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 없이 세계 최강 네크로맨서

2화: 정교한 톱니바퀴
카엘은 밀폐 통의 잠금쇠를 눌렀다.
까마귀 사체에서 떨어진 검은 체액은 유리관 안쪽에서 천천히 굳고 있었다. 정제액이 오염원을 감싸자 바닥 룬이 낮게 빛났다. 깨끗한 금속 바닥 위에 남은 것은 라벤더와 알코올 냄새뿐이었다.
그제야 카엘은 장갑을 벗었다.
안쪽 장갑까지 버린 뒤 새 장갑을 끼우는 동안 아무도 말을 하지 못했다. 소형 은합금 인형은 작업대 위의 원형 룬 중앙에 멈춰 있었다. 세 걸음. 사환술학과 기본 평가가 요구한 바로 그 조건이었다.
모르가트 교수는 명부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검증은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카엘이 말했다.
교수의 눈썹이 꿈틀했다.
"끝난 것은 네 완구 시연이다."
"지정 원 안에서 정지했습니다. 사체 손상률은 없습니다. 오염도 없습니다."
"그것이 사환술인지 장치술인지 판단하는 일은 내 권한이다."
바르토스가 낮게 웃었다.
"교수님께서 관대하시군. 나라면 이미 문밖으로 끌어냈을 텐데."
그의 시선은 작업대 뒤편에 세워진 여성형 프레임에 꽂혀 있었다. 은과 강철로 된 흉갑은 반쯤 열려 있었고 손가락 관절에는 아직 고정핀이 남아 있었다. 빈 눈구멍 깊은 곳에서 희미한 빛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바르토스의 웃음이 조금 얇아졌다.
"저것이 네가 말한 다음 실험인가."
"그렇습니다."
"장식용 갑옷에 로엔의 이름을 걸었다면 아버지께서도 웃으시겠군."
실습생들은 웃지 못했다. 청동 방어 인형 세 구가 까마귀 사체를 해체하던 움직임이 아직 눈앞에 남아 있었다. 더구나 공방은 실습동과 달랐다. 피비린내가 없고 녹슨 사슬도 없었다. 대신 선반마다 정렬된 렌즈와 조각칼과 코어가 차갑게 빛났다.
모르가트 교수가 막대를 들어 프레임을 가리켰다.
"카엘 로엔. 소형 인형의 결과는 보류하겠다."
"보류입니까."
"인정이 아니다. 네가 주장하는 방식이 사환술인지 확인할 유예다. 한 시간 안에 저 대형 매개체에서 의미 있는 반응을 끌어내라. 실패하면 오늘 날짜로 낙제 처리한다."
카엘은 벽시계를 보았다.
긴 바늘이 위생실처럼 깨끗한 침묵 속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충분합니다."
바르토스가 손가락에 검은 은실을 감았다.
"허세는 어릴 때부터 고치지 못했군."
"허세가 아닙니다."
카엘은 여성형 프레임 앞으로 걸어갔다.
"세척이 끝난 공방에서 한 시간이면 썩은 토끼 한 마리를 어설프게 세우는 시간보다 훨씬 생산적입니다."
그는 흉갑을 열었다.
검푸른 마나 코어가 드러났다. 코어 주변의 은선은 심장 혈관처럼 퍼져 있었고 그 끝마다 아직 닫히지 않은 룬 자리가 남아 있었다. 척추축을 따라 늘어선 톱니바퀴는 보석 세공품처럼 작았다. 손목 안쪽에는 머리카락보다 얇은 홈이 겹겹이 비어 있었다.
모르가트 교수의 시선이 그 홈에 머물렀다.
"감각로인가."
"처음 보시는군요."
"연금학과에서나 쓰는 용어다."
"사체 근육을 쓰지 않으면 전부 다른 학과로 밀어낼 생각이십니까."
카엘은 확대 렌즈를 내렸다.
"죽은 살의 잔류 반응에 명령을 욱여넣는 일보다 어렵다는 이유로요."
