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 망나니 공자로 환생하다

7화: 어둠 속의 움직임
발렌시아 후작가의 별관.
헨리 발렌시아는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린 채 방안의 값비싼 집기들을 닥치는 대로 부수고 있었다.
"크아아악! 에단! 그 개 같은 쓰레기 녀석이 감히 나를!"
방바닥에는 에단이 경고한 대로 급하게 마련해 보낸 금화 삼백 닢의 빈 궤짝이 뒹굴고 있었다. 헨리는 수많은 하인들과 기사들 앞에서 펜드래건의 망나니에게 무릎 꿇고 싹싹 빌었던 굴욕이 떠올라 미칠 것만 같았다.
"도련님, 진정하십시오."
어둠 속에서 회색 로브를 쓴 사내가 스르륵 모습을 드러냈다.
"진정하라고? 잭슨! 네가 그 주점에 없어서 그래! 그 쓰레기가 내 기사 수련생 셋을 순식간에 골로 보냈단 말이다! 마력도 오라도 없는 놈이 대체 어떻게 그런 짓을 한 거지?"
"소문을 들으니 펜드래건의 둘째 공자가 최근 기묘한 체술을 익힌 듯하더군요. 하지만 오라가 없는 육체적 기술일 뿐입니다. 기습에 취약한 삼류 기술이지요."
잭슨이라 불린 사내가 비열하게 웃었다. 그는 발렌시아 후작가가 뒤에서 부리는 암살 길드 '그림자 손톱(Shadow Claw)'의 부길드장이었다.
"죽여버려. 아니, 죽이지는 말고 사지를 잘라서 내 앞에 무릎 꿇려 놔! 그 콧대 높은 콧대를 뭉개버려야 내 분이 풀리겠다!"
헨리가 악에 받쳐 소리쳤다.
"돈만 주신다면야 펜드래건의 골칫거리 하나 치워드리는 건 어렵지 않죠. 공작저의 보안이 철저하지만, 둘째 공자는 가문에서도 버림받은 처지라 본성에서 떨어진 외딴 별채에 머물고 있습니다. 오늘 밤 바로 처리해 드리지요."
"좋아! 당장 실행해!"
같은 시각, 펜드래건 공작저의 북편 깊숙한 곳에 위치한 에단의 별채.
에단은 방 안의 어둠 속에 가부좌를 틀고 누워 운기조식에 집중하고 있었다.
낮에 가져온 흑사(黑蛇)는 그의 머리맡에 놓여 있었는데, 검신에서 나오는 미세한 마기가 에단의 내력과 공명하며 단전의 회전을 돕고 있었다.
스으윽—
밤바람 소리 틈새로, 아주 미세한 발소리가 감지되었다.
일반인이라면, 아니 어설픈 오라 융합을 한 기사들조차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완벽하게 기척을 지운 암살자들의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전생에 천마신교를 습격하려던 무림맹의 일류 살수들을 숱하게 도륙해 본 에단의 감각은 차원이 달랐다. 그의 심안(心眼)은 별채의 담장을 넘어 마당으로 스며드는 침입자들의 위치를 3차원 그림처럼 뚜렷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다섯 명인가. 제법 날렵하게 움직이는군.'
에단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눈동자에 깃든 안광이 밤하늘의 은하수처럼 빛났다.
침입자들은 담벼락을 소리 없이 타고 넘어, 에단의 침실 창문 앞으로 접근했다. 그들의 손에는 독이 발린 단검과 수면 연기를 뿜어내는 도구들이 들려 있었다.
'펜드래건 공작가의 경비는 제국 최고 수준이지만, 이곳 별채는 본성의 순찰 경로에서 살짝 비껴나 있지. 게다가 기척 차폐 마법 주문서까지 찢은 모양이군. 발렌시아 녀석들이 제법 돈을 썼어.'
에단은 침대 위에서 부드럽게 내려섰다.
그는 소리 없이 머리맡의 흑사를 집어 들었다. 아직 칼집에서 검을 뽑지 않은 상태였지만, 흑사는 주인의 살기(殺氣)를 감지하고 웅웅거리며 검붉은 빛을 미세하게 내뿜었다.
스스슥.
창문이 털끝만큼의 소리도 없이 열리더니, 어둠 속에서 검은색 복면을 쓴 살수들이 미끄러지듯 방 안으로 진입했다. 그들은 침대를 향해 단검을 치켜들고 일제히 쇄도했다.
퍼억! 퍼억!
그들이 침대를 갈기갈기 찢어발겼으나, 이불 속에는 베개만 들어 있을 뿐이었다.
"틀렸다! 목표가 없다!"
살수 중 한 명이 급히 전음을 날리는 순간.
"누구를 찾고 있는 것이냐."
살수들의 등 뒤, 방 구석의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서늘하고 오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살수들은 소름이 끼쳐 오르며 본능적으로 몸을 돌려 검을 휘둘렀다.
어두운 방 안에서 천마의 살계(殺界)가 마침내 개방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