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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신교의 수석 소믈리에4화

천마신교의 수석 소믈리에

천마신교의 수석 소믈리에

4화: 블라인드 테이스팅

검은 천이 벗겨지자 술고의 공기가 한층 무거워졌다.

붉은 봉인이 세 겹 붙은 항아리였다. 크기는 사람 허리에도 닿지 않을 만큼 작았다. 그런데 그 앞에 선 마도 주방장들의 표정은 천마전 문 앞에 섰을 때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준우는 항아리 틈에서 새어 나오는 향을 맡았다.

달았다.

너무 달았다.

마른 대추, 끈적한 꿀, 오래 눌어붙은 곡물 향. 처음에는 그럴듯했다. 귀한 술이라는 이름표를 붙여도 대충 넘어갈 만한 향이었다.

하지만 그 밑바닥이 이상했다.

혀뿌리를 먼저 조이는 듯한 냉기. 젖은 돌을 핥은 것 같은 서늘한 흙내. 그리고 아주 늦게 올라오는 매운 뿌리 향.

‘이건 술이 아니라 함정 세트잖아.’

황 주방장은 느긋하게 웃었다.

“백년진독주다. 백화전의 비장이지. 네놈이 정말 술을 읽는다면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맞혀 보아라.”

“맞히면 제 권한을 인정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 틀리면?”

황 주방장의 눈이 준우의 손에 들린 흑목 명패로 향했다.

“그 명패를 내려놓아라. 교주님의 명은 받들겠으나 술도 모르는 잡역부가 백화전 술고를 뒤지는 꼴은 볼 수 없다.”

준우는 명패를 더 꽉 쥐었다.

틀리면 명패만 잃는 게 아니다. 내일 같은 시각, 독고성 앞에 빈손으로 끌려간다. 그 뒤에 기다리는 것은 해고가 아니라 해체였다.

‘블라인드 테이스팅 한 번 잘못하면 사지가 블라인드 처리되는 직장이라니.’

설아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황 주방장.”

그녀의 목소리는 짧았지만 술고 안의 모두가 숨을 죽였다.

“대결은 허락한다. 그러나 교주님의 명패를 네 사사로운 체면에 걸고 흔드는 순간, 내가 먼저 네 손목을 벤다.”

황 주방장의 웃음이 아주 조금 굳었다.

“신교의 술을 지키기 위한 충심입니다, 우호법님.”

“그 충심이 진짜인지 보겠다.”

준우는 작게 숨을 내쉬었다. 설아가 완전히 자기 편이라서 한 말은 아니었다. 그녀는 교주의 명령이 흐트러지는 것을 싫어할 뿐이다.

그래도 지금은 그 정도면 충분했다.

“잔 하나. 흰 사기잔이면 좋습니다. 그리고 물. 청련근을 우린 물과 백당수도 준비해 주십시오.”

마도 주방장 하나가 비웃었다.

“독주를 감별한다더니 다과상이라도 차릴 셈이냐?”

“혀가 굳으면 감별이 끝나니까요. 아니면 주방장님 혀를 빌려주시겠습니까?”

그 주방장의 입이 닫혔다.

준우는 항아리 주변을 살폈다. 봉인 세 개는 오래되어 보였지만 가장 바깥쪽 끈만 유독 새것이었다. 누군가 최근에 다시 묶었다는 뜻이었다.

그때 다른 주방장이 술고 구석에서 향초를 피웠다.

매운 약재 냄새가 확 퍼졌다. 계피초보다 날카롭고 목을 긁는 향이었다.

준우가 즉시 손을 들었다.

“끄십시오.”

“술고 잡내를 몰아내려는 것이다.”

“감별 중에 다른 향을 섞으면 잡내를 몰아내는 게 아니라 증거를 덮는 겁니다.”

설아의 시선이 향초로 향했다.

화륵.

주방장은 허겁지겁 향초를 눌러 껐다. 준우는 속으로 욕을 삼켰다. 현대 레스토랑에서도 향수 진한 손님 옆에서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하면 머리가 아팠다. 그런데 여기는 독초 향초를 피운다.

