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 망나니 공자로 환생하다

3화: 공작의 시선
공작의 집무실은 펜드래건 가문의 역사만큼이나 무겁고 장엄한 분위기를 풍겼다.
벽면에 걸린 대형 장검들과 초대 공작의 초상화가 아래를 내려다보는 방 한가운데, 아서 펜드래건 공작이 무거운 책상 뒤에 앉아 있었다.
똑, 똑.
"들어오너라."
문이 열리고 에단이 걸어 들어왔다.
보통 집무실에 불려올 때의 에단은 발끝만 보며 어깨를 잔뜩 움츠린 채 기어들어 오는 목소리로 용서를 빌곤 했다. 그러나 지금 걸어 들어오는 에단은 허리를 곧게 펴고 고개를 치켜든 채, 공작을 똑바로 응시했다.
공작은 펜 끝을 내려놓고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앉아라."
에단은 공작의 앞에 놓인 가죽 의자에 막힘없이 앉았다. 다리를 꼬거나 건방진 태도를 취하지는 않았지만, 극도로 자연스럽고 기품이 넘치는 몸가짐이었다.
"네 녀석이 술을 끊었다고 들었다."
아서 공작의 날카로운 눈빛이 에단의 얼굴을 훑었다.
"몸에 해로운 독액을 굳이 돈 주고 마실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을 뿐입니다."
에단이 덤덤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카일의 기세 앞에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더군. 예전의 너라면 바닥에 넙죽 엎드렸을 텐데."
"형님은 성정이 불같아 귀여운 면이 있으시더군요. 그 정도 장난에 매번 장단을 맞춰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귀엽다라……."
공작의 눈이 가늘어졌다. 제국 황실 기사단의 부단장이자 강직한 성품의 카일을 두고 '귀엽다'고 표현할 수 있는 자는 제국 전체를 통틀어도 몇 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마력조차 지니지 못한 펜드래건의 둘째 아들이 그런 말을 하다니.
스으윽—
순간, 공작의 몸에서 묵직한 오라의 압박감이 흘러나왔다.
공작가의 가주이자 제국의 최고 무장 중 한 명인 아서의 기세는 단순한 기합이 아니었다. 살기가 섞인 묵직한 무의 의지가 에단의 전신을 짓눌렀다.
집무실 내의 공기가 굳어지고, 목조 책상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보통의 일반인이라면 그 자리에서 숨이 막혀 기절할 만한 무시무시한 패기였다.
'호오, 제법이군.'
에단—전생의 천마 백운휘는 속으로 감탄했다.
이세계의 오라라는 힘도 무림의 최상위 무인들이 부리는 '검의(劍意)'나 '기도(氣度)'와 유사한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 아서 공작의 기세는 무림의 일류 고수를 넘어 화경(化境)의 경지에 발을 들여놓은 초일류 고수들과 대적할 만했다.
하지만 그 상대가 나빴다. 에단은 전생에 천마신교를 지배하고 정파의 고수 수십 명을 혼자서 상대하던 절대자 천마였다.
에단은 단전에 모인 미미한 마기를 기경팔맥으로 회전시켰다. 그리고 공작의 짓누르는 기세의 틈새를 찾아 영리하게 비껴가게 만들었다.
마치 흐르는 물 위에 뜬 나뭇잎처럼, 거대한 파도가 덮쳐와도 휩쓸리지 않고 그 위를 타넘는 독문 신법의 응용이었다.
공작의 눈에 경악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
자신의 기세가 에단의 몸에 닿는 순간, 스르륵 흔적도 없이 소멸하거나 비껴 나가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에단의 호흡은 여전히 평온했고, 심장박동조차 흐트러짐이 없었다.
"너…… 정체가 무엇이냐?"
공작의 목소리에 깊은 의구심이 깃들었다. 하루아침에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에단은 싱긋 웃어 보였다.
"아버지께서 가장 잘 아시지 않습니까. 저는 펜드래건의 망나니, 에단 펜드래건입니다. 다만…… 매일같이 방탕하게 지내다 보니 어느 날 문득 깨달음이 온 것뿐입니다."
"깨달음?"
"예. 제가 가문의 명예를 더럽히는 쓰레기로 살기에는, 제 가슴속에 품은 야망이 너무도 크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공작은 에단의 눈동자 깊은 곳에 서려 있는 불타는 붉은 광채를 보았다. 그것은 어줍지 않은 치기나 반항심이 아니었다. 천하를 제 손아귀에 쥐어 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독존(獨尊)의 기운이었다.
공작은 천천히 기세를 거두었다. 집무실을 짓누르던 무거운 공기가 한순간에 걷혔다.
"좋다. 변화의 이유가 무엇이든, 네 녀석이 펜드래건의 핏줄인 것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행동으로 증명하지 못하는 깨달음은 궤변에 불과하다."
"증명이라 하심은?"
"며칠 뒤 가문의 영식들이 참여하는 사냥 대회가 열린다. 거기서 네 바뀐 모습을 증명해 보여라. 만약 또다시 가문의 이름에 먹칠을 한다면, 그때는 영지 추방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에단은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묵례를 한 뒤 집무실을 걸어 나갔다.
닫힌 문을 바라보며, 아서 공작은 자신의 떨리는 손을 내려다보았다.
"에단…… 네놈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
공작의 혼잣말이 고요한 방안에 무겁게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