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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판(神判)의 마스터 변호인2화

신판(神判)의 마스터 변호인

신판(神判)의 마스터 변호인

2화: 도산지옥의 피고인

손목에 채워진 팔찌가 살갗을 파고들었다.

뜨겁지는 않았다. 오히려 차가웠다. 얼음장 같은 금속이 맥박을 누르자 눈앞의 초군문이 멀어졌다. 엎드린 괴인들, 검은 가마, 웃음을 삼킨 염라의 눈빛까지 안개 속으로 접혔다.

다음 순간 나는 아래로 추락했다.

“큭!”

무릎이 바닥에 닿는 순간 살이 찢어지는 통증이 올라왔다. 바닥이라고 생각한 것은 돌판이 아니었다. 얇은 흑철판 아래로 칼날 수백 개가 빽빽하게 솟아 있었다.

조금만 몸을 기울이면 허벅지까지 베일 구조였다.

나는 이를 악물고 천천히 일어섰다. 주변을 살피는 것이 먼저였다.

사방은 법정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법정을 흉내 낸 형장이었다. 정면에는 산이 있었다. 흙과 바위가 아니라 칼로 이루어진 산. 날 선 능선마다 푸른빛이 흘렀고 그 아래에는 붉은 물줄기가 얇게 번졌다.

도산지옥.

어릴 적 들었던 설화 속 이름이 현실의 냄새를 두르고 내 앞에 서 있었다.

“망자 강한결.”

칼산 중턱에서 목소리가 내려왔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검은 의자가 허공에 떠 있었다. 그 위에 앉은 사내는 얼굴 절반을 뼈 가면으로 가리고 있었다. 낡은 법복에는 칼자루 문양이 촘촘했고 잿빛 눈동자는 사람을 재는 저울처럼 차가웠다.

양옆의 나졸들이 창을 내밀었다.

“피고인은 머리를 숙여라. 도산지옥 주심 판관 귀마 님 앞이다.”

피고인.

그 단어가 귀에 박혔다.

“저는 피고인이 아닙니다.”

목소리가 생각보다 침착하게 나왔다. 생전 법정에서도 첫 문장은 늘 중요했다. 재판부가 나를 어떻게 부를지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간 판은 기울어진다.

“방금 염라대왕의 명으로 저승 국선 변호인 자격을 받았습니다. 저를 피고인석에 세우려면 근거부터 제시해 주십시오.”

나는 손목을 들어 보였다. 팔찌 위의 붉은 글자, 신판 두 글자가 희미하게 빛났다.

나졸 하나가 코웃음을 쳤다.

“쇳덩이 하나 차고 왔다고 판관 앞에서 말대꾸냐.”

“쇳덩이인지 임명장인지는 확인하면 됩니다.”

귀마의 눈꺼풀이 느리게 내려갔다 올라왔다.

“입은 살아 있구나. 그러니 초군문이 시끄러웠겠지.”

그가 손짓하자 서리 하나가 낡은 두루마리를 펼쳤다. 종이는 오래된 피처럼 검붉었다.

“망자 강한결. 초군문에서 저승 질서를 어지럽히고 하급 집행관의 권한을 침해했으며 대왕의 이름을 빌려 관직을 참칭하였다.”

죄목이 너무 빠르게 나왔다.

준비된 문장. 방금 만든 문장. 둘 중 하나였다. 어느 쪽이든 법정에서 가장 위험한 문장이다.

나는 발밑의 흑철판이 흔들리는 것을 느끼며 물었다.

“공소장 사본을 열람하겠습니다.”

법정이 조용해졌다.

귀마가 턱을 조금 들었다.

“무엇을 열람한다고?”

“저에게 적용된 죄명, 근거 조항, 증거 목록이 적힌 문서입니다. 없다면 적어도 기소 기록과 명부 원본을 확인해야 합니다.”

“명부에 적힌 것이 곧 증거다.”

“그러면 그 명부를 보겠습니다.”

칼산 아래쪽에서 낮은 웅성거림이 번졌다. 그제야 법정 가장자리에 앉은 망자들이 보였다. 회색 죄수복 같은 옷을 입은 이들은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익숙한 체념이 있었다.

생전 법원 복도에서 본 눈빛이었다. 자기 사건인데도 서류 한 장 볼 수 없던 사람들. 질문하면 방해꾼 취급을 받던 사람들. 이미 결과가 정해졌다고 믿게 된 사람들.

나는 그 눈빛을 싫어했다.

귀마가 낮게 웃었다.

“대왕께서 흥미로 네게 장난감을 채워 주셨다 해서 이 법정을 흔들 수 있을 것 같으냐.”

“장난감인지 직인인지는 기록으로 확인하면 됩니다.”

