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한 남편이 예언을 속이려 나를 미워한 줄 몰랐다

7화: 재 속의 손
새벽은 느리게 왔다.
라일라는 이웃집 하인들이 돌아간 뒤에도 문 앞을 떠나지 못했다. 새 덧빗장은 제 몫을 하지 못한 것처럼 거칠게 긁혀 있었고 벽난로 안쪽 점검문은 반쯤 열린 채 재를 흘리고 있었다.
나는 팔을 한 번 더 물에 씻었다.
칼이 스친 자리는 길지 않았지만 손끝 감각이 아직 둔했다. 손가락을 접으려 할 때마다 한 박자씩 늦었다. 마비제는 독보다 예의 바르게 사람을 무너뜨렸다. 고통 대신 명령을 빼앗았다.
"대표님. 마르타 부인께 먼저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보내. 다만 대공저에는 아무 말도 하지 마."
라일라의 손이 멈췄다.
"제가 그분을 말한 적은 없습니다."
"네가 말하지 않아도 얼굴에 적혀 있어."
라일라의 감정색이 희끄무레하게 번졌다. 두려움과 망설임이었다. 나는 더 묻지 않았다. 내 마음도 그다지 다르지 않았으니까.
나는 증거 서랍을 열었다. 은색 태양 조각과 첫 경고장 옆에 새 봉투 네 개를 놓았다.
벽난로 재.
은가루 묻은 칼집 조각.
피 묻은 손수건.
자객이 남긴 흰 장갑 실밥.
피 묻은 손수건을 봉투에 넣으려다 손이 멈췄다. 젖은 천에는 내 피보다 더 짙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검붉게 굳어야 할 피가 가장자리에서 검은빛으로 말라 있었다.
북부의 결계 마법을 쓰는 자들이 가끔 이런 피를 흘린다고 들은 적이 있다. 마법이 혈관을 태운 흔적이라고.
발렌티노식 움직임.
검은 두건.
내 이름을 부르지 않던 목소리.
"모르는 사람."
나는 낮게 말했다.
라일라가 나를 보았다.
"기록에는 그렇게 남겨."
"하지만 대표님께서도..."
"의심은 증거가 아니야."
나는 손수건 봉투를 닫았다. 목 안쪽이 쓰렸다.
"그리고 구원은 면죄부도 아니고."
라일라는 입술을 다물었다. 그녀의 색에서 아주 작은 초록빛이 떠올랐다. 이해하려 애쓰는 색이었다.
나는 재를 담은 봉투 위에 날짜를 적었다. 손끝이 떨렸지만 글씨는 읽을 수 있었다.
"마르타 부인께 전해. 별궁 납품 기록과 별도로 사건 보고를 남기고 싶다고."
"지금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지금 움직여야 해. 그들이 사본을 가져갔어."
나는 빈 장부 뒤쪽을 펼쳤다. 사본 봉투를 끼워두었던 자리에는 얇은 먼지만 남아 있었다.
"향초라고 적은 가짜 문장을 들고 갔지. 누군가는 그 문장을 보고 움직일 거야."
라일라가 작게 숨을 삼켰다.
"그 오기가 정말 단서가 될까요?"
"신전은 자신들이 두려워하는 단어를 먼저 확인할 거야. 내가 잘못 적은 말이 그들의 장부에도 있다면 그때부터는 실수가 아니게 돼."
나는 망토를 집었다. 라일라가 내 앞을 막았다.
"팔이..."
"팔은 아직 붙어 있어."
"대표님."
"라일라. 우리가 살아남은 이유는 문이 튼튼해서가 아니야. 기록을 나누었고 미끼를 던졌고 네가 사람을 불렀기 때문이야."
나는 증거 봉투를 작은 가방에 넣었다.
"오늘도 같은 방식으로 살아남을 거야."
마르타는 별궁 하녀장 별도 기록실에서 우리를 맞았다.
그녀는 내 팔에 감긴 천을 보고 눈썹을 아주 조금 움직였을 뿐 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그런 침착함이 고마웠다.
"상자가 아니라 사람이라더니 정말 사람을 노렸군요."
"예고를 지키는 자들이라면 장사꾼으로는 성실한 편이겠지요."
마르타의 입가가 굳었다.
"그 농담은 좋지 않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나는 증거 봉투를 책상 위에 하나씩 놓았다.
마르타는 은가루 묻은 칼집 조각을 먼저 보았다. 그녀의 감정색은 회색 아래 묵직한 갈색이었다. 불쾌감보다 오래된 피로에 가까웠다.
"별궁 창고 안쪽에서도 이런 은가루를 본 적이 있습니다. 정식 납품품에는 묻지 않습니다."
"어디에서 보셨습니까?"
