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신교의 수석 소믈리에

13화: 마교에 술성을 세우다
청 일 번과 청 이 번이 나란히 놓였다.
하나는 본산 봉인대에 남아 있던 병.
다른 하나는 화염 원숭이 목에 매달려 남부까지 다녀온 병이었다.
준우는 두 병을 열기 전에 무게부터 쟀다. 저울대는 같은 자리에서 멈췄다. 침전물의 높이와 밀랍에 새긴 얕은 흠도 기억과 일치했다.
청 이 번 겉에는 붉은 흙이 남았지만 병목 안쪽 밀랍은 끊기지 않았다.
“그래도 버리는 게 낫다.”
황 주방장이 팔짱을 꼈다.
“짐승 목에 걸렸던 술이다. 교주께 올릴 물건에 무슨 미련이냐?”
“교주께 올리려는 게 아닙니다.”
준우는 두 병의 밀랍을 걷고 대나무 침으로 한 방울씩 덜었다.
흰 접시에서는 색과 번지는 속도를 봤다. 데운 은판 가장자리에서는 마른 뒤 남는 고리를 살폈다.
젖은 돌 냄새가 먼저 일고 매실의 산미와 계피초 잔향이 뒤따랐다. 순서도 세기도 같았다. 은판도 어느 한쪽만 다르게 변하지 않았다.
준우는 맛을 보지 않았다.
“지금 확인할 수 있는 차이는 없습니다.”
황 주방장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럼 멀쩡하다는 뜻이냐?”
“아닙니다. 제가 찾지 못하는 오염까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는 두 병의 주둥이를 새 천으로 닦고 서로 다른 색의 밀랍으로 다시 봉했다. 설아가 봉인함의 자물쇠 두 개를 직접 잠갔다.
“열쇠 하나는 내가, 다른 하나는 네가 가진다.”
원액을 가져가려면 둘을 함께 불러야 했다.
누가 빼냈는지는 여전히 몰랐다. 적어도 같은 방식으로 다시 사라지지는 않을 터였다.
준우는 봉인함 옆에 남부에서 가져온 적양포 세 접시를 올렸다.
덜 익은 것.
불에 그슬린 것.
출하 시기를 넘겨 지나치게 익은 것.
황 주방장의 얼굴이 구겨졌다.
“이제는 쓰레기까지 본산에 들이는군.”
준우가 완숙한 포도 하나를 갈랐다. 어제보다 과육이 물러 있었다. 꼭지 주변에서는 벌써 시큼한 냄새가 났다.
“이틀 뒤에는 정말 쓰레기가 됩니다.”
그는 세 접시의 즙을 작은 잔에 따로 짰다.
덜 익은 즙은 혀를 조일 만큼 시었다. 그슬린 즙에서는 짙은 과실 향이 났지만 끝이 거칠었다. 완숙한 즙은 달았으나 향을 붙잡을 힘이 없었다.
세 즙을 조금씩 합치자 날카로운 끝이 누그러졌다.
“처음부터 섞어 썩히자는 게 아닙니다. 따로 발효시키고 살아남은 향만 필요한 만큼 합칠 겁니다.”
천마전 상석에서 독고성이 잔을 내려다봤다.
“그래서 무엇을 달라는 것이냐?”
“북부 폐광을 주십시오.”
황 주방장이 헛기침을 삼켰다.
“폐광도 신교의 땅이다. 백화전 인부까지 빠지면 교주의 주안상을 누가 맡느냐? 공물도 잃은 판에 술 항아리 몇 개 두겠다고 광산을 내놓으란 말이냐?”
“항아리 몇 개로 끝낼 수 없으니 달라는 겁니다.”
준우는 세 잔을 가리켰다.
“원료를 나누고 서로 다른 온도에서 발효시키고 완성된 술을 오래 두려면 전용 양조장이 필요합니다.”
독고성의 손가락이 상을 두드렸다.
“완성한 술은 없고 원하는 것은 전각 하나로군.”
“첫 구역만 사흘간 빌려 주십시오.”
“살리지 못하면?”
“폐광과 인력을 즉시 돌려드리겠습니다. 손상된 공물의 값도 제가 갚겠습니다.”
“네 목으로?”
준우가 고개를 들었다.
“살아 있어야 갚을 수 있습니다.”
잠깐의 침묵 뒤 독고성이 낮게 웃었다.
“죽겠다고 큰소리치는 놈보다 욕심이 많구나.”
