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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님, 꿈속에 쓰레기 버리지 마세요2화

황태자님, 꿈속에 쓰레기 버리지 마세요

황태자님, 꿈속에 쓰레기 버리지 마세요

2화: 피 묻은 전장의 청소 규칙

붉은 하늘 아래서 바람은 쇠 냄새를 실어 날랐다.

로제트는 발밑에 널린 부러진 검을 피해 한 걸음 물러섰다. 검은 피가 신발 끝을 적셨다. 멀리서 비명 같은 울음이 번졌다. 형체 없는 그림자들이 피웅덩이를 헤치며 카이엔에게 기어갔다.

그는 홀로 서 있었다.

검은 갑옷은 여기저기 깨져 있었고 어깨에서는 피가 흘렀다. 그럼에도 카이엔은 물러서지 않았다. 괴물 하나의 목을 베고 다음 괴물의 발톱을 흘려냈다. 검을 휘두르는 움직임은 현실에서 보았던 것보다 더 빠르고 더 처절했다.

"거기 서 있어."

카이엔의 붉은 눈이 로제트에게 꽂혔다. 검끝이 피에 젖은 땅을 가르며 그녀 쪽으로 향했다.

"누구지?"

로제트는 양손을 들어 보였다.

"청소 담당입니다."

"전장에 청소 담당이 있다고?"

"상태가 심각해서요."

카이엔의 눈썹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피바다 한가운데 나타난 낯선 여자가 청소하러 왔다고 말하고 있으니 정상적인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는 검을 내리지 않았다.

"한 걸음만 더 오면 벤다."

"저도 누군가의 꿈속에서 목이 날아가는 건 사양이라서요. 멀리 있겠습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괴물 하나가 로제트를 향해 몸을 던졌다.

카이엔의 검이 먼저 움직였다.

검광이 괴물의 머리를 갈랐다. 검은 액체가 비처럼 쏟아졌다. 로제트는 재빨리 피했지만 몇 방울이 뺨에 닿았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감각과 함께 낯선 공포가 머릿속을 긁었다.

도망쳐. 넌 또 죽일 거야.

그것은 그녀의 생각이 아니었다.

로제트는 이를 악물고 손등으로 뺨을 닦았다. 괴물은 반으로 갈라진 채 웃었다. 갈라진 몸에서 새까만 그림자들이 우글우글 기어 나왔다.

"저건 몇 마리입니까?"

"끝이 없다."

카이엔의 대답은 짧았다. 짧아서 더 지쳐 보였다.

그의 손목에 검은 실금이 떠올랐다. 심장 근처에도 같은 금이 번졌다. 그리고 바닥을 기어 다니는 괴물들의 가슴에도 똑같은 문양이 박혀 있었다.

로제트의 시선이 가라앉았다.

저주는 카이엔의 공포를 먹고 있었다. 그가 괴물을 베면 피가 되고 피는 다시 괴물의 알이 됐다. 끝없이 되풀이되는 전투가 주인의 정신을 갉아먹는 구조였다.

전장에는 쓰러진 병사들도 있었다. 얼굴은 안개처럼 흐릿했지만 모두 카이엔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찢긴 입술이 소리 없이 움직였다.

살려 주세요.

카이엔의 검이 잠깐 멈췄다.

"보지 마."

그 목소리는 명령이라기보다 이를 악문 신음에 가까웠다.

로제트는 병사들의 손과 카이엔의 창백한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전하가 겪은 전쟁입니까?"

"떠나."

그의 발밑에서 검은 손이 솟아났다. 카이엔은 로제트를 향해 뻗는 손을 단칼에 베었다. 손은 잘린 자리에서 연기처럼 흩어졌다가 곧 두 개로 자라났다.

"이곳은 네가 있을 곳이 아니다."

"알아요. 저도 취향은 아닙니다."

로제트는 한 걸음 옆으로 물러났다. 바람이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멀리서 현실의 감각이 희미하게 당겨졌다. 너무 오래 머무르면 침대 곁에 남겨 둔 몸이 들킬 수 있었다. 카이엔이 꿈에서 다칠수록 현실의 발작도 거세질 터였다.

그녀에게는 망설일 시간도 많지 않았다.

"그래도 이건 기억이 아니에요."

카이엔의 눈빛이 차갑게 굳었다.

"무슨 뜻이지?"

