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방을 탈출하는 법

3화: 침묵의 도서관
문이 닫혔다.
소리는 나지 않았다.
그게 오히려 더 불길했다. 무거운 철문이 마흔여섯 명의 뒤에서 맞물렸는데, 도서관 안에는 먼지 하나 내려앉는 소리조차 남지 않았다.
지후는 숨부터 줄였다.
책장들이 천장까지 솟아 있었다. 검은 목재로 된 서가는 통로를 좁게 잘라 놓았고, 위쪽은 어둠에 묻혀 끝이 보이지 않았다. 바닥에는 두꺼운 회색 카펫이 깔려 있었다. 발소리를 먹기 위한 재질.
혹은 발소리를 정확히 재기 위한 재질.
지후는 입구 앞에 떨어진 깃을 다시 보았다.
새의 깃털이 아니었다. 아주 얇은 합성 섬유. 화살의 꼬리에 붙이는 균형 깃이었다.
그는 손가락을 입술 앞에 세웠다.
이번에는 꽤 많은 사람이 멈췄다. 회랑에서 지후가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봤기 때문이다.
그래도 전부는 아니었다.
"왜요? 뭐가 있는데요?"
뒤쪽에서 누군가 속삭였다.
아주 작은 목소리였다.
하지만 책장 위쪽에서 무언가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딸깍.
지후의 시선이 위로 튀었다.
책장과 천장 사이의 어둠 속에 작은 구멍들이 줄지어 있었다. 검은 목재 무늬처럼 숨겨져 있었지만, 방금 그중 하나가 속삭인 쪽으로 조금 기울었다.
그 순간 공중에 문자가 떠올랐다.
[제1라운드: 침묵의 도서관]
[목표: 제한 시간 내 첫 번째 반납 카드를 찾아 지정 서가에 반납하십시오.]
[제한 시간: 20:00]
[규칙 1: 도서관에서는 정숙을 유지해야 합니다.]
[규칙 2: 지정되지 않은 책의 반출 및 훼손을 금지합니다.]
[규칙 3: 사서는 소란을 싫어합니다.]
문자는 소리 없이 번졌다가 사라졌다.
애매하다.
정숙의 기준이 없다. 사서가 무엇인지도 없다. 반납 카드가 어디 있는지도, 지정 서가가 무엇인지도 알려 주지 않았다.
방탈출 카페였다면 악평을 남겼을 문제다.
하지만 여기서는 악평을 남길 손이 먼저 잘린다.
박상철이 입술을 비틀었다.
"말을 못 하게 하면 어떻게 찾으라는 건데."
그는 낮게 말했지만, 도서관은 그 정도도 놓치지 않았다.
딸깍.
이번에는 두 곳이었다.
지후는 손바닥을 아래로 내렸다. 앉으라는 신호.
최정민이 가장 먼저 움직였다. 그녀는 가까운 사람들의 어깨를 눌러 낮췄다. 입을 벌리려던 남자의 턱을 손등으로 밀어 닫고, 자기 입술 앞에 검지를 세웠다.
이설아도 떨리는 손으로 옆 사람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사람들이 하나둘 무릎을 굽혔다.
한 명만 늦었다.
회랑에서부터 계속 울던 마른 남자였다. 그는 자기 파우치를 두 손으로 움켜쥔 채 서 있었다. 눈동자가 책장 위쪽을 따라 흔들렸다.
"난 못 해."
작은 목소리.
딸깍.
"이런 거 못 한다고."
두 번째.
딸깍.
"살려 줘. 제발."
세 번째.
지후는 입모양만 만들었다.
엎드려.
남자는 알아듣지 못했다.
퍽.
화살은 소리를 거의 내지 않았다.
남자의 목 뒤로 검은 촉이 박혔다. 그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앞으로 무너졌다. 두꺼운 카펫이 쓰러지는 충격을 삼켰고, 피만 조용히 퍼졌다.
그 순간 비명이 터질 뻔했다.
