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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판(神判)의 마스터 변호인1화

신판(神判)의 마스터 변호인

신판(神判)의 마스터 변호인

시놉시스

억울한 이들을 위해 싸우다 요절한 천재 인권 변호사 강한결.
그가 눈을 뜬 곳은 49일간 7개의 재판이 기다리는 저승이었다.
부조리한 저승 사법 체계에 맞서 '저승 국선 변호인'이 된 그의 짜릿한 법정 판타지!

1화: 죽음은 끝이 아니다

“강한결 변호사님, 이제 그만 퇴근하시죠. 벌써 사흘째예요.”

사무장의 걱정 섞인 목소리가 멀게만 느껴졌다. 책상 위에는 서류 뭉치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재개발 지역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독거노인들, 부당 해고를 당하고도 퇴직금조차 받지 못한 비정규직 노동자들.

그들의 마지막 희망이 이 좁은 사무실, 그리고 내 어깨 위에 놓여 있었다.

“거의 다 됐습니다. 이것만 마무리하고….”

입술이 바싹 말라붙어 제대로 떨어지지 않았다. 눈앞이 흐릿해졌지만, 펜을 놓을 순 없었다. 마지막 증거 자료 하나만 더 검토하면 내일 재판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다.

하지만 몸은 내 의지보다 솔직했다.

심장이 쥐어짜는 듯한 통증과 함께 덜컥, 멈췄다.

“어? 변호사님? 변호사님!”

당황한 사무장의 목소리를 뒤로한 채, 나의 세상이 암전되었다.


차갑다.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살갗을 파고드는 서늘한 공기였다.

눈을 떴을 때, 나는 끝을 알 수 없는 긴 줄의 중간에 서 있었다. 사방은 자욱한 안개로 가득했고, 그 너머로 희미하게 붉은 등불들이 떠 있었다.

“여긴….”

목소리가 나왔다. 손을 내려다보았다. 분명 죽기 직전까지 붙들고 있던 펜은 없었지만, 손바닥에 배인 굳은살은 그대로였다.

“앞으로 가! 멈추지 말고!”

어디선가 날카로운 채찍 소리와 함께 굵직한 호통이 들려왔다. 줄을 선 사람들은 하나같이 넋이 나간 표정으로 좀비처럼 발을 옮기고 있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주변을 살폈다. 직업병이었다. 상황 파악이 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성격.

줄 옆으로는 거대한 강이 흐르고 있었다. 물빛은 검었고, 그 안에서는 기괴한 형상들이 아우성치고 있었다. 삼도천(三途川). 어릴 적 할머니에게 들었던 전설 속의 이름이 머릿속을 스쳤다.

“진짜 죽었나 보네.”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평생 남의 인생 구하겠다고 뛰어다니더니, 정작 제 인생은 서른둘에 마감이라니. 억울했다. 하지만 억울함보다 먼저 솟구친 것은 당혹감이었다.

줄의 끝, 거대한 성문 앞에는 기괴한 갑옷을 입은 괴인들이 망자들을 분류하고 있었다.

“너, 이름!”
“이, 이철수입니다….”
“살생죄! 12번 구역으로!”

판결은 단 몇 초 만에 내려졌다. 제대로 된 심문도, 변론도 없었다. 그저 망자가 들고 온 '명부'라는 종이 한 장에 적힌 글자만 보고 운명이 결정되었다.

“저기요!”

참다못한 한 남자가 소리를 질렀다.

“저는 억울합니다! 그건 사고였다고요! 제가 죽인 게 아니라…!”
“시끄럽다! 명부에 적힌 것이 곧 진실이다. 끌고 가!”

괴인이 남자의 멱살을 잡고 거칠게 끌어당겼다. 남자는 비명을 지르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내 눈이 가늘어졌다.

‘말도 안 돼.’

법치주의 국가에서 평생을 보낸 나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증거 조사도 없고, 피고인의 진술권도 보장되지 않는 법정이라니. 아니, 이건 법정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도살장이었다.

어느덧 내 차례가 다가왔다.

“다음! 이름!”

내 앞에 선 괴인이 피 묻은 장부를 넘기며 물었다. 키가 족히 2미터는 넘어 보이는 괴인의 몸에서는 비릿한 피 냄새가 났다.

“강한결입니다.”

최대한 침착하게 대답했다. 괴인이 장부를 훑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강한결? …잉? 이놈 봐라. 장부가 깨끗하네?”
“깨끗하다뇨?”
“죄목이 없어. 평생 남 뒤치다꺼리만 하다가 죽었군. 이런 멍청한 놈이 있나.”

괴인이 코웃음을 치며 옆에 서 있던 다른 괴인에게 말했다.

“야, 이놈은 그냥 일반 대기실로 보내. 재판 받을 것도 없겠어.”

그가 나를 옆길로 밀쳐내려 할 때였다.

“잠깐만요.”