그가 손가락 세 개를 폈다.
“사흘이다. 그 안에 썩은 물을 만들면 네 평생 품삯은 내 것이다.”
설아가 앞으로 나섰다.
“출입과 인력은 제가 감독하겠습니다.”
“가져가라.”
독고성의 허락이 떨어졌다.
북부 폐광은 여름인데도 입구부터 서리가 끼어 있었다.
한빙석을 캐낸 자리마다 희뿌연 냉기가 흘렀다. 바닥에는 녹은 물이 발목까지 고였고 안쪽으로 갈수록 입김이 하얗게 얼었다.
광산 책임자 위철은 가장 깊은 굴을 가리켰다.
“찬 곳을 원했다지? 저 안이면 한여름 고기도 얼릴 수 있다.”
“술도 얼어 죽겠습니다.”
위철이 인상을 썼다.
“차가우면 좋은 것 아니냐?”
“발효는 살아 있는 변화입니다. 너무 뜨거우면 상하고 너무 차가우면 멎습니다.”
준우는 등잔 세 개를 들고 굴을 돌았다.
안쪽 굴에서는 불꽃이 바늘처럼 작아졌다. 바닥 가까이 내리자 푸르게 떨렸다. 옆 굴에서는 미지근한 바람이 들어와 불꽃을 한쪽으로 눕혔다.
성급한 인부 하나가 빈 항아리를 들고 낮은 웅덩이로 내려갔다.
세 걸음 만에 어깨가 기울었다.
“항아리 놓으십시오!”
위철이 인부의 뒷덜미를 잡아 끌었다. 사내는 바깥 공기를 마시고서야 크게 기침했다.
“독 냄새는 없었는데…….”
“그래서 더 위험합니다.”
발효가 시작되면 냄새 없는 무거운 숨이 더 많이 생긴다. 바닥에 고이면 술보다 사람이 먼저 쓰러질 터였다.
준우는 작업부터 멈췄다.
위철이 벽을 두드려 막힌 옛 환기 구멍을 찾았다. 광부들이 높은 곳을 뚫는 동안 남부에서 따라온 노칠은 포도 광주리를 들어 올리다 젖은 바닥을 봤다.
“이 물에 광주리를 놓으면 아래 포도부터 곰팡이가 낍니다.”
그가 광주리를 내려놓지 않자 위철이 코웃음을 쳤다.
“흙 파던 농부가 돌굴 일까지 가르치려 드나?”
“돌만 아는 양반이 포도를 물에 담가 죽이려 하니 그렇지.”
두 사람이 서로 노려봤다.
준우는 노칠에게 마른 선별대를 세울 높이를 정하게 했다. 위철에게는 그 무게를 버틸 암반과 물길을 찾게 했다.
잠시 뒤 노칠이 바닥의 가는 흙줄을 가리켰다.
“물이 저쪽에서 돌아 들어옵니다.”
위철이 곡괭이로 벽 아래를 두 번 쳤다. 막힌 배수 홈이 드러났다. 돌을 걷어 내자 고인 물이 굴 밖으로 빠져나갔다.
“농부 눈도 쓸 데가 있군.”
“광부 팔도 그렇소.”
말은 퉁명스러웠지만 두 사람은 같은 선별대를 붙잡았다.
준우는 동굴을 세 구역으로 갈랐다.
입구의 밝고 마른 곳에서는 포도를 선별하고 손질했다. 미온한 바람이 닿는 옆 굴에서는 첫 발효를 맡겼다. 냉기가 일정한 중앙 굴은 오래 묵히는 술을 위해 비워 뒀다.
원료는 동쪽 입구로만 들어오고 술은 서쪽 통로로만 나가게 했다. 봉인병과 항아리를 오가는 자의 이름은 설아 앞의 장부에 적혔다.
“한 사람이 원료와 봉인을 함께 맡지 않는다.”
설아의 말에 위철이 문마다 서로 다른 매듭을 달았다.
그녀는 냉공으로 서리를 밀어내지 않았다. 오래 비운 속에 찬 기운까지 맞자 입술의 핏기가 옅어졌기 때문이다.
준우는 말없이 따뜻한 죽그릇을 내밀었다.
설아가 눈썹을 좁혔다.
“일하는 중이다.”
“그러니까 드셔야 합니다. 여기서 쓰러지면 출입 장부보다 소문이 먼저 샙니다.”
