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방을 탈출하는 법

12화: 배우를 고르는 법
[출구 검증 시작]
빛은 문처럼 보였다.
그래서 지훈은 움직이지 않았다.
커튼 아래 검은 틈에서 흘러나온 흰빛은 먼지를 밀어내지 않았다. 찬 공기도 없었다. 빛이 바닥에 닿은 가장자리는 지나치게 반듯했고 생존자들의 그림자는 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끊겼다.
출구라면 숨이 있어야 한다.
저건 아직 문이 아니었다.
빛 앞에는 검은 형체가 서 있었다. 안내원처럼 허리를 세우고 있었지만 얼굴은 없었다. 어깨와 팔만 사람의 예의를 흉내 낸 모양이었다.
그것이 박수를 멈췄다.
"관객을 보냈으니 이제 배우를 고르십시오."
목소리는 시스템 창에서 나오지 않았다.
공중 문자는 조용했다. 그런데 말은 귀 바로 옆에서 속삭이는 것처럼 가까웠다.
생존자들이 동시에 굳었다.
그 동시성이 먼저 위험했다.
지훈은 숨을 낮췄다.
실제로 본 것.
빛에는 바람이 없다. 검은 형체의 발밑에는 먼지가 없다. 박수는 커튼 안과 벽 뒤에서 따로 울렸다.
추론한 것.
검증은 끝나지 않았다.
위험으로 반응한 것.
모두가 배우라는 말을 희생자로 받아들였다.
박상철.
지훈.
교대 판정이 보류된 사람들.
시선이 사람에게 붙으려 했다.
"보지 마십시오."
지훈은 낮게 말했다.
첫 줄의 흐릿해진 지훈 인형이 입을 벌렸다.
"보지 마십시오."
객석 전체가 같은 말을 얇게 되돌렸다.
정미가 즉시 손을 들었다.
"얼굴 보지 마요. 발끝. 커튼 주름. 바닥 먼지만 봐요."
시선이 내려갔다.
흐릿한 지훈 인형의 입이 닫혔다.
박상철이 이를 악물었다.
"배우를 고르라잖아. 누굴 세우라는 거야."
"아직 모릅니다."
"또 아직이냐."
분노였지만 반복 질문은 아니었다.
인형은 따라 하지 못했다.
검은 형체가 고개를 조금 기울였다.
"선택하지 않으면 무대는 관객을 돌려받습니다."
그제야 공중에 문자가 떠올랐다.
[배우 선택 대기]
[미선택 시 관객 후방 이동 취소]
설아의 손이 잘린 운동화 끈을 더 세게 쥐었다.
도윤은 객석 뒤를 듣고 있었다. 그의 입술이 말랐다.
"목소리 아래에 다른 소리가 있어요."
"위치만."
"빛 앞에서 말하는 것처럼 들리는데 끝은 객석 천장 쪽으로 올라가요. 박수도 하나가 아니에요."
"몇 겹입니까."
"가까운 박수 하나. 벽 뒤 박수 하나."
벽 뒤.
지훈은 그 말을 잡아 두었다.
누군가 개입하고 있다.
하지만 그 결론을 말하지 않았다. 이 방은 결론을 훔친다. 말해야 하는 것은 단서뿐이었다.
"정미 씨. 줄 유지."
"보는 줄. 듣는 줄. 움직이지 않는 줄 그대로."
"네."
정미가 사람들의 어깨와 발끝을 다시 맞췄다. 보는 줄은 커튼 주름만 보았다. 듣는 줄은 도윤의 어깨와 바닥을 보았다. 움직이지 않는 줄은 앞사람의 발뒤꿈치에 시선을 묶었다.
지훈은 설아를 보지 않고 말했다.
"설아 씨. 빛 앞 바닥을 확인해 주세요."
설아가 무릎을 낮췄다.
그녀는 끈 끝을 커튼 아래로 밀었다. 끈은 빛 가장자리에서 멈췄다. 사라지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벽에 닿은 것처럼 납작하게 눌렸다가 퉁겨 나왔다.
"막이에요."
설아가 말했다.
"유리입니까."
"아니요. 끈은 닿는데 그림자가 안 생겨요. 보는 쪽만 막힌 것 같아요."
그녀는 공포를 설명하지 않았다.
본 것을 말했다.
검은 형체가 다시 손을 모았다.
[검증 잔여 시간: 02:40]
"배우를 고르십시오."
