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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의 등선자(登仙者)2화

출근길의 등선자(登仙者)

출근길의 등선자(登仙者)

2화: 밤새 깨어난 밭

한리는 해가 완전히 떨어진 뒤에도 밭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숙소로 돌아가 봐야 찢어진 등은 더 쑤실 것이고 빈속은 더 시끄러워질 뿐이었다. 마삼이 남긴 협박은 어둠보다 짙게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청심초 스무 뿌리.

하나라도 모자라면 등가죽으로 거름을 만들겠다.

조잡한 말이었다. 그런데 이 몸은 그 말을 진짜 죽음처럼 기억했다. 한리의 손끝이 저절로 떨렸다.

강우는 그 떨림을 억지로 멈추려 하지 않았다.

겁을 먹은 상태에서 일하는 법은 알고 있었다. 숨을 길게 뱉고 문제를 쪼갠다. 감정은 옆에 두고 원인부터 분류한다.

그는 밭고랑 옆에 쪼그려 앉아 청심초 한 뿌리에 손을 얹었다.

`Object: 청심초_뿌리_21`

`수분 통로: 부분 막힘`

`영기 패킷 흐름: 22.4%`

`뿌리 압력: 불안정`

푸른 글자가 어둠 속에서 선명하게 떠올랐다.

한리는 손가락으로 흙 위에 짧은 선을 그었다.

물길 막힘.

뿌리 압력 불안정.

영기 흐름 저하.

그늘 과다.

글자를 적을 종이는 없었다. 그래도 머릿속에서는 보고서 표처럼 항목이 나뉘었다.

두 번째 청심초는 잎끝이 검었다.

`영양 균형: 낮음`

`그늘 지수: 과다`

세 번째는 줄기가 비틀렸다.

`뿌리 압력 불일치`

네 번째도 같았다. 다섯 번째도 비슷했다.

한리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개별 청심초의 문제가 아니었다.

밭 전체가 한쪽으로 눌려 있었다. 물도 영기도 들어와야 할 곳에서 막힌 채 가장 약한 뿌리부터 말라 죽고 있었다.

숙소 쪽에서 잡역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폐물이 밤새 밭을 지킨다고 뭐가 달라지냐."

"내일 아침이면 또 처맞고 기절하겠지."

한리는 대꾸하지 않았다. 비웃음은 데이터가 아니었다. 쓸모없는 소리는 처리 우선순위에서 지우면 된다.

그는 밭 아래쪽 도랑으로 내려갔다. 다리를 옮길 때마다 등 상처가 욱신거렸다. 몸은 자꾸 눕자고 했다. 배 속은 비어 있었고 손목에는 힘이 없었다.

그래도 손은 멈추지 않았다.

도랑 바닥에 손을 넣자 차가운 진흙이 손톱 밑으로 파고들었다. 그는 썩은 뿌리와 작은 돌이 엉킨 곳을 더듬었다. 손끝에 딱딱한 매듭이 걸렸다.

푸른 창이 다시 열렸다.

`Cluster Object: 청심초_밭_C`

`주 수분 경로: 폐색`

`Batch Sync: 18.9%`

`예상 수확량: 13/20`

군락 단위 표시였다.

한리는 짧게 숨을 삼켰다. 여러 뿌리의 로그가 겹치자 전체 병목이 드러난 것이다. 이 창은 답을 대신 내주지 않았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한리는 돌을 단번에 빼내지 않았다. 막힌 곳을 한 번에 뚫으면 고인 물이 밀려들어 약한 뿌리부터 뽑혀 나갈 수 있었다.

그는 마른 가지를 꺾어 도랑 안쪽에 박았다. 물길을 세 갈래로 나누고 썩은 뿌리를 조금씩 끊어 냈다. 손끝에 피가 섞였지만 물은 천천히 흐르기 시작했다.

`주 수분 경로: 회복 중`

`Batch Sync: 24.6%`

`예상 수확량: 16/20`

아직 부족했다.

한리는 몸을 돌려 밭 가장자리의 큰 잡초를 잘라 냈다. 넓은 잎이 청심초 위를 덮고 있었다. 그늘을 걷어 내자 새벽 전의 흐린 빛이 잎맥 위로 내려앉았다.