서비스 난이도가 대체 어디까지 올라가는 걸까.

설아가 검지로 허공을 그었다.

서걱.

봉인이 잘렸다.

항아리 마개가 열리는 순간, 농밀한 단내가 술고 안으로 밀려 나왔다. 몇몇 시종이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향만 맡으면 고급 보양주 같았다.

준우는 잔에 아주 조금만 따랐다.

술은 어두운 호박빛이었다. 잔을 기울이자 벽면에 끈적한 흔적이 붙었다. 천천히, 너무 천천히 내려왔다. 당분과 추출물이 많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알코올이 남기는 다리는 예상보다 가늘었다.

‘백년 숙성이라면 향이 더 깊게 갈라져야 해. 마른 과실, 견과, 오래된 나무, 약재의 산화 향이 층층이 있어야 한다. 이건 겉에 단맛을 발라 둔 느낌이야.’

준우는 잔을 코끝에 가져갔다가 바로 뗐다.

“백년은 아닙니다.”

술고가 술렁였다.

황 주방장의 턱살이 굳었다.

“네놈이 백화전의 비장을 모욕하는구나.”

“오래된 곡주는 맞습니다. 하지만 백년은 아닙니다. 길게 잡아도 이십 년 안팎. 그 위에 꿀과 마른 대추를 넣어 묵은 단 향을 덮었습니다.”

“그걸 향만으로 안다고?”

“백년 묵은 향은 이렇게 한 덩어리로 달지 않습니다. 오래된 술은 향이 부서집니다. 마른 과실, 볶은 곡물, 나무, 약재, 먼지까지 층이 나뉘어야 합니다. 이건 첫 향이 너무 예쁘고 끝 향이 너무 더럽습니다.”

시종 하나가 아주 작게 웃음을 삼켰다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황 주방장의 얼굴이 붉어졌다.

준우는 잔을 다시 돌렸다.

“냉성 독초가 들어갔습니다.”

이번에는 웃는 사람이 없었다.

마도 주방장들의 손끝이 동시에 굳었다. 황 주방장은 눈을 가늘게 떴다.

“백년진독주라는 이름을 들었으니 독초가 들어갔다고 찍는 것이냐?”

“찍을 거면 좀 더 안전한 이름을 댔겠죠.”

준우는 잔을 내려놓았다.

“흑한초.”

술고가 완전히 조용해졌다.

준우는 그 침묵에서 답을 들었다.

“봉혈산과 다릅니다. 봉혈산은 쇠 냄새가 먼저 치고 올라오지만 이건 젖은 돌과 검은 뿌리 냄새가 납니다. 피를 묶는 독이 아니라 감각을 얼리는 독입니다. 혀끝보다 혀뿌리, 혀뿌리보다 목 안쪽을 먼저 조일 겁니다.”

설아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마시면?”

“많이 마시면 목이 먼저 굳습니다. 그다음 손끝 감각이 죽고 진기를 돌리려는 순간 기맥이 막힐 겁니다. 무인에게는 술이 아니라 족쇄입니다.”

시종들 사이로 낮은 숨소리가 번졌다.

황 주방장이 탁자를 내리쳤다.

“이름 하나 맞힌 척으로 끝낼 셈이냐? 맛을 보아야 감별이지!”

기다렸다는 듯한 말투였다.

준우는 잔을 내려다보았다. 저걸 삼키면 진짜로 위험하다. 독성의 양을 모르고 해독제도 없다. 무림의 독주를 현대식 와인처럼 꿀꺽 넘기는 바보짓은 할 수 없었다.

“삼키지는 않습니다.”

“겁쟁이로군.”

“소믈리에도 시음할 때 다 삼키진 않습니다.”

“소믈리에?”

“술맛 보는 놈이라는 뜻입니다.”

황 주방장은 비웃었다.

“신교에서는 술맛 보는 놈이 술을 뱉지 않는다.”

“그래서 백화전 술고 상태가 이 모양이군요.”

공기가 얼어붙었다.