이번에는 생존자들 사이에서 속삭임이 먼저 새었다.
"저 사람을 보내."
"교대 걸렸던 쪽이잖아."
"지훈 씨가 가면 열리는 거 아니야?"
시선이 다시 올라오려 했다.
흐릿한 지훈 인형의 얼굴에 색이 아주 조금 돌아왔다.
[대상 의존 반응 재상승]
지훈은 답하지 않았다.
정미가 사람들 사이를 낮게 가르며 말했다.
"후보 말하지 마요. 이름 금지. 얼굴 확인 금지."
박상철이 거칠게 숨을 뱉었다.
"이름도 못 부르면 뭘 하라는 건데."
"살라는 겁니다."
정미의 말은 짧았다.
인형은 따라 하지 못했다.
도윤이 고개를 기울였다.
"말하기 전에 박수가 먼저 나요. 벽 뒤 박수가 신호예요."
지훈은 커튼 아래의 빛을 보았다.
관객을 보냈으니 배우를 고르라.
극장은 관객과 배우로 완성된다.
하지만 판도라가 원하는 배우가 실제 사람이라면 너무 곧다. 이 방은 사람을 죽이기 위해 규칙을 세운 것이 아니라 사람이 죽을 방향으로 스스로 반응하게 만들었다.
관객은 공포를 받을 표면이 필요하다.
생존자가 아니라 반응을 받을 껍데기.
지훈은 첫 줄의 흐릿한 자기 인형을 보았다.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닿을 때마다 색을 조금 되찾고 있었다.
무대 바닥에는 회색 천 조각도 남아 있었다.
박상철 대역이 무너진 자리에서 떨어진 천이었다.
지훈은 결론을 말하지 않았다.
"설아 씨. 첫 줄 인형 발밑의 천 조각을 끈으로 당길 수 있습니까."
"해 볼게요."
"도윤 씨. 박수 시작점."
"객석 뒤 왼쪽 벽 안쪽."
"정미 씨. 보는 줄은 천만 봅니다. 사람 얼굴이 아니라 천이 움직이는지만."
박상철이 낮게 말했다.
"사람 대신 인형을 세우겠다는 거냐."
첫 줄 인형의 입이 벌어졌다.
박상철은 바로 말을 바꿨다.
"됐어. 개 같은 연극이나 해."
반복되지 않는 말.
인형의 입 안이 비었다.
설아의 끈이 객석 첫 줄로 날아갔다. 끈 끝이 흐릿한 지훈 인형 발 아래를 스쳤다. 인형은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바닥에 붙어 있던 회색 천 조각이 조금 들렸다.
그 순간 객석 뒤 왼쪽에서 박수가 났다.
도윤이 말했다.
"지금."
정미가 손을 열었다.
"보는 줄. 천만."
시선이 천 조각에 닿았다.
듣는 줄은 도윤의 목소리만 들었다.
움직이지 않는 줄은 발을 떼지 않았다.
천 조각이 사람 어깨처럼 부풀었다.
흐릿한 지훈 인형의 얼굴이 그 위로 흘러내렸다. 지훈의 얼굴도 아니고 박상철의 얼굴도 아닌 빈 표정이 생겼다. 누군가가 겁먹기를 기다리는 표정이었다.
검은 형체가 처음으로 멈췄다.
[배우 후보 감지]
[생체 반응 없음]
"배우를 고르십시오."
같은 말이었다.
하지만 시스템 문자가 늦었다.
아주 조금.
지훈은 그 늦음을 보았다.
목소리가 먼저이고 시스템이 뒤였다.
"배우가 생체여야 한다는 규칙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지훈은 확인하듯 말했다.
인형은 따라 하지 못했다.
정답 선언이 아니라 빈칸 확인이었다.
공중 문자가 깨졌다가 다시 붙었다.
[배우 조건 확인]
[관객 반응 수용체 필요]
도윤이 숨을 멈추려다 멈추지 않았다.
정미가 눈만 움직여 그를 눌렀다.
설아가 끈을 다시 당겼다. 천으로 만든 가짜 배우가 빛 앞으로 미끄러졌다. 빛은 여전히 막이었다. 그러나 가짜 배우가 그 앞에 서자 가장자리가 물결처럼 흔들렸다.
검은 형체의 팔이 길어졌다.
"관객은 살아 있는 배우를 원합니다."
그 말에 몇 명이 흔들렸다.