그때 시야 아래에 다른 메시지가 떠올랐다.

`Host Scan: 한리`

`생명력: 낮음`

`Critical Error: 하단전 관문 주소 충돌`

`Patch 후보: Force Release`

한리의 손이 멈췄다.

아랫배 깊은 곳이 바늘로 찌르는 듯 욱신거렸다. 이 몸이 삼 년 동안 기를 느끼지 못했던 자리였다. 폐물이라는 이름이 박힌 곳.

강제 해제.

이걸 누르면 달라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음 줄이 바로 이어졌다.

`제한 조건: 미충족`

`경고: 강제 해제 시 경락 파열 가능`

한리는 입술을 비틀었다.

"조건 미충족 배포는 장애지."

작은 목소리는 밤공기 속에 묻혔다.

그는 손을 아랫배에서 떼었다. 지금 무리하게 경락을 건드리면 살아남는 게 아니라 망가진다.

오늘의 목표는 각성이 아니었다.

아침까지 스무 뿌리.

한리는 다시 흙을 팠다.

새벽빛이 산등성이 너머로 번질 때쯤 청심초 잎에 이슬이 맺혔다. 물길은 느리지만 끊기지 않고 돌았다. 한리는 손바닥으로 물을 받아 한 뿌리씩 나눠 주었다. 흙을 너무 깊게 파지 않고 표면만 풀었다.

`Batch Sync: 31.2%`

`예상 수확량: 19/20`

한 뿌리 부족.

한리는 이를 악물었다. 숨이 목 안에서 거칠게 긁혔다. 몸은 이미 한계였다. 그래도 스무 뿌리와 열아홉 뿌리는 완전히 달랐다.

열아홉은 실패였다.

그는 밭 끝의 거의 죽어 가던 청심초 앞에 앉았다.

`Object: 청심초_뿌리_04`

`영양 균형: 고갈`

`그늘 지수: 과다`

`뿌리 압력: 붕괴`

무리해서 뽑으면 끝이었다.

한리는 주변 흙을 손끝으로 아주 얇게 긁었다. 뿌리 위를 누르던 딱딱한 막을 깨고 옆 도랑의 물을 손바닥 한 번 분량만 흘렸다. 넓은 잡초 잎을 걷자 빛이 들어왔다.

청심초의 잎끝이 미세하게 펴졌다.

`예상 수확량: 21/20`

한리는 그 자리에서 눈을 감았다.

성공이 아니라 기준선 통과였다. 이 정도로는 마삼이 물러나지 않는다.

공개 검수.

그는 해가 뜰 때까지 밭을 떠나지 않았다.

아침 종이 울리자 잡역들이 밭으로 몰려왔다. 마삼은 가장 늦게 나타났지만 누구보다 크게 웃었다.

"살아 있었네."

한리는 허리를 숙였다.

"청심초를 뽑겠습니다."

"뽑아? 네가?"

마삼은 주변을 둘러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들었냐. 폐물 한리가 청심초 스무 뿌리를 채운다신다."

잡역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졌다.

그때 창고 쪽에서 회색 도포를 입은 중년 사내가 걸어왔다.

"아침부터 무슨 소란이냐."

웃음이 단번에 잦아들었다.

조 집사.

영로원의 수확 장부를 관리하는 자였다. 회초리를 들지는 않았지만 굶길 사람과 먹일 사람을 정하는 쪽에 가까웠다.

마삼의 얼굴이 굳었다가 바로 풀렸다.

"조 집사님. 한리가 제 밭에서 스무 뿌리를 넘긴다기에 검수하려던 참입니다."

말끝이 부드러웠지만 속뜻은 뻔했다.

한리는 밭으로 들어갔다.

첫 청심초의 줄기를 잡았다. 무리하게 당기면 뿌리가 찢어진다. 그는 손가락에 힘을 빼고 줄기 밑동을 살짝 흔들었다.

`뽑는 각도: 왼쪽 17도`

왼쪽으로 조금.

흙이 부드럽게 갈라졌다. 청심초가 뿌리 잔털까지 붙은 채 올라왔다. 잎은 완벽하지 않았지만 수확 기준은 넘었다.

