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방을 탈출하는 법

4화: 소리 없는 반납
[반납 제한 시간: 02:59]
숫자가 줄어드는 동안, 도서관은 숨 쉬는 소리까지 빼앗았다.
지후는 붉은 카드를 손가락 사이에 세웠다. 카드에는 강문식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고작 종이 한 장이었다.
그런데 손끝에 얹힌 무게는 수갑보다 무거웠다.
열 걸음.
그 사이에 은색 감지선 세 개. 책장 위쪽의 사격구 다섯 개. 그리고 도서관 깊은 곳에서 다가오는 사서.
또각.
또각.
그 발소리는 처벌받지 않았다. 이 방에서 소리를 내도 죽지 않는 존재가 있다면, 규칙 밖에 있거나 규칙 자체라는 뜻이다.
지후는 손전등을 손바닥 안에서 세 번 깜빡였다.
이동.
바로 움직인 사람은 둘뿐이었다.
최정민은 뒤쪽 생존자들의 어깨를 낮췄다. 입이 벌어지는 사람의 턱을 손끝으로 밀어 닫았다. 말하지 말라는 명령이 아니라, 숨도 얇게 쉬라는 압박이었다.
이설아는 지후의 왼쪽 무릎 높이에서 바닥을 보고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회색 카펫 위를 아주 천천히 훑었다. 직접 누르지 않고, 먼지의 끊긴 선과 섬유가 누운 방향만 따라갔다.
설아가 손가락 두 개를 세웠다.
두 칸은 밟지 말라는 뜻.
지후는 고개만 끄덕였다.
첫 걸음.
발바닥을 끌지 않는다. 발을 들고, 놓는다. 체중을 한 번에 싣지 않고 무릎으로 나눠 받는다.
카펫 아래의 은색 선이 그의 발끝 앞에서 희미하게 빛났다.
[진동 감지선]
[반응 조건: 동일 구역 반복 압력 변화]
[현재 누적값: 1]
지후는 호흡을 멈췄다.
소리만이 아니다. 같은 구역에 체중이 반복되면 그것도 잡는다.
방금 한 걸음이 이미 카운트됐다.
그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손전등을 두 번 깜빡였다.
정지.
사람들이 얼어붙었다.
그때 뒤쪽에서 낮은 몸싸움이 일어났다.
박상철이었다.
그는 앞서 자신이 밀었던 청년의 목덜미를 잡고 있었다. 말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손의 방향이 말했다.
네가 먼저 가라.
청년의 눈이 뒤집혔다. 그는 고개를 흔들었고, 파우치가 옆구리에 부딪히려 했다.
정민이 상철의 손목을 잡았다.
소리는 없었다.
대신 손등의 핏줄이 솟았다. 정민은 상철의 팔을 꺾지 않았다. 꺾으면 상철이 발버둥칠 것이다. 그녀는 관절의 움직임만 막고, 청년을 뒤로 밀었다.
상철의 입술이 벌어졌다.
지후는 손전등을 그의 눈 바로 아래에 짧게 비췄다.
두 번.
정지.
상철의 턱이 굳었다.
그는 지후를 노려봤다. 그 눈빛에는 공포보다 분노가 많았다. 죽음보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을 더 싫어하는 눈이었다.
또각.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책장 모퉁이 너머로 무언가 지나갔다.
사람의 팔처럼 보였다. 검은 장갑. 손가락이 비정상적으로 길었다. 그것은 바닥에 쓰러진 남자의 피 웅덩이 근처에서 멈췄다. 그리고 남자의 목에 걸려 있던 얇은 이름표를 집어 들었다.
정리하듯.
잃어버린 책갈피를 줍듯.
사서는 시체를 보지 않았다. 울음을 참는 사람들도 보지 않았다. 오직 이름표만 들고, 빈 서가 쪽으로 사라졌다.
도서관은 사람을 죽이는 곳이 아니었다.
기록을 제자리에 꽂는 곳이었다.
그 생각이 떠오르자, 지후는 등줄기가 식는 것을 느꼈다.
시체는 방해물이 아니었다. 울음도, 공포도, 누군가의 구조 요청도 이곳에서는 감정이 아니었다. 분류되지 않은 자료였다. 이름표는 색인이고, 사망 원인은 표제였으며, 실패는 누군가가 다시 들고 와야 하는 반납물이었다.
사람을 책으로 만든다.
그게 이 방의 취향이었다.
지후는 혀끝으로 마른 입천장을 눌렀다. 불쾌감을 오래 들고 있으면 판단이 늦어진다. 판단이 늦어지면, 이 방은 그 불쾌감까지 기록으로 바꿀 것이다.
지후는 다시 움직였다.
두 번째 걸음은 감지선 사이의 좁은 틈이었다. 설아가 엄지와 검지를 벌려 폭을 알려 줬다. 한 뼘도 되지 않았다.
지후는 카드가 휘지 않게 손가락 힘을 풀었다.
힘이 들어가면 손이 떨린다.
떨림은 진동이 된다.
세 번째 걸음.
네 번째.
[반납 제한 시간: 01:47]
사격구 하나가 천천히 기울었다.
지후는 멈췄다.
너무 오래 멈춰도 안 된다. 같은 구역에서 미세한 균형 조정이 반복 압력으로 잡힐 수 있다.
그는 단열포를 손목에 감았다. 상처 난 손바닥에서 떨어질 피를 막기 위해서였다. 피 한 방울이 카펫 위에 떨어지는 소리. 이 방에서는 그것도 충분히 명분이 될 수 있었다.
001 강문식 - 실패
서가가 코앞이었다.
