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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신교의 수석 소믈리에12화

천마신교의 수석 소믈리에

천마신교의 수석 소믈리에

12화: 불꽃을 훔치는 도둑

사라진 병은 대연회전 안에 없었다.

설아가 모든 문을 막았지만 빈 고정대에 남은 꿀기름 향은 출구로 이어지지 않았다.

바닥을 타고 벽 아래 배수구에서 끊겼다.

준우가 등잔을 낮췄다.

쇠로 짠 배수망 한쪽이 안으로 휘어 있었다. 새 송진이 묻은 장갑 자국 아래로 붉은 흙이 말라붙었고 틈에는 푸른 털 몇 가닥이 걸렸다.

황 주방장이 헛웃음을 흘렸다.

“짐승이 봉인대를 열고 병까지 훔쳤다는 말이냐?”

“봉인 끈을 자른 건 사람입니다.”

준우는 털을 코 가까이 가져갔다.

익은 과실과 그을린 풀 냄새가 났다.

“하지만 여기서부터는 작은 짐승이 옮겼습니다.”

때마침 시종 하나가 급보와 빈 광주리를 가져왔다. 남부 분타에서 올린 적양포 공납이 사흘째 끊겼다는 보고였다.

광주리 바닥에도 같은 붉은 흙이 묻어 있었다. 갈라진 대나무 틈에는 푸른 털과 눌린 포도 껍질이 끼어 있었다.

누군가 남부에서 온 광주리를 본산 안까지 들였다.

그리고 원액병을 배수구로 넘겼다.

독고성은 사절들을 돌아보았다.

“문은 연다.”

혁련웅이 눈을 가늘게 떴다.

“우리를 보내 줘도 되겠나?”

“남아 있으면 범인이 되고 나가면 의심을 받겠지.”

독고성의 붉은 눈에 살기가 번졌다.

“어느 쪽이든 도망칠 놈은 내가 잡는다.”

그가 준우를 향해 손가락을 내렸다.

“내일 해가 지기 전까지 찾아라.”

“병을 회수해도 바로 올리지는 못합니다.”

전각이 조용해졌다.

“봉인이 온전한지 안의 술이 바뀌지 않았는지 청 일 번과 비교해야 합니다.”

독고성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살아 돌아온 뒤에도 그 말을 할 수 있나 보자.”

준우와 설아는 동이 트기 전에 남부로 출발했다.

남부 분타의 적양포 밭은 불이 지나간 듯했다.

덩굴은 군데군데 검게 그슬렸고 잘 익은 송이만 사라졌다. 밭 입구에는 인근 화전촌 농부 여섯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분타주 마진이 그들 앞에서 채찍을 들었다.

“오늘 공납까지 비면 내 목이 날아간다. 그 전에 훔친 놈 손부터 자르겠다.”

준우가 채찍 아래 놓인 포도알을 집었다.

껍질 한쪽은 검었지만 씨는 타지 않았다. 꼭지는 칼에 잘린 것이 아니라 힘으로 비틀려 있었다.

껍질에는 좁고 둥근 이빨 자국 네 개가 찍혔다.

“손을 자를 사람은 없습니다.”

마진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이빨 자국 하나로 저놈들 편을 드는 것이냐?”

준우는 포도알을 반으로 갈랐다.

이빨이 닿은 곳부터 안쪽으로 과육이 물러 있었다. 바깥에서 불을 붙였다면 껍질부터 넓게 탔어야 했다.

“불을 놓고 훔친 게 아닙니다. 문 순간 익었습니다.”

그는 덩굴 밑의 마른 흙을 손끝으로 부쉈다.

작은 손발 자국 주변만 수분이 날아가 갈라졌다.

“범인의 몸이 뜨겁습니다.”

설아가 검집으로 풀숲을 젖혔다.

발자국은 절벽 쪽으로 이어졌다. 그중 하나에는 젖은 돌과 묵은 곡주, 마른 계피초 냄새가 엷게 배어 있었다.

빙화주 원액을 담았던 병의 향이었다.

