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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님, 꿈속에 쓰레기 버리지 마세요3화

황태자님, 꿈속에 쓰레기 버리지 마세요

황태자님, 꿈속에 쓰레기 버리지 마세요

3화: 깨어난 황태자의 수색

카이엔은 해가 중천에 걸릴 때까지 깨어나지 않았다.

황태자궁의 시종들은 침실 문밖을 조용히 오갔다. 의무관은 세 번이나 맥을 짚고도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했다. 늘 날이 밝기 전에 발작으로 깨던 사람이 여덟 시간을 꼬박 잤으니 그럴 만도 했다.

"열은 없고 맥도 안정됐습니다. 전하께서 이렇게 깊이 잠드신 게 얼마 만인지."

의무관의 중얼거림이 새어 나왔다.

로제트는 대답 대신 촛대 밑받침을 닦았다. 은쟁반 위에 쌓인 향초 재는 새벽에 봤을 때보다 더 검게 굳어 있었다. 손끝으로 살짝 건드리자 푸석한 재 사이에서 썩은 장미 냄새가 올라왔다.

꿈속 꽃밭 한가운데에서 피어났던 그 장미와 같은 냄새였다.

로제트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재를 작은 헝겊에 쌌다. 앞치마 주머니에 넣으려는 순간 곁을 지나던 늙은 시녀가 손을 멈췄다.

"그건 왜 챙기니?"

"받침이 너무 더러워서요. 재를 다 비워야 닦이지 않아요."

"그런 건 재통에 버려. 황태자궁 향초는 향료실에서 관리하니까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야."

로제트는 재를 쥔 손을 등 뒤로 감췄다.

"향이 좀 이상해서요. 불량이면 청소 시간이 두 배로 늘잖아요."

늙은 시녀는 어이없다는 듯 혀를 찼다.

"청소 시녀가 향까지 따지네. 매일 저녁 새것으로 들어오는 물건이야. 네 몫만 하면 된다."

매일 저녁 새것으로 들어온다.

그 말이 로제트의 귓가에 걸렸다. 저주가 향초에 섞여 있다면 카이엔은 밤마다 새 오염원을 들이마시고 있었다. 첫 정화로 검은 실금이 옅어진 것도 잠시일 수 있었다.

그때 침대 쪽에서 이불이 스치는 소리가 났다.

카이엔이 눈을 떴다.

붉은 눈이 한동안 낯선 듯 천장을 훑었다. 이어 그의 시선이 창문으로 향했다. 커튼 틈으로 쏟아지는 햇빛을 본 카이엔의 눈썹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지금이 몇 시지?"

의무관이 급히 고개를 숙였다.

"정오를 조금 넘겼습니다. 전하."

카이엔은 대답하지 않았다. 손등으로 얼굴을 쓸어내린 뒤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검은 실금이 흐릿하게 남아 있는 자리였다.

그의 손가락이 그 위에서 멎었다.

"모두 나가라."

낮고 잠긴 목소리였다.

의무관과 기사들이 서로 눈치를 보다가 물러났다. 로제트도 물통을 들고 문 쪽으로 발을 옮겼다. 문턱을 넘기기 직전 카이엔이 불렀다.

"너는 남아."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로제트는 천천히 돌아섰다.

"저 말씀이십니까?"

"이 방에 청소하러 드는 시녀가 몇 명이지?"

"오늘은 저 혼자입니다."

카이엔은 침대에서 내려왔다. 맨발이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닿았다. 그는 잠에서 깬 사람답지 않게 똑바로 걸어 로제트 앞에 섰다.

가까워진 탓에 그의 숨결이 희미하게 닿았다. 지난밤 악몽 속에서 느꼈던 피비린내는 사라졌지만 깊은 잠을 잔 사람의 얼굴에는 아직 피로가 남아 있었다.

"어젯밤 내 곁에 있었나."

"당직이었습니다."

"그것 말고."

카이엔의 시선이 로제트의 손가락을 훑었다. 급히 씻어 냈는데도 손등 주름 사이에 연분홍 꽃가루 하나가 남아 있었다. 꿈에서 만든 꽃이 현실까지 묻어 나온 것이었다.

로제트는 손을 치맛자락 뒤로 숨겼다.

"전하께서 무슨 뜻으로 물으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꿈을 꿨다."

