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신교의 수석 소믈리에

15화: 잔을 사려는 자
문제가 있다면 이미 안에 있었다.
준우는 네 번째 통에 손대지 않았다.
생삼나무의 날카로운 송진 냄새.
마른 꽃을 아교에 짓이긴 듯한 먹 냄새.
잡아당길수록 안으로 숨어드는 매듭.
어느 것도 장덕의 것이 아니었다.
설아의 손이 검 손잡이에 얹혔다.
“문을 닫겠다.”
“지금 닫으면 범인도 숨습니다.”
“안에 있는 자를 전부 묶으면 된다.”
술성에는 장덕과 위철, 노칠만 있는 게 아니었다. 판재를 나르고 포도를 선별하고 바닥을 닦는 잡역부가 열둘이었다.
모두 묶어 놓으면 범인이야 갇히겠지만 발효 중인 원주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 무엇보다 한 사람의 흔적 때문에 열다섯을 죄인으로 만들면 이제 막 맞물린 손들이 다시 흩어진다.
준우는 마개 아래 판재를 손톱으로 얇게 긁었다.
송진 향이 더 짙어졌다.
불에 굽지 않은 생판이었다.
이대로 원주에 닿으면 독이 없어도 술은 망가진다. 단맛은 쓰게 변하고 과실 향은 송진에 짓눌릴 터였다.
하지만 원주를 망치는 게 목적이라면 통 안에 넣고 끝냈어야 했다. 다시 풀기 쉬운 매듭까지 남길 이유가 없었다.
준우가 통에서 두 걸음 물러났다.
강하게 구운 판재가 늘어선 냉기 굴에서도 생송진 향은 똑바로 코를 찔렀다.
“표식입니다.”
“무슨 표식이지?”
“통의 자리가 바뀌어도 냄새로 찾을 수 있습니다. 매듭은 칼 없이 풀고 다시 죌 수 있고요.”
누군가 이 통에 다시 올 생각이었다.
설아의 시선이 어둠 속 작업자들을 훑었다.
“그때까지 두겠다는 말이군.”
“찾아오게 해야 합니다.”
준우는 마른 천을 판재 틈에 끼워 송진이 원주 쪽으로 번지는 것만 막았다. 둥근 먹자국과 매듭은 그대로 뒀다.
“문은 평소처럼 지켜 주십시오. 대신 옛 운반 갱도에 사람을 붙여 주십시오.”
설아가 눈썹을 좁혔다.
“나에게 미끼가 되라는 명을 내리는 건가?”
“칼을 뽑으시면 아무도 오지 않을 겁니다.”
잠시 뒤, 검 손잡이에서 손이 떨어졌다.
“한 번이다.”
다음 날 아침.
준우는 모두가 듣도록 말했다.
“네 번째 통은 해가 기울기 전에 다시 채웁니다.”
장덕이 대패를 내려놓았다.
“그 판을 그대로 두고?”
“오늘 공정을 끝낸 뒤 확인하겠습니다.”
“내 먹표도 없는 판이 끼었는데 무슨 확인이 더 필요하오?”
위철의 얼굴도 굳었다.
“통을 조인 건 내가 말린 대나무요. 매듭이 바뀌었다면 테를 맡은 사람부터 의심하겠다는 건가?”
노칠이 장부를 품 쪽으로 끌어당겼다.
“통 수와 판재 수는 내가 적었습니다. 하나도 틀리지 않았소.”
세 사람의 목소리가 차례로 높아졌다.
그 틈에서 잡역부들은 서로를 흘겨봤다. 전날 마개를 나른 자가 누구였는지 마지막까지 남은 자가 누구였는지 작은 목소리가 오갔다.
범인은 손을 쓰지 않고도 술성을 갈라놓고 있었다.
준우가 둥근 먹자국을 가리켰다.
“이건 누구의 실수도 아닙니다.”
“그걸 어떻게 아나?”
“실수인지 아닌지 어제 하던 일을 다시 해 보면 압니다.”
그는 장덕에게 판재를 세 장만 다시 다듬어 달라고 했다.
장덕은 오른손으로 대패를 밀었다. 대패밥을 턴 뒤에도 오른손으로 먹붓을 들었다. 세모를 찍을 때 붓끝은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눌렸다.
둥근 먹자국은 반대였다.
누군가 왼손으로 먹을 갈고 오른손으로 어색하게 붓을 잡았다.
위철은 뜨거운 모래에 묻어 둔 대나무를 꺼냈다. 양손으로 긴 집게를 잡고 마디부터 천천히 돌렸다.
“마디를 먼저 데워야 섬유가 같이 줄어든다.”
그가 일부러 새 잡역부들에게 들으라는 듯 말했다.
“끝부터 잡아당기면 겉만 말라 갈라져.”
잡역부들이 차례로 같은 일을 반복했다.