나는 그의 손길을 뿌리치고 정면으로 응시했다.

“방금 저 사람이 억울하다고 했을 때, 왜 변론의 기회를 주지 않았죠?”
“뭐?”

괴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주변의 망자들도, 채찍을 들고 있던 다른 졸개들도 일제히 나를 쳐다봤다. 저승 입구에서 판관 대행에게 따지는 망자는 수백 년 만에 처음인 모양이었다.

“변… 뭐? 이 새끼가 죽더니 정신이 나갔나.”
“저승에도 법이 있을 거 아닙니까. 명부에 적힌 게 오류일 가능성은 검토 안 합니까? 이승에서도 기록 착오는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이놈이 감히!”

괴인이 분노하며 채찍을 치켜들었다. 하지만 나는 피하지 않았다. 아니, 피할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법률적 근거를 대세요. 망자의 진술권을 제한하는 저승법 제 몇 조 몇 항입니까?”
“조, 조항? 그딴 게 어디 있어! 여긴 염라대왕님의 명이 곧 법이다!”
“통치권자의 교시가 법이라 하더라도, 그 집행 과정에서의 적법 절차(Due Process)는 지켜져야죠. 당신들이 하는 건 재판이 아니라 폭거입니다.”

내 목소리가 고요한 저승 입구에 울려 퍼졌다. 괴인은 당황한 듯 씩씩거리며 나를 향해 달려들려 했다.

그때였다.

-흥미롭군.

공기를 진동시키는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개가 걷히며, 거대한 가마 하나가 공중에 떠올랐다. 가마 주위로는 검은 기운이 휘몰아치고 있었고, 그 안에 앉아 있는 그림자의 안광만이 번뜩였다.

“대, 대왕님!”

나를 윽박지르던 괴인들이 일제히 바닥에 엎드렸다.

가마의 주인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붉은 곤룡포를 입고, 머리에는 화려한 관을 쓴 사내. 그의 존재감만으로도 숨이 막힐 듯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저승의 주인, 염라(閻羅)였다.

그는 가마에서 내려와 내 앞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그의 발걸음마다 바닥에 깔린 안개가 양옆으로 갈라졌다.

“네놈이 방금 적법 절차라고 했느냐?”
“그렇습니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대답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만, 눈은 피하지 않았다.

“이승의 미천한 법을 저승에 들이대다니. 이곳은 인과응보의 세계다. 지은 죄만큼 벌을 받는 곳이지.”
“인과응보를 가리기 위해서라도 정확한 판단이 필요합니다. 지금 저기서 끌려가는 사람들의 절반은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공포에 질려 있습니다. 그게 과연 대왕님이 원하는 정의입니까?”

염라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걸렸다.

“재미있구나. 수만 명의 망자를 보아왔지만, 내 앞에서 정의를 논하는 자는 네가 처음이다. 좋다, 강한결이라 하였느냐?”
“네.”
“너는 죄가 없으니 바로 환생의 문으로 갈 수 있다. 굳이 이 지옥의 부조리에 참견할 필요가 없단 말이다. 그런데도 계속 따지겠느냐?”

나는 잠시 침묵했다. 바로 저 문만 넘으면 다시 태어날 수 있다. 고통도, 서류 뭉치도 없는 새로운 삶.

하지만 내 시선은 아까 끌려갔던 남자가 사라진 어둠을 향했다.

“변호사는 의뢰인을 두고 혼자 가지 않습니다.”
“의뢰인? 네놈에게 의뢰한 자가 아무도 없는데?”
“저기 억울하게 떨고 있는 모든 망자가 제 잠재적 의뢰인입니다.”

염라대왕의 웃음소리가 저승 산맥을 뒤흔들었다.

“하하하! 미친놈이로구나! 좋다. 그렇다면 네놈에게 기회를 주지. 49일이다.”
“……?”
“49일 동안 네가 말하는 그 '적법 절차'를 통해 망자들을 구해내 보거라. 만약 단 한 명이라도 무죄를 입증하지 못하거나, 네 논리가 막힌다면… 너는 환생 대신 영원한 불지옥의 땔감이 될 것이다.”

이건 말도 안 되는 내기였다. 하지만 내 가슴은 생전 재판장에 들어설 때처럼 뜨겁게 뛰고 있었다.

“승낙하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대신, 제게 공식적인 신분을 보장해 주십시오. 대왕님의 이름으로 된 변호인 자격을 말입니다.”

염라가 손을 휘두르자, 내 손목에 검은 금속으로 된 팔찌가 채워졌다. 그 위에는 붉은 글씨로 '신판(神判)'이라는 두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저승 국선 변호인, 강한결.”

염라의 목소리와 함께 내 눈앞의 풍경이 뒤바뀌었다.

이것은 나의 사후 세계이자, 생전보다 더 치열할 새로운 전쟁터의 시작이었다.

죽음은 끝이 아니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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