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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결혼인데 시부모님이 너무 좋아해1화

계약 결혼인데 시부모님이 너무 좋아해

계약 결혼인데 시부모님이 너무 좋아해

시놉시스

승진에서 밀려난 천재 마케터 서은우는 신성그룹의 찬밥 신세인 재벌 3세 강지혁에게 1년짜리 계약 결혼을 제안받는다. 독사 같은 재벌가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줄 알았는데 남편보다 시부모님이 먼저 그녀에게 빠져 버렸다. 가짜 관계로 시작한 네 사람이 서로를 선택해 진짜 가족이 되는 선결혼 후연애 로맨스.

1화: 인생은 마케팅, 결혼은 비즈니스

“망했습니다.”

새벽 두 시 십칠 분.

제일기안 마케팅 2팀의 막내가 울기 직전의 얼굴로 말했다.

회의실 전면 스크린에는 붉은 숫자가 떠 있었다.

부정 반응 81.4%.

국내 최대 식품 기업 한결푸드가 삼백억 원을 들여 준비한 간편식 브랜드 ‘오늘한끼’의 출시 영상이 공개된 지 정확히 세 시간 만에 받아 든 성적표였다.

‘바쁜 엄마도 삼 분이면 사랑을 차립니다.’

문제는 그 한 줄이었다.

일하는 여성에게 죄책감을 떠넘긴다는 비판이 붙었고, 광고 속 남편은 소파에 앉아 휴대전화만 보고 있었다. 육아 커뮤니티에서 시작된 분노는 직장인 익명 게시판을 거쳐 실시간 검색어까지 번졌다.

한결푸드 주가는 미국 장외 시장에서 먼저 흔들렸고, 광고주 측에서는 십 분마다 전화가 왔다.

열두 명의 팀원은 모니터만 바라봤다.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못했다.

서은우는 스크린 앞에 서서 댓글을 내렸다.

천 개쯤 읽었을 때 한소라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팀장님, 뭐라도 말씀 좀 해 주세요. 영상 내릴까요?”

“아니.”

“그럼 사과문부터—”

“그것도 아직.”

은우가 리모컨을 내려놓았다.

밤새 식은 커피와 초조함이 뒤섞인 회의실에서 그녀만 표정이 평온했다.

“이 캠페인 망한 것 맞아.”

막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러니까 살릴 수 있어.”

은우가 화이트보드에 검은 펜으로 문장을 하나 적었다.

사람들은 제품을 미워하는 게 아니다. 자신을 가르치려는 브랜드를 미워한다.

“현재 부정 반응의 팔십 퍼센트가 제품 맛이나 가격이 아니라 광고의 태도를 지적하고 있어. 고객은 우리한테 말할 기회를 주는 중이야. 무관심이 아니라 분노라서 다행이지.”

“분노가 다행이라고요?”

“분노는 기대가 남아 있다는 뜻이니까.”

은우의 펜이 빠르게 움직였다.

영상 비공개 대신 문제 장면만 정지 화면으로 전환한다. 회사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고객 댓글을 가리지 않고 메인 페이지에 띄운다. 주부를 대상으로 준비했던 체험단은 맞벌이 부부, 자취생, 야간 근무자, 돌봄 노동자까지 넓힌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카피를 고객한테 돌려주자.”

은우가 말했다.

“‘오늘 당신의 한 끼를 차려 준 사람은 누구입니까.’ 제품을 파는 광고가 아니라 누군가의 수고를 발견하는 캠페인으로 바꾼다.”

소라가 눈을 빛냈다.

“사연을 받자는 거죠?”

“응. 선정된 사연의 주인공에게 일주일 치 식사와 휴식을 지원하고. 광고 속 남편 배우에게도 연락해. 이번에는 본인이 앞치마 두르고 직접 사과 영상 찍는 거야.”

“광고주가 허락할까요?”

“허락하게 만들어야지.”