짧은 말인데도 방 안의 공기가 단단해졌다.

"좋은 꿈이셨습니까?"

"피가 꽃으로 바뀌는 꿈이었다."

카이엔은 천천히 말했다.

"검은 것들이 내게 달려들었고 누군가 그걸 토끼로 만들었지."

로제트는 표정을 관리하느라 입술 안쪽을 깨물었다.

"건강한 토끼였습니까?"

카이엔의 눈매가 좁아졌다.

"사람 키만 했다."

"그건 조금 부담스러운 토끼네요."

그의 손이 로제트의 턱 가까이까지 올라왔다. 닿지는 않았지만 도망칠 틈도 주지 않는 거리였다.

"그 여자도 그런 말을 했다."

로제트는 숨을 멈췄다.

"누구 말씀이십니까?"

"자신을 청소 담당이라고 부른 여자."

카이엔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눈빛은 그렇지 못했다. 꿈속에서 사라진 손목의 온기를 아직 놓지 못한 사람의 눈이었다.

"그 여자의 목소리가 네 목소리와 닮았다."

"제 목소리는 흔합니다. 황궁에 시녀가 얼마나 많은데요."

"내게는 그렇지 않았다."

예상보다 낮은 대답에 로제트가 잠깐 말을 잃었다.

카이엔도 자신의 말을 의식한 듯 손을 거두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촛대 위의 향초를 바라봤다.

"꿈에서 깨기 전 썩은 장미 냄새가 났다."

로제트의 손이 주머니 속 헝겊을 꽉 쥐었다.

"지금도 납니까?"

"네가 촛대를 닦을 때부터."

카이엔은 그녀의 주머니 쪽으로 시선을 내렸다.

"무엇을 숨겼지?"

로제트는 잠시 망설이다 헝겊을 꺼냈다. 검은 재가 묻은 천을 펼치자 냄새가 조금 더 짙어졌다.

"향초 재입니다.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전하의 발작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독인가."

"독이라면 의무관께서 먼저 알아차리셨겠죠. 이상한 마력의 흔적입니다."

마력이라는 말에 카이엔의 표정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누가 넣었는지는 알겠나."

"아직은요. 향료실 장부와 남은 향초를 봐야 합니다."

"보아라."

로제트가 고개를 들었다.

"제가요?"

"네가 먼저 이상하다고 했으니까. 알아낼 때까지 내 방의 향초는 네가 관리해. 누구 손도 타지 않게."

거절할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하급 시녀가 향료실 장부를 들여다보는 것은 지나치게 눈에 띄는 일이다. 그렇다고 매일 밤 새 저주가 카이엔의 방에 들어오는 것을 모른 척할 수도 없었다.

로제트는 고개를 숙였다.

"명 받들겠습니다."

향료실은 황태자궁 뒤편의 낮은 건물에 있었다. 창문이 작은 탓에 한낮인데도 실내는 어두웠다. 선반마다 밀랍 상자와 말린 꽃다발이 빽빽하게 놓여 있었고 향료가 뒤섞인 단내가 숨을 막았다.

로제트는 빗자루와 재통을 든 채 안으로 들어섰다.

관리 시녀 마레나는 장부를 정리하다가 그녀를 보자마자 눈살을 찌푸렸다.

"청소는 저녁에 하라고 했을 텐데."

"황태자 전하 침실 향초 받침을 비우러 왔습니다. 재가 이상해서요."

"재가 뭐가 이상해. 그쪽 물건은 최고급만 나가."

"그럼 더 잘 닦아야죠. 좋은 물건 재가 바닥에 떨어지면 아깝잖아요."

마레나는 대꾸하지 못하고 턱으로 구석의 재통을 가리켰다.

"거기 것만 치워. 상자는 건드리지 마."

로제트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재통을 비우는 척하면서 벽면에 쌓인 납품 상자들을 살폈다. 황태자궁 전용이라는 붉은 인장이 찍힌 상자가 다섯 개였다. 그중 맨 위 상자에는 며칠 전 날짜가 적혀 있었다.

옆에 놓인 장부가 바람에 살짝 벌어졌다.

수령인: 레온 기사장 대리.