셋째 사내가 집게를 잡자 준우의 코에 마른 꽃 냄새가 스쳤다. 볼에 검댕을 묻힌 사내였다.
그는 집게를 왼손으로 들었다.
그리고 대나무 끝부터 불 가까이 가져갔다.
위철이 욕설을 삼켰다.
“어제 배운 걸 하루 만에 잊었나?”
사내는 황급히 대나무를 뒤집었다.
“긴장해서 그랬습니다.”
준우는 그의 손을 보았다.
판재를 날랐다면 손바닥 안쪽에 나뭇결을 따라 긁힌 자국이 있어야 했다. 뜨거운 모래를 다뤘다면 엄지와 검지 사이에 집게 굳은살이 남는다.
사내의 손은 깨끗했다.
그런데 송진 냄새는 소매에 짙게 배어 있었다. 손으로 일한 냄새가 아니라 일한 사람의 옷에 몸을 비빈 냄새였다.
준우는 그를 지나쳐 다음 사람에게 집게를 건넸다.
공정 재현이 끝난 뒤 장덕이 낮게 물었다.
“찾았소?”
“아직은 일을 못하는 사람을 찾았을 뿐입니다.”
“그게 그거 아닌가?”
“술을 못 만든다는 이유로 사람을 죽이면 저부터 오래전에 죽었어야 합니다.”
첫 통은 샜다.
준우가 서둘러 말린 탓이었다.
장덕은 입을 다물었다. 위철도 더 묻지 않았다.
준우는 네 번째 통 앞으로 작은 봉인함을 가져왔다.
사람들이 들을 만큼 큰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밤, 빙화주 원액을 이 통으로 옮겨 안정시킨다.”
설아의 눈이 잠깐 움직였다.
청 일 번과 청 이 번은 본산 봉인함에 있었다. 두 열쇠도 준우와 설아가 하나씩 나눠 가진 채였다.
네 번째 통 앞의 함에는 물을 채운 작은 병만 넣었다.
준우는 통 안의 원주를 다른 통으로 옮겼다. 바닥에는 빈 받침 통을 놓고 그 위를 젖은 천으로 덮었다.
배수 홈도 돌마개로 막았다.
무엇을 넣으러 오는지는 몰랐다.
그러니 들어온 것이 술성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해야 했다.
해가 지자 등잔이 하나씩 꺼졌다.
발효 통의 기포가 어둠 속에서 숨을 쉬었다.
톡.
톡.
끼익.
기포와 다른 소리가 났다.
네 번째 통을 감은 대나무 테가 느슨해졌다.
검댕 묻은 사내가 통 뒤에서 일어났다. 손에는 낮에 없던 얇은 가죽 장갑이 끼워져 있었다.
그는 매듭을 단숨에 풀었다.
마개를 연 뒤 봉인함까지 확인했다. 물병을 꺼내 흔들고도 놀라지 않았다.
“역시 비워 뒀군.”
준우가 어둠에서 나왔다.
“통 안에 무엇을 넣으려 했습니까?”
사내는 달아나지 않았다.
오히려 장갑을 벗고 품에서 얇은 금표 두 장을 꺼냈다. 등잔 하나를 밝히자 금빛이 냉기 굴의 벽을 훑었다.
“자네가 평생 술을 빚어도 만져 보지 못할 돈일세.”
“독값입니까?”
“목숨값이지.”
금표가 빈 통 위로 떨어졌다.
“소춘. 자네가 여기서 무엇인가? 교주의 기분 하나에 목이 날아갈 말단이야. 어제는 통을 만들었다고 웃었겠지. 내일은 술맛이 변했다는 이유로 죽을 수도 있어.”
사내는 준우가 듣고 싶어 할 말을 정확히 골랐다.
천마가 마신 뒤에는 술 안에서 흔적이 사라진다.
한 방울이면 된다.
천마의 마기가 제 몸을 찢고 나올 것이며 신교는 교주를 잃고 서로 목을 물어뜯는다.
“양조장을 부술 필요도 없겠군요.”
“부서진 술독은 누구나 의심하지.”
사내가 웃었다.
“하지만 신임을 얻은 주향사가 정성을 다해 올린 한 잔은 아무도 막지 않아.”
그래서 준우를 죽이지 않았다.
천마의 잔까지 닿을 손이 필요했다.
“일이 끝나면 서쪽 관문을 열어 주지. 새 이름도, 자네만의 술고도 주겠다.”
준우는 금표를 내려다봤다.
처음 이곳에서 눈을 떴을 때는 살아남는 것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천마에게 첫 잔을 내민 것도 목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때라면 흔들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통 하나에는 장덕의 먹표와 위철의 눈금, 노칠의 글씨가 함께 들어 있었다.
한 잔에는 재료만 들어가지 않았다.
그것을 만든 사람들의 손도 들어갔다.
“당신들이 사고 싶은 건 제 목숨이 아니군요.”
준우가 말했다.
“제 손입니다.”
