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천재 외과의는 신의 손을 가졌다

2화: 폭풍 전야의 응급실
의대 졸업 고사를 수석으로 패스하고, 명성대학병원 인턴으로 들어온 첫 주.
강현이 배정받은 곳은 일명 '지옥의 불구덩이'라 불리는 응급실(ER)이었다. 온갖 비명과 피비린내, 다급한 발소리가 쉼 없이 교차하는 곳. 회귀하기 전에도 숱하게 겪었던 익숙한 풍경이었지만, 20대의 젊은 육신으로 다시 마주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선생님! 1번 베드 어레스트(Arrest, 심정지) 가능성 있습니다! 에피네프린 준비할까요?"
"야! 인턴! 거기 멍하니 서 있지 말고 가서 5번 베드 드레싱(Dressing)부터 도와!"
응급실 레지던트 2년차인 박성진이 이마의 땀을 훔치며 빽 소리를 질렀다. 강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소독포와 기구들을 챙겼다.
회귀한 뒤로, 강현의 양손은 완전히 다른 생명체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환자의 상처를 소독하고 꿰매는 단순한 드레싱조차, 그의 손끝을 거치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한 간격으로 봉합되었다.
'확실히 손의 감각이 비정상적으로 예민해졌어.'
단순히 예민한 수준이 아니었다. 상처 부위를 만지는 순간, 찢어진 피부 아래의 미세혈관들이 어떤 방향으로 손상되었는지, 봉합사를 어느 정도의 인장 강도로 당겨야 조직에 무리가 가지 않는지가 손가락 세포를 통해 뇌로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마치 양손에 초정밀 감각 센서가 달린 것 같았다.
그때였다.
-위이이이이이이이잉-!
앵커 데스크 너머로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리며 응급실 자동문이 거칠게 열렸다. 구급대원 서너 명이 들것을 거칠게 밀며 들어왔다. 들것 위에 누운 환자는 온몸이 피떡이 된 40대 남성이었다.
"교통사고 환자입니다! 덤프트럭과 충돌 후 차량에 끼어 있었습니다. 현장에서 의식 소실되었고, 호흡이 극도로 불안정합니다! 바이탈은 90에 50, 산소포화도는 82%까지 떨어졌습니다!"
"뭐라고? 비켜봐!"
레지던트 박성진이 다급하게 환자에게 달라붙었다. 환자의 목에서는 꺼억거리는 젖은 가래 끓는 소리가 나고 있었다. 기도가 이물질이나 혈액으로 막혀 숨을 쉬지 못하는 상태였다.
"기도 폐쇄야! 펜토탈 주입하고 후두경(Laryngoscope) 가져와! 빨리 인투베이션(Intubation, 기관삽관) 준비해!"
간호사들이 바쁘게 움직였고, 박성진이 환자의 머리맡에 섰다. 그는 쇠로 된 후두경 블레이드를 환자의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젠장, 피가 너무 많아! 석션(Suction, 흡인기) 더 세게 돌려!"
환자의 입과 목구멍은 사고 충격으로 터진 혈액과 역류한 토사물로 가득 차 있었다. 성대(Vocal cord)가 보여야 그 사이로 호흡 튜브를 밀어 넣을 텐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안 보여…… 성대가 안 보여! 튜브 안 들어가!"
박성진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서두르다 튜브가 기도가 아닌 식도로 잘못 들어가면 환자는 뇌사에 빠지거나 즉사한다.
삑- 삑- 삑- 삑-
바이탈 모니터의 경고음이 점점 빨라졌다.
산소포화도 75%…… 70%…….
환자의 입술이 시퍼렇게 변하는 청색증이 완연해졌다.
"아, 진짜 왜 안 보이는 거야! 후두경 줘봐, 다시 해볼게!"
박성진이 식은땀을 흘리며 다시 시도하려 했으나, 이미 극도의 긴장으로 그의 판단력은 흐려져 있었다. 이대로 가면 1분 안에 심정지가 올 게 뻔했다.