준우는 바로 후회했다. 말이 먼저 나갔다. 직장 생활을 오래 했는데도 목숨이 걸리면 입이 더 솔직해지는 모양이었다.

설아의 입꼬리가 아주 희미하게 움직였다. 착각일 수도 있었다.

준우는 청련근 물을 곁에 두고 백당수를 한 모금 머금었다가 뱉었다. 혀 표면을 얇게 감싸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백년진독주를 젓가락 끝에 찍어 혀끝에 묻혔다.

첫맛은 부드러웠다.

꿀이 먼저 왔다. 마른 대추의 둥근 단맛이 뒤따랐다. 오래된 곡주의 구수함도 있었다. 삼키고 싶게 만드는 맛이었다.

바로 그게 함정이었다.

반 박자 뒤, 혀뿌리가 차갑게 당겼다. 목 안쪽이 좁아졌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가락이 안쪽에서 목젖을 눌러 보는 듯했다.

준우는 즉시 술을 뱉었다.

청련근 물로 입을 헹구고 다시 뱉었다. 그래도 서늘함은 남아 있었다. 그는 손끝을 꼼지락거렸다. 감각은 멀쩡했다.

‘삼켰으면 큰일 났다.’

황 주방장이 조롱하듯 물었다.

“어떠냐? 이제도 아는 체를 할 수 있겠느냐?”

준우는 잔 벽을 가리켰다.

“곡주 여섯.”

황 주방장의 눈썹이 떨렸다.

“꿀과 마른 대추가 둘. 단맛이 길지만 알코올 다리가 약합니다. 술 자체가 오래된 게 아니라 단 재료가 점도를 만든 겁니다.”

준우는 혀끝을 입천장에 붙였다 떼었다.

“흑한초 하나. 양이 적지 않습니다. 혀뿌리를 당기는 시간이 너무 빠릅니다.”

마도 주방장 하나가 자기도 모르게 황 주방장을 돌아보았다.

“설연등 뿌리는 반도 안 됩니다. 냉독이 바로 터지지 않고 단맛 뒤에 늦게 따라온 이유입니다. 점액질이 독을 감싸고 있다가 입 안의 열에 풀리는 구조죠.”

설아가 물었다.

“나머지는?”

준우는 술고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낮에 문제 삼았던 보양주 항아리가 있었다. 달콤한 향으로 화기를 감춘, 천마에게 올리면 위험한 술.

“매운 뿌리 향이 아주 조금 섞였습니다. 이름은 모릅니다. 하지만 저 보양주 끝 향과 같습니다. 처음에는 달게 덮이고 늦게 열이 올라오는 재료입니다.”

황 주방장이 급히 외쳤다.

“추측이다!”

“그럼 확인하면 됩니다.”

준우는 잔을 황 주방장 쪽으로 밀었다.

“제가 틀렸다면 주방장님이 한 잔 드셔도 괜찮겠죠. 곡주 여섯, 꿀과 대추 둘, 흑한초 하나, 설연등 반. 그리고 그 매운 뿌리 조금. 제가 틀렸다면 독이 어떻게 도는지 주방장님 몸으로 바로 알 수 있을 겁니다.”

황 주방장의 입술이 닫혔다.

그 침묵은 어떤 장부보다 정확했다.

설아가 천천히 말했다.

“황 주방장. 제조 기록을 가져와라.”

“우호법님, 백년진독주는 오래된 비장이라 기록이…….”

“없나?”

“그것이…….”

설아의 손이 검자루에 닿았다.

“기록이 없으면 봉인과 항아리를 압수한다. 기록이 있는데 숨겼다면 네 혀를 압수하겠다.”

황 주방장의 얼굴이 밀가루처럼 하얘졌다.

준우는 그제야 어깨에 들어간 힘을 조금 풀었다. 이겼다. 적어도 지금 이 자리에서는.

하지만 목 안쪽에 남은 서늘함은 승리감보다 오래갔다.

‘흑한초. 그대로 쓰면 사람 잡는다. 그런데 독성을 걷어내고 냉기만 잡을 수 있다면…….’

