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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신교의 수석 소믈리에2화

천마신교의 수석 소믈리에

천마신교의 수석 소믈리에

2화: 신의 물방울 in 무림

“비켜! 다 비켜!”

준우는 천마전의 긴 복도를 미끄러지듯 달렸다. 등 뒤에서는 아직도 독고성의 포효가 벽을 긁어댔다. 검붉은 마기가 문틈을 비집고 흘러나와 바닥의 먼지를 태웠다.

반 각.

대충 7분.

현대의 레스토랑이었다면 와인 한 병을 열고 잔을 고르고 첫 향을 확인하기에도 빠듯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지금 준우는 그 시간 안에 천하제일인의 주화입마를 달래야 했다.

실패하면?

사지가 백화전 주방 장식이 된다.

“아, 진짜. 미슐랭 별 세 개가 아니라 목숨 세 개쯤 달고 태어났어야 했는데!”

백화전 주방으로 뛰어든 준우를 본 시종들이 동시에 물러났다. 방금 전 천마전으로 끌려갔던 잡역부가 살아 돌아온 것만으로도 귀신을 본 얼굴이었다.

황 주방장은 커다란 배를 움켜쥔 채 굳어 있었다.

“소춘? 네놈이 어찌 살아서 돌아왔느냐?”

“살아서 돌아온 게 아니라 아직 죽기 전입니다. 술독 열쇠요!”

“무슨 열쇠? 교주님께 올릴 만한 술은 방금 네놈이 들고 간 영사주가 전부였다!”

“그러니까 그게 문제였다고요!”

준우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주방 안쪽으로 뛰었다. 흙벽을 따라 크고 작은 옹기들이 줄지어 있었다. 이름표는 없었다. 먼지는 두껍고 마개 주변에는 말라붙은 술 찌꺼기가 굳어 있었다.

‘보관 상태가 왜 이래? 여기가 마교냐, 망한 선술집 뒤뜰이냐.’

그는 첫 번째 항아리의 마개를 열었다.

탁한 누룩내. 산패한 기름 냄새. 끝에 썩은 약초 같은 쓴내.

“탈락.”

두 번째 항아리.

알코올은 강했지만 향이 갈라져 있었다. 혀에 닿으면 목부터 태울 술이었다.

“이것도 탈락.”

세 번째는 더 심했다. 뱀 비린내와 진흙 냄새가 함께 올라왔다. 준우는 얼굴을 찌푸리며 마개를 닫았다.

황 주방장이 뒤따라오며 고함쳤다.

“네놈이 지금 감히 백화전의 귀한 술을 평가하는 것이냐?”

“귀하면 관리부터 하셨어야죠!”

“뭐라?”

“아니, 살고 나서 혼나겠습니다.”

준우의 코끝이 세 번째 줄 끝에서 멈췄다. 반쯤 비어 있는 작은 옹기였다. 마개를 여는 순간 시큰한 산딸기 향이 확 올라왔다.

향은 가벼웠다. 깊이는 없고 산은 튀었다. 잘 만든 술은 아니었다. 아니, 실패작에 가까웠다.

그런데 그 실패가 지금은 살길이었다.

“이거다.”

황 주방장이 눈을 까뒤집었다.

“그건 버릴 산딸기주다! 너무 셔서 시종들도 안 마시는 것을 교주님께 올리겠다고?”

“신맛이 필요합니다.”

“교주님께 신 술을?”

“단전이 타는 사람한테 독한 뱀술을 먹이니 더 날뛰죠. 입 안에 침을 돌리고 목을 씻어내고 열감을 잠깐 흩어야 합니다.”

준우는 국자로 산딸기주를 작은 주전자에 옮겼다. 흐린 홍옥빛이 주전자 안에서 출렁였다. 보기에는 예뻤지만 몸통이 없었다. 물처럼 흩어질 술이었다.

‘산미는 있다. 향도 완전히 죽진 않았어. 문제는 구조야. 산만 있으면 천마 입장에선 신 물이다.’

그는 손을 내밀었다.

“백당. 없으면 꿀이라도.”

황 주방장은 이를 악물었다.

“귀한 백당을 왜 네놈에게 내줘야 하느냐?”

“교주님 목숨보다 귀합니까, 아니면 주방장님 목숨보다 귀합니까?”

황 주방장의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그는 시종에게 손짓했다. 작은 나무함이 열리고 굵은 흰 결정이 드러났다.

준우는 손끝으로 찍어 혀에 댔다.

거칠지만 깨끗했다. 미묘한 흙내가 있었으나 산딸기주의 날을 감싸기에는 충분했다.

“계피초.”

“그건 열성 약재다. 교주님의 화기를 더하면 정말 끝장이다.”

“달여 넣는 게 아니라 향만 씁니다. 뱀술도 아니고 산딸기주인데 약취와 풋내를 눌러줄 꼬리가 필요해요.”