"폐향을 모아두는 통입니다. 태양 신전 약방에서 회수해 가는 물건이지요. 다 탄 향초나 못 쓰게 된 향로 심지를 넣는 통입니다."
향초.
내가 일부러 잘못 적은 단어가 그녀의 입에서 나왔다.
"신전에서는 약초와 향초를 구분합니까?"
"겉장부에서는 구분합니다. 그런데 뒤쪽 사람들은 다르게 부릅니다."
마르타는 문 쪽을 확인한 뒤 목소리를 낮췄다.
"하녀들 사이에 도는 말입니다. 잠을 재우는 향은 약초라 하고 입을 다물게 하는 향은 향초라 한다고요."
라일라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가짜 사본의 오기가 우연히 그들의 은어와 맞았다. 아니면 자객의 반응을 보고 내가 고른 단어가 정확히 그들의 숨은 장부를 찔렀을지도 모른다.
"그 말을 별도 기록에 남겨주실 수 있습니까?"
"소문으로요?"
"소문이라 적어도 됩니다. 누가 처음 말했는지 모른다고 적어도 되고요."
"신전 약방과 별궁 사이 일이 됩니다."
"그래서 별도 기록이 필요합니다."
나는 마르타의 눈을 보았다.
"제가 당한 일로만 남으면 버림받은 전 공작부인의 소란이 됩니다. 별궁 물품과 폐향 기록에 연결되면 하녀들이 마시는 차와 잠드는 방의 문제가 됩니다."
마르타의 색이 조금 바뀌었다. 푸른빛이 아주 얇게 섞였다. 결심의 색이었다.
"기록하겠습니다. 단 하녀장께 먼저 올립니다."
"충분합니다."
"그리고 오늘은 신전 약방 뒤편에 가지 마십시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마르타가 짧게 한숨을 쉬었다.
"그 눈을 보니 가시겠군요."
"사람이 많은 낮에 지나가는 겁니다."
"지나가는 사람은 폐향 보관소 뒤쪽까지 보지 않습니다."
"그럼 지나가다 길을 잘못 들겠습니다."
마르타는 나를 잠시 보다가 작은 열쇠 하나를 책상 위로 밀었다.
"별궁 하녀들이 쓰는 낡은 물품표 보관함 열쇠입니다. 신전 약방 뒤편과 연결되는 골목 이름이 붙은 영수증이 있을 겁니다. 오늘 가져가고 내일 돌려주십시오."
"왜 도와주십니까?"
"그 향이 당신 집에 들어갔다면 언젠가 하녀 숙소에도 들어갈 수 있으니까요."
그녀의 대답에는 꾸밈이 없었다.
나는 열쇠를 받았다.
발렌티노 대공저 지하 조사실에는 햇빛이 닿지 않았다.
카시안은 붕대를 감은 팔을 등 뒤로 감춘 채 탁자 위의 사본을 내려다보았다. 사본에는 에블린이 남긴 오기가 분명하게 적혀 있었다.
축복받지 않은 향초.
바르텔이 조용히 보고했다.
"자객의 품에서 작은 목패가 나왔습니다. 폐향 보관소 하역꾼들이 쓰는 표식입니다."
"세르비안 쪽인가."
"동문 거리 신전 약방 뒤편을 거칩니다. 다만 자객은 하급 사제가 아닙니다. 고용된 손으로 보입니다."
카시안은 탁자 끝을 눌렀다. 나무가 낮게 삐걱였다.
에블린은 오기를 미끼로 썼다. 겁먹은 사람이 할 판단이 아니었다. 피를 흘리면서도 길을 남기는 사람.
그 생각이 떠오르자 손등 아래 낙인이 뜨거워졌다.
카시안은 숨을 멈췄다.
기쁨도 자랑도 신의 눈 앞에서는 죄가 됐다. 그녀가 살아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조차 칼이 되어 돌아왔다.
"로제 양께 알려야 합니다."
바르텔의 말은 조심스러웠다.
"그분은 이미 향초라는 단어를 쫓을 겁니다."
"알고 있다."
"그러면 막으셔야..."
"내가 막으면 더 위험해진다."
카시안의 목소리는 낮았다.
"발렌티노가 그녀의 길 앞에 나타나는 순간 신전은 에블린을 내 약점이 아니라 내 선택으로 본다. 아직은 안 된다."
"하지만 숨기는 일도 상처가 됩니다."
그 말이 지하의 차가운 벽에 부딪혀 돌아왔다.
카시안은 대답하지 못했다.
바르텔은 오래 그를 섬겼다. 그래서 더 잔인하게 옳은 말을 했다.
"알고 있다."
카시안이 겨우 말했다.