책등 가운데 붉은 실이 묶여 있었고, 그 아래 카드 모양의 빈 홈이 있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정확한 크기였다.
너무 정확하다.
지후는 바로 꽂지 않았다.
그는 눈을 가늘게 떴다.
[절대 관찰]
[카드 홈 내부: 압력판 2개]
[책등 후면: 공명관]
[반응 예상: 삽입 완료 시 음원 재생]
역시.
사망 원인: 정답 직전의 비명
그 실패를 반납하라는 말은, 그 비명을 다시 이 방에 꺼내 놓으라는 뜻일 수 있었다. 카드가 끝까지 들어가는 순간 강문식의 마지막 비명이 재생된다면, 사격구가 반응한다.
정답 직전.
같은 방식으로.
지후는 입 안쪽을 깨물었다.
죽은 사람의 마지막 순간까지 기믹으로 쓴다.
화낼 시간은 없었다.
파우치에서 남은 붕대 끝을 꺼냈다. 설아를 잡아 끌 때 찢어졌고 금속음을 막느라 더러워진 붕대였다. 깨끗한 부분은 거의 없었다.
그래도 천은 천이다.
지후는 붕대를 손톱만큼 찢어 카드 홈 위쪽 틈에 밀어 넣었다. 너무 많이 넣으면 훼손이다. 너무 적으면 소리를 못 먹는다.
그는 단열포의 가장자리도 아주 얇게 접었다. 공명관의 입구로 보이는 검은 틈을 덮되, 붙이지 않았다.
고정하지 않는다.
훼손하지 않는다.
임시로 얹는다.
[기믹 파괴]
[숙련도 제한: 과부하 주의]
손가락 관절이 뜨거워졌다. 지후는 힘으로 부수지 않았다. 부수는 대신, 구조가 원래 하려는 일을 못 하게 길을 좁혔다.
카드를 천천히 밀었다.
반쯤.
딸깍.
서가 안쪽에서 숨을 들이켜는 듯한 소리가 고였다.
그 소리는 아직 비명이 아니었다.
비명이 되기 직전의 준비 동작. 폐가 공기를 빨아들이고, 성대가 닫히고, 목구멍이 열리는 아주 짧은 순간. 지후는 그 짧은 틈이 사람의 마지막 선택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강문식은 답을 알았다.
하지만 답보다 먼저 살려 달라고 외쳤다.
그게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지후도 첫 번째 방에서 손목을 풀지 못했다면 비명을 질렀을지 모른다. 아니, 더 추하게 빌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지금은 그 비명까지 막아야 했다.
지후는 카드의 각도를 미세하게 틀었다. 압력판 하나만 먼저 누르고, 두 번째를 늦춘다. 공명관이 열리는 순서를 어긋나게 만든다.
끝까지.
컥.
어딘가에서 막힌 비명이 천에 먹혔다. 사람 목소리였지만, 목구멍 밖으로 나오지 못한 소리였다.
책장 위의 사격구들이 일제히 떨렸다.
하지만 방향을 잡지 못했다.
[반납 카드가 지정 서가에 삽입되었습니다.]
[소음 재현 실패]
[첫 번째 반납 완료]
도서관의 공기가 아주 조금 내려앉았다.
누군가 뒤에서 울음을 삼켰다. 이번에는 사격구가 움직이지 않았다. 반복되지 않았고, 방향도 충분하지 않았다.
지후는 손을 뗐다.
그 순간 001 강문식 - 실패 책등의 붉은 실이 스르르 풀렸다. 책은 앞으로 튀어나오지 않았다. 대신 표지가 반쯤 벌어지며 안쪽의 얇은 종이 한 장만 드러났다.
지후는 읽었다.
강문식. 39세. 튜토리얼 방 001번 참가자.
비밀번호 442 도달.
입력 직전 구조 요청성 고성 발생.
소음 기준 초과. 즉시 사살.
밑에는 더 작은 글씨가 있었다.
실패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음 생존자가 그것을 조용히 반납할 때까지.
지후의 목 뒤가 차가워졌다.
이 방은 죽은 사람의 기록을 보관하는 곳이 아니다.
죽은 방식 자체를 보관한다.
그리고 살아남은 사람에게 다시 들게 한다.
공중에 문자가 떠올랐다.
[첫 번째 반납이 완료되었습니다.]
[제1라운드 진행률: 1 / 3]
[두 번째 반납 조건을 공개합니다.]
[타인을 먼저 밀어 넣은 자의 기록을 찾으십시오.]
[남은 시간: 12:38]
사람들의 시선이 한 방향으로 쏠렸다.
박상철.
그는 고개를 들었다.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지만, 입은 열지 못했다. 이 방에서 변명은 총구를 부르는 행동이었다.
정민의 손이 다시 그의 팔목 근처로 갔다.
설아는 상철을 보지 않았다. 그녀는 바닥을 보고 있었다. 회랑에서 자신을 집어삼키려던 검은 타일을 기억하는 얼굴이었다.
지후는 손전등을 껐다.
지금 빛을 켜면 모두의 분노가 한 사람에게 몰린다. 분노는 소리를 만든다. 소리는 죽음을 만든다.
하지만 시스템이 이미 불을 붙였다.
또각.
사서의 발소리가 멈췄다.
이번에는 가까웠다.
바로 옆 서가 너머.
검은 장갑 낀 손이 책등 하나를 천천히 쓸었다. 손가락 끝이 빈 칸에서 멈췄다.
지후는 숨을 죽였다.
사서가 처음으로 고개를 돌리는 기척이 났다.
마치 다음 기록을 꽂을 자리가,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 사이에 있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