정민이 양손을 뻗어 두 사람의 입을 틀어막았다. 설아는 자기 입을 두 손으로 막은 채 눈물만 흘렸다. 누군가는 바닥에 이마를 박고 숨을 참았다.
지후의 눈앞에 정보가 겹쳤다.
[소음 감지 사격구]
[반응 조건: 반복 음원, 방향성 확정, 기준치 이상 진동]
[현재 경계 단계: 1]
큰소리만이 아니다.
같은 위치에서 반복되는 작은 소리도 죽인다.
지후는 바닥을 내려다봤다. 회색 카펫 아래로 은색 선이 아주 희미하게 지나갔다. 직선이 아니라 서가 사이를 나누는 경계였다. 감지 구역.
같은 구역에서 같은 사람이 세 번.
방금 사격구가 방향을 확정한 조건이었다.
그는 파우치에서 작은 손전등을 꺼냈다.
말은 못 쓴다.
그렇다면 빛과 손짓으로 통제해야 한다.
지후는 손전등을 자기 손바닥에 비췄다. 빛이 새어 나가지 않게 가리고 한 번 깜빡였다.
앉기.
두 번.
정지.
세 번.
이동.
정민이 바로 따라 했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손가락으로 숫자를 보여 주고, 발을 들었다 내려놓는 동작을 아주 느리게 시범 보였다.
카펫 위에서도 급하게 끌면 소리가 난다.
발을 들고, 놓는다.
끌지 않는다.
설아는 눈물을 닦지도 못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자신의 잘린 운동화 끈을 손가락으로 감아 쥐었다. 덜렁이는 끈 끝이 바닥에 닿지 않게 하려는 동작이었다.
괜찮다.
공포 속에서도 볼 건 보고 있다.
지후는 전광판을 확인했다.
[현재 생존자: 45 / 100]
[남은 시간: 18:41]
또 한 명이 줄었다.
도서관은 그 사실마저 조용히 처리했다.
지후는 가장 가까운 서가로 다가갔다. 손전등 빛을 바로 비추지 않고 바닥에 떨어뜨려 반사광만 올렸다. 강한 빛이 다른 장치를 깨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책등에는 제목이 없었다.
031 문하준 - 실패
037 김도윤 - 실패
044 오민지 - 실패
048 한재성 - 실패
이름과 판정.
검은 줄이 그어진 책도 있었고, 붉은 실로 묶인 책도 있었다. 어떤 책은 책등 가운데가 눌려 있었다. 사람이 여러 번 꺼낸 흔적처럼.
지후의 손끝이 멈췄다.
도서관이 아니다.
기록 보관소다.
첫 번째 방에서 죽은 사람들. 아니면 판도라가 이미 처리한 참가자들. 책장 전체가 실패자의 목록이라면, 이곳의 '반납'은 책을 꽂는 행위가 아닐 수 있다.
실패를 제자리로 돌려놓는 의식.
지후는 그 생각을 지웠다.
의미에 취하면 늦는다. 구조를 봐야 한다.
설아가 조심스럽게 그의 소매를 건드렸다.
지후가 돌아보자, 그녀는 말하지 않고 왼쪽 아래 칸을 가리켰다.
그 칸만 먼지가 없었다.
다른 책등은 손전등 반사광에 회색 입자가 떠올랐는데, 그 책 하나만 방금 닦은 것처럼 검었다.
책등에는 이름이 없었다.
442
지후의 호흡이 아주 잠깐 멎었다.
첫 번째 방의 비밀번호.
그가 벽 문구와 매트리스 뒤 표식으로 찾아낸 숫자.
판도라는 정답만 기록한 게 아니다. 참가자가 어떤 경로로 살아남았는지도 알고 있다.
설아가 입술을 움직였다.
저거요?
지후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뒤쪽에서 몸싸움이 일어났다.
박상철이었다.
그는 겁에 질린 청년의 어깨를 잡아 서가 쪽으로 밀고 있었다. 말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뜻은 뻔했다.
네가 먼저 열어.
청년은 필사적으로 버텼다. 그 과정에서 파우치 안의 물건이 부딪혔다.
