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판(神判)의 마스터 변호인

3화: 불효죄의 털신
“이 망자에게 변호인이 있습니까?”
내 질문이 칼산 법정에 떨어지자 흔들리던 칼날 소리마저 잠잠해졌다.
귀마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방금 자신의 법정에서 심판 각하라는 말을 뱉은 판관이었다. 그 치욕이 아직 뼈 가면 아래에 남아 있는지 그의 잿빛 눈동자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내 발바닥에서는 피가 흘렀다.
상처가 욱신거릴 때마다 조금 전 칼산 위에 섰던 감각이 되살아났다. 하지만 지금 통증을 핑계로 물러서면 이 노파는 말 한마디 못 하고 지옥의 분류표가 될 것이다.
귀마가 낮게 웃었다.
“불효죄 망자에게 변호인이라. 강한결, 네놈은 아직도 여기가 이승 법정인 줄 아느냐.”
“여기가 법정이라면 먼저 당사자 의사를 확인해야 합니다.”
“망자가 부모를 버리고 자식을 굶겨 죽였다면 더 들을 것이 없다.”
“그 판단을 하기 전이라서 듣겠다는 겁니다.”
나는 나졸들에게 붙들린 노파 앞에 몸을 낮췄다. 노파는 낡은 보따리를 품에 안고 있었다. 천은 오래 비벼진 자리마다 하얗게 일어났고 매듭 사이로 작은 털신 한 짝이 보였다.
새끼손가락만 한 꽃자수가 놓인 아이 신발.
노파는 그 신발이 떨어질까 봐 손가락을 더 세게 오므렸다.
“성함이 박덕순 님 맞습니까?”
“예. 박덕순입니다.”
목소리는 바람에 찢긴 종이 같았다.
“저는 강한결입니다. 변호인은 당신 편에서 기록을 보고 질문하고 잘못된 절차를 막는 사람입니다.”
박덕순의 눈이 커졌다.
“저승에도 그런 사람이 있습니까?”
법정 가장자리에서 작은 숨소리가 번졌다. 방청석의 망자들도 같은 질문을 품은 얼굴이었다. 그런 사람은 원래 없었다. 적어도 이 법정에는 없었다.
나는 손목의 팔찌를 내려다보았다.
신판 두 글자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제부터는 있어야 합니다.”
귀마가 의자 팔걸이를 두드렸다.
“망자에게 헛된 희망을 주지 마라. 자비는 판관이 내리는 것이지 변호인이 흉내 내는 것이 아니다.”
“저도 자비를 말한 적 없습니다. 절차를 말했습니다.”
나는 박덕순에게 다시 물었다.
“제가 박덕순 님 사건을 맡아도 되겠습니까? 원하지 않으면 거절하셔도 됩니다. 거절하는 말도 기록되어야 합니다.”
박덕순은 한참 동안 나를 보았다. 그녀의 시선은 내 얼굴보다 피 묻은 손목과 팔찌에 오래 머물렀다. 이 사람이 정말 자기 말을 남겨 줄 수 있는지 재는 눈이었다.
“저는 정말 모릅니다.”
그녀가 떨리는 입술을 열었다.
“제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정말 모릅니다. 자꾸 버렸다고 하는데 저는….”
말끝이 흐려졌다. 박덕순은 보따리를 끌어안고 고개를 숙였다.
“모르면 같이 확인하면 됩니다.”
그 말에 노파의 어깨가 작게 흔들렸다.
“그럼 맡아 주십시오. 변호사님.”
팔찌가 낮게 울었다.
허공에 붉은 글자가 피어올랐다.
망자 박덕순은 강한결을 변호인으로 선임한다.
박덕순은 자기 말이 글자로 남는 광경을 넋 놓고 올려다보았다. 입술 사이로 숨이 새어 나왔다. 평생 누구도 들어 주지 않을 것 같던 말이 법정 한가운데 매달렸다.