공방이 얼어붙었다.
모르가트 교수의 입술이 굳었다. 바르토스의 손가락에 감긴 은실이 아주 조금 팽팽해졌다.
카엘은 더 말하지 않았다.
조각칼 끝이 흉갑 안쪽을 스쳤다. 은빛 선 하나가 열렸다. 주문문처럼 보였지만 읽는 자는 없었다. 문자는 뜻을 전달하지 않았다. 길을 만들었다.
칼끝이 손가락 관절판으로 옮겨 갔다.
첫 번째 선은 검지의 굽힘을 맡았다. 두 번째 선은 중지와 약지의 힘을 나눴다. 세 번째 선은 손목축의 회전을 흉갑 코어와 연결했다. 실습생 하나가 자기도 모르게 앞으로 다가섰다가 조교에게 소매를 잡혔다.
찰칵.
카엘이 척추축의 태엽을 한 칸 감았다.
찰칵. 찰칵.
작은 소리들이 공방 안에 차곡차곡 쌓였다. 기름칠이 잘 된 톱니바퀴들이 서로를 밀고 받았다. 프레임의 어깨가 아주 미세하게 내려앉았다. 금속 몸이 자기 무게를 새로 인식하는 듯했다.
바르토스가 말했다.
"영혼은 쉬운 길을 택한다. 썩었어도 육체는 육체다. 금속 덩어리를 몸으로 받아들일 영혼은 없다."
카엘은 손목 안쪽의 마지막 홈을 닫으며 대답했다.
"썩은 방에 오래 있었다고 해서 깨끗한 방을 싫어하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감히 영혼의 기호까지 안다는 거냐."
"저는 기호를 묻는 중입니다."
카엘은 코어 앞에 손을 멈췄다.
"강제로 끌고 오지 않습니다. 조건을 제시할 뿐입니다."
그가 마지막 룬을 이었다.
코어가 열렸다.
공방의 온도가 내려갔다. 유리관 안의 정제액 표면에 둥근 파문이 일었다. 선반의 렌치들이 동시에 떨렸고 작업대 위 소형 인형이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실습생들 사이에서 짧은 숨소리가 번졌다.
카엘의 눈빛이 달라졌다.
실습동에 남은 약한 잔향이 아니었다. 더 멀고 깊은 곳에서 누군가가 응답했다. 코어가 영혼을 붙잡는 것이 아니었다. 영혼이 코어의 질과 그릇의 품격을 재고 있었다.
흉갑 오른쪽 룬이 붉게 달아올랐다.
모르가트 교수가 뒤로 반걸음 물러났다.
"정착률이 과부하다. 끊어라."
바르토스가 입꼬리를 올렸다.
"고급 영혼의 문턱도 견디지 못하는군. 장난감은 결국 장난감이다."
카엘은 새 조각칼을 집었다.
실습생 하나가 다급히 말했다.
"지금 건드리면 코어가 깨집니다."
"그래서 건드립니다."
카엘은 붉게 달아오른 룬의 한 획을 정확히 끊었다.
검푸른 빛이 흉갑 밖으로 터져 나왔다. 창문이 덜컹였고 조교들이 실습생들을 뒤로 밀었다. 하지만 코어는 깨지지 않았다. 끊어진 룬이 압력을 빼냈고 남은 은선들이 빛을 손목으로 돌렸다.
카엘은 곧바로 손바닥 안쪽의 감각로를 닫았다.
"전신 정착은 보류합니다. 우선 손만 받겠습니다."
"도망치는군."
바르토스의 말에 카엘은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과부하된 매개체를 억지로 봉합하는 일은 로엔 가문 지하실에서 충분히 봤습니다. 결과가 아름답지 않더군요."
바르토스의 얼굴에서 웃음이 지워졌다.
짧은 침묵이 흘렀다. 모르가트 교수는 그 말의 의미를 묻지 않았다. 그러나 명부를 쥔 손이 조금 느슨해졌다.
