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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결혼인데 시부모님이 너무 좋아해2화

계약 결혼인데 시부모님이 너무 좋아해

계약 결혼인데 시부모님이 너무 좋아해

2화: 당신의 가격을 제시하겠습니다

사표를 낸 지 두 시간 만에 서은우의 몸값은 세 배가 됐다.

“기본 연봉 두 배. 입사 보너스 별도. 직급은 본부장.”

한소라가 은우의 휴대전화를 넘겨보다가 코웃음을 쳤다.

“어제까지는 상무감이 아니라더니 회사 밖으로 나오니까 갑자기 본부장감이래.”

제일기안 맞은편 카페였다. 창밖으로 조금 전까지 출근하던 건물이 보였다. 은우의 발치에는 팔 년 치 짐이 든 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은우는 노트북 화면에 숫자를 적었다.

부모님 인쇄소 채무 잔액. 사무실 보증금. 최소 인력 넷의 여섯 달 치 급여. 독립하려면 아껴 잡아도 칠억이 필요했다.

“여기는 팀원 세 명 데려오는 조건이래.”

소라가 다른 메시지를 읽었다.

“그럼 내 몸값이 아니라 우리 팀 해체 비용이네.”

“이 회사는 오늘한끼 캠페인 총괄 타이틀을 보장한대.”

“이미 끝난 캠페인을?”

은우가 노트북을 덮었다.

제안은 많았고 선택지는 없었다. 회사들은 서은우를 원한다면서 제일기안에서 증명된 매출과 팀을 함께 요구했다. 간판만 바뀐 부품이 되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다.

소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진짜 회사 차릴 거예요?”

“차려야지.”

“돈은요?”

“벌어야지.”

“구체적인 계획은?”

“지금부터 세우려고.”

소라가 웃다가 결국 한숨을 쉬었다.

그때 은우의 휴대전화가 다시 울렸다.

[최민규입니다. 메시지 확인하신 것으로 압니다. 강지혁 전무님께서 오늘 오후 한 시간만 요청하셨습니다.]

곧이어 두 번째 문자가 왔다.

[신성리테일 브랜드 혁신 총괄에 관한 정식 제안입니다. 오늘한끼 캠페인의 공개 전환 전술을 최초 보고서 기준으로 평가했습니다.]

은우의 손가락이 멈췄다.

최초 보고서.

박상철 이름으로 수정되기 전, 작성자 기록에 서은우가 남아 있던 자료였다.

“신성?”

소라가 화면을 훔쳐봤다.

“거긴 좀 다르지 않아요? 강지혁이면 신성 둘째. 요즘 후계 후보로 뜨는 사람.”

“재벌집 부품은 대기업 부품이랑 다른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은우는 답장을 보냈다.

[오후 여섯 시 이후, 삼십 분 가능합니다. 제 팀과 전 직장의 영업 정보는 협상 대상이 아닙니다.]

답은 십 초 만에 왔다.

[동의합니다. 오후 여섯 시, 한결푸드 본사 1층에서 뵙겠습니다.]

소라가 눈을 가늘게 떴다.

“안 간다면서요?”

“시장 조사야. 내 가격을 정하려면 누가 왜 사려는지는 알아야 하니까.”

은우는 다시 노트북을 열었다.

화면 구석의 작은 문구가 깜박였다.

W&U. Want & Understand.

아직은 이름뿐인 회사였다.


오후 다섯 시 사십 분.

신성호텔로 가던 은우는 한결푸드 본사 로비에서 발을 멈췄다.

“사람 불러 놓고 계약서를 없던 걸로 하겠다는 게 말이 됩니까?”

작업복 차림의 중년 남자가 보안 직원 둘 사이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그의 옆에서는 스무 살 남짓한 여자가 찌그러진 종이 상자를 품에 안고 있었다.

상자 옆면에 찍힌 상호가 눈에 들어왔다.

정가찬.