나는 곧장 귀마를 향해 섰다.
“이제 죄목과 명부 원본을 열람하겠습니다.”
귀마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예비 심문이다. 요약 기록으로 충분하다.”
“예비 심문이면 더 필요합니다. 어디로 보낼지 정하는 절차니까요.”
나는 피 묻은 발을 한 걸음 옮겼다. 칼날 위의 흑철판이 삐걱댔다.
“그리고 불효죄가 왜 도산지옥으로 임시 회부됐는지도 확인해야 합니다. 도산지옥은 날붙이와 폭력의 관할입니다. 방금 판관님 법정에서 확인된 내용입니다.”
법정의 공기가 껄끄럽게 굳었다.
귀마는 서리를 향해 턱짓했다.
“읽어라.”
서리는 낡은 두루마리를 펼쳤다. 손끝이 떨렸다.
“망자 박덕순. 생전 병든 시어미를 돌보지 아니하고 어린 자식을 굶주림에 방치하였으며 집을 버리고 도주함. 그 결과 혈육이 길 위에서 죽었으므로 불효죄 및 유기죄 예비 심문 대상으로 삼는다.”
박덕순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
“아닙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칼날 울림보다 작았다.
“저는 버리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버리지 않았습니까?”
내가 묻자 박덕순은 입을 벌렸다. 그러나 말이 나오지 않았다. 눈동자에 흐린 물안개 같은 것이 고였다.
“아이를… 아니. 어머님을… 저는 등에 업고 갔는데. 아닌가. 아이 손을 잡았는데….”
그녀는 자기 기억을 붙잡으려는 듯 관자놀이를 눌렀다.
귀마가 냉정하게 말했다.
“망자의 기억은 죽음과 함께 흐려진다. 그래서 명부가 있는 것이다.”
“기억이 흐리다는 말은 명부가 정확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나는 서리를 보았다.
“명부에 아이의 사망 장소가 특정되어 있습니까?”
서리는 두루마리 아래쪽을 훑었다.
“길 위.”
“길의 이름은요.”
“기록 없음.”
“사망 원인은요.”
“아사.”
“사망 확인자는요.”
서리의 손이 멈췄다.
“기록 없음.”
“박덕순 님과 아이의 관계는요.”
“자식.”
“친자입니까. 손자입니까. 맡겨진 아이입니까.”
서리는 대답하지 못했다.
귀마의 목소리가 칼처럼 내려왔다.
“명부가 자식이라 적었으면 자식이다.”
“명부가 증거라면 단어 하나도 확인해야 합니다.”
나는 박덕순의 보따리로 시선을 내렸다.
“특히 물건이 남아 있다면 더 그렇습니다.”
그 순간 나졸 하나가 박덕순의 팔을 비틀었다.
“심문 방해물이다. 보따리는 압수한다.”
“안 됩니다!”
박덕순이 비명을 질렀다.
보따리 매듭이 풀리며 털신이 바닥으로 굴렀다. 작은 신발 한 짝이 칼날 틈으로 빨려 들어가려 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칼끝이 손바닥을 스쳤다. 살이 찢어졌지만 털신을 먼저 잡았다.
가벼웠다.
아이 하나의 온기가 빠져나간 물건은 이렇게 가벼웠다.
“증거물 훼손하지 마십시오.”
내 목소리가 낮아졌다.
나졸이 뒤로 물러났다.
귀마가 코웃음을 쳤다.
“아이 신발 하나가 명부를 이긴다?”
“이긴다고 한 적 없습니다. 충돌한다고 했습니다.”
나는 털신을 손바닥 위에 올렸다.
천은 낡아 있었다. 발등의 꽃자수는 색이 거의 빠졌지만 바늘땀은 일정했다. 밑창 한쪽은 유난히 닳았고 뒤꿈치 안쪽에는 다른 천 조각이 덧대어져 있었다.
나는 털신을 조심스럽게 뒤집었다.