사내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 손으로 사람을 살렸다는 착각이라도 하나?”
“적어도 누구를 죽이는지 모르고 잔을 내지는 않습니다.”
금표 위로 침묵이 내려앉았다.
사내의 오른쪽 어깨가 아주 조금 내려갔다.
품으로 손을 넣기 직전의 움직임이었다.
준우가 빈 통을 발로 밀었다.
동시에 작은 옥갑이 사내의 손안에서 깨졌다.
회색 분말이 뿜어져 나왔다.
펼쳐 둔 젖은 천이 분말을 받아 냈다. 가루는 물기에 달라붙어 아래의 빈 통으로 떨어졌다.
준우는 통 뚜껑을 걷어차 닫았다.
사내의 눈에 처음으로 당황이 떠올랐다.
그는 몸을 뒤집어 돌벽 사이로 파고들었다.
낮에는 막혀 있던 옛 운반 갱도의 문이 열렸다.
안쪽 빗장이 미리 잘려 있었다.
준우가 뒤쫓았다.
설아가 그림자처럼 옆을 스쳤다.
“뒤에 있어라.”
갱도 안은 등잔도 없이 어두웠다.
설아가 검을 뽑으려 하자 준우가 숨을 멈췄다.
오래된 돌먼지 사이로 갓 긁힌 석회 냄새가 났다. 왼쪽 벽 가까이에서는 등잔기름 냄새가 낮게 움직였다.
“왼쪽, 허리 높이입니다!”
쇳조각이 날아왔다.
설아의 검집이 그것을 쳐냈다.
사내는 몸을 낮춘 채 더 깊이 달렸다. 발소리를 죽였지만 거친 숨은 감추지 못했다.
준우는 숨 사이에 섞인 피 냄새를 좇았다.
“앞쪽 갈림길. 오른편에 서 있습니다.”
설아가 방향을 틀자 사내가 천장의 낡은 버팀목을 걷어찼다.
돌이 쏟아졌다.
설아는 준우의 어깨를 밀어 내고 큰 돌만 검풍으로 비껴 냈다. 연달아 기운을 쓴 탓에 입술에서 핏기가 빠졌다.
명치 아래를 누를 틈도 없었다.
준우가 일어서며 외쳤다.
“세 걸음 앞!”
돌먼지 속에서 사내의 턱이 움직였다.
혀 밑의 독환을 깨물려는 동작이었다.
“턱입니다!”
설아의 검집이 먼저 손목을 쳤다.
두 번째 타격이 아래턱을 올려쳤다.
딱.
검댕 묻은 사내가 바닥에 처박혔다. 그의 입에서 밀랍으로 싼 검은 환약이 굴러나왔다.
설아는 발로 환약부터 짓눌렀다. 그제야 한 손으로 명치 아래를 짧게 눌렀다가 놓았다.
“살아 있다.”
“이번에는 죽게 두면 안 됩니다.”
두 사람은 사내의 입과 소매, 신발까지 확인했다.
품에서는 회색 독분이 든 옥갑 셋과 금표, 접힌 밀서가 나왔다.
설아가 밀서를 등잔에 비췄다.
글은 숫자와 점으로 바뀌어 있었다. 끝에 찍힌 인장은 일부러 반쪽을 잘라 낸 모양이었다.
남은 획은 하나였다.
盟.
맹.
설아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무림맹인가?”
준우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푸른 소매 안쪽의 흰 매화.
자객의 어금니에 새겨진 매화 매 자.
그리고 이번에는 맹 자가 남은 인장.
흔적은 너무 친절할 때가 더 위험했다.
“인장 하나로는 모릅니다. 무림맹이 보냈을 수도 있고 그렇게 보이게 남겼을 수도 있습니다.”
준우는 닫힌 빈 통 곁에 쪼그려 앉았다. 젖은 천 너머에서도 독분은 거의 냄새가 없었다.
아주 끝에 쇠를 말린 듯한 향이 혀뿌리를 당겼다.
술을 썩이는 독이 아니었다.
사람의 기운에 달라붙어 무언가를 끊는 독이었다.
정확한 성분도 천마의 마기에 어떤 반응을 일으킬지도 아직 알 수 없었다.
붙잡힌 사내가 피를 뱉었다.
“소춘.”
술성에서 그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았다.
하지만 사내의 목소리에는 매수할 때의 여유가 사라져 있었다.
설아가 그의 턱을 잡아 독환이 더 없는지 확인했다.
“이름.”
사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밀서를 보았다.
독환을 깨물려 했을 때보다 더 겁먹은 눈이었다.
누구에게 잡혔는가보다 무엇을 말하게 될지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준우는 금표 두 장을 집어 밀서 옆에 놓았다.
술성을 망치러 온 자가 아니었다.
준우의 손을 사서 천마의 잔을 독잔으로 만들러 온 자였다.
그리고 그 손을 사려는 자들은 신교 밖에서 이미 그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