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천재 외과의는 신의 손을 가졌다

20화: 또 다른 세계
서 의원이 수술을 마친 지 사흘째 되던 날 아침.
VIP 병실의 침상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은 서 의원은 여전히 쇳소리가 섞인 목소리였지만, 눈빛만큼은 완벽하게 생기를 되찾고 있었다.
"자네가 나를 살린 그 인턴 의사인가."
"예, 의원님. 흉부외과 수련 인턴 백강현입니다."
강현이 차트를 확인하며 정중하게 답했다. 서 의원은 강현의 아래위바지를 훑어보더니 깊은 숨을 내쉬었다.
"임선우 교수에게 수술방에서 일어난 일을 전부 들었네. 그 파렴치한 오태민 놈이 대리 수술을 시키려 내 심장을 파열시켜 죽이려 했을 때, 자네가 맨손으로 내 심장을 쥐고 살려냈다고 하더군. 정계에서 평생 닳고 닳아 사람 보는 눈은 자부하는데…… 자네는 정말 예사 의사가 아니야."
서 의원은 강현의 멀쩡하고 긴 손가락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내 목숨을 구한 은혜, 평생 잊지 않겠네. 정계의 힘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말하게. 자네의 그 훌륭한 손끝이 더러운 정치질에 희생되지 않도록 내 모든 영향력을 다해 자네를 지켜주겠네."
"과찬이십니다. 저는 그저 제 앞에 놓인 생명을 살렸을 뿐입니다."
강현은 조용히 목례를 하고 병실을 나왔다.
밖에서는 서 의원의 보좌관이 대기하고 있던 기자단에게 수술 경과와 백강현 인턴의 기적 같은 집도 사실을 공식 보도 자료로 배포하고 있었다.
하루아침에 대한민국 전역의 메이저 언론들이 백강현이라는 세 글자를 대대적으로 타전하기 시작했다.
[명성대학병원 인턴, 정계 거물 서 의원의 5중 무인공심폐기 심장 수술 기적적 성공!]
[대리 수술의 음모를 걷어낸 천재 외과의 백강현, 그는 누구인가?]
강현은 포털 사이트 메인을 도배한 자신의 이름을 보며 덤덤하게 실소를 흘렸다.
세상의 찬사와 명성은 달콤했지만, 그는 현실에 안주할 만큼 어리석지 않았다. 그가 싸워야 할 적들은 아직 완벽하게 청산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늦은 밤, 이사장 집무실.
임선우 이사장 대행은 어두운 조명 아래 책상 위에 두꺼운 서류 가방 하나를 올려놓고 강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왔는가, 백 선생."
"부르셨습니까, 이사장님."
강현은 맞은편 가죽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임 교수는 서류 가방에서 붉은색 직인이 찍힌 문서를 꺼내 강현의 앞에 밀어 놓았다.
"자네에게 이 병원의 썩은 물을 걷어내면 끝날 줄 알았는데, 그 뒤편에 생각보다 거대하고 추악한 심연이 도사리고 있더군."
강현은 문서를 펼쳤다.
[기밀문서: 대한의료포럼(Korea Medical Forum) - 명성대학병원 지부 비자금 및 의료 장비 독점 계획]
강현의 눈이 날카롭게 가라앉았다.
'대한의료포럼…….'
회귀 전, 그가 나락으로 떨어지고 의사 면허를 박탈당했을 때, 그를 철저히 고립시키고 의학계에서 영구 추방하도록 언론과 학회를 조종했던 거대한 장막의 정체였다. 오태민과 한만기는 그 거대 카르텔의 하수인이자 말단 대리인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 카르텔은 대형 사립 병원들의 민영화를 은밀히 추진하고, 해외 제약사와 결탁해 특정 약물의 특허를 독점하며, 자신들의 이권에 위협이 되는 유능하고 고결한 의사들을 가차 없이 매장시켜 온 대한민국 의료계의 보이지 않는 절대 권력이었다.
"한만기와 오태민은 이 카르텔의 꼬리에 불과했네. 우리가 그 둘을 잘라내자, 포럼의 상층부에서 벌써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어. 대한민국 최고의 의학 특허를 가진 연구소들을 강탈하고, 지방 병원들을 도산시켜 흡수하려는 음모가 진행 중일세."
임선우 교수가 무거운 목소리로 경고했다.
"백 선생. 자네의 천재적인 기술은 조만간 그들의 레이더망에 걸려들 걸세. 그들은 자네를 자신들의 노예로 삼으려 하거나, 뜻대로 되지 않으면 소리소문없이 파멸시키려 들겠지. 자네…… 이 거대한 골리앗과 맞설 준비가 되었는가?"
임 교수의 매서운 안광이 강현을 꿰뚫어 보았다.
강현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오른손을 내려다보았다.
말초 신경을 타고 흐르는 찌릿찌릿한 초감각의 열기.
수술대 위에서 1마이크로미터 단위의 오차도 없이 혈관을 통제하던 그 신비로운 느낌이 손가락 끝에서 고스란히 살아 숨 쉬고 있었다.
회귀 전에는 힘이 없어 짓밟혔지만, 이제는 든든한 뒷배(서 의원, 한성그룹, 임선우)와 함께 그 어떤 기적도 일구어 낼 수 있는 신의 손을 쥐고 있었다.
"이사장님."
강현의 입가에 거침없고 단단한 미소가 걸렸다.
"저는 제 손에 걸린 환자들을 단 한 명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내 앞을 가로막는 더러운 장막이 있다면…… 그 카르텔 전체를 해체해 버리겠습니다."
호기롭게 던진 강현의 대답에 임선우 교수는 마침내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좋군! 아주 좋아! 자네가 메스를 쥔 이상, 대한민국 의료계에 피할 수 없는 피바람이 불겠구만."
과거의 누명을 벗고 원수들을 무너뜨린 백강현.
하지만 그의 앞에는 대한민국 전체를 쥐고 흔드는 거대한 의료 카르텔과의 진짜 전쟁이 기다리고 있었다.
세상을 살리는 기적의 손이자, 악인들을 심판하는 피 묻은 메스를 쥔 신의 외과의 백강현.
그의 본격적인 종횡무진 개심기가, 이제 또 다른 세계의 문을 열며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