천마의 단전은 불타고 있었다. 산딸기주의 산미는 임시 소화기였을 뿐이다. 내일은 더 제대로 된 구조가 필요했다.

청련근의 차가운 기운.

매실 발효액의 약한 산미.

오래된 곡주의 깨끗한 바탕.

그리고 흑한초에서 독을 빼고 남긴 냉성의 뼈대.

불가능해 보였다.

그래도 불가능하다는 말은 현대 레스토랑에서도 주방장이 마감 직전에 VIP 열두 명을 더 받았을 때 자주 들었다. 결국 누군가는 해냈다. 보통은 준우 같은 사람이었다.

“지금부터 술고 정리를 다시 합니다.”

준우가 흑목 명패를 탁자 위에 올렸다.

묵직한 소리가 술고에 울렸다.

“오래된 곡주는 따로 빼십시오. 매실 발효액은 고운 천으로 세 번 거르고 청련근은 얇게 썰어 찬물에 담가 둡니다. 계피초는 마른 잎과 아직 향이 남은 잎을 분리하십시오. 백당은 남은 양을 전부 확인합니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잡역부였던 소춘이 주방장들에게 명령하고 있었다. 다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준우는 백년진독주 항아리를 가리켰다.

“그리고 저 독주는 제 지시 전까지 누구도 손대지 마십시오. 손대는 자는 교주님께 올릴 술을 망친 자로 보겠습니다.”

그 말에 첫 번째 시종이 움직였다.

작은 소년이었다. 그는 고운 천을 가지러 뛰었다. 이어 다른 시종이 청련근 바구니를 들었다. 마도 주방장 하나가 눈치를 보다가 오래된 곡주 항아리 쪽으로 걸어갔다.

권위라는 건 생각보다 단순했다.

사람들은 누가 옳은지보다 누가 죽지 않을지를 본다.

오늘 밤, 준우는 아직 죽지 않았다.

설아가 곁으로 다가왔다.

“저 독주를 쓸 셈이냐?”

“그대로는 절대 안 됩니다.”

“그럼?”

“흑한초를 술에 넣는 게 아니라 흑한초가 남기는 냉기만 빌릴 겁니다. 독성을 물에 먼저 풀어내고 청련근으로 한 번 잡고 곡주에는 향과 기운만 스치게 해야 합니다.”

설아는 이해했다는 얼굴도 믿는다는 얼굴도 아니었다.

“실패하면?”

“제가 죽겠죠.”

“교주님이 노하시면 백화전도 함께 죽는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해야 합니다.”

준우는 억지로 웃었다. 설아는 잠시 그를 보더니 짧게 고개를 돌렸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해라. 단, 교주님께 해가 될 기미가 보이면 내가 먼저 네 목을 친다.”

“든든하네요. 아주.”

“비꼬는 것이냐?”

“살고 싶다는 뜻입니다.”

설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검을 뽑지 않았다.

황 주방장은 술고 뒤편에 서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두툼한 손등에는 핏줄이 솟아 있었다. 굴욕과 분노가 그를 짓누르고 있었다.

준우는 그를 오래 보지 않았다.

지금 더 중요한 것은 술이었다. 그리고 술 너머에 있는 이상한 냄새였다.

백년진독주의 끝 향.

낮에 발견한 위험한 보양주의 끝 향.

두 술에 같은 매운 뿌리 향이 있었다. 천마의 화기를 늦게 긁어 올리는 재료. 우연이라기에는 너무 정확했다.

누군가 백화전의 술에 손을 대고 있다.

천마를 진정시키는 쪽이 아니라 더 태우는 쪽으로.

준우는 소매를 걷었다.

“좋습니다. 오늘 밤은 아무도 못 잡니다.”

시종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준우도 사실 자고 싶었다. 아주 간절히.

하지만 천마신교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하나였다.

독주도 와인처럼 읽고 독초도 향처럼 다루는 것.

그리고 내일 같은 시각, 천하에서 가장 위험한 단골손님에게 오늘보다 나은 한 잔을 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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