농부들 가운데 늙은 노칠이 고개를 들었다.

“푸른 원숭이를 봤습니다. 아이만 한데 꼬리 끝이 불처럼 붉었습니다.”

설아의 시선이 절벽으로 향했다.

“화염 원숭이다.”

마진이 활잡이를 불렀다.

“굴에서 나오는 대로 쏴라.”

“병이 목에 걸려 있을 수 있습니다.”

준우가 활 앞을 막았다.

“놀라 불을 뿜으면 원액도, 밭도 같이 잃습니다.”

“영물 한 마리 잡다가 공납일을 넘기라는 것이냐?”

“죽이면 누가 병을 매달았는지도 알아낼 길이 줄어듭니다.”

마진의 손이 채찍 자루를 꽉 쥐었다.

그는 도둑보다 공납 실패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농부를 잡아 놓은 것도 범인을 찾기보다 문책할 대상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준우는 가장 잘 익은 적양포 하나를 따서 씹었다.

짙은 단맛 뒤에 혀끝을 찌르는 열기가 남았다.

화기를 품은 땅에서 자란 포도였다.

“해 질 때까지만 밭을 맡겨 주십시오.”

준우는 포도를 익은 정도에 따라 세 무더기로 갈랐다.

첫 그릇에는 덜 익은 포도를 으깨 날카로운 신 향을 퍼뜨렸다.

두 번째에는 잘 익은 포도즙을 담아 단내를 키웠다.

마지막 큰 항아리 안쪽에는 포도즙을 바르고 입구를 데운 계피초로 한 번 문질렀다. 바닥에는 천으로 감싼 설빙석을 놓았다.

“술을 빚는 겁니까?”

노칠이 물었다.

“길을 만드는 겁니다.”

“덫이 아니라?”

설아가 물었다.

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향을 고르는지 봐야 원액을 가져간 이유도 알 수 있습니다.”

설아는 더 묻지 않았다.

그가 사람 냄새를 지우기 위해 모두 물러나라고 하자 가장 먼저 거리를 벌렸다. 다만 마진이 밭고랑 아래 숨겨 둔 쇠그물은 그대로였다.

“저것도 치우십시오.”

“내 밭의 덫이다.”

마진은 끝내 듣지 않았다.

해가 절벽 아래로 내려갔다.

푸른 그림자가 바위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 팔뚝만 한 원숭이였다. 꼬리 끝에서 붉은 불씨가 흔들렸고 목에는 푸른 봉인병이 매달려 있었다.

병 둘레에는 회백색 가루가 묻은 천이 덧대어져 있었다.

설빙석 가루였다.

원숭이는 첫 그릇의 신 향 앞에서 멈췄다. 코를 벌름거리다 두 번째 그릇으로 옮겨 가 포도즙을 핥았다.

거친 숨을 쉴 때마다 콧김이 붉게 달아올랐다.

원숭이는 포도보다 목에 걸린 찬 병을 자꾸 가슴에 눌렀다.

누군가 원액의 향과 냉기를 미끼로 쓴 것이다.

그때 마진이 밧줄을 당겼다.

쇠그물이 흙을 뚫고 솟았다.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화염 원숭이가 비명을 질렀다.

꼬리의 불길이 치솟으며 그물에 붙은 기름을 삼켰다. 불붙은 밧줄이 끊어져 포도밭 위로 날았다.

설아의 검이 한 번 번뜩였다.

검풍이 가장 큰 불씨만 밭 밖으로 밀어 냈다. 두 번째 검을 들려던 그녀의 왼손이 명치로 내려갔다.

준우와 농부들이 젖은 흙을 던져 남은 불을 덮었다.

원숭이는 절벽으로 달렸다.

목의 병이 바위에 부딪혔다.

챙!

준우는 쫓지 않았다.

마지막 항아리의 뚜껑만 열었다.

익은 포도의 단내와 데운 계피초 향 아래로 설빙석의 찬 기운이 낮게 흘렀다.

원숭이의 발이 멈췄다.

“모두 물러나십시오.”