밑창 가장자리에는 검은 그을음이 박혀 있었다. 마른 진흙도 얇게 굳어 있었다. 단순히 방 안에 놓인 아이 신발이라면 남기기 어려운 흔적이었다.
“서리님.”
“예.”
“명부에는 아이가 굶어 죽었다고 되어 있죠.”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털신에는 오래 걸은 흔적이 있습니다. 밑창 바깥쪽이 닳았고 뒤꿈치 안쪽은 쓸려서 덧댔습니다.”
귀마가 말했다.
“가난한 집 아이 신발이 낡은 게 이상하냐.”
“낡은 게 쟁점이 아닙니다. 닳은 방향이 쟁점입니다.”
나는 털신을 붉은 법정 빛 아래에 들었다.
“이건 이동 흔적입니다. 짧은 마당을 오간 정도가 아니라 길을 걸을 때 생기는 마모에 가깝습니다. 밑창의 그을음과 진흙도 기록상 방치와 맞지 않습니다.”
박덕순이 떨리는 손을 내밀었다.
“그 아이가 발이 시리다고 해서… 밤마다 품에 넣고 잤습니다. 젖으면 안 된다고요. 신을 말려야 다음 날 걸을 수 있으니까.”
“다음 날 어디로 가야 했습니까?”
박덕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모르겠습니다. 가야 했습니다. 불이 났고 사람들이 밀려왔고 어머님이 자꾸 뒤를 보지 말라고… 아이가 울었는데….”
그녀는 갑자기 자기 입을 틀어막았다.
“이상합니다. 이름을 불렀는데 이름이 안 나옵니다. 내 입에는 있는데 왜 안 나옵니까.”
그 모습은 거짓말을 꾸미는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기억의 문 앞에서 열쇠를 잃어버린 사람의 얼굴이었다.
그러나 동정만으로는 부족했다.
저승 법정에서 눈물은 금세 변명으로 취급된다. 남는 것은 기록과 물건과 질문뿐이다.
나는 털신을 보따리 위에 올려놓았다.
“판관님. 이 털신을 증거보전 대상으로 지정해 주십시오.”
귀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명부에는 박덕순 님이 아이를 굶겨 죽이고 도주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털신에는 이동과 보호의 흔적이 있습니다. 적어도 방치라는 기록과 충돌합니다.”
“망자의 변명이다.”
“변명이 아니라 물건입니다.”
나는 한 글자씩 눌러 말했다.
“물건은 겁을 먹지 않습니다. 판관 눈치를 보지도 않습니다. 남은 흔적만 말합니다.”
팔찌가 차갑게 맥박쳤다.
붉은 글자가 허공에 떠올랐다.
보따리 속 아이 털신은 명부상 방치 및 아사 기록과 충돌하는 증거로 보전 신청됨.
법정 가장자리의 망자들이 조용히 털신을 바라보았다. 누군가는 제 품속을 만졌다. 누군가는 아무것도 쥐지 못한 손을 내려다보았다. 명부에 적히지 않은 물건 하나가 자기들의 남은 말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번지는 듯했다.
귀마의 뼈 가면 아래에서 금속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보전 허가 여부는 나중에 판단한다. 기억도 흐리고 물건도 낡았다. 이 정도로 명부 심문을 멈출 수는 없다.”
“멈추자는 게 아닙니다.”
나는 보따리를 박덕순에게 돌려주려다 잠시 멈췄다.
“제대로 시작하자는 겁니다.”
박덕순은 내 손과 보따리를 번갈아 보았다. 그러다 아주 천천히 손을 놓았다. 낡은 천의 무게가 내 손으로 넘어왔다.
그것은 선임장보다 무거운 신뢰였다.
나는 귀마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다음 절차를 신청하겠습니다.”
칼산의 칼날들이 바람도 없이 울었다.
“박덕순 님의 생전 기억을 증거로 채택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