"기억은 이렇게 부지런히 사람을 다시 죽이지 않거든요. 누군가 전하의 상처를 잡아당겨서 여기다 계속 쓰레기를 쌓고 있어요."

"닥쳐."

그 한마디와 함께 검은 그림자들이 일제히 몸을 일으켰다.

괴물들의 울음이 전장을 뒤흔들었다. 카이엔이 로제트 앞을 가로막았다. 그녀를 위협으로 의심하면서도 괴물 쪽에는 등을 보이지 않았다.

그 뒷모습이 이상하게 위태로웠다.

로제트는 손가락에 낀 낡은 은반지를 엄지로 눌렀다. 가문을 숨기기 위해 수없이 포기했던 권능이 손끝에서 뜨겁게 깨어났다.

포상금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말만으로는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전하. 잠깐만 검 좀 내려 보세요."

"미쳤나."

"원래 청소는 도구가 복잡합니다."

로제트는 카이엔의 옆으로 나섰다. 괴물 하나가 벌어진 입을 들이밀었다. 이빨 사이에서는 썩은 장미 냄새가 났다. 침실 향초에 섞였던 바로 그 냄새였다.

그녀는 손을 들어 괴물을 가리켰다.

"피는 폐기물. 칙칙한 색은 불량. 이빨은 위험 물품."

괴물이 포효했다.

"그러니까 전부 분리수거합니다."

은반지에서 가느다란 빛이 풀려 나왔다. 빛은 로제트의 손끝을 감고 괴물의 몸을 한 바퀴 휘감았다.

검은 피가 공중에서 멈췄다.

피방울 하나마다 연분홍 꽃잎이 피어났다. 괴물의 길쭉한 팔에는 보드라운 털이 덮였고 날카로운 발톱은 둥근 앞발로 오그라들었다. 찢어진 입은 작아지고 두 귀가 하늘로 쫑긋 솟았다.

잠시 뒤 전장 한복판에는 사람 키만 한 분홍 토끼가 앉아 있었다.

토끼는 자기 앞발을 내려다보더니 코를 킁킁거렸다.

카이엔이 굳은 얼굴로 검을 들었다.

"베지 마세요!"

"괴물이다."

"토끼입니다."

"토끼가 사람 키만 하다."

"건강한 토끼예요."

토끼가 카이엔의 부츠에 코를 비볐다.

카이엔의 얼굴이 더 굳었다. 로제트는 웃음이 새어 나올 뻔한 입술을 다물었다. 꿈속에서도 황태자는 토끼에게 익숙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가슴팍의 검은 문양이 꿈틀거렸다.

토끼가 날카롭게 울었다. 분홍 털 사이로 검은 연기가 솟구치더니 앞발이 다시 길고 흉측한 발톱으로 변했다. 로제트의 관자놀이가 아프게 울렸다. 마력이 오염에 밀려나는 감각이었다.

표면을 고쳐 쓰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카이엔이 로제트의 손목을 거칠게 잡아당겼다.

"뒤로."

"저도 싸울 수 있습니다."

"그 손으로?"

"이 손이 전하 검보다 비쌀 수도 있어요."

카이엔은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를 등 뒤에 세우고 다시 검을 들었다.

그때 로제트는 그의 등 너머로 시체밭을 보았다. 병사들은 여전히 카이엔에게 손을 뻗고 있었다. 그들의 손가락에는 비난보다 붙잡고 싶은 마음이 더 많이 남아 있었다.

이곳의 주인은 그 손들을 잊지 못했다.

로제트는 검은 피를 밟고 앞으로 나갔다.

"이번에는 전하가 조금만 도와주세요."

"무엇을."

"저분들을 적으로 보지 마세요."

카이엔의 숨이 멎었다.

"그들은 죽었다."

"알아요."

"내가 지키지 못했지."

목소리가 낮게 갈라졌다. 로제트는 그가 검을 쥔 손에 힘을 주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매일 다시 죽게 둘 건가요?"

카이엔은 대답하지 못했다.

로제트는 가장 가까운 병사의 손 위에 손바닥을 올렸다.

"여기는 묘지가 아니에요. 전하가 쉬어야 할 꿈이에요."

땅을 덮은 검들이 천천히 흙 속으로 가라앉았다. 끈적하던 피가 맑은 물처럼 스며들었다. 차가운 손가락 사이에서 흰 꽃이 피었다. 한 송이, 두 송이, 열 송이.