짤랑.
작은 금속음.
책장 위의 어둠이 움직였다.
지후는 바로 몸을 낮춰 청년에게 다가갔다. 뛰지 않았다. 카펫을 차지 않고 무릎으로 미끄러졌다. 손바닥의 상처가 다시 벌어졌지만 멈출 수 없었다.
그는 피가 묻은 붕대 끝을 찢어 청년의 파우치 위에 덮었다. 금속 핀이 서로 부딪히지 않게 천으로 눌렀다.
딸깍.
사격구 하나가 고정되려다 멈췄다.
반복 조건이 끊겼다.
정민은 상철의 팔목을 잡았다.
소리 없이.
하지만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릴 만큼 세게.
상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팔을 빼려 했지만, 정민은 놓지 않았다. 둘 사이의 힘겨루기는 말없이 벌어졌다. 그래서 더 위험했다. 구두 밑창이 카펫을 밀며 낮은 마찰음을 냈다.
지후가 손전등을 두 번 깜빡였다.
정지.
정민이 먼저 멈췄다. 상철도 이를 악문 채 움직임을 멈췄다. 지후를 노려보는 눈은 그대로였다.
그 시선은 나중 문제다.
지금 문제는 카드다.
지후는 442가 적힌 책 아래쪽을 살폈다. 책을 뽑으면 훼손이나 반출로 처리될 수 있다. 손잡이도 없었다.
대신 책등 아래에 손톱만 한 홈이 있었다.
그는 책을 당기지 않았다.
밀었다.
딸칵.
아주 작은 느낌이 손끝으로 전해졌다. 책이 뒤로 반 마디 들어가며 아래 칸의 얇은 카드함이 열렸다.
함 옆에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처음 살아남은 자는 처음 실패한 자를 반납하라.
처음 살아남은 자.
그건 지후 자신을 가리킬 가능성이 높았다.
처음 실패한 자.
지후는 서가의 가장 낮은 번호를 찾았다. 눈으로만 훑었다. 손전등을 직접 비추지 않고, 반사광을 타고 이름을 읽었다.
001 강문식 - 실패
책등 한가운데 붉은 실이 묶여 있었다. 다른 실패 기록보다 실이 새것이었다. 실 아래에는 카드 모양의 홈이 비어 있었다.
지정 서가.
아니, 지정된 실패자.
지후는 카드함 안을 보았다. 붉은 카드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카드 위에는 같은 이름이 적혀 있었다.
강문식
그 아래 작은 글씨.
사망 원인: 정답 직전의 비명
싫은 방식으로 친절하다.
정답 직전에 비명을 질렀다. 그래서 죽었다. 이 도서관은 실패자를 기록하고, 살아남은 자에게 그 실패를 반납하게 만든다.
[남은 시간: 16:09]
시간이 줄었다.
그리고 도서관 깊은 곳에서 발소리가 났다.
또각.
또각.
너무 또렷했다.
이 방에서 저렇게 걸어도 죽지 않는 존재.
사서.
사람들이 동시에 굳었다. 누군가 숨을 들이켜는 소리마저 위험했다.
지후는 붉은 카드를 집었다.
카드가 손끝에서 빠져나오는 순간, 책장 위의 구멍들이 일제히 아래로 기울었다.
[첫 번째 반납 카드가 인출되었습니다.]
[사서가 반납 지연을 감지합니다.]
[반납 제한 시간: 03:00]
새로운 시간이 떠올랐다.
도서관 깊은 곳의 발소리가 빨라졌다.
또각.
또각.
또각.
지후는 숨을 죽인 채 001 강문식이 적힌 서가를 보았다.
거리는 고작 열 걸음.
하지만 그 사이에는 은색 감지선 세 개와 책장 위의 사격구 다섯 개, 그리고 정체를 모르는 사서가 있었다.
그는 손전등을 세 번 깜빡였다.
이동.
이번 방은 책을 찾는 방이 아니다.
죽은 사람의 실패를, 소리 없이 되짚어야 하는 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