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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방을 탈출하는 법2화

죽음의 방을 탈출하는 법

죽음의 방을 탈출하는 법

2화: 살아남은 자들

광장은 사람의 목소리로 무너지고 있었다.

울음, 욕설, 기도,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비명.

첫 번째 방을 통과한 사람들은 모두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살아남았다는 안도보다, 자신이 정말로 죽을 뻔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얼굴.

지후는 그 한가운데서 전광판을 올려다봤다.

[현재 생존자: 48 / 100]

숫자는 더 줄지 않았다.

튜토리얼은 끝났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에는.

하지만 지후는 손을 내리지 않았다. 방탈출에서 가장 악질적인 제작자는 탈출 직후의 방심까지 장치로 삼는다. 문을 열었다고 끝난 게 아니다. 문밖의 첫 걸음까지 퍼즐인 경우도 있었다.

그는 광장을 훑었다.

원형 바닥은 동심원 무늬로 나뉘어 있었다. 중앙부는 매끈했지만, 외곽으로 갈수록 타일 이음새에 어두운 얼룩이 남아 있었다. 닦아낸 피가 틈에 배어 굳은 흔적이었다.

정면의 검은 통로 위에는 푸른 문자가 떠 있었다.

[지하 50층: 시작의 회랑]
[입장 대기 중]

"다들 조용히 해!"

굵은 목소리가 광장을 찍어 눌렀다.

양복 차림의 중년 남자가 사람들을 밀치며 앞으로 나왔다. 넓은 어깨, 짧게 깎은 머리, 남을 내려다보는 데 익숙한 눈. 그는 방금 전까지 죽음의 방에 갇혀 있던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우왕좌왕해 봐야 아무 소용 없다. 일단 대표를 세워야 해. 내가 통솔하겠다."

"당신이 뭔데요?"

누군가 떨리는 목소리로 따졌다.

남자는 코웃음을 쳤다.

"박상철이다. 건설 쪽에서 오래 일했다. 이런 구조물은 너희보다 내가 훨씬 잘 알아."

지후는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상철의 구두 끝을 보았다. 회색 가루가 묻어 있었다. 지후가 있던 방의 콘크리트 먼지와 색이 달랐다. 조금 더 밝고, 입자가 굵다.

저 남자의 방에는 무너지는 벽이나 압착 장치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살아남은 건 운만은 아니겠지.

하지만 살아남은 방식이 곧 믿을 만한 방식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삐이이-.

허공에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광장 전체가 동시에 조용해졌다.

[튜토리얼 정산을 시작합니다.]
[생존 보상: 100 포인트]
[기본 생존 키트가 지급됩니다.]
[튜토리얼 임시 특성 중 적합도가 가장 높은 특성이 고정됩니다.]

지후의 손바닥 위로 작은 검은 파우치가 나타났다.

무게는 가벼웠다. 안에는 압축 붕대, 작은 손전등, 금속 핀 세 개, 정수 알약 두 정, 얇은 단열포가 들어 있었다. 장난감 같은 구성은 아니었다. 모두 실제 생존 상황에서 쓰일 수 있는 물건들이다.

곧이어 그의 눈앞에 새 메시지가 겹쳤다.

[고정 특성: 절대 관찰(Grade S)]
[대상과 공간의 비정상적 단서를 감지합니다.]
[주의: 정보의 의미는 사용자가 직접 해석해야 합니다.]

"임시 사용권이었나."

지후가 낮게 중얼거렸다.

첫 번째 방에서 보였던 정보들은 단순한 환각이 아니었다. 시스템이 튜토리얼 동안 적합성을 확인하기 위해 열어 둔 기능. 그리고 방금 그중 하나가 그의 특성으로 확정됐다.

다음 메시지는 더 짧았다.

[보조 특성: 기믹 파괴(Grade A)]
[현재 숙련도: 제한]
[과도한 사용 시 근육 손상 및 감각 저하가 발생합니다.]

그제야 정강이가 욱신거렸다.

침대 다리를 걷어찼던 통증이 뒤늦게 올라왔다. 무작정 부수고 나아가면 다음 방에 도착하기 전에 몸이 먼저 망가진다.