준우는 계피초 잎 한 조각을 손가락 사이에서 비볐다. 매운 향 아래에 달큰한 나무 향이 숨어 있었다. 그는 잎을 술 위에 잠깐 띄웠다가 바로 건져냈다.

시종 하나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저게 무슨 짓이래.”

준우는 듣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잔의 곡선, 향의 층, 혀에서 퍼지는 산도와 단맛의 순서만 남아 있었다.

그때 약재 선반 위 작은 청동 병이 눈에 들어왔다.

마개 주변이 붉은 끈으로 세 번 묶여 있었다. 위험 표시였다.

“저건 뭡니까?”

황 주방장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봉혈산이다. 외상 입은 무인의 혈맥을 잠시 묶는 약이다. 한 숟갈만 잘못 먹어도 손발이 굳어 그대로 죽는다.”

“한 숟갈은 안 씁니다.”

“소춘!”

준우는 청동 병을 열었다. 쇳가루 같은 냄새가 먼저 치고 올라오고 뒤이어 서늘한 풀향이 코끝에 붙었다. 혈류를 잡는 약. 과하면 독. 하지만 미량이면?

‘너무 묽은 술에 골격을 세울 수 있다. 탄닌처럼 잡아주는 역할. 딱 한 점이면 돼.’

그는 젓가락 끝에 봉혈산을 묻혔다. 가루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의 양이었다.

주전자 안에 떨어뜨리는 순간, 산딸기주의 흐린 붉은빛이 잠깐 어두워졌다. 술 표면에 얇은 막 같은 윤기가 돌았다가 이내 사라졌다.

“너 지금 독을 타는 것이냐?”

문 앞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날아왔다.

주방 안의 모두가 얼어붙었다.

설아였다. 은백색 경갑에 묻은 검은 마기 자국이 아직 지워지지 않았다. 한 손은 검자루에, 다른 손은 아랫배 근처에 머물러 있었다. 창백한 입술이 그녀의 상태를 말해주고 있었다.

준우는 주전자를 가볍게 흔들었다.

“독이 아니라 균형을 잡는 겁니다.”

“마교의 약재를 네놈이 어찌 안다고 균형을 논하느냐.”

“방금 냄새를 맡았습니다.”

설아의 눈매가 서늘해졌다.

“냄새?”

“봉혈산은 쇠 냄새 뒤에 찬 풀향이 납니다. 혈맥을 묶는 성질이 있다는 뜻이겠죠. 많이 쓰면 굳고 아주 조금 쓰면 흩어지는 술을 붙잡습니다.”

“헛소리라면 네 혀부터 베겠다.”

“그러면 맛을 못 보니 곤란합니다.”

준우는 잔에 술을 조금 따랐다. 먼저 자신이 입에 머금었다.

혀끝에서 산이 튀었다. 곧 백당의 단맛이 둥글게 감싸고, 끝에는 계피초의 짧은 향이 남았다. 봉혈산 때문인지 물처럼 퍼지던 느낌이 한 박자 늦게 내려앉았다.

완벽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 필요한 건 완벽한 와인이 아니었다. 화재 진압이었다.

“백당 반 꼬집 더.”

준우가 다시 섞자 향이 조금 부드러워졌다. 그는 빈 잔을 설아에게 내밀었다.

“제가 먼저 마셨습니다. 독이라면 제가 먼저 쓰러집니다.”

설아는 잔을 받지 않았다. 대신 주전자에 코를 가까이 대고 아주 짧게 향을 맡았다.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산딸기 향. 달큰한 결정의 향. 계피초의 꼬리. 그리고 봉혈산의 서늘한 기운이 서로 싸우지 않고 얇게 겹쳐 있었다.

“네놈은 대체…….”

“잡역부 소춘입니다. 지금은 그 이상 설명할 시간이 없습니다.”

멀리서 천마전이 다시 흔들렸다.

콰아앙!

검은 마기가 복도 끝까지 밀려왔다. 촛불 몇 개가 동시에 꺼졌다.

설아가 짧게 말했다.

“따라와라.”

천마전으로 돌아가는 길은 처음보다 길게 느껴졌다. 황 주방장은 문간까지 따라왔다가 더는 발을 떼지 못했다. 그의 눈에는 안도보다 두려움이 더 짙었다.

준우가 성공하면 황 주방장의 무능이 드러난다.

준우가 실패하면 모두 죽는다.

어느 쪽이든 백화전은 이미 흔들리고 있었다.

설아가 천마전의 부서진 문을 밀었다. 뜨거운 바람과 차가운 한기가 동시에 밀려왔다. 방 안의 대리석 바닥에는 검은 칼자국이 그물처럼 새겨져 있었다.

독고성은 부서진 탁자 잔해 위에 앉아 있었다. 머리는 산발했고 붉은 눈은 아직 짐승 같았다. 그러나 그 안쪽에는 며칠째 잠들지 못한 사람의 피로가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반 각이 지났느냐.”

