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 망나니 공자로 환생하다

92화: 시공의 조율사
지이이이잉—!
아스타로트의 손짓 한 번에 공간이 지우개로 지워지듯 사라져 갔다. 칠흑 같은 허무가 에단이 서 있는 디딤돌을 향해 빠른 속도로 덮쳐왔다. 그것은 단순히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이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를 세계의 인과율에서 소멸시키는 공간 소멸(Space Erasure)의 권능이었다.
"과연, 공간째로 지워버리는 공격인가. 제법 흥미롭군."
에단은 눈동자를 붉게 빛냈다.
그의 하단전에 자리 잡은 천마성단(天魔星丹)이 맹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에단이 전생에 지녔던 궁극의 마공과 현생의 펜드래건 가문의 중력 제어 마법이 결합하여 탄생한 미증유의 에너지원.
"하지만 내 힘의 근원은 중력(Gravity). 모든 물질과 빛, 심지어 시공간까지도 끌어당겨 짓뭉개버리는 힘이다. 공간을 지우겠다면, 그 지우는 구멍 자체를 통째로 압착해주마."
에단이 흑사를 허공을 향해 치켜들었다.
순간, 에단의 주변으로 빛조차 탈출하지 못하는 절대적인 중력장, 천마만근추(天魔萬斤墜)의 극의가 펼쳐졌다.
콰아아아아앙!
아스타로트가 펼친 공간 소멸의 균열들이 에단에게 닿기도 전에, 무시무시한 중력의 왜곡에 휘말려 찌그러지기 시작했다. 차원의 구멍들이 서로 충돌하고 압착되며 기괴한 파열음을 냈고, 이내 에단이 뿜어내는 중력의 구체 속으로 빨려 들어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무엇이……? 공간의 섭리를 뒤흔드는 힘이라고? 일개 필멸자가 어찌 시공간의 인력을 다룬단 말이냐!]
아스타로트의 얼굴 부위인 어둠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그의 투영체 역시 에단이 만들어낸 초중력의 영향으로 서서히 몸체 형태가 찌그러지며 에단 쪽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무식하게 큰 덩치만 믿고 설쳐대는 꼴이라니. 무림의 삼류 무사들도 너보다는 영리하게 싸웠을 거다."
에단이 지면을 박차고 솟구쳤다.
중력을 거스르는 자천도(紫天步)의 보법. 에단의 신형은 보이지 않는 빛의 궤적처럼 아스타로트의 거대한 투영을 향해 쏘아졌다.
검날에 맺힌 삼매진화의 불꽃이 자색의 중력 마력과 융합하여 기괴하고도 아름다운 자홍색의 광염을 뿜어냈다.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 제삼식, 천붕(天崩)!"
에단의 검이 위에서 아래로 무겁게 호를 그리며 떨어졌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압도적인 중력의 참격이 아스타로트의 거대한 몸체 중앙을 그대로 가르고 내려갔다.
퍼어어어어억!
공간을 수놓았던 아스타로트의 보랏빛 마력이 비명을 지르며 쪼개졌다. 투영체의 거대한 가슴팍이 찢어지며 검은 연기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크아아아악! 하찮은 필멸자 놈이 감히 나의 투영을 상하게 하다니!]
아스타로트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에단이 가른 참격의 궤적을 중심으로, 공간이 마구 뒤틀리며 아스타로트의 투영체를 사방으로 찢어발기기 시작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