은우가 휴대전화를 들었다.

화면에는 한결푸드 마케팅 본부장의 이름이 떠 있었다.

통화 버튼을 누르기 전, 그녀가 팀원들을 돌아봤다.

“디자인팀은 메인 페이지 시안. 소라는 새 카피 열 개. 데이터팀은 비판 댓글을 유형별로 정리해. 삭제는 한 건도 하지 마. 욕설만 가리고 전부 남겨.”

“팀장님은요?”

은우가 입꼬리를 올렸다.

“나는 삼백억 날리게 생긴 사람 설득하러 가야지.”

통화가 연결되자마자 고함이 쏟아졌다.

―서 팀장, 당신 지금 제정신이야? 당장 영상부터 내려!

은우는 전화기를 귀에서 잠시 떼었다가 다시 붙였다.

“본부장님. 영상을 내리면 저희가 광고만 잘못 만든 게 아니라 비판까지 숨긴 회사가 됩니다.”

―그럼 이대로 두고 구경하자고?

“아닙니다. 세 시간 안에 사과하고 여섯 시간 안에 고객 참여 페이지를 열고 오늘 점심 전까지 대표이사 명의의 개선안을 내겠습니다.”

―실패하면?

“제 이름으로 사과하겠습니다.”

회의실에 있던 팀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은우에게 꽂혔다.

그녀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대신 성공하면 한결푸드도 이름을 걸어 주십시오. 잘못은 대행사 뒤에 숨기고 성과만 가져가는 브랜드라면 고객도 금방 알아봅니다.”

전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

은우는 기다렸다.

협상에서 침묵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 먼저 진다.

―세 시간 주지.

통화가 끊어졌다.

회의실 안에서 누군가 길게 숨을 내쉬었다.

은우는 소매를 걷었다.

“들었지? 이제부터 두 시간 오십구 분이야.”

그날 밤, 제일기안 12층에서는 아무도 퇴근하지 않았다.


오전 다섯 시 오 분.

배우가 주방에서 달걀을 태웠다.

“좋아요. 그거 그대로 갑시다.”

영상 통화로 촬영을 지휘하던 은우가 말했다.

―이걸요? 너무 못해 보이지 않습니까?

“잘하는 척해서 사고가 났잖아요. 이번에는 못하는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 주세요. 다만 다시 하시면 됩니다. 달걀도, 집안일도.”

두 번째 달걀이 프라이팬 위에 떨어졌다.

오전 여섯 시 사십 분.

새 카피가 완성됐다.

사랑은 누가 차리는지가 아니라 서로의 수고를 알아보는 일입니다.

오전 여덟 시 정각.

문제의 광고 화면이 멈추고 배우가 직접 등장했다.

그는 소파에서 휴대전화를 보던 자신의 장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부터 잘못 배웠습니다. 오늘은 제가 차리겠습니다.’

곧이어 한결푸드 대표의 사과문이 올라갔다. 변명은 뺐고, 무엇을 바꿀지만 적었다.

처음 삼십 분 동안 반응은 싸늘했다.

한 시간이 지나자 조롱 사이에 다른 댓글이 붙기 시작했다.

‘적어도 댓글 안 지우는 건 낫네.’

‘배우 표정 진짜 멘붕이라 웃김.’

‘우리 집은 아빠가 밥하는데 이런 사연도 받아 주나요?’

정오가 되기 전 첫 사연이 만 건을 넘었다.

야간 근무를 마친 간호사에게 아침을 차려 주는 남편, 손자를 키우는 할머니를 위해 주말마다 반찬을 만드는 대학생, 같은 공장에서 교대 근무를 하며 서로의 도시락을 싸 주는 자매.

사람들은 제품이 아니라 자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사흘 뒤, ‘오늘한끼’는 초도 물량을 모두 소진했다.

일주일 뒤에는 캠페인 해시태그가 누적 삼천만 회를 기록했다.