오늘한끼 사연 캠페인의 선정자에게 보낼 수제 반찬 키트 공급사였다. 은우가 직접 후보 목록에 올린 지역 업체였다.

로비 안쪽에서 제일기안 직원 하나가 난처한 얼굴로 나왔다.

“정문식 대표님, 서 팀장이 퇴사하면서 계획이 바뀌었습니다. 정식 발주 전이었으니 계약상 문제는 없습니다.”

은우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무슨 계획이 바뀌었죠?”

직원이 돌아보고 굳었다.

“팀장님이 여긴 왜…….”

“퇴사자라서 물으면 안 됩니까?”

정문식이 은우를 알아봤다.

“서 팀장님 맞죠? 우리 반찬 먹어 보고 같이하자던 분.”

그의 딸이 품에서 상자를 열었다. 냉매가 녹아 포장 용기에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아버지가 오늘 시식회 한다고 새벽 세 시부터 만들었어요. 포장기 사려고 계약금도 걸었고요.”

제일기안 직원이 낮게 말했다.

“박 이사님 지시입니다. 전국 배송 실적 없는 업체는 위험하다고.”

논리는 맞았다. 방식이 틀렸을 뿐이었다.

은우는 시계를 봤다. 약속까지 이십 분.

이미 회사를 나왔다. 발주 권한도, 이들을 책임질 의무도 없었다.

그런데 정문식의 손에는 명함이 구겨져 있었다. 일주일 전 은우가 건넨 자기 명함이었다.

“대표님이 원하시는 게 뭡니까?”

“약속대로 발주해 주시오.”

“첫 달 오천 세트를 지금 생산할 수 있습니까?”

정문식의 입이 닫혔다.

은우가 한 걸음 다가섰다.

“보상금이 필요하신 겁니까, 거래가 필요하신 겁니까?”

“우리가 돈 뜯으러 온 것처럼 말하지 마시오!”

“그래서 확인하는 겁니다. 화가 난 이유를 알아야 해결하니까요.”

딸 정다은이 아버지의 팔을 잡았다.

“저희 이름이 필요해요.”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아빠 반찬으로 캠페인 한다고 동네 사람들한테 다 말했어요. 그런데 대기업이 불쌍한 가게 도와준 것처럼 이름도 안 내고 납품만 하라고 했잖아요. 이제 와서 위험하다고 빼면 저희는 거짓말한 사람이 돼요.”

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분노 아래 감춰진 욕망은 돈이 아니었다. 자기 이름으로 한 약속을 지키고 싶다는 자존심이었다.

“오천 세트 일괄 발주는 무리입니다.”

정문식의 얼굴이 붉어졌다.

“대신 오백 세트부터 시작하죠.”

은우는 제일기안 직원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오늘한끼 캠페인 페이지 열어 보세요.”

“전 이제 팀장님 지시를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맞아요. 그러니 한결푸드 본부장에게 직접 물으세요. 선정 사연 열 건의 식탁을 지역 반찬가게 열 곳과 연결하는 수정안, 검토할 건지.”

직원이 눈을 깜빡였다.

“열 곳이요?”

“한 업체에 오천 세트를 몰면 배송 사고 한 번에 캠페인이 멈춥니다. 열 곳이 오백 세트씩 맡으면 위험은 줄고, 사연마다 지역의 맛이 생기죠. 공급사 이름과 조리자 얼굴도 공개하고요.”

은우는 정다은이 가져온 상자에서 반찬 하나를 꺼냈다. 포장에는 원재료와 조리 시간이 손글씨로 적혀 있었다.

“고객에게 파는 건 반찬이 아니라, 누가 내 한 끼를 준비했는지 보이게 만드는 경험입니다. 원래 캠페인 메시지와도 맞아요.”

제일기안 직원의 표정이 흔들렸다.

“하지만 박 이사님이 이미 대형 급식업체로…….”

“그 업체가 캠페인 페이지에 이름을 공개하는 조건을 받아들였습니까?”

