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한 남편이 예언을 속이려 나를 미워한 줄 몰랐다

5화: 카시안의 미행
은종루에서 돌아온 뒤, 작업실의 공기는 전보다 더 조용했다.
라일라는 작은 화로에 봉랍을 녹였고, 나는 상자 열 개를 차례로 열어 기록표 번호를 다시 맞췄다. 낮에 귀부인들 앞에서 웃음을 참고 서 있던 시간보다, 지금 이 낡은 탁자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더 날카롭게 느껴졌다.
마르타가 남긴 말 때문이었다.
상자 봉인은 제가 보는 앞에서 다시 하십시오.
그 조언은 걱정보다 경고에 가까웠다.
"대표님, 여섯 번째 상자입니다."
라일라가 낮게 말했다. 나는 상자 뚜껑의 봉랍을 촛불 가까이 기울였다. 붉은 장미 인장 한쪽이 아주 미세하게 번져 있었다. 급히 보면 흠집처럼 보일 정도였지만, 녹은 봉랍이 다시 굳을 때 생기는 광택을 나는 알고 있었다.
대공저에서 편지 봉인과 보석함을 수없이 정리한 덕분이었다.
"누가 열었어."
라일라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내용물이 바뀌었을까요?"
"바꾸려고 했거나, 확인만 하고 닫았거나."
나는 봉인을 깨고 상자를 열었다. 향낭과 배합표는 겉보기에는 그대로였다. 하지만 기록표 맨 아래쪽, 내가 직접 그어둔 작은 점 하나가 없었다.
밤새 새겨둔 확인 표시였다.
누군가 손을 댔다.
손끝이 차가워졌지만, 이상하게 겁은 나지 않았다. 협박장이 종이에 머물러 있을 때보다 오히려 마음이 또렷해졌다.
상대는 이제 물건을 건드렸다.
그렇다면 우리도 물건으로 대답하면 됐다.
"이 상자 내용물은 빼. 향낭 대신 빈 천주머니를 넣고, 기록표는 사본으로 바꿔."
"미끼로 쓰시려고요?"
"우리가 모르는 척하면 상대가 어디로 물고 가는지 볼 수 있어."
라일라는 잠시 나를 보았다. 걱정의 회색 위로 단단한 녹색이 번졌다.
"예, 대표님."
그 호칭은 이제 어색하지 않았다.
예정된 운반꾼은 오지 않았다.
대신 낯선 남자가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이르게 문을 두드렸다. 그는 별궁 물품 창고에서 나왔다고 말했지만, 허리춤에 단 패는 지나치게 새것이었다.
"오늘부터 동문 검문로가 막혔습니다. 별궁 뒤편 보급로로 돌면 늦지 않습니다."
"누가 막았습니까?"
"창고장 지시입니다."
그의 감정색은 탁했다. 검붉은 색이 옷깃 안쪽에서 끓듯 번졌다. 거짓말을 할 때 사람의 색은 자주 흐려진다. 하지만 저 색은 거짓말보다 더 끈적했다.
라일라가 운반꾼의 허리패를 흘끗 보더니 내 쪽으로 아주 조금 몸을 기울였다.
"대표님."
그녀의 목소리가 거의 입술 안에서만 울렸다.
"저 문양, 별궁 패가 아닙니다. 하급 사제 허가패의 태양 갈래를 긁어낸 것 같아요."
나는 상자 목록을 접었다.
"그럼 여섯 번째 상자만 먼저 가져가세요. 나머지는 제가 직접 정문 검문로로 가져가겠습니다."
운반꾼의 눈이 흔들렸다.
"상자는 한꺼번에 움직여야 합니다."
"로제 상회 물품입니다. 이동 방식은 제가 정합니다."
짧은 침묵이 흘렀다. 남자는 웃으려 했지만, 입꼬리가 제대로 올라가지 않았다.
"늦으면 별궁 창고에서 책임을 묻게 될 겁니다."