"그래도 오늘은 그녀가 알아차리기 전에 칼을 치워."
"폐향 보관소 쪽 심부름꾼은 이미 붙잡았습니다. 다만 로제 양이 직접 오시면 마주칠 수 있습니다."
"마주치지 않게 해."
"발렌티노식 매듭이나 표식도 남기지 않겠습니다."
카시안은 눈을 감았다.
전날 밤 손수건 위에 떨어진 피가 떠올랐다. 이미 늦었을지도 모른다. 에블린은 작은 오기 하나로 신전의 폐향 보관소까지 짚어낸 사람이다. 피 한 방울을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아니."
바르텔이 멈췄다.
"감추는 데 실패했다면 더 덮지 마라. 그녀가 발견한 단서를 없애지 마."
"그러면 의심할 겁니다."
"의심할 권리는 그녀에게 있다."
그 말은 자신에게 내리는 벌처럼 들렸다.
카시안은 사본을 접었다.
"다만 오늘 죽지 않게 해."
신전 약방 뒤편 골목은 낮에도 어두웠다.
앞문에는 축복받은 수면약과 향차가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었다. 부인들이 마차에서 내려 은화를 내고 작은 병을 사 갔다. 그 병들 뒤편에서 누군가는 입을 다물게 하는 향을 향초라 불렀다.
라일라는 내 옆에서 장바구니를 꼭 붙잡고 있었다.
"지나가기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지나가고 있어."
"방금 두 번째로 같은 골목을 지나가셨습니다."
"길이 헷갈리네."
라일라는 울 것 같은 얼굴을 했다. 나는 그녀에게 약방 앞이 보이는 과일 좌판 옆에 서 있으라 했다. 혼자 더 들어가겠다는 뜻을 눈치챈 라일라가 고개를 저었지만 내가 먼저 말했다.
"네가 보여야 내가 돌아올 길을 알아."
그제야 그녀는 멈췄다.
폐향 보관소는 약방 뒤편의 낮은 문 뒤에 있었다. 문 앞에는 재가 담긴 통 세 개가 놓여 있었다. 그중 하나에 은가루가 아주 희미하게 묻어 있었다.
그때 모퉁이에서 어린 심부름꾼 하나가 뛰어왔다. 열다섯도 되어 보이지 않는 아이였다. 손에는 약방 표식이 없는 작은 목패가 들려 있었다.
"향초 회수하러 왔습니다."
문 안쪽에서 누군가가 물었다.
"어느 집?"
"동문 거리 이층집."
내 손끝이 차가워졌다.
"쪽지는?"
"가져간 분이 아직 안 오셨습니다. 대신 이 말만 전하라 했습니다. 향초가 약초보다 먼저라..."
아이의 말이 끊겼다.
골목 위에서 그림자가 움직였다. 아이의 입이 막혔고 몸이 뒤로 사라졌다. 너무 빨랐다. 지나가던 사람이라면 못 보았을 움직임이었다.
나는 보았다.
무채색이 골목 끝에서 아주 짧게 접혔다.
그림자는 곧 사라졌다. 바닥에는 아이가 떨어뜨린 목패와 검은 섬유 한 올이 남았다. 목패에는 폐향 보관소 표식이 새겨져 있었다. 검은 섬유는 거칠고 단단했다. 북부 군복 안감에 쓰는 실과 비슷했다.
그리고 목패 끈은 이상하게 묶여 있었다.
발렌티노 대공저의 짐마차에서 본 적 있는 북부식 매듭.
라일라가 달려왔다.
"대표님."
"보았어?"
"사람이 사라졌습니다. 누가..."
"모르는 사람."
나는 목패를 주워 손수건에 감쌌다. 이번에는 그 말이 더 쓰게 느껴졌다.
모르는 사람이라 기록한 자가 내 앞의 단서를 먼저 치우고 있었다. 나를 살리려는 것인지 내 질문을 막으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하나는 분명했다.
그는 신전보다 먼저 움직였다.
그리고 발렌티노식 매듭은 거짓말을 못 했다.
나는 가방 속 피 묻은 손수건을 떠올렸다. 검게 굳은 피. 팔을 다친 구원자. 지하 어디선가 붕대를 감고 있을지도 모르는 남자.
"라일라."
"예."
"상처를 입은 사람은 흔적을 남겨."
나는 약방 뒤편 닫힌 문을 바라보았다.
"먼저 그 손을 찾아야겠어. 재 속에서 내 증거를 집어 올린 손."
라일라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목패를 품 안에 넣었다. 낮의 시장 소음은 여전히 밝았지만 골목의 냄새는 차갑고 매웠다.
향초.
이제 그 단어는 신전 약방의 물건이 아니라 길이었다.
그리고 그 길 끝에는 신전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