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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의 등선자(登仙者)5화

출근길의 등선자(登仙者)

출근길의 등선자(登仙者)

5화: 무게를 읽는 눈

후보패는 해가 높이 떠도 손바닥에서 식지 않았다.

한리는 영로원 우물가에 앉아 찢어진 어깨 옷을 다시 묶었다. 아랫배에서는 가느다란 기운이 한 바퀴를 돌고 있었지만 팔을 들 때마다 흐름이 흔들렸다. 경지 하나를 얻었다고 몸이 새로 생긴 것은 아니었다.

조 집사가 장부를 덮었다.

"후보가 됐다고 네 몫의 일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알고 있습니다."

"맹수원에 철목 먹이 상자 세 개를 보내라. 해 지기 전까지다. 끝내지 못하면 네 후보패도 다시 생각하겠다."

마당 한쪽에 놓인 상자들은 젖은 철목으로 짜여 있었다. 하나만 해도 두 팔로 감싸기 어려웠다. 한리는 어깨 상처를 누르며 상자와 조 집사를 번갈아 보았다.

"혼자 옮기라는 뜻입니까?"

"맹수원 후보가 하나 있다. 왕력이다. 같이 움직여라."

이름을 듣는 순간 후보패 위로 푸른 글자가 겹쳤다.

`Entity Search: 왕력`

`질량 반응: 범위 외`

`권장: 정면 충돌 금지`

조 집사는 한리의 굳은 표정을 보고도 설명을 보태지 않았다.

"경합장은 힘만 보는 곳이 아니다. 맡은 일을 끝내는 놈이 선다."

한리는 패를 품에 넣었다. 그 말은 격려가 아니라 조건이었다. 그래도 조건이 보이는 일은 할 수 있었다.

맹수원으로 향하는 산길은 영로원보다 거칠었다. 짐승의 땀과 날고기의 비린내가 바람에 섞여 코를 찔렀다. 굵은 통나무 울타리 안에서는 무언가가 발톱으로 흙을 긁었다.

"거기 세워."

낮고 굵은 목소리가 울타리 너머에서 들렸다.

문을 밀고 나온 소년은 한리보다 머리 하나 반은 컸다. 낡은 가죽 조끼 아래로 팔뚝이 굵게 솟아 있었고 어깨에는 막 자른 통나무 하나가 걸쳐져 있었다.

그가 통나무를 내려놓자 흙이 둔탁하게 꺼졌다.

`Entity: 왕력`

`추정 질량: 112.8kg`

`근력 출력: 현 측정 범위 초과`

`무게 중심: 전방 4도`

`충격 전달 경로: 오른발 → 골반 → 오른팔`

한리는 숨을 삼켰다. 공격 방향만 보여 주던 로그가 왕력의 몸을 선과 점으로 나눠 놓았다. 힘의 크기만이 아니라 그 힘이 어디서 시작해 어디로 빠지는지까지 보였다.

왕력이 한리를 위아래로 훑었다.

"영로원 후보가 너냐?"

"한리입니다."

"나는 왕력이다. 상자만 놓고 돌아가도 된다. 여기 일은 약한 놈이 끼면 더 느려진다."

말은 거칠었지만 비웃는 눈은 아니었다. 왕력은 울타리 안을 힐끗 봤다. 어린 잡역 하나가 먹이통을 닦다가 산철호의 울음에 움찔하고 있었다.

왕력은 아이에게 손짓했다.

"문에서 떨어져 있어. 내가 올 때까지 쇠사슬 손대지 마라."

한리는 상자 끈을 놓지 않았다.

"조 집사님 명령입니다. 같이 끝내겠습니다."

"쓰러지면 내가 네 몫까지 든다. 그 시간은 네가 책임져라."

첫 상자 앞에 선 한리는 두 손으로 밑을 잡고 허리를 폈다. 상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팔에 힘을 주자 어깨 상처가 타들어 갔고 하단전의 기운도 엉켰다.

`Object: 철목 먹이 상자`

`추정 질량: 86.1kg`

`현재 들어 올림 각도: 비효율`

`위험: 좌측 어깨 손상 71%`

`권장: 하단 받침 회전 후 경사 이동`

한리는 손을 뗐다.

"벌써 끝났냐."

"드는 게 아니라 굴리겠습니다."

그는 주변의 둥근 장작 두 개를 끌어왔다. 상자 앞쪽을 돌에 걸쳐 아주 조금 들어 올린 뒤 장작을 밑으로 밀어 넣었다. 모서리를 비틀자 상자가 삐걱대며 앞으로 굴렀다.

왕력은 가죽 끈으로 상자가 넘어지지 않게 잡았다. 그는 한리의 손과 장작을 번갈아 보았다.

"그렇게 하면 손이 덜 가나?"

"제 손에는 그렇습니다."

"그 손으로 경합에 나가겠다고?"

한리는 상자를 밀며 대답했다.

"그래서 손 말고 다른 걸 찾는 중입니다."

왕력은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두 번째 상자를 혼자 어깨에 멨다. 세 번째 상자는 한리가 장작을 바꿔 끼우고 왕력이 뒤에서 밀며 산길 중턱까지 옮겼다.

그곳에는 낡은 수레가 기다리고 있었다. 수레 너머의 큰 우리에서는 회색 줄무늬가 철창 사이를 오갔다. 산철호였다. 문짝에는 세 줄의 쇠사슬이 감겨 있었지만 안쪽 짐승이 몸을 부딪힐 때마다 경첩이 비명을 질렀다.

"먹이 늦으면 문을 더 친다. 가까이 가지 마."

왕력이 말했다.