박상철이 지훈을 보려다 멈췄다.
시선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럼 굶어."
검은 형체의 고개가 박상철 쪽으로 돌아갔다.
박상철의 어깨가 굳었다.
지훈은 말하려다 멈췄다.
살아 있는 배우가 아니라 살아 있는 반응.
그 말을 그가 하면 인형이 훔친다.
설아가 먼저 움직였다.
그녀는 자기 손등을 꼬집었다. 아주 작게 숨을 들이켰다. 공포가 아니라 통증으로 생긴 반응이었다.
"반응만 있으면 돼요."
설아가 말했다.
인형은 따라 하지 못했다.
도윤이 바로 받았다.
"박수 위치 바뀌었어요. 벽 뒤가 아니라 빛 위."
정미가 보는 줄을 멈췄다.
"아직."
설아는 끈을 놓지 않았다. 손등의 통증으로 생긴 떨림이 끈을 타고 천 조각까지 전해졌다. 가짜 배우의 어깨가 살아 있는 사람처럼 아주 작게 흔들렸다.
지훈은 마지막으로 틀림 여부만 보았다.
실제로 본 것.
가짜 배우는 빛 앞에서 그림자를 만든다. 생존자들은 사람 얼굴을 보지 않는다. 설아의 통증 반응은 같은 공포로 묶이지 않는다.
추론한 것.
배우 조건은 생존자 한 명이 아니라 관객 반응을 받을 표면이다.
위험으로 반응한 것.
지금 말하면 빼앗긴다.
지훈은 손바닥만 폈다.
정미가 이해했다.
"지금."
보는 줄이 가짜 배우를 보았다.
듣는 줄은 박수가 아니라 도윤의 숨을 들었다.
움직이지 않는 줄은 앞사람의 발뒤꿈치만 보았다.
설아가 끈을 놓았다.
가짜 배우가 빛 속으로 한 걸음 밀려 들어갔다.
이번에는 막히지 않았다.
빛이 천을 삼켰다.
검은 형체가 뒤로 밀렸다. 어깨가 접히고 팔이 끊긴 줄처럼 흔들렸다. 얼굴 없는 머리에서 여러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중 하나는 낯선 남자의 목소리였다.
"해설자를 너무 일찍 세웠군."
지훈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해설자.
그 단어는 시스템 창에 뜨지 않았다.
[배우 선택 완료]
[출구 검증 통과]
[제3라운드: 공포의 인형극 클리어]
객석 인형들의 머리가 동시에 숙여졌다.
박수는 멎었다.
그런데 벽 뒤에서 한 번 더 소리가 났다.
아까와 다른 박수.
사람이 손으로 친 박수였다.
도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방 안이 아니에요."
그가 말했다.
"벽 뒤에 누가 있어요."
빛이 이번에는 문이 되었다.
바닥 먼지가 그쪽으로 빨려 갔다. 커튼 아래에서 찬 공기가 흘러나왔다. 검은 틈 안쪽에 좁은 복도가 생겼다.
정미가 생존자들을 움직였다.
"줄 유지. 뛰지 마요."
사람들이 하나씩 빛 안으로 들어갔다.
박상철은 지나가며 객석을 보려다 멈췄다.
"안 본다."
그는 누구에게 말하는지 모를 말을 남기고 복도로 들어갔다.
설아가 지훈 옆에 섰다.
그녀는 지훈을 보지 않았다.
"오빠. 방금 그 목소리..."
"기억만 하십시오."
"시스템이 아니었죠."
지훈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대답이었다.
마지막으로 지훈이 커튼 뒤를 통과하려는 순간 공중에 작은 문자가 떠올랐다.
[생존자 수: 45 / 100]
[다음 구역: 회복 대기실]
[주의: 회복 순서는 참가자 합의로 결정됩니다.]
회복.
그 단어에 사람들의 어깨가 동시에 움직였다.
지훈은 그 반응을 보았다.
방은 끝났지만 같은 방향으로 몰리는 욕구는 끝나지 않았다.
누가 먼저 쉬는가.
누가 아직 버틸 수 있는가.
누가 지훈의 말을 기다리는가.
그 질문들이 다음 문 안쪽에서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지훈은 빛 속으로 발을 들였다.
출구가 닫히기 직전.
벽 뒤의 낯선 목소리가 아주 낮게 웃었다.
"다음에는 누가 먼저 쉬는지 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