"그 책임도 제가 지겠습니다."
나는 여섯 번째 상자를 문가로 밀어주었다. 남자는 한 번 더 망설이다 상자를 들었다. 문을 나서는 순간, 허리패 가장자리에 남은 은색 태양 문양의 흠집이 촛빛을 받았다.
별궁 표식이 아니었다.
신전 허가패를 깎아 다른 표식처럼 만든 물건이었다.
남자가 골목으로 사라지자, 나는 남은 상자들을 확인했다.
"마르타 부인이 말한 정문으로 가."
"저 사람은요?"
"우리 상자를 훔치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빈 상자를 줬을 뿐이야."
나는 장갑을 고쳐 꼈다.
"대신 지금부터는 뒤를 보지 마. 누가 따라오는지 확인하려고 멈추면, 우리가 모른다는 척도 끝나."
라일라가 마른침을 삼켰다.
"예."
정문 검문로까지 가는 길은 생각보다 길었다.
라일라는 작은 손수레를 밀었고, 나는 상자 목록을 들고 나란히 걸었다. 거리에는 은종루에서 흘러나온 소문이 벌써 퍼진 듯했다. 몇몇 사람의 시선이 상자 위의 장미 인장에 머물렀다.
로제 상회.
작은 이름 하나가 거리 위에서 자꾸 시험받고 있었다.
두 번째 골목을 지날 때, 뒤쪽에서 짧은 금속음이 들렸다.
챙.
라일라의 어깨가 움찔했다. 나는 손수레 손잡이를 잡은 그녀의 손등을 살짝 눌렀다.
"멈추지 마."
골목 끝에서 검붉은 색이 확 꺼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 차가운 무채색의 흔적이 스쳤다.
카시안의 색과 닮은 색.
가슴이 불쾌하게 내려앉았다. 보호인지 감시인지 알 수 없었다. 아니, 보호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보호였다면 지난 3년 동안 그는 왜 나를 혼자 두었을까. 왜 내가 사교계의 조롱 속에 서 있을 때 한 번도 곁에 없었을까.
그가 보낸 사람일 리 없었다.
그렇게 믿어야 했다.
"대표님."
라일라의 목소리가 떨렸다.
"봉인 번호 읽어."
나는 일부러 목소리를 높였다.
"하나, 로제 장미 봉인 일 번. 기록표 일 번. 배합표 일 번."
라일라가 내 뜻을 알아듣고 숨을 고른 뒤 이어받았다.
"둘, 봉인 이 번. 기록표 이 번. 배합표 이 번."
지나가던 상인과 별궁 검문병들이 우리를 보았다. 증인이 필요했다. 상자가 여기까지 온 상태를 보는 눈이 많을수록, 나중에 누군가 물건을 바꿨다고 우기기 어려웠다.
우리는 아홉 번째까지 번호를 읽었다. 마지막 예비 상자의 봉인까지 확인했을 때, 검문병 하나가 장부에 손수레 도착 시각을 적었다.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다만 멀어지는 무채색을 끝까지 느꼈다.
별궁 물품 창고의 정문에는 마르타가 먼저 와 있었다.
그녀는 내가 손수레를 밀고 나타나자 눈썹을 조금 올렸다.
"운반꾼은요?"
"한 명이 왔습니다. 하지만 허리패가 별궁 물품 창고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여섯 번째 상자 목록과 가짜 허리패의 특징을 적은 쪽지를 건넸다.
"그 상자에는 실제 납품분을 넣지 않았습니다."
마르타의 얼굴이 굳었다.
"일부러 보냈다는 뜻입니까?"
"누가 가져가고 싶어 하는지 확인하려고요."
"위험한 방식입니다."
"멈추는 것보다 낫습니다."
나는 남은 아홉 상자와 예비 상자 하나를 차례로 열었다. 봉랍은 온전했고, 기록표 번호와 배합표 번호도 맞았다. 마르타는 직접 인장을 대조했다. 그녀의 감정색은 회색에서 옅은 푸른색으로 바뀌었다.