나는 팔찌를 내렸다.

“제가 틀렸다면 바로 인정하겠습니다. 대신 판관님도 기록이 있으면 읽으십시오. 법정은 기억이 아니라 기록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귀마의 손가락이 의자 팔걸이를 두드렸다.

딱.

칼날 하나가 내 발밑에서 솟아올랐다. 종아리 옆 살을 스쳤다. 피가 한 줄기 흘렀다.

나는 신음하지 않았다.

귀마가 서리에게 턱짓했다.

“읽어라. 저 망자의 혀가 어디까지 버티는지 보자.”

서리는 다른 두루마리를 꺼냈다. 손이 떨렸다.

“초군문 임시 기록. 망자 강한결은 현 명부상 죄목 없음. 다만 염라대왕의 특별 명으로 사십구 일 동안 신판 임시 자격을 부여한다.”

마지막 문장이 법정에 떨어지자 망자들의 눈빛이 흔들렸다.

나는 바로 물었다.

“그 기록의 작성 시각은 언제입니까.”

서리가 귀마를 보았다.

“서리님.”

나는 그의 시선을 불러왔다.

“기록을 읽는 사람은 판관의 부하이기 전에 법정의 손입니다. 손이 떨리면 기록도 찢어집니다. 작성 시각을 답하십시오.”

서리의 목울대가 움직였다.

“초군문 흑종 세 번 뒤입니다.”

“제가 기소된 기록은요.”

“흑종 다섯 번 뒤입니다.”

“그렇다면 기소 기록은 대왕의 임시 자격 부여 이후 작성됐습니다.”

나는 피 묻은 발을 한 걸음 옮겼다. 칼날이 발바닥 아래에서 으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흑철판이 내 체중을 버티지 못하고 내려앉았다.

통증이 머리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지금 멈추면 저들은 통증을 법으로 바꾼다.

“판관님은 이미 신분이 부여된 변호인을 피고인으로 세웠습니다. 여기서 첫 번째 오류가 발생합니다.”

귀마의 입꼬리가 굳었다.

“오류?”

“네. 피고인 특정 오류입니다.”

나는 손가락 하나를 펼쳤다.

“두 번째. 죄목 특정 오류입니다. 질서 교란과 관직 참칭은 방금 낭독된 죄목입니다. 그런데 도산지옥의 관할은 무엇입니까.”

귀마는 답하지 않았다.

서리가 떨리는 목소리로 두루마리 아래쪽을 읽었다.

“칼로 생명을 해친 자, 날붙이로 남을 겁박한 자, 생전에 폭력으로 타인의 살을 찢은 자를 심판한다.”

“감사합니다.”

나는 두 번째 손가락을 펼쳤다.

“저에게 적용된 죄목은 도산지옥 관할이 아닙니다.”

“저승의 질서를 베려 한 죄다.”

귀마가 낮게 말했다.

“비유입니다.”

나는 즉시 잘랐다.

“비유로 사람을 칼산 위에 세울 수는 없습니다. 죄목은 문언으로 특정해야 합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망자를 처벌하기 위해 관할을 비유로 넓히면 법이 아니라 협박입니다.”

망자들 사이에서 누군가 짧게 숨을 삼켰다.

귀마의 잿빛 눈동자가 날카롭게 변했다.

“방어권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더니 이제 저승법을 가르치려 드는구나.”

“가르치는 게 아닙니다. 묻는 겁니다.”

나는 세 번째 손가락을 펼쳤다.

“세 번째. 증거 조사 오류입니다. 명부가 증거라면 원본을 제시해야 합니다. 기록 작성자가 있으면 작성자를 신문해야 합니다. 제가 이의하면 판단해야 합니다. 그 절차를 생략하고 집행부터 하겠다면 이곳은 법정이 아닙니다.”

“그만.”

귀마의 목소리가 칼날처럼 내려왔다.

의자 아래의 칼들이 일제히 솟구쳤다. 나졸들이 창끝을 내 목에 맞췄다.

“망자 강한결은 법정을 모욕하였다. 즉시 칼산 아래로 끌어내려 혀부터 베어라.”

“판결 전 집행입니까.”

나는 창끝을 바라보며 물었다.

“관할 결정도 없고 증거 조사도 없고 최종 진술도 없었습니다. 방금 명령을 판결로 기록합니까. 아니면 판관님의 사적 분노로 기록합니까.”

“내가 이곳의 판관이다.”

“그 말은 권한의 출처이지 판단의 이유가 아닙니다.”

창끝이 목을 눌렀다. 따끔한 통증과 함께 피가 맺혔다.

나는 손목을 들어 올렸다.