'식도와 기도의 분기점. 성대 아래의 윤상연골 위치…….'
환자의 곁에 서 있던 강현의 눈이 날카롭게 가라앉았다. 강현은 환자의 목 주위를 눈으로 훑었다.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뇌리 속에서 환자의 목 내부 구조가 3차원 입체 그래픽처럼 투명하게 재구성되어 떠올랐다. 부어오른 점막, 가득 찬 혈액의 흐름, 그리고 그 뒤에 숨겨진 기도의 입구가 촉각적 인지와 결합하여 선명한 '좌표'로 인식되었다.
"선생님, 제가 하겠습니다."
강현이 나지막이 말하며 박성진의 손에서 후두경을 부드럽게 빼앗아 쥐었다.
"뭐? 너 미쳤어? 인턴 새끼가 어디서 메인 바이탈을 건드려! 저리 비켜!"
박성진이 소리를 질렀지만, 강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의 오른손은 이미 거장의 침착함으로 환자의 턱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비켜요. 환자 죽습니다."
그 압도적인 분위기에 박성진은 순간 자신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강현은 후두경을 환자의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엉망진창이 된 목구멍 속. 일반적인 의사라면 시야 확보가 안 되어 절망했겠지만, 강현은 눈으로 보지 않았다.
손가락 끝을 통해 전해지는 미세한 저항감.
조직의 탄성, 후두개(Epiglottis)의 정확한 위치가 손가락 신경을 통해 뇌로 다이렉트로 전송되었다.
'여기가 기도 입구다.'
강현은 주저 없이 왼손에 쥔 스타이렛(Stylet)이 든 튜브를 밀어 넣었다.
보지도 않고 눈을 감은 채 쑤셔 넣는 듯한 기괴한 광경에 박성진이 경악했다.
"미친놈아! 거긴 식도……!"
"들어갔습니다."
강현이 덤덤하게 스타이렛을 뽑아내고 간호사에게 앰부백(Ambu bag, 수동 호흡기)을 연결하라고 손짓했다.
쉬익-, 훅-.
앰부백을 짜 넣자마자, 환자의 양쪽 가슴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기도로 정확하게 공기가 들어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강현이 청진기를 환자의 가슴에 대었다.
슈우욱- 슈우욱-.
양측 폐에서 깨끗한 호흡음이 고르게 흘러나왔다.
삑------- 삑---- 삑-- 삑.
빠르게 울리던 경고음이 잦아들며, 모니터의 산소포화도 수치가 기적처럼 치솟기 시작했다.
80%…… 90%…… 그리고 98%.
"이, 이게…… 들어갔다고? 이 상황에 보지도 않고 한 번에?"
박성진은 멍하니 호흡 튜브와 강현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맹검(Blind) 상태나 다름없는 최악의 기도 상태에서, 레지던트인 자신도 실패한 난이도의 인투베이션을 단 3초 만에, 그것도 갓 들어온 인턴이 성공시켰다.
강현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튜브를 반창고로 고정하며 박성진을 바라보았다.
"선생님, 환자 바이탈 잡혔으니 빨리 CT 찍고 GS(외과)랑 CS(흉부외과) 노티(Notification)해야 할 것 같습니다. 비장 파열이나 혈흉(Hemothorax)이 의심됩니다."
"어? 어어…… 그래. 빨리 연락해!"
박성진은 얼빠진 얼굴로 전화를 붙잡았다.
강현은 가볍게 자신의 오른손을 쥐었다 폈다.
피가 묻은 손끝이 살아 움직이듯 찌르르한 열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완벽해.'
회귀 전 수만 번의 수술로 다져진 경험치에, 물리적 한계를 초월한 신의 손끝 감각이 더해졌다.
과거의 백강현을 무너뜨렸던 병원의 거대한 장벽들이, 이제는 하찮은 모래성처럼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