한결푸드 대표는 임원 회의에서 말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훌륭한 캠페인이었습니다.”

그 말과 함께 대형 스크린에 한 남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제일기안 박상철 이사.

은우는 회의실 맨 끝에 앉아 그 광경을 바라봤다.

“박 이사님의 과감한 결단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한결푸드 대표가 박수를 쳤고 임원들이 따라 쳤다.

박상철은 겸손한 표정으로 허리를 숙였다.

“위기일수록 고객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 제 지론입니다. 실무진이 제 방향을 잘 따라 줬습니다.”

제 방향.

은우 옆에 앉은 소라의 손등에 핏줄이 불거졌다.

은우는 조용히 소라의 주먹 위에 손을 얹었다.

지금 화를 내면 공을 빼앗긴 실무자가 아니라 행사를 망친 무례한 직원만 남는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박상철이 일부러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공을 가져가고 있었다.

행사가 끝나자 박상철이 은우에게 다가왔다.

“서 팀장, 수고했어.”

“방향을 잘 따랐을 뿐인데요.”

박상철의 미소가 잠시 굳었다.

“기분 상했나?”

“제가 만든 보고서 첫 장에 이사님 이름을 넣으셨더군요. 수정 날짜는 오늘 새벽 네 시 십이 분이고요.”

“회사 일이 다 그런 거야. 실무자는 성과를 만들고 임원은 책임을 지는 거지.”

“이사님이 책임지신 적도 있습니까?”

“뭐?”

은우가 웃었다.

“실패하면 제 이름으로 사과하겠다고 한 것도 저고, 광고주를 설득한 것도 접니다. 성공하니 이사님 이름이 올라갔고요. 책임은 제가 지고 성과는 이사님이 가져가셨는데, 역할 분담이 독특해서 여쭤봤습니다.”

박상철의 눈가가 경련했다.

복도를 지나던 직원들이 걸음을 늦췄다.

그는 목소리를 낮췄다.

“서 팀장. 능력 있는 건 알아. 그런데 회사에서는 능력만큼 중요한 게 태도야.”

“어떤 태도 말씀입니까?”

“윗사람을 세워 줘야 본인도 올라가는 법을 알아야지. 이번 인사 앞두고 괜한 소문 만들지 말라는 충고야.”

박상철이 은우의 어깨를 두드렸다.

“상무 자리, 욕심나잖아?”

그가 먼저 돌아섰다.

은우는 자신의 어깨에 남은 손자국을 털어 냈다.

소라가 이를 갈며 다가왔다.

“저 인간이 한 일이라고는 새벽에 전화해서 영상 빨리 내리라고 소리친 것밖에 없잖아요.”

“하나는 더 했지.”

“뭔데요?”

“내 보고서 비밀번호 알아냈잖아.”

소라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가 금세 울상이 됐다.

“팀장님, 이번에는 상무 되시겠죠?”

은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유리창에 비친 자기 얼굴을 바라봤다.

스물여덟.

지방 국립대 출신으로 제일기안 공채에 들어와 최연소 팀장이 되기까지 팔 년이 걸렸다. 다른 사람이 한 번 증명할 때 은우는 세 번 증명해야 했다.

학벌이 부족하다는 말을 들으면 국제 광고제 상을 탔다. 인맥이 없다는 평가에는 업계 최고 실적으로 답했다. 여자라서 조직 장악력이 약할 거라는 말이 나오자 기피 부서였던 2팀을 사내 최고 수익 팀으로 만들었다.

이번 캠페인까지 성공하면 약속한 상무 승진이었다.

약속은 숫자보다 가벼웠지만, 은우는 또 한 번 믿어 보기로 했다.

아니, 믿고 싶었다.

독립 회사를 차리려면 자본이 필요했다. 아직 부모님의 인쇄소에는 거래처 부도로 생긴 빚이 남아 있었다. 자기 사람들을 데리고 불확실한 길로 뛰어들기에는 책임져야 할 것이 많았다.