“기록하십시오. 도산지옥 주심 판관 귀마는 염라대왕의 직인이 찍힌 임시 변호인을 관할 없는 법정에 세웠고 공소장 열람을 제한했으며 판결 전 형 집행을 명령했다.”

그 말이 끝나자 팔찌가 타오르듯 빛났다.

나도 순간 숨을 멈췄다.

허공에 붉은 글자가 떠올랐다. 내가 방금 말한 문장들이 법정 천장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말이 기록으로 변하고 기록이 인장으로 굳었다.

신판.

두 글자가 칼산 위에 찍혔다.

법정 전체가 흔들렸다. 칼날들이 낮게 울었다. 나졸들의 창끝이 저절로 내려갔다. 서리는 무릎을 꿇고 두루마리를 끌어안았다.

귀마의 뼈 가면 아래에서 희미한 금 가는 소리가 났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이 팔찌는 장식이 아니었다. 변호인 신분증도 아니었다.

법정이 무시한 말을 기록으로 강제하는 도장.

변호인의 첫 번째 무기였다.

“멈춰라.”

귀마가 이를 악물었다.

“그 기록을 멈추란 말이다.”

“방법을 모릅니다.”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다만 판관님이 적법한 결정을 내리면 다음 기록도 남겠죠.”

망자들의 시선이 귀마에게 쏠렸다.

그는 긴 침묵 끝에 손을 내렸다.

“망자 강한결에 대한 도산지옥 심판은 절차 보정으로 돌린다.”

“아닙니다.”

나는 바로 말했다.

귀마의 눈이 불처럼 번뜩였다.

“또 무엇이냐.”

“절차 보정은 고칠 수 있는 흠에 쓰는 말입니다. 이 사건은 관할이 없고 죄목이 특정되지 않았으며 피고인의 신분도 오인했습니다. 심판 개시 자체가 잘못됐습니다.”

나는 숨을 들이마셨다.

칼날 냄새와 피 냄새가 폐를 찔렀다.

“각하가 맞습니다.”

침묵이 내려앉았다.

귀마는 나를 죽이고 싶어 했다. 그것만큼은 분명했다. 하지만 붉은 인장이 아직 법정 천장에 떠 있었다. 염라의 이름을 빌린 것이 아니라 염라의 직인이 눈앞에 있었다.

마침내 그가 말했다.

“망자 강한결에 대한 도산지옥 심판은 관할 없음으로 각하한다.”

그 말이 끝나자 내 발밑의 흑철판이 조금 올라왔다. 칼날이 살에서 빠졌다. 뒤늦게 통증이 몰려왔다.

나는 다리에 힘이 풀릴 뻔한 것을 버텼다.

여기서 주저앉으면 안 된다.

승자는 상처를 숨길 필요는 없지만 상처에 끌려가면 안 된다.

귀마가 낮게 말했다.

“명심해라. 네가 오늘 붙든 절차가 언젠가 네 목을 조를 것이다. 저승의 법은 네가 아는 법보다 오래되었고 훨씬 잔인하다.”

“오래됐다는 말은 변명이 될 수 없습니다.”

나는 피 묻은 발을 바로 세웠다.

“오래 틀렸을 가능성도 있으니까요.”

귀마의 손이 의자 팔걸이를 움켜쥐었다.

그때 법정 바깥에서 비명이 들렸다.

“억울합니다! 저는 죄인이 아닙니다!”

나졸 둘이 허리가 굽은 노파를 끌고 들어왔다. 노파는 낡은 보따리 하나를 품에 안고 있었다. 보따리 입구가 벌어지며 작은 털신 한 짝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새끼손가락만 한 꽃자수가 놓인 아이 신발이었다.

서리가 새 두루마리를 펼쳤다.

“망자 박덕순. 불효죄 예비 심문 대상. 도산지옥 임시 회부.”

불효죄.

도산지옥.

내가 방금 지적한 오류가 다시 눈앞에 놓였다.

귀마는 나를 보며 천천히 웃었다.

“변호인이라 했느냐. 잘 보아라. 저승의 재판이 어떻게 끝나는지.”

노파가 떨리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얼굴에는 죄인의 두려움보다 억울한 사람의 혼란이 먼저 떠 있었다.

“변호사님… 저는 정말 모릅니다. 제가 뭘 잘못했는지 정말 모릅니다.”

팔찌가 다시 차갑게 맥박쳤다.

이번에는 우연히 켜진 빛이 아니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는 압박이었다.

나는 떨어진 털신을 주워 노파의 보따리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귀마를 향해 돌아섰다.

“그럼 먼저 확인하겠습니다.”

칼산 법정이 다시 조용해졌다.

나는 피 묻은 손목을 들어 올렸다.

“이 망자에게 변호인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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