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으로
천마신교의 수석 소믈리에5화

천마신교의 수석 소믈리에

천마신교의 수석 소믈리에

5화: 영초 동성고의 비밀

매실 발효액 세 방울이 잔 속으로 떨어졌다.

준우는 오래된 곡주를 천천히 돌렸다. 흐릿하던 곡물 향이 매실의 산미를 만나 잠깐 살아났다. 찬물에 담가 둔 청련근의 서늘한 풀내도 그 뒤를 받쳤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럴듯했다.

준우는 혀끝에 술을 묻혔다.

신맛이 입을 열고 구수한 곡주가 혀 가운데를 지나갔다. 청련근의 냉기도 뒤따랐다.

딱 세 번 숨 쉬는 동안만.

네 번째 숨에서 냉기가 풀렸다. 목 아래로 내려가기도 전에 술의 골격이 물처럼 흩어졌다.

“안 돼.”

준우가 잔을 내려놓았다.

시종들이 동시에 어깨를 움츠렸다. 방금 전까지 백년진독주를 감별해 황 주방장의 코를 납작하게 만든 잡역부가 벌써 일곱 번째 잔을 퇴짜 놓는 중이었다.

창밖은 아직 어두웠다.

하지만 천마에게 술을 올릴 시각은 한 숨씩 다가오고 있었다.

‘산미는 입구를 열어 줄 뿐이야. 화기를 누를 냉기가 단전까지 이어져야 한다.’

천마의 몸은 불붙은 솥과 같았다. 그렇다고 얼음을 들이붓듯 강한 냉독을 넣으면 솥이 깨진다. 열을 누르되 기맥은 막지 않는 길고 가느다란 냉기가 필요했다.

술고 문가에서 황 주방장이 코웃음을 쳤다.

“청련근으로 안 된다면 그만두어라. 흑한초는 독이다. 네놈이 냄새 좀 맡는다고 독성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맞는 말씀이십니다.”

황 주방장의 얼굴에 뜻밖이라는 표정이 스쳤다.

준우는 흑한초 조각이 놓인 접시로 갔다. 손을 대지 않고 손등만 가까이 가져갔다. 접시 둘레의 공기가 유독 차가웠다.

등잔을 조금 가까이 옮기자 냄새가 달라졌다.

젖은 돌.

썩기 직전의 검은 뿌리.

그리고 혀뿌리를 조이는 듯한 독취.

온기가 닿을수록 냉기보다 독취가 먼저 풀렸다.

“그러니까 술에는 넣지 않을 겁니다.”

황 주방장이 눈을 좁혔다.

“흑한초를 넣지 않고 흑한초의 냉기를 쓰겠다고?”

“먹지 않고도 추울 수는 있잖습니까.”

준우는 접시를 덮었다.

“영초고로 가야겠습니다. 흑한초 원물과 냉기를 오래 붙들 물건이 필요합니다.”

“영초고는 잡역부가 드나드는 곳이 아니다.”

황 주방장이 문을 막아섰다. 두툼한 몸이 문짝 하나를 거의 다 가렸다.

준우가 흑목 명패를 들어 보였다.

“백화전의 모든 재료를 쓰라는 교주님의 명입니다.”

“백화전과 영초고는 다르다.”

“그럼 빈 잔을 들고 교주님께 가서 그렇게 말씀드리죠. 황 주방장께서 구역이 다르다며 막으셨다고.”

황 주방장의 턱살이 떨렸다.

그때 검집 하나가 두 사람 사이로 들어왔다.

설아였다.

“비켜라.”

“우호법님, 영초고의 영약은 술 따위에 낭비할 물건이 아닙니다.”

설아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교주님의 광증을 누르는 일이 낭비인가?”

황 주방장은 더 버티지 못했다. 옆으로 물러서면서도 준우를 노려보는 눈에는 밤보다 짙은 독기가 서려 있었다.

준우는 모른 척 소매를 걷었다.

오늘 밤 해결해야 할 독은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다.

백화전 뒤편 돌계단은 지하 깊숙이 이어졌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벽에 맺힌 물방울이 차가워졌다. 열 계단쯤 지나자 입김이 보였고 스무 계단쯤에서는 손끝이 저렸다.

계단 끝에는 검은 철문이 있었다.

문 앞에 앉은 등이 굽은 노인은 설아보다 먼저 준우의 낡은 옷을 보았다.

“잡역부에게 내줄 영초는 없다.”

“먹으러 온 게 아니라 냄새 맡으러 왔습니다.”

“더 미친놈이군.”

“요즘 자주 듣습니다.”

준우가 명패를 내밀었지만 노인은 받지 않았다.

“명패가 독을 견뎌 주지는 않는다. 동성고 안에서 봉인 하나만 잘못 건드려도 폐가 얼고 혈맥이 굳는다.”

설아가 명패를 대신 받아 노인의 눈앞에 세웠다.