그녀는 한마디 더 하려다 죽그릇을 받아 들었다.
사흘이라는 시한은 기다려 주지 않았다.
첫날 해가 지기 전에 시험 항아리 세 개가 발효 구역에 놓였다.
덜 익은 포도, 그슬린 포도, 완숙한 포도.
처음에는 모두 조용했다.
밤이 깊자 그슬린 포도를 담은 항아리에서 거친 기포가 솟았다. 손바닥을 가까이 대자 뜨거운 김이 느껴졌다.
반대편의 덜 익은 포도 항아리는 냉기를 맞아 숨이 멎은 듯 고요했다.
위철이 물었다.
“둘을 합치면 가운데가 되지 않겠나?”
“지금 합치면 어느 것이 왜 망가졌는지도 잃습니다.”
준우는 항아리에 손을 넣지 않았다.
그슬린 포도 항아리는 중앙 냉기 길 가까이 옮겼다. 멎은 항아리는 미온풍 쪽으로 두 걸음 당겼다.
냉기가 드는 돌문은 손가락 두 마디만 열었다. 미온한 바람이 드는 틈에는 젖은 천을 걸어 바람을 줄였다.
반 각마다 항아리 표면의 열과 기포 간격을 기록했다.
첫 번째에는 변화가 없었다.
두 번째에는 뜨거운 항아리의 거품이 줄었다.
세 번째 확인에서 멎었던 항아리 표면에 작은 기포 하나가 맺혔다.
노칠이 숨을 죽였다.
톡.
기포가 터졌다.
한 시진 뒤 세 항아리가 서로 다른 박자로 숨을 쉬었다.
완숙한 포도는 잔잔하게.
덜 익은 포도는 가늘고 빠르게.
그슬린 포도는 굵고 느리게.
누구도 환호하지 않았다. 대신 위철은 냉기문에 눈금을 새겼고 노칠은 다음 확인 시각을 장부에 적었다.
준우가 없어도 반복할 수 있어야 진짜 양조장이었다.
사흘째 아침, 독고성이 폐광에 왔다.
준우는 술잔을 내지 않았다.
세 항아리의 뚜껑을 차례로 열었다.
시큼한 풋내, 짙은 훈연 향, 달큰한 과실 향이 아직 따로 놀았다. 하지만 어느 항아리에도 썩은 냄새는 없었다.
독고성은 기포가 터지는 소리를 들었다.
“아직 술도 아니군.”
“하지만 살아 있습니다.”
그가 동굴을 둘러봤다.
바닥의 물은 빠졌고 광부와 농부는 각자 맡은 눈금 앞에 서 있었다. 설아의 장부에는 사흘 동안 드나든 사람과 옮긴 광주리 수가 맞아떨어졌다.
“전각이라 부르기에는 볼품없다.”
“아직 첫 구역뿐입니다.”
“그럼 성이라 불러라.”
독고성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술로 내 광증을 가두겠다 했으니 술성 정도는 되어야지.”
조건부였던 첫 구역이 양조장의 자리를 얻었다.
준우는 살아남으려고 한 잔을 만들었다.
이제는 자신이 자리를 비워도 여러 사람이 같은 술을 빚을 수 있는 곳이 생겼다.
그 순간 안쪽에서 마른 소리가 났다.
쩍.
그슬린 포도를 담은 항아리 옆면에 가느다란 금이 번졌다. 위철이 급히 받침을 대고 새는 즙을 다른 그릇에 받았다.
“냉기와 열기를 번갈아 먹어 흙이 버티지 못했습니다.”
위철은 폐광 창고에서 오래된 나무 두 조각을 가져왔다.
하나는 검붉은 고대 삼나무였다. 다른 하나는 검게 벼락 자국이 남은 대나무였다.
“돌과 흙이 안 되면 이건 어떻겠습니까?”
준우는 삼나무의 결을 손톱으로 눌렀다.
차가운 송진 향이 배어 나왔다.
벼락 맞은 대나무에서는 불에 그은 향 뒤로 혀를 찌를 듯한 기운이 느껴졌다.
잘못 쓰면 술 전체가 나무 진과 탄내에 먹힐 것이다.
하지만 제대로 다룬다면 항아리가 줄 수 없는 향과 숨을 술에 더할 수도 있었다.
술성은 세웠다.
이제 그 안에서 냉기와 불꽃 그리고 시간을 견딜 그릇을 만들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