경계가 신뢰로 아주 조금 이동하는 색이었다.
"열 상자 확인했습니다."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라일라가 숨을 길게 내쉬었다.
마르타는 장부에 서명한 뒤 낮게 덧붙였다.
"오늘 일은 창고장 장부에 바로 올리지 않겠습니다. 먼저 하녀장님께 별도 보고로 올리죠. 다만 제 기록에는 남깁니다. 로제 상회가 봉인 훼손 가능성을 발견했고, 가짜 운반 표식을 확인했다고."
"그거면 충분합니다."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별궁 안쪽 동선을 아는 사람이 아니면 오늘 같은 말을 꾸미기 어렵습니다."
별궁 안쪽.
나는 그 말을 장부 한쪽에 적었다. 신전 약방의 손이 생각보다 깊었다.
마르타가 물품 창고 문을 열게 했다. 로제 상회의 첫 별궁 납품 상자가 하나씩 안으로 들어갔다. 장미 인장이 어두운 창고 안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며, 나는 주먹을 천천히 폈다.
이번에는 지켰다.
하지만 이번 한 번뿐이었다.
같은 시각, 발렌티노 대공저의 집무실에는 피 묻은 허리패 하나가 놓였다.
카시안은 그것을 손끝으로도 건드리지 않았다.
"신전 허가패를 깎아 별궁 표식처럼 만들었습니다."
바르텔이 보고했다.
"로제 양이 알아차렸습니다. 미끼 상자만 넘겼고, 실제 납품분은 정문 검문로로 옮겼습니다."
카시안의 입가가 아주 미세하게 굳었다. 웃음은 아니었다. 자랑스러움이 낙인을 건드리기 전에 잘라낸 표정이었다.
그래도 늦었다.
손등 아래 검은 문양이 희미하게 달아올랐다.
그녀가 살아남았다.
그녀가 자기 힘으로 판을 바꿨다.
그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타들어 갔다.
"상자는."
"별궁 창고에 들어갔습니다."
"그럼 다음은 상자가 아니다."
바르텔이 고개를 들었다.
카시안의 눈빛은 이미 얼음처럼 식어 있었다.
"로제 상회가 납품을 성공시켰다면, 신전 약방은 물건이 아니라 사람을 흠집 내려 할 거다."
그는 창밖을 보았다. 동문 거리 쪽으로 해가 기울고 있었다.
"그림자를 두 배로 붙여. 에블린이 보지 못하게."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그녀가 눈치채면."
카시안은 눈을 감았다가 떴다.
"내 이름은 끝까지 나오지 않게 해."
거처로 돌아왔을 때, 문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문틈 아래에 작은 종이 조각이 끼워져 있었다. 태양 문양 봉인은 없었다. 대신 은색 가루가 손끝에 묻었고, 종이 모서리에서는 신전 향로에서 맡았던 차갑고 매운 냄새가 났다.
나는 촛불 아래에서 종이를 펼쳤다.
[다음에는 상자가 아니다.]
라일라가 입을 막았다.
나는 종이를 접지 않았다. 태우지도 않았다. 이미 증거 서랍에는 은색 태양 조각과 첫 경고장이 들어 있었다. 이제 거기에 하나가 더해질 뿐이었다.
하지만 손끝이 조금 떨렸다.
상자가 아니라면.
다음에는 나였다.
그때 열린 창문 너머 골목 끝에서 검은 그림자가 아주 잠깐 흔들렸다. 무채색. 카시안과 닮은, 그러나 카시안일 리 없는 색.
나는 창문을 닫았다.
빗장이 걸리는 소리가 생각보다 크게 울렸다.
"라일라."
"예, 대표님."
"내일부터 문을 하나 더 달자. 그리고 창문 앞에는 방울줄을 걸어."
나는 종이를 증거 서랍에 넣었다.
"상자를 지켰으니, 이제 사람을 지킬 차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