카엘은 작업대 위의 연습검을 프레임의 오른손 앞에 놓았다. 날이 없는 검이었지만 무게 중심은 실제 장검과 같았다. 그는 검 손잡이 아래에 작은 원형 룬을 그렸다.
"잡아 보십시오."
모르가트 교수가 낮게 물었다.
"명령인가."
"초대입니다."
누군가 웃으려 했다. 그러나 웃음은 나오지 않았다.
프레임의 검지가 움직였다.
아주 느리게 굽었다. 이어 중지가 따라왔다. 금속 관절이 접히며 맑은 소리를 냈다. 손목이 회전했다. 손바닥이 검 손잡이에 내려앉는 각도는 지나치게 정확했다.
손가락이 검을 쥐었다.
세게 움켜쥐지 않았다. 미끄러지지도 않았다. 손잡이의 중심을 찾고 남는 힘을 버렸다. 손가락 끝의 룬이 푸르게 번졌다.
카엘은 숨을 낮췄다.
검을 아는 손이었다.
모르가트 교수의 막대가 바닥에 닿았다.
"자동 반응으로는 설명이 부족하군."
바르토스가 이를 악물었다.
"저 정도로 증명이라니 우습다."
그의 검은 은실이 소리 없이 바닥을 스쳤다. 가는 실 한 줄이 프레임의 발목으로 기어갔다. 실습생들은 보지 못했다. 모르가트 교수도 프레임의 손만 보고 있었다.
카엘의 공방 바닥 룬만이 이물질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카엘이 입을 열기 전에 프레임의 손목이 먼저 움직였다.
연습검 끝이 아래로 떨어졌다.
탁.
검은 은실이 바닥에 눌렸다가 끊어졌다.
동작은 작았다. 그러나 군더더기가 없었다. 검을 든 자가 자기 주변의 위협을 습관적으로 지워 내는 움직임이었다. 명령을 기다리는 피조물의 반응이 아니었다.
바르토스의 손가락에서 끊어진 실 끝이 힘없이 늘어졌다.
카엘이 차갑게 말했다.
"방금은 제가 시킨 일이 아닙니다."
모르가트 교수의 목소리가 쉬었다.
"그럼 무엇이지."
"기억입니다."
프레임의 빈 눈 안쪽에서 빛이 다시 떠올랐다. 이번에는 사라지지 않았다. 검푸른 빛이 눈구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카엘을 바라보는 듯했다.
공방 안의 누구도 웃지 못했다.
카엘은 프레임 앞에 섰다.
"아직 이름을 묻지 않겠습니다. 그릇이 완성되지 않았으니까요."
그는 과열된 흉갑 룬을 살피며 말을 이었다.
"저는 썩은 살을 드리지 않습니다. 대신 무너지지 않는 관절과 더럽혀지지 않는 검을 드릴 수 있습니다. 강제로 묶지도 않을 겁니다."
프레임의 손가락이 검 손잡이를 한 번 더 조였다.
아주 작은 소리가 흉갑 안에서 났다.
금속 마찰음도 태엽 소리도 아니었다. 오랫동안 닫혀 있던 목소리가 처음으로 숨을 고르는 소리였다.
모르가트 교수는 명부를 접었다.
낙제라는 단어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더는 쉽게 적을 수 없었다.
바르토스는 카엘을 보지 않았다. 그는 프레임의 눈 안쪽 빛을 보고 있었다. 조롱 대신 계산이 그 얼굴 위로 지나갔다.
카엘은 빈 눈구멍을 바라보았다.
그 안쪽에서 희미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검을."
실습생 중 누군가가 숨을 삼켰다.
카엘은 작업대 아래의 긴 상자를 열었다. 아직 날을 세우지 않은 은빛 장검이 천 위에 놓여 있었다.
그는 검을 들어 프레임 앞에 세웠다.
"좋습니다."
검푸른 눈빛이 조금 더 선명해졌다.
카엘은 조용히 말했다.
"다음 실험은 대화부터 시작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