“내가 동행한다. 이자가 건드린 것은 내가 책임지고 이자가 죽으면 시신도 내가 치우겠다.”

준우가 설아를 돌아보았다.

“뒤쪽은 없어도 되지 않습니까?”

“들어가기 싫으냐?”

“문 열어 주십시오, 어르신.”

철문이 무거운 소리를 내며 열렸다.

안쪽 공기는 겨울 우물 바닥처럼 차가웠다. 벽마다 청동 함이 박혀 있었고 함마다 색이 다른 봉인 끈이 감겨 있었다.

쓴 꽃향.

마른 이끼 냄새.

피처럼 비린 쇠 냄새.

준우는 함에 손을 대지 않고 천천히 걸었다. 서로 뒤엉킨 향을 한 겹씩 밀어내자 가장 안쪽에서 익숙한 냉기가 걸렸다.

젖은 돌과 검은 뿌리.

“흑한초는 저 함에 있군요.”

노인의 눈썹이 꿈틀했다.

“봉인을 보았느냐?”

“아뇨. 코가 먼저 싫다고 합니다.”

그 옆에는 약재함과 달리 바닥에 박힌 돌궤가 있었다. 틈 사이로 맑고 무취한 냉기가 흘렀다.

준우가 돌궤를 가리켰다.

“저건 약재가 아니죠?”

“설빙석이다. 동성 영초가 상하지 않도록 냉기를 붙드는 돌이지.”

준우는 무릎을 굽혀 돌궤 가까이 손을 댔다.

현대의 냉각조와 같았다.

흑한초가 술에 닿을 필요는 없다. 큰 옹기 바깥에 흑한초와 설빙석을 넣고 그 안에 밀봉한 작은 옹기를 세운다. 독성 물질은 막고 온도와 냉기만 옮긴다.

완벽한 해답은 아니었다.

하지만 시험해 볼 가치는 있었다.

그 순간, 차가운 향 사이로 바늘 같은 매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준우의 걸음이 멎었다.

백년진독주의 끝에 숨어 있던 향.

낮에 발견한 위험한 보양주에도 남아 있던 향.

“저 붉은 봉인의 함은 뭡니까?”

노인의 얼굴이 굳었다.

“적염마근이다. 단전에 스민 한독을 몰아낼 때 쓰는 열성 영초지. 불씨가 꺼져 가는 자에게나 극미량 쓴다.”

“화기가 넘치는 사람에게 쓰면요?”

“기름을 먹인 것처럼 불붙겠지.”

설아의 시선이 즉시 준우에게 향했다.

둘 다 같은 것을 떠올렸다.

천마에게 올라갈 뻔한 보양주.

그리고 백년진독주.

“열어라.”

설아가 명했다.

노인이 붉은 끈을 풀었다. 청동 함 안에는 마른 뿌리 부스러기 몇 점만 남아 있었다. 세 뿌리쯤 들어갈 자리가 텅 비어 있었다.

노인은 급히 반출 장부를 펼쳤다.

사흘 전.

적염마근 세 뿌리.

사용처는 백화전.

승인란에는 황 주방장의 인장이 선명했다.

“압수한 장부에는 이 기록이 없었습니다.”

준우가 낮게 말했다.

설아의 손이 장부 가장자리를 눌렀다.

“영초고 장부에만 남기고 백화전 기록에서는 지웠다는 뜻이군.”

“황 주방장이 직접 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감싸는 것이냐?”

“아뇨. 싫어하는 것과 증거가 있는 건 다르니까요.”

설아는 잠시 준우를 보았다. 그러고는 장부를 접어 품에 넣었다.

“흑한초와 설빙석을 내줘라. 내가 책임진다.”

백화전으로 돌아왔을 때는 동쪽 하늘이 아주 조금 옅어져 있었다.

준우는 큰 옹기 가운데에 받침을 세웠다. 바깥에는 설빙석을 둘러놓고 젖은 천으로 싼 흑한초를 벽 쪽에 붙였다. 가운데 작은 옹기에는 오래된 곡주만 담았다.

흑한초와 술은 손가락 두 마디보다 더 멀리 떨어졌다.

“반 시진은 너무 깁니다. 차가워지는 속도를 보면서 한 번씩 확인하겠습니다.”

첫 확인은 실패였다.

작은 옹기의 마개를 여는 순간 젖은 돌 냄새가 희미하게 번졌다.

아주 약했다.

그래서 더 위험했다.

모르고 마실 만큼 약하고 몸 안에 쌓이기에는 충분한 냄새였다.

준우는 젓가락 끝에 술을 묻혀 혀에 댔다가 즉시 뱉었다. 청련근 물로 입을 헹구는 사이 오른손 새끼손가락의 감각이 둔해졌다.

“중단해라.”

설아가 옹기를 걷어차려 했다.

준우가 몸으로 막았다.