지후는 파우치를 닫았다.

결국 기본은 같다.

보고, 해석하고, 필요한 만큼만 건드린다.

"포인트? 그거 양도돼?"

상철의 목소리가 다시 커졌다.

그는 가까이에 있던 청년의 멱살을 움켜쥐고 있었다. 청년은 입술까지 하얗게 질려 고개만 저었다.

"모, 몰라요. 저도 방금 봤어요."

"확인해. 이런 데서는 자원을 모아야 살아. 힘 있는 쪽에 몰아주는 게 맞아."

말 자체는 그럴듯했다.

극한 상황에서 자원을 흩어 놓으면 낭비가 생긴다. 통솔자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문제는 상철이 말하는 통솔이 협력이 아니라 약탈이라는 점이었다.

"놔주세요!"

젊은 여자가 끼어들었다. 긴 머리를 하나로 묶은 여자는 손끝까지 떨면서도 청년의 팔을 잡아 빼려 했다.

상철이 그녀를 밀쳤다.

여자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시끄러워. 울기만 하는 것보단 내가 낫잖아."

지후가 그제야 움직였다.

"안 됩니다."

상철의 시선이 지후에게 꽂혔다.

"뭐?"

"보상은 양도 불가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시스템은 개인 단위로 방을 배정했고, 키트도 각자 손에 직접 생성됐습니다. 등록된 사용자 외에는 정상 작동하지 않을 겁니다."

"해 봤냐?"

"그쪽은 해 봤습니까?"

짧은 정적이 생겼다.

상철의 턱 근육이 꿈틀거렸다. 지후는 물러서지 않았다. 지금 여기서 밀리면 이 남자는 다음 방에서도 사람을 소모품처럼 쓸 것이다.

사람을 구하고 싶어서만은 아니었다.

통제되지 않는 공포와 폭력은 어떤 함정보다 위험한 변수다. 그 변수를 방치하면 지후 자신의 생존율도 떨어진다.

지후는 넘어진 여자를 돌아봤다.

"괜찮습니까?"

"네. 저는... 이설아예요."

설아는 겁에 질린 눈으로도 지후의 파우치와 바닥 무늬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목소리는 떨렸지만 시선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저 통로, 아직 열리면 안 되는 거 맞죠?"

지후의 눈이 아주 잠깐 멈췄다.

"왜 그렇게 생각했습니까?"

"문 앞에 먼지가 끊겨 있어요. 다들 광장 안쪽에만 있었는데, 통로 쪽 바닥만 긁힌 자국이 많아요. 누가 이미 여러 번 지나간 것처럼."

관찰력은 있다.

공포에 몸은 굳었지만 눈은 죽지 않았다.

그 순간 광장 위 조명이 붉게 바뀌었다.

[시작의 회랑이 개방됩니다.]
[제한 시간: 05:00]
[통과 인원 미달 시 전원 감점]

검은 통로의 문이 천천히 열렸다.

"봤지? 뛰어!"

상철이 먼저 외쳤다.

몇몇이 반사적으로 통로를 향해 달렸다. 비명과 명령에 익숙해진 몸이 생각보다 먼저 움직인 것이다.

지후가 소리쳤다.

"멈춰!"

늦었다.

맨 앞에 있던 남자가 검은 타일을 밟는 순간, 천장에서 가느다란 금속음이 났다.

탁.

남자의 발목 아래 바닥이 꺼졌다. 몸이 앞으로 고꾸라지는 동시에, 허리 높이의 벽 틈에서 은색 철선이 튀어나왔다.

피가 튀었다.

남자는 목을 움켜쥐고 쓰러졌다. 철선은 목을 완전히 자르지는 못했지만, 어깨와 쇄골 사이를 깊게 갈랐다.

"뒤로 물러나!"

이번에는 다른 목소리였다.

짧은 머리의 여자가 다친 남자의 옷깃을 잡아끌었다. 움직임이 빨랐다. 겁에 질린 사람의 움직임이 아니다. 위험을 본 뒤 몸이 먼저 반응하는 사람의 움직임.