꽃은 쓰러진 병사들의 몸을 덮지 않았다. 그들 곁에 조용히 피어났다. 마치 더는 붙잡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것처럼.

붉은 전장은 조금씩 꽃밭으로 바뀌었다.

괴물들은 꽃잎이 닿을 때마다 몸을 웅크렸다. 카이엔의 검이 지나가면 이번에는 검은 피 대신 빛가루가 흩어졌다. 로제트가 길을 만들고 카이엔이 그 길을 지켰다.

마지막 그림자가 사라졌을 때 카이엔의 어깨가 크게 내려앉았다.

그는 꽃밭 한가운데 서서 손에 든 검을 내려다보았다. 손등에 묻었던 피가 꽃잎처럼 날아가고 있었다.

"네가 뭘 한 거지?"

"정리요."

"죽은 자들을 되돌린 건 아니군."

"그럴 수 있다면 저도 더 비싼 값을 받겠죠."

로제트는 꽃밭을 둘러보았다.

"다만 전하의 기억이 매일 같은 자리에 쓰러져 있을 이유는 없게 만들었어요."

카이엔의 붉은 눈이 그녀에게 머물렀다. 처음 전장을 가르던 차가운 경계는 아직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 아래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안도가 비쳤다.

그때 꽃밭 한가운데에서 검은 장미가 피어났다.

흰 꽃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썩은 장미 냄새를 풍기며 피어난 꽃이었다. 꽃잎 가장자리에는 카이엔의 손목과 같은 검은 실금이 얽혀 있었다.

로제트의 손끝이 굳었다.

장미가 그녀 쪽으로 천천히 고개를 기울였다.

그리고 누군가 아주 가까운 곳에서 속삭였다.

로제트.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 이름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더구나 이 꿈속에서 들을 이름은 아니었다.

카이엔이 즉시 장미 쪽으로 검을 돌렸다.

"물러서."

이번에는 그 명령이 로제트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카이엔의 검이 장미를 베기 직전 꿈의 하늘이 크게 흔들렸다. 멀리서 들려오던 기사들의 발소리와 촛불 냄새가 물결처럼 밀려왔다. 현실의 몸이 한계에 닿았다는 신호였다.

로제트의 무릎이 휘청거렸다.

카이엔이 고개를 돌렸다.

"왜 그러지?"

"퇴근 시간이요."

"무슨 헛소리냐."

"꿈속 체류 시간이 길면 제 쪽이 곤란해져서요."

카이엔이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뜨거운 손이었다. 이곳의 차가운 바람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온기였다.

"누구냐."

그의 손아귀가 조금 더 단단해졌다.

"이 꿈에서 나가지 마."

로제트는 그를 올려다보았다. 악몽의 주인은 여전히 경계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눈에는 처음으로 혼자 남고 싶지 않다는 기색이 스쳤다.

그 짧은 틈에 마음이 약해질 뻔했다.

그러나 꿈의 가장자리가 무너지고 있었다. 더 머물면 현실의 몸도 위험했다. 카이엔이 깨어 그녀를 발견한다면 시녀 신분도 가문의 비밀도 끝장이었다.

"다음 청소 때 뵙죠."

"이름을 말해."

"비밀 고객 관리 규정입니다."

로제트는 남은 마력을 끌어모아 손가락을 튕겼다.

꽃밭 위로 새벽빛이 번졌다. 검은 장미가 빛 속에서 찌그러지며 사라졌다. 카이엔의 손가락이 그녀의 손목에서 미끄러졌다.

"기다려!"

그 목소리가 끝까지 따라왔다.

로제트는 눈을 떴다.

황태자 침실의 어둠이 돌아와 있었다. 몸은 의자에 기대어 있었고 목덜미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가까운 곳에서 의무관이 낮게 코를 골았다. 기사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문가를 지키고 있었다.

침대 위의 카이엔은 여전히 잠들어 있었다.

하지만 조금 전보다 호흡이 깊었다. 잔뜩 찌푸렸던 미간도 아주 약하게 풀려 있었다.

로제트는 조심스레 그의 손목을 살폈다. 검은 실금은 옅어졌지만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피부 아래에서 느리게 꿈틀거렸다.

첫 청소는 끝났다.

그러나 쓰레기를 버린 놈은 아직 이 집 어딘가에 있었다.

로제트는 떨리는 손을 앞치마에 감추고 일어섰다.

"첫날부터 재방문 예약이라니. 손님이 너무 까다로우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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