둘.

셋.

다섯.

열.

잡역들의 표정이 바뀌기 시작했다.

마삼의 입가도 굳었다.

한리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같은 방식으로 뿌리를 살리고 각도를 맞췄다. 밭 아래쪽까지 물기가 살아 있었다.

스무 번째 청심초가 올라왔을 때 조 집사가 직접 다가왔다.

그는 뿌리를 들어 냄새를 맡고 잔털을 살폈다.

"상처가 적군. 약수를 쓴 흔적도 없다."

마삼이 다급히 끼어들었다.

"밤새 남의 밭에서 옮겼을 수도 있습니다. 저놈이 원래 잔꾀는 있습니다."

한리는 고개를 들었다.

"옮겨 심은 뿌리는 흙 색이 다릅니다. 집사님께서 보시면 바로 아실 겁니다."

조 집사의 눈이 청심초 더미와 밭고랑을 오갔다. 방금 뽑은 뿌리의 흙은 밭의 젖은 흙과 같은 색이었다.

"계속 뽑아라."

"예."

한리는 다시 몸을 낮췄다.

스물하나.

스물다섯.

서른.

잡역들은 더 이상 웃지 않았다. 누군가는 입을 벌린 채 밭을 바라보았다. 누군가는 자기 밭의 시든 청심초와 한리의 밭을 번갈아 보았다.

마삼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수확 개수: 40`

`추가 성장률: 200%`

마흔 번째 청심초를 내려놓는 순간 마삼이 버럭 소리쳤다.

"허튼수작이다!"

그의 손이 회초리로 향했다.

`Entity: 마삼`

`적대 수치: 83%`

`공격 방향: 오른손`

한리는 반 발 뒤로 물러났다.

동시에 발끝을 일부러 흙더미에 걸었다. 몸이 휘청이며 옆으로 무너졌다. 회초리는 한리가 있던 자리 대신 조 집사의 눈앞 허공을 갈랐다.

공기가 얼어붙었다.

조 집사의 시선이 마삼에게 꽂혔다.

"검수 중에 손을 쓰려 했느냐."

마삼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

"아닙니다. 이놈이 먼저 이상한 짓을..."

"장부에는 청심초 마흔 뿌리로 기록한다."

조 집사가 말을 끊었다.

마삼은 입을 다물었다.

조 집사는 한리를 내려다보았다.

"너. 이름이 한리였지."

"예."

"오늘 저녁까지 남은 줄기도 살려 보아라. 내일 다시 보겠다."

명령이었다. 동시에 기회였다.

한리는 땅에 엎드린 채 고개를 숙였다.

"하겠습니다."

마삼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한리를 스쳐 지나가는 눈빛에는 공개적으로 맞은 수치심이 들끓고 있었다.

그날 낮 한리는 묽은 죽 한 그릇을 받았다.

보상이라고 부르기에는 초라했다. 그래도 한리의 몸은 그 죽을 절실하게 받아들였다. 한 숟가락씩 삼키자 손 떨림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목 안으로 미지근한 곡물이 넘어갔다. 살아 있다는 감각이 뒤늦게 돌아왔다.

그때 시야 아래에 로그가 열렸다.

`Host Scan: 한리`

`생명력: 회복 중`

`영기 패킷 노출: 최소`

`제한 조건: 일부 충족`

`하단전 관문 주소 충돌: 대기 중`

한리는 숟가락을 멈췄다.

부분 충족.

아직은 안 된다. 하지만 영원히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수확량을 올렸고 공개 구타를 피했다. 죽도 얻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밭이 아니라 이 몸 깊은 곳에 있었다.

폐물로 남아 있는 한 마삼 같은 자는 계속 나타난다. 장소와 이름만 바뀔 뿐이다.

한리는 빈 그릇을 내려놓고 아랫배 위에 손을 얹었다.

푸른 글자가 조용히 깜빡였다.

`Force Release: 대기`

그는 천천히 숨을 골랐다.

"다음은 너다."

청심초 밭 너머로 창명종의 산문이 흐릿하게 빛났다. 한리는 그 빛을 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자기 몸 안쪽에 박힌 오류에 머물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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