대답이 없었다.

대형 업체는 납품 단가를 낮추는 대신 자체 브랜드 노출을 요구했을 것이다. 오늘한끼의 고객 참여 캠페인이 또 하나의 광고판이 되는 셈이었다.

“본부장님께 두 안을 같이 올리세요. 단가만 비교하지 말고 캠페인 이탈률까지 계산해서.”

은우는 정문식에게 돌아섰다.

“대표님도 조건이 있습니다. 오백 세트 품질 검사, 배송업체 공동 선정, 생산량은 검증 뒤에만 늘립니다. 할 수 있습니까?”

정문식은 딸과 마주 봤다.

“할 수 있습니다.”

“아니요. 계산해 보고 답하세요. 자존심으로 받은 물량은 결국 직원들이 밤새워 갚게 됩니다.”

정문식이 천천히 숨을 골랐다.

“이틀 주십시오. 생산표와 원가표 만들어 오겠습니다.”

“그 답이면 됐습니다.”

그때 등 뒤에서 낮은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약속보다 먼저 와 보길 잘했군요.”

은우가 돌아섰다.

검은 정장 차림의 남자가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표정은 건조했고, 손목시계는 약속 시간을 정확히 가리키고 있었다.

그 옆의 최민규가 명함을 내밀었다.

“강지혁 전무님입니다.”

강지혁은 은우가 아니라 정문식에게 먼저 말했다.

“생산표가 나오면 신성리테일 상생매장 입점팀에도 보내십시오. 오늘한끼 발주와 별개로 심사하겠습니다.”

정문식이 얼떨떨하게 명함을 받았다.

은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지원입니까, 검증입니까?”

“검증입니다.”

지혁이 답했다.

“서은우 씨가 사람을 보는 눈까지 정확한지 확인해야 하니까.”


문제를 정리한 두 사람은 길 건너 신성호텔로 자리를 옮겼다.

호텔 라운지의 가장 안쪽 자리에는 서류가 두 묶음 놓여 있었다.

지혁은 인사말 대신 얇은 쪽을 은우 앞으로 밀었다.

“신성리테일 브랜드전략실 총괄. 전무 직속이고 인사권과 예산권을 보장합니다. 연봉은 제일기안의 세 배, 첫해 성과 보상은 별도.”

은우는 첫 장만 보고 덮었다.

“사람을 비싸게 사는 데 익숙하신가 봅니다.”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가격을 제시할 뿐입니다.”

“그 가격에 무엇까지 포함됐죠?”

지혁은 두 번째 서류를 펼쳤다.

신성리테일 계열사의 최근 5년 매출과 고객 연령, 온라인 전환율이 정리돼 있었다. 숫자는 거대했지만 방향은 선명했다.

오프라인 충성 고객은 늙고 있었고, 이십 대 고객은 신성을 부모 세대의 낡은 백화점으로 인식했다.

“석 달 뒤 회장 주재 후계 평가가 있습니다.”

지혁이 말했다.

“계열사 혁신안과 실행 성과로 다음 대표 후보를 정합니다. 나는 신성리테일을 맡았고, 형은 건설과 재무 계열을 장악하고 있죠.”

“저더러 전무님의 왕관을 광고하라는 말로 들립니다.”

“왕관이 아니라 사업을 살려 달라는 겁니다.”

“살린 뒤 성과 보고서 첫 장에는 누구 이름이 올라갑니까?”

지혁이 잠시 은우를 바라봤다.

“서은우.”

망설임 없는 대답이었다.

은우는 다시 자료를 넘겼다. 마지막 평가표에서 한 항목에 펜을 멈췄다.

주주 신뢰 및 리더십 안정성.

세부 지표에는 가족 행사 참석률과 사생활 리스크가 적혀 있었다.

“브랜드 혁신 책임자를 찾는 분이 이상한 자료를 끼워 두셨네요.”

민규의 어깨가 움찔했다.

지혁은 표정이 변하지 않았다.