한리는 수레 위에 첫 상자를 올리려다 멈췄다. 오른쪽 바퀴 아래 흙이 축축하게 무너져 있었다. 눈앞에 로그가 열렸다.

`경사 하중: 임계 근접`

`예상 이동: 후방 우측 이탈`

`우리 문 충돌 확률: 68%`

"잠깐요."

왕력은 이미 상자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시간 없다."

"오른쪽 바퀴가 빠집니다. 상자를 올리면 수레가 우리 문으로 밀립니다."

왕력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흙을 보고 알았다고?"

"지금은 믿든 말든 상관없습니다. 왼쪽부터 받치십시오."

산철호가 문을 들이받았다. 쇠사슬 하나가 팽팽하게 당겨졌다. 울타리 안의 어린 잡역이 뒤로 넘어지며 숨을 삼켰다.

왕력은 짧게 욕설을 삼켰다. 그는 곁의 돌을 들어 왼쪽 바퀴 앞에 박았다.

"네가 오른쪽에 쐐기 넣어."

한리는 바퀴 쪽으로 몸을 던졌다. 진흙이 발목까지 푹 꺼졌다. 뒤에서 왕력이 상자를 든 채 버티는 소리가 들렸다.

`충격 전달 경로: 왕력 오른발 → 골반`

`관절 부담: 우측 발목 83%`

`경고: 추가 하중 시 지지 실패 가능`

한리는 쐐기를 밀어 넣으며 외쳤다.

"오른발을 빼고 왼발로 버티십시오!"

"내 발을 네가 뭘 안다고!"

"지금 버티면 발목이 꺾입니다!"

왕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러나 산철호가 다시 문을 치는 순간 그는 오른발을 반 걸음 뺐다.

상자의 무게가 왼쪽으로 기울었다. 한리는 쐐기를 끝까지 밀어 넣었다. 수레가 크게 흔들렸지만 오른쪽 바퀴는 진흙에 빠지지 않았다. 우리 문도 제자리를 지켰다.

왕력은 상자를 수레 위에 내려놓고 두 걸음 물러났다. 그의 오른쪽 발목이 아주 잠깐 떨렸다.

한리는 그 떨림을 보지 못한 척 진흙을 털었다. 남의 상처를 경합장의 답안처럼 꺼내는 순간 신뢰도 끝난다. 그 약점은 지금 그를 살리는 데만 쓰면 됐다.

"어떻게 알았지."

"무게가 어디로 빠지는지 봤습니다."

"그걸 눈으로 봤다고?"

"당신이 상자를 들 때 오른발부터 버텼습니다. 바퀴도 같은 쪽으로 밀렸고요."

왕력은 한참 말이 없었다.

"내 발목 얘기는 하지 마라."

"하지 않겠습니다."

"경합장에서도 그걸 이용할 생각이면 접어라."

한리는 고개를 들었다.

"이용할 수 있을 만큼 제가 강하지 않습니다."

왕력의 입가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그건 맞네."

그 뒤 왕력은 한리에게 남은 끈을 넘기지 않았다. 한리는 바퀴 옆을 걸으며 쐐기와 경사를 살폈고 왕력은 수레를 끌었다. 둘은 말없이 먹이 상자를 우리 안쪽 투입구까지 옮겼다.

고기 냄새가 퍼지자 산철호의 울음은 낮아졌다. 어린 잡역이 문 밖에서 고개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왕력은 손을 내저었다.

"다음에는 바퀴부터 확인해. 네가 다치면 먹이통은 누가 닦냐."

해가 기울 무렵 왕력은 빈 수레를 돌리며 말했다.

"내일 해 질 무렵 연무장에 나와라."

"왜입니까?"

"네 눈이 어디까지 보는지 확인하자."

그는 돌아보지 않은 채 덧붙였다.

"경합장에서는 봐주지 않는다."

한리는 후보패가 있는 품을 눌렀다.

"저도 봐달라고 하지 않겠습니다."

영로원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는 산길 진흙에 남은 발자국을 내려다봤다. 왕력의 오른발 자국은 늘 반 치쯤 깊었다. 상자를 들 때마다 왼쪽 발자국은 늦게 따라왔다.

`Physical Analysis: 관측 기록 저장`

`왕력 중심 전환 오차: 0.47초`

`현재 대응 권장: 회피`

`학습 제안: 반복 궤적 관측`

힘을 이길 수 없다면 힘이 지나가는 길을 읽어야 한다.

하지만 읽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 길이 바뀌기 전에 몸을 움직여야 했다.

한리는 허리춤의 가는 밧줄을 풀었다. 산길의 나무 사이에 밧줄을 걸고 왕력의 발자국 간격을 따라 한 걸음씩 옮겼다.

첫 걸음에 발이 걸렸다. 두 번째에는 어깨 상처가 당겼다. 그래도 그는 밧줄을 다시 팽팽하게 묶었다.

밧줄이 흔들리는 폭을 보며 왕력의 어깨가 기울던 순간을 떠올렸다. 오른발이 땅을 누른 뒤 골반이 따라 돌고 팔이 늦게 나왔다. 고작 반 박자도 안 되는 틈이었다.

그 반 박자 안에 한리는 세 걸음을 옮겨야 했다. 지금의 몸으로는 검을 뽑을 시간도 없었다. 피하고 다시 거리를 만드는 것부터 몸에 새겨야 한다.

그는 발끝으로 흙에 짧은 선을 그었다. 선 하나는 왕력의 발자국 간격이었다. 다른 하나는 자신이 물러설 자리였다. 선을 밟지 않고 넘어가는 데만 세 번 실패한 뒤에야 한리는 겨우 호흡을 고르게 만들었다.

내일 연무장에 서기 전까지는 피하는 법부터 배울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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