목소리만으로도 무릎이 꺾일 것 같았다.

준우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잔을 올렸다.

“아직 세 숨 남았습니다, 교주님.”

“술은?”

“백화전의 산딸기주를 교주님의 기맥에 맞게 고쳤습니다.”

“고쳤다?”

천마가 웃었다. 웃음이 바닥을 긁고 지나갔다.

“잡역부 놈이 내 술을 고쳐?”

“강한 술은 지금 교주님께 맞지 않습니다. 타는 솥에 찬물을 들이부으면 솥이 깨집니다. 먼저 혀와 목을 열고 날카로운 기운을 둥글게 감싼 뒤 흩어진 혈맥을 아주 잠깐 붙들어야 합니다.”

설아가 낮게 끼어들었다.

“교주님, 제가 먼저 확인하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다.”

독고성의 손이 허공을 갈랐다.

준우의 손에 있던 잔이 빨려가듯 천마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검붉은 마기가 잔 표면을 핥았다. 술이 작은 소용돌이를 만들며 흔들렸다.

독고성이 코끝에 잔을 가져갔다.

“시군.”

준우는 마른침을 삼켰다.

“첫 향만 그렇습니다.”

독고성이 술을 입에 털어 넣었다.

순간 방 안의 마기가 폭발하듯 부풀었다.

설아의 검이 반쯤 뽑혔다. 문밖에서 황 주방장이 작게 비명을 삼켰다. 준우의 심장은 발밑으로 떨어졌다.

‘망했나?’

다음 숨.

거칠게 솟구치던 검은 기운의 결이 바뀌었다. 마기는 여전히 사나웠지만 제멋대로 튀던 끝부분이 천마의 어깨 주변에서 한 번 꺾였다. 불꽃이 아니라 두꺼운 연기처럼 눌리기 시작했다.

독고성의 목울대가 천천히 움직였다.

한 번.

두 번.

그의 붉은 눈에서 살기가 아주 조금 빠졌다. 방 안을 찢을 듯하던 압력이 한 치 내려앉았다. 준우는 그제야 자신이 숨을 참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흠.”

천마가 빈 잔을 내려다보았다.

그 한 음절에 방 안의 모두가 얼어붙었다.

“개흙 맛은 아니군.”

준우는 하마터면 바닥에 이마를 찧을 뻔했다.

이 세계에서 들은 어떤 칭찬보다 감격적인 말이었다.

천마가 손을 내밀었다.

“더.”

준우는 떨리는 손으로 두 번째 잔을 따랐다. 이번에는 독고성이 천천히 마셨다. 혀 위에서 굴리듯 향을 확인하듯.

“처음엔 혀 가장자리를 찌른다. 그다음 단맛이 들어와 날을 감싸는군. 목 아래로 내려가면…… 잠깐 식는다.”

독고성의 눈이 준우에게 박혔다.

“봉혈산을 넣었느냐.”

설아의 기세가 서늘하게 변했다.

준우는 바로 엎드렸다.

“한 방울에도 못 미치는 양입니다. 혈맥을 막기 위함이 아니라 흩어진 술의 골격을 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교주님의 진기를 억누르려 한 것이 아닙니다. 잠시 붙잡을 발판만 만든 것입니다.”

침묵.

대리석 틈에서 식은 먼지가 올라왔다.

독고성이 낮게 웃었다.

“겁은 많으나 손은 건방지구나.”

“살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솔직하군.”

천마는 남은 술을 비웠다. 그의 눈은 여전히 붉었고 마기는 아직 방 안을 맴돌았다. 완치와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조금 전처럼 당장 모두의 목을 날릴 광증은 물러나 있었다.

설아가 아주 작게 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손도 검자루에서 떨어졌다.

독고성이 말했다.

“소춘이라 했느냐.”

“예, 교주님.”

“내일 같은 시각에 다시 술을 올려라. 오늘보다 못하면 죽는다.”

준우의 등줄기가 굳었다.

살았다.

그런데 내일도 죽게 생겼다.

문밖의 황 주방장은 준우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눈빛에는 조금 전까지의 공포와 다른 것이 섞여 있었다. 질투. 분노. 그리고 자신의 자리가 흔들린다는 두려움.

설아의 시선도 달라져 있었다. 의심은 여전했지만 그 아래에 아주 희미한 기대가 있었다.

천마가 빈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백화전의 버린 술에서 이런 맛이 날 줄이야. 내일은 버린 술이 아니라 제대로 된 술을 가져오너라.”

준우는 빈 주전자를 내려다보았다.

산딸기주는 다 썼다. 백당도 마음대로 쓸 수 없고 봉혈산은 한 번 더 쓰면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

그는 마른침을 삼켰다.

목숨은 건졌다.

대신 천마신교에서 가장 까다로운 단골손님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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