“잠깐만요. 액체가 닿은 게 아닙니다. 마개 틈으로 독취가 옮은 겁니다.”

“손끝이 굳었는데도 계속하겠다고?”

“그래서 원인을 찾았습니다.”

준우는 찬물에 손을 담근 채 작은 옹기의 마개를 살폈다. 낡은 마개가 수축하면서 머리카락보다 가는 틈이 생겨 있었다.

흑한초를 절반으로 줄였다. 작은 옹기 입구는 새 천으로 감고 밀랍을 녹여 봉했다. 그 위를 젖은 천으로 한 번 더 묶었다.

설빙석 사이에는 찬물을 부었다. 한쪽만 급격히 차가워지지 않도록 돌과 물을 계속 저었다.

“두 번째에도 독취가 나면 끝이다.”

설아의 말에는 타협의 여지가 없었다.

“그때는 제가 먼저 옹기를 깨겠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준우는 매실 발효액을 네 번째로 걸렀다. 청련근 물은 처음과 끝을 버리고 풋내가 가장 적은 가운데 부분만 받았다.

마침내 밀랍을 잘라 냈다.

맑은 곡물 향이 먼저 올라왔다.

그 아래에 얇고 곧은 냉기가 서 있었다.

젖은 돌 냄새도 검은 뿌리의 쓴 향도 없었다.

준우는 먼저 한 모금을 입에 머금었다. 삼키지 않고 혀 위에서 굴린 뒤 뱉었다.

하나.

둘.

셋.

손가락을 움직였다. 감각은 멀쩡했다.

곡주 여덟에 매실 발효액 하나, 청련근 물 반. 백당은 손톱 끝만큼 녹였다.

술은 옅은 옥빛을 띠었다.

혀끝에서 매실 산미가 짧게 열리고 곡주의 부드러운 몸통 뒤로 냉기가 길게 내려갔다. 이번에는 네 번째 숨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끝이 너무 차가웠다.

잘 벼린 칼로 길을 자른 듯 뚝 끊겼다.

‘냉기만 강하면 천마의 화기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준우는 남아 있는 계피초 중 향이 가장 약한 잎을 골랐다.

술에는 넣지 않았다.

빈 잔 가장자리를 미지근하게 데운 뒤 잎을 한 번 문질렀다. 그 잔에 술을 부어 한 바퀴 돌리고 곧바로 새 잔에 옮겼다.

계피초의 열성은 맛이 아니라 잔향으로만 남았다.

다시 맛을 보았다.

차가운 산미.

길게 이어지는 냉기.

그리고 목 아래에서 아주 늦게 돌아오는 한 점의 온기.

막는 것이 아니라 달래는 구조였다.

설아가 잔을 들었다.

“내가 확인하겠다.”

“삼키지 않으셔도 됩니다.”

“교주님께 올릴 술이다. 내 목도 못 지나가는 술을 올릴 수는 없다.”

설아는 작은 모금을 삼켰다. 그녀의 눈이 가늘어졌다.

준우는 손끝을 바라보았다. 검자루로 가는지 배로 가는지.

설아의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입과 목은 차갑다.”

그녀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배까지 내려가면 아주 조금 따뜻해지는군.”

“냉기로 화기를 누르고 열향으로 기맥이 닫히는 걸 막았습니다.”

“완성인가?”

준우는 옥빛 술을 내려다보았다.

“아직 원액입니다. 교주님의 기운 앞에서도 이 균형이 버티는지 봐야 합니다.”

그는 빈 나무패에 술 이름을 적었다.

빙화주.

얼음과 불이 한 잔 안에서 서로를 죽이지 않는 술.

그때 바깥에서 고함이 터졌다.

“내 인장을 도둑맞았다고 몇 번을 말해야 하느냐!”

황 주방장의 목소리였다.

설아의 눈빛이 단숨에 차가워졌다. 그녀는 원액 항아리를 가리켰다.

“아무도 들이지 마라.”

시종 둘이 문을 지키는 것을 확인한 뒤 설아가 밖으로 나갔다. 준우도 영초고 장부와 백화전 장부를 대조하라는 부름을 받아 잠시 배합실을 비웠다.

반의반 각도 지나지 않았다.

준우가 돌아왔을 때 문을 지키던 시종 하나가 복도 끝 소란을 보러 자리를 옮긴 상태였다. 남은 시종은 누구도 들어오지 않았다고 맹세했다.

준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원액 항아리의 봉인은 멀쩡했다.

매듭도 그대로였다.

하지만 항아리 받침 아래에 붉은 가루가 묻어 있었다.

준우는 손을 대지 않고 코만 가까이했다.

코를 찌르는 매운 뿌리 향.

적염마근이었다.

그리고 붉은 가루 위에는 방금 전까지 없던 손자국 하나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누군가 빙화주에 손을 대려 했다.

천마에게 올라가기 전에.

YOU MAY ALSO LIKE

이런 작품은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