권을 메디바이스로 넘겨주고 인공 심장의 부작용은 묻어두어야겠지요?”
“그것이 서로에게 윈윈(Win-Win)하는 길입니다. 백 선생 같은 인재가 이 좁은 한국 땅에서 썩는 것은 낭비입니다. 메디바이스의 자본력과 당신의 천재적인 기술이 합쳐진다면 세계 의료계를 지배할 수 있습니다!”
힐 박사의 눈에 탐욕스러운 빛이 깃들었다.
하지만 강현은 낮게 실소를 터뜨렸다. 그 실소는 이내 싸늘한 비웃음으로 변했다.
“당신들의 윈윈은 환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윈윈입니까? 3세대 인공 심장을 이식받고 피를 토하며 죽어갈 환자들의 목숨값으로 얻는 하버드 교수 자리가 내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강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힐 박사에게 다가갔다. 압도적인 기세가 늙은 의사를 짓눌렀다.
“의사는 환자를 살리는 사람입니다. 자본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의학을 왜곡하는 당신들은 의사가 아니라 상인일 뿐입니다.”
“백강현……! 메디바이스가 마음만 먹으면 당신 같은 풋내기 의사 하나 사회적으로 매장하는 건 일도 아니야!”
힐 박사가 독기를 품고 협박했다.
“해 보십시오. 메디바이스의 힘이 강할지, 전 세계 환자들과 주주들의 분노가 더 강할지 시험해 보죠.”
강현이 문고리를 잡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일주일 뒤, 서울에서 열리는 국제 흉부외과학회 학술대회가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저는 지훈이의 성공적인 이종 이식 케이스와 함께, 메디바이스 M-Heart V3의 치명적인 결함을 나란히 발표할 겁니다. 정정당당하게 학문적으로 검증을 받읍시다.”
“백강현……! 미쳤어! 네가 감히 글로벌 제약사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겠다는 거냐!”
“전쟁이라뇨.”
강현이 냉혹하게 웃었다.
“이건 일방적인 집도입니다. 썩어빠진 부위를 도려내는 수술일 뿐이죠.”
탁, 하고 문이 닫혔다.
홀로 남겨진 리차드 힐 박사는 공포와 절망에 젖어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세계 의료계를 쥐고 흔들던 거인의 추락이, 눈앞으로 바짝 다가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