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 망나니 공자로 환생하다

44화: 병든 황제
황궁의 깊은 안쪽, 황태자의 개인 집무실.
지그프리트는 탁상 위에 쌓인 서류들을 보며 한숨을 쉬고 있었다. 아버이자 제국의 황제인 카를 3세의 쇠약증이 날로 심해져, 제국 신전의 고위 사제들조차 고개를 저은 터였다.
스으윽.
인기척도 없이, 창가에 드리운 어둠 속에서 은발의 청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에단 공자?!"
지그프리트는 깜짝 놀라 검자루에 손을 댔으나, 이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경비병들이 눈을 부릅뜨고 있는 황태자궁을 내 집 안방처럼 드나들다니, 자네의 무력은 참으로 경이롭군. 밤중에 무슨 일인가?"
"전하, 한가롭게 한숨이나 쉴 때가 아닙니다."
에단이 서재 의자에 편하게 앉으며 말했다.
"폐하의 병은 자연적인 쇠약증이 아닙니다. 영혼을 파먹는 악독한 마충, '식혼충'에 중독된 것이지요. 앞으로 사흘을 넘기지 못할 것입니다."
"뭐라?!"
지그프리트가 벌떡 일어났다.
"식혼충이라니? 제국 최고 사제들과 마법단장마저 그저 희귀한 마나 쇠약증이라 진단했네! 대체 그 배후가 누구란 말인가?"
"라인하르트 공작이오. 그가 흑사도의 잔당들과 공모하여 대의회 날 폐하를 시해하고 섭정의 자리를 찬탈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소."
지그프리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라인하르트 공작은 제국의 수상이며 최고 권력자였다. 그의 반역 모의는 제국이 갈갈이 찢길 수도 있는 미증유의 대란이었다.
"자네…… 그 말이 사실인가? 어떻게 믿을 수 있지?"
"나를 믿고 말고는 전하의 몫입니다. 하지만 폐하의 목숨이 사흘밖에 남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요. 내게 폐하의 침소로 들어갈 길을 열어주신다면, 오늘 밤 바로 식혼충을 박멸해 드리지요."
지그프리트는 주먹을 꽉 쥐었다.
에단은 이미 카일을 꺾고, 악마들을 도륙하며 그 신묘한 능력을 입증해 보인 괴물이었다. 지금 그가 거짓을 말할 이유는 없었다. 황태자로서 도박을 걸어야 할 순간이었다.
"좋네. 나를 따르게. 황실의 극비 통로를 통해 폐하의 침소로 안내하겠네."
지그프리트는 서재 벽면의 책장을 작동시켜 숨겨진 비밀 통로를 열었다.
에단은 흑사를 고쳐 매며 황태자의 뒤를 따랐다. 황궁의 가장 깊고 어두운 심장부, 병든 황제의 침실을 향한 침투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