로제트의 눈이 멎었다. 황태자 침실의 물품 수령은 원래 내관이 맡는다. 기사장 대리라는 이름이 적힐 이유가 없었다.

"뭘 그렇게 보니?"

마레나가 날카롭게 물었다.

로제트는 얼른 재통 뚜껑을 덮었다.

"글씨가 예뻐서요."

"시녀가 장부 글씨를 감상할 때가 있니?"

"저는 보기만 해도 못 읽습니다."

마레나의 의심 어린 시선이 잠시 머물렀다. 로제트는 고개를 더 숙인 채 재통을 들었다. 발끝에 굴러온 밀랍 조각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유난히 검고 단단한 조각이었다.

그녀는 빗자루 끝으로 그것을 다른 재와 함께 쓸어 담았다. 손잡이를 잡은 손끝이 저릿해졌다. 검은 밀랍 표면 위로 가느다란 선들이 떠올랐다.

카이엔의 손목에 남은 실금과 같은 문양이었다.

로제트는 숨을 삼켰다.

밀랍 조각이 꿈틀거렸다.

재 속에서 검은 실 한 올이 스르르 풀려 나왔다. 실은 바닥을 기어가더니 작은 사람의 손처럼 다섯 갈래로 갈라졌다. 그것이 고개를 들었다.

로제트.

입 없는 그림자가 속삭였다.

로제트는 재통을 놓칠 뻔했다. 검은 장미의 목소리였다. 꿈속보다 훨씬 작았지만 바로 귓가에서 들리는 듯했다.

"마레나 씨. 창문 좀 열어 주세요. 재가 날려서요."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말하며 빗자루 끝을 그림자 위에 눌렀다.

"지금 바쁜데. 네가 열어."

그림자는 빗자루 아래서 납작해졌다가 재통 벽을 타고 솟구쳤다. 로제트가 손을 뻗어 잡으려 했지만 검은 실은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갔다.

황태자 침실이 있는 방향으로.

"잠깐만요!"

로제트는 재통을 내팽개치고 뛰었다. 뒤에서 마레나가 고함쳤지만 들을 겨를이 없었다. 복도 끝을 돌자마자 카이엔과 마주쳤다.

그는 기사 둘을 거느린 채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단정한 흰 셔츠 위에 검집만 걸친 차림이었다. 잠에서 깬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처럼 보이지 않을 만큼 얼굴은 무표정했다.

그러나 그의 손목은 달랐다.

검은 실금이 피부 위로 새까맣게 번지고 있었다.

"전하, 뒤로 물러나세요!"

카이엔이 즉시 검을 뽑았다.

그림자가 천장에 붙었다가 그의 발밑으로 떨어졌다. 검은 실이 발목을 감아 올라가려는 순간 카이엔의 검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베지 마세요!"

카이엔의 검끝이 바닥에 멎었다.

"이게 뭔데."

"향초에서 나온 오염입니다. 검으로 자르면 꿈속 괴물처럼 늘어날 수 있어요."

"그걸 어떻게 아나."

로제트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림자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카이엔의 손목을 향해 튀어 올랐다.

그녀는 근처 선반에서 향초 상자를 낚아채 바닥에 내리쳤다.

나무 상자가 부서졌다. 검은 밀랍 덩어리들이 쏟아져 나왔고 썩은 장미 냄새가 복도를 뒤덮었다.

그림자가 한순간 멈칫했다.

로제트는 손가락을 뻗었다. 은반지에 희미한 빛이 감겼다. 너무 드러내지 않게 쓰려던 마력이었지만 이번에는 여유가 없었다.

"제자리로 돌아가."

밀랍이 물처럼 풀려 그림자를 감쌌다. 검은 실은 몸부림치며 바닥을 긁었다. 복도 타일 위로 검은 장미 문양이 번졌다가 빛에 닿으며 갈라졌다.

카이엔이 로제트의 앞을 막아섰다. 그림자가 마지막으로 튀어 오르자 그의 검이 옆에서 떨어진 촛대를 쳐 냈다. 촛대의 은빛이 그림자 위로 덮였다.

로제트가 손을 꽉 쥐었다.

빛이 밀랍을 조용히 태웠다.

잠시 뒤 검은 것은 재 한 줌만 남기고 사라졌다. 카이엔 손목의 실금도 서서히 옅어졌다.