지후는 그녀가 남자를 빼내는 사이 바닥을 읽었다.

먼지의 결이 끊긴 타일.

피가 고이지 않고 가장자리 홈으로 빠지는 구조.

천장에 일정한 간격으로 박힌 검은 점.

[압력식 선별 타일: 하중 변화에 반응]
[연동 장치: 벽면 절단선]
[해제 조건: 중앙축 고정 또는 우회]

"검은 타일 밟지 마십시오. 회색 타일도 전부 안전하지 않습니다. 테두리가 젖어 보이는 건 피하세요."

"네가 뭔데 계속 지시야!"

상철이 으르렁댔다.

지후는 그를 보지도 않았다.

"살고 싶으면 듣고, 아니면 먼저 가면 됩니다."

그 말에 아무도 움직이지 못했다.

지후는 통로 옆 벽으로 붙었다. 손전등을 켜자 바닥의 높낮이가 드러났다. 검은 타일은 함정. 회색 타일은 안전.

그렇게 단순한 구조라면 좋았을 것이다.

회색 타일 세 장마다 하나씩, 압력축과 연결된 가짜 안전지대가 섞여 있었다. 만든 놈은 참가자들이 첫 번째 함정을 보고 색깔만 외우게 될 거라고 예상했다.

"한 줄로. 제가 밟는 곳만 밟으세요."

"기다려요."

다친 남자를 끌어낸 여자가 말했다.

"뒤쪽 사람들까지 한 명씩 보내면 시간이 모자라요. 제가 중간에서 끊어 보낼게요."

"이름은?"

"최정민."

"좋습니다. 정민 씨는 제가 표시한 타일에서만 사람을 넘기세요. 손을 잡아당기지 말고 어깨를 밀어서 균형만 잡아줍니다. 당기면 발이 틀어집니다."

정민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판단 속도가 마음에 들었다. 설명을 끝까지 요구하지 않고 필요한 행동만 받아 간다.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걸음.

두 걸음.

타일 아래에서 가끔 낮은 쇳소리가 났다. 잘못 밟으면 바로 작동한다는 경고음처럼 들렸다.

그때 뒤쪽에서 소란이 터졌다.

상철이 겁에 질린 남자를 앞으로 밀어붙였다.

"빨리 가! 시간 없어!"

남자가 비틀거리며 안전선 밖으로 튀어나왔다. 옆에 있던 설아가 반사적으로 그의 팔을 붙잡았다.

그리고 함께 검은 타일 위로 발을 올렸다.

철컥.

타일이 내려앉았다.

천장의 검은 점들이 한꺼번에 열렸다.

"엎드려!"

정민이 몸을 날려 설아의 어깨를 눌렀다. 짧은 쇠못들이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가 벽에 박혔다.

하지만 함정은 끝나지 않았다.

벽면의 절단선이 천천히 벌어졌다. 두 번째 철선이 장전되고 있었다.

[남은 시간: 02:11]

설아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발 하나가 타일 중앙에 고정된 채, 몸만 어정쩡하게 꺾여 있었다.

"움직이지 마세요."

지후가 말했다.

"지금 발 떼면 두 번째가 작동합니다."

"그럼 어쩌라고요!"

정민이 이를 악물었다.

지후는 파우치를 열었다.

금속 핀 세 개.

압축 붕대.

단열포.

기믹 파괴를 쓰면 빠르다. 하지만 벽을 억지로 뜯는 순간, 몸에 걸리는 부담이 얼마일지 모른다. 다음 라운드가 남아 있다.

이건 부술 장치가 아니다.

잠깐 속일 장치다.

"설아 씨. 오른발 아래에 미세하게 튀어나온 홈 느껴집니까?"

설아가 눈물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발바닥 옆에... 뭔가 걸려요."

"그걸 계속 누르고 있어요. 정민 씨, 왼쪽 벽 아래 홈에 이 핀을 꽂아 주세요. 위가 아니라 아래입니다."

지후가 금속 핀을 던졌다.

정민이 받아 벽 틈에 밀어 넣었다. 처음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그녀는 각도를 바꿨다.