마진이 활을 들었지만 설아의 검집이 화살대를 눌렀다.

“이번에는 따른다.”

준우도 항아리에서 세 걸음 물러났다.

“잡지 않는다.”

원숭이가 이를 드러냈다.

말을 알아들을 리 없었다. 그래도 비어 있는 길과 항아리의 냉기는 알 수 있었다.

그것은 포도즙을 한 번 핥았다.

항아리 안으로 앞발을 넣자 붉던 콧김이 옅어졌다. 잠시 뒤에는 몸 전체를 밀어 넣고 설빙석 싼 천 위에 배를 붙였다.

꼬리의 불이 등잔 심지만큼 작아졌다.

설아가 손끝을 움직였다.

항아리 입구에 얇은 서리가 둘렀다. 가두는 벽이 아니라 뜨거운 몸이 뛰쳐나올 때 열을 빼앗는 막이었다.

준우는 천으로 양손을 감싸고 병목의 끈을 풀었다.

청 이 번.

병은 깨지지 않았다. 밀랍에 새긴 얕은 흠과 침전물의 높이도 기억한 위치에 있었다.

그것만으로 내용물이 안전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준우는 무게를 달아 기록하고 병을 세 겹의 천으로 감쌌다.

“본산에서 청 일 번과 비교할 때까지 열지도 쓰지도 않습니다.”

마진이 칼을 뽑았다.

“병을 찾았으니 도둑은 죽인다.”

항아리 안의 원숭이가 포도 껍질을 쥔 채 몸을 웅크렸다.

준우가 병목에서 풀어 낸 끈을 들어 보였다.

붉은 실이 두 번 감겨 있었다. 잡아당길수록 조여지는 매듭은 짐승의 발로 만들 수 없었다.

“이놈이 봉인대를 열었습니까?”

준우는 덧댄 천의 밀랍을 손톱으로 조금 긁었다.

송진 아래에서 솔잎기름 향이 났다.

노칠의 얼굴이 굳었다.

“분타 창고의 방습 밀랍입니다. 장마 때 광주리에 바르는…….”

마진의 칼끝이 멈췄다.

누군가는 화염 원숭이가 밤마다 적양포를 훔친다는 사실을 알았다.

설빙석 가루를 바른 병을 그 목에 매달고 절도 소동을 운반길로 이용했다.

원숭이는 도둑이었지만 원액을 훔친 범인은 아니었다.

“쇠우리에 넣으면 다시 과열될 겁니다.”

준우는 항아리 앞에 잘 익은 포도 두 알을 놓았다.

“설빙석을 댄 우리에 두고 먹은 양은 남은 수확에서 빼 기록하십시오. 죽이면 다음 운반책이 나타났을 때 비교할 흔적도 사라집니다.”

설아가 마진을 보았다.

“그대로 해라.”

마진은 칼을 거뒀다.

준우는 그제야 밭을 돌아봤다.

덜 익은 송이와 불에 반쯤 익은 송이, 출하 시기를 넘긴 송이가 한데 쌓여 있었다.

“이건 전부 버립니까?”

노칠이 고개를 숙였다.

“공물로는 못 씁니다.”

준우는 그슬린 포도알을 터뜨려 향을 맡았다.

탄내 아래로 짙어진 과실 향이 올라왔다. 화기는 거칠었지만 냉기를 일정하게 유지한다면 발효를 견딜 수 있었다.

서로 다른 상태의 포도를 한 항아리에 쏟아 넣으면 망가진다. 덜 익은 것은 산미를 세우고 그슬린 것은 향을 더하며 완숙한 것은 발효할 당을 내준다. 따로 익힌 뒤 필요한 만큼 합쳐야 했다.

본산의 임시 술고로는 부족했다.

많은 항아리를 같은 온도로 품고 적양포의 열을 오랜 시간 눌러 줄 장소가 필요했다.

준우는 멀리 북쪽의 흰 산맥을 바라봤다.

“버리지 마십시오.”

이제 불꽃을 훔치는 게 아니라 술 안에 가둘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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