“회장님은 기업을 맡을 사람이 안정된 생활을 유지하는지도 봅니다.”

“미혼은 불안정합니까?”

“회장님의 기준에서는.”

“전무님 생각은요?”

“성과와 무관합니다.”

“그런데도 평가에는 들어가고.”

은우가 서류를 덮었다.

“전무님께 필요한 건 브랜드 총괄 한 명이 아니군요. 낡은 회사를 젊게 만들고, 형보다 좋은 숫자를 내고, 주주들 앞에서 안정적인 후계자로 보이게 할 사람. 한 사람 값으로 세 가지를 사려는 제안입니다.”

민규가 입을 열려다 지혁의 시선에 멈췄다.

지혁은 오히려 아주 조금 웃었다.

“그래서 세 배를 제시했습니다.”

“싸네요.”

두 사람의 시선이 맞붙었다.

지혁이 물었다.

“원하는 액수를 말하십시오.”

“액수의 문제가 아닙니다.”

“직급?”

“그것도 아니고요.”

은우는 계약서를 지혁 쪽으로 돌려놓았다.

“제일기안에서 나온 날 다른 대기업 명함으로 갈아 끼우면, 제 가격을 다시 정한 게 아니라 구매자만 바꾼 겁니다.”

“독립은 자본 없이 불가능합니다.”

정확한 지적이었다.

은우는 숨기지 않았다.

“그래서 돈을 벌 겁니다.”

“그 전에 실패할 수도 있고.”

“제 실패도 제 이름으로 남겠죠.”

지혁의 손끝이 멈췄다.

은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은 제안은 감사합니다. 하지만 전무님의 직원이 될 생각은 없습니다.”

“오늘 본 상황도 제안을 거절할 이유입니까?”

“반대입니다. 전무님은 결과를 낼 사람 같습니다.”

은우가 재킷을 여몄다.

“그래서 더더욱 남의 결과가 아니라 제 것을 만들고 싶어졌습니다.”


은우가 떠난 뒤 민규가 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후보 명단 다시 올리겠습니다.”

“필요 없어.”

“거절했습니다.”

“고용을 거절했지, 거래를 거절한 건 아니야.”

지혁은 은우가 앉았던 자리를 봤다. 작은 수첩 하나가 의자 아래에 떨어져 있었다.

그가 수첩을 집어 들고 라운지를 나섰다.

엘리베이터 앞에 선 은우가 닫힘 버튼을 누르는 순간, 지혁의 손이 문 사이를 막았다.

“두고 갔습니다.”

펼쳐진 수첩 한쪽에는 굵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

W&U. 내가 이해한 욕망을, 내 이름으로.

은우가 수첩을 받아 들었다.

“보셨습니까?”

“한 줄만.”

“남의 사업 계획을 훔쳐보는 것도 신성의 검증 방식입니까?”

“다음 제안의 조건을 정하는 방식입니다.”

“아직 안 끝났습니까?”

“서은우 씨가 원하는 가격을 이제 알았으니까.”

엘리베이터 문이 다시 닫히기 시작했다.

은우가 지혁을 바라봤다.

“제 회사는 안 팝니다.”

“사겠다고 한 적 없습니다.”

문이 닫혔다.

지혁은 곧바로 민규에게 말했다.

“윤세라 변호사 일정 잡아.”

“법무 검토가 필요합니까?”

“고용계약 말고 다른 계약이 필요해.”

지혁은 손에 든 후계 평가표를 접었다.

석 달 안에 증명해야 할 것은 두 가지였다.

신성을 바꿀 실적.

그리고 안정된 가정.

서은우에게 필요한 것도 두 가지였다.

자기 이름의 회사와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을 경영권.

따로 보면 풀리지 않는 조건이었다.

한 거래로 묶으면 달랐다.

지혁의 머릿속에 아직 입 밖으로 내지 않은 문장이 떠올랐다.

직원이 싫다면.

아내는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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