끼익.

핀 하나가 안쪽으로 박히자 벽 속에서 걸쇠가 긁히는 소리가 났다.

[중앙축 고정률: 37%]

부족하다.

지후는 두 번째 핀을 던졌다.

"오른쪽 대각선. 피 묻은 홈 옆."

정민은 말없이 움직였다. 두 번째 핀이 들어갔다.

[중앙축 고정률: 71%]

철선이 벽 틈에서 반쯤 모습을 드러냈다.

지후는 붕대를 길게 풀어 설아의 허리에 던졌다.

"제가 셋을 세면 발을 떼지 말고 몸만 뒤로 기울입니다. 정민 씨가 어깨를 밀고, 제가 당깁니다."

"발을 떼지 말고 몸만요?"

"타일은 하중이 빠지는 순간 죽입니다. 넘어지는 힘으로 빼내야 합니다."

설아의 입술이 떨렸다.

그래도 그녀는 지후가 말한 홈을 밟은 발에 힘을 줬다.

"하나."

철선이 더 나왔다.

"둘."

상철이 뒤에서 욕을 내뱉었다.

"빨리 좀 해!"

지후는 무시했다.

"셋."

설아의 몸이 뒤로 꺾였다.

정민이 어깨를 밀었다. 지후가 붕대를 잡아당겼다. 설아의 발이 타일에서 떨어지는 동시에 금속 핀이 부러졌다.

촤악!

철선이 허공을 갈랐다.

설아의 운동화 끈이 깨끗하게 잘려 나갔다. 그녀는 바닥을 구르며 통로 가장자리로 빠졌고, 정민이 곧장 몸을 덮어 추가 사격을 막았다.

지후의 손바닥에서는 붕대가 쓸리며 피가 배어 나왔다.

[절대 관찰 숙련도 소폭 상승]

그는 메시지를 지웠다.

"이제 움직입니다. 더 늦으면 진짜 끝입니다."

그 뒤로 사람들은 지후가 밟는 타일만 따라왔다.

누구도 더는 색깔만 보고 발을 내딛지 않았다. 상철도 앞서 나가지 않았다. 대신 뒤에서 지후의 등을 노려보았다.

그 시선은 기억해 둘 필요가 있었다.

회랑 끝 문 앞에 도착했을 때, 전광판의 숫자는 다시 바뀌어 있었다.

[현재 생존자: 46 / 100]

두 명이 더 줄었다.

아무도 묻지 않았다.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방 안에서 죽은 자들만 참가자가 아니었다. 문과 문 사이에서도 판도라는 사람을 걸러냈다.

설아가 한쪽 운동화 끈이 잘린 채 지후 옆에 섰다.

"아까... 고맙습니다."

"고맙다는 말은 다음 방을 통과한 뒤에 해도 됩니다."

"그럼 다음 방에서도 시키는 대로 할게요."

지후는 그녀를 힐끗 봤다.

눈가는 젖어 있었지만, 시선은 도망가지 않았다.

정민이 다친 남자의 출혈을 압박하며 다가왔다.

"당신 말, 당분간은 듣죠. 대신 틀리면 바로 끊겠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지후는 정면을 보았다.

거대한 문이 열리며 차갑고 넓은 공간이 드러났다. 천장까지 닿은 책장들이 어둠 속에 줄지어 서 있었다. 책 냄새보다 먼저 금속 냄새가 났다.

입구 위에 붉은 문장이 떠올랐다.

[제1라운드: 침묵의 도서관]
[규칙은 입장 후 공개됩니다.]

지후는 바닥에 흩어진 작은 깃을 보았다.

새의 깃털이 아니었다.

화살 뒤에 달린, 아주 얇은 깃.

설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저기 들어가면... 또 죽는 거죠?"

지후는 대답 대신 손가락을 입술 앞에 세웠다.

"지금부터는 아무 말도 하지 마십시오."

광장 전체가 얼어붙었다.

그 순간 문 너머에서 맑은 종소리가 울렸다.

[입장하십시오.]

지후는 피가 밴 손을 움켜쥐고 앞으로 나아갔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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