기사들은 검을 든 채 굳어 있었다. 누구도 방금 무엇을 봤는지 입 밖에 내지 못했다.

카이엔이 먼저 말했다.

"오늘 일은 입 밖에 내지 마라."

"예, 전하."

기사들이 물러난 뒤에도 카이엔은 로제트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손목을 잡아 들어 올렸다. 은반지 아래로 맥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네가 무엇을 했는지 설명해."

"불량품을 폐기했습니다."

"그 손으로?"

"청소 도구가 좀 비쌉니다."

카이엔의 눈빛이 깊어졌다. 그는 더 캐묻지 않았다. 대신 부서진 향초 상자와 재를 차례로 내려다봤다.

"향초는 매일 들어온다고 했지."

"예. 그리고 장부에 이상한 수령인이 적혀 있었습니다. 누군가 전하의 방으로 들어오는 물건을 바꾼 것 같아요."

"이름은?"

"확인하기 전에 쫓겨났습니다."

로제트가 솔직히 말하자 카이엔의 입가가 아주 잠깐 움직였다. 웃음은 아니었다. 다만 그녀가 겁먹은 채 거짓말을 고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한 듯한 표정이었다.

"다음부터는 혼자 가지 마라."

"제가 청소할 때 기사님들이 따라오시면 더 수상합니다."

"그럼 내가 간다."

"전하가 향료실 재통을 드실 건 아니잖아요."

카이엔은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아니."

로제트는 그 짧은 대답에 웃음이 날 뻔했다. 하지만 그의 손목에 남은 옅은 금을 보고 웃을 수 없었다. 저주는 꿈속의 괴물만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현실의 향초를 이용해 카이엔이 잠드는 순간마다 상처를 다시 헤집고 있었다.

그날 저녁 로제트는 침실 앞에 불려 갔다.

새 향초는 들이지 않았다. 창문을 조금 열어 둔 방에는 평소의 향 대신 비 냄새가 들어왔다. 카이엔은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검은 재가 든 은쟁반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늘부터 네가 내 침실 전담이다."

로제트는 눈을 깜빡였다.

"저는 원래 전담이었습니다."

"아니다. 필요할 때만 불리는 시녀였지. 이제는 내 허락 없이 이 궁을 나가지 마라. 향초도 침구도 식사도 네가 먼저 확인해."

"전하. 그건 청소가 아니라 감옥 관리에 가깝습니다."

"내가 감옥에 갇히는 것보다 낫지 않나."

낮게 가라앉은 말에 로제트가 입을 다물었다.

카이엔은 창밖을 보았다. 그 얼굴에는 분노보다 피곤이 더 짙었다. 꿈속에서 끝없이 되살아나던 병사들과 현실에서 발목을 잡던 그림자가 잠깐 겹쳐 보였다.

그는 혼자서 너무 오래 버텼다.

로제트는 어깨의 힘을 뺐다.

"조건이 있습니다."

카이엔이 고개를 돌렸다.

"말해 봐."

"제 청소 방식에 간섭하지 마세요. 그리고 향초 장부는 제가 다시 확인하겠습니다."

"허락한다."

"포상금도요."

카이엔의 눈썹이 올라갔다.

"그게 조건의 마지막인가?"

"일에는 정당한 대가가 있어야 오래 갑니다."

"좋다. 네가 원하는 만큼 주지."

대답이 지나치게 빨라 로제트는 오히려 불안해졌다.

카이엔은 침대에 등을 기댔다. 평소라면 잠을 피하려고 밤새 검을 쥐고 있었을 손이 이불 위에서 천천히 펼쳐졌다.

"문가에 있어."

"잠드실 때까지요?"

"깰 때까지."

"전하. 그건 너무 긴 근무입니다."

"네가 있으면 오늘도 잠들 수 있을 것 같아서."

그 말은 명령 끝에 붙은 부탁처럼 들렸다.

로제트는 대답하지 못한 채 문가로 물러났다. 카이엔의 눈이 천천히 감겼다. 창문으로 들어온 바람이 촛대 없는 탁자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녀는 앞치마 주머니 속 검은 재를 만졌다.

다음 밤이 오기 전에 향초의 수령인을 찾아야 했다.

찾지 못하면 카이엔의 꿈에는 다시 쓰레기가 쌓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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