상무가 되면 더 큰 결정권을 가질 수 있다.

누군가의 공을 빼앗지 않고도 성과를 내는 조직을 만들 수 있다.

그렇게 생각했다.

일주일 뒤 인사 발표가 나기 전까지는.


오전 아홉 시.

사내 메신저가 동시에 울렸다.

2026년 제일기안 정기 임원 인사 안내.

사무실 곳곳에서 마우스 클릭 소리가 났다.

소라는 가장 먼저 명단을 열었다. 위에서 아래로, 다시 아래에서 위로 이름을 훑던 그녀의 표정이 굳었다.

“이게 뭐야.”

상무 승진자 명단 가장 위에는 박상철의 측근인 최도현 본부장의 이름이 있었다.

서은우는 없었다.

대신 인사 공지 아래에 별도의 조직 개편 안내가 붙었다.

마케팅 2팀, 브랜드전략본부 산하 편입. 총괄 임원 박상철.

은우가 만든 팀과 실적이 통째로 박상철의 직속 조직이 된다는 뜻이었다.

전화가 울렸다.

“서 팀장, 박 이사님이 찾으십니다.”

은우는 모니터를 껐다.

서랍을 열자 한 달 전부터 출력해 둔 봉투가 보였다.

소라가 그녀의 손에 들린 것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팀장님.”

“금방 올게.”

은우는 봉투를 들고 박상철의 방으로 향했다.

통유리 너머로 보이는 그의 방은 일주일 전보다 넓어져 있었다. 오늘 아침 새로 들어온 축하 화분이 벽을 가득 채웠다.

탁월한 리더십으로 이룬 승진을 축하드립니다.

은우는 그 문구를 한 번 읽고 문을 열었다.

“부르셨습니까.”

박상철이 소파를 가리켰다.

“앉아. 표정 보니 공지는 봤나 보군.”

은우는 앉지 않았다.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이번에는 시기가 안 좋았어.”

“지난번에는 나이가 너무 어렸고, 그전에는 팀장 경력이 짧았습니다. 이번에는 뭐가 부족했습니까?”

박상철이 곤란한 웃음을 지었다.

“이사회에서 자네의 리더십을 우려했어. 성과는 훌륭하지만 지나치게 독단적이라는 평가가 있었지. 학벌이나 대외 네트워크가 임원급에 미치지 못한다는 의견도 있었고.”

“한결푸드 위기 대응은 누가 지시했다고 보고하셨습니까?”

“지금 그 얘기가 왜 나와?”

“제 리더십이 부족하다고 평가한 자료에, 제가 지휘한 성과가 이사님 성과로 들어갔으니까요.”

박상철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그래서 지금 나를 추궁하겠다는 건가?”

“아니요. 확인하는 겁니다.”

은우는 테이블 위에 놓인 임원 평가 보고서를 가리켰다. 맨 위에 오늘한끼 캠페인 이미지가 인쇄돼 있었다.

“제가 회사에서 더 올라갈 수 없는 이유가 실력이 부족해서인지 제 실력을 위에서 계속 가져가야 하기 때문인지.”

“말조심해, 서은우.”

“답은 들었습니다.”

박상철이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네가 왜 이래? 이번에 임원이 안 된다고 세상이 끝나나? 일 년만 참아. 내가 본부장 자리 하나 만들고 자네 팀도 키워 줄게.”

“제 성과를 이사님 이름으로 올린 다음에요?”

“조직 생활에는 순서가 있어!”

마침내 박상철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배경도 없는 자네가 스물여덟에 팀장까지 온 게 누구 덕이라고 생각해? 회사가 기회를 줬으면 감사할 줄도 알아야지. 혼자 잘나서 여기까지 온 것 같나?”

은우는 잠시 그를 바라봤다.

분노보다 먼저 찾아온 감정은 이상하리만큼 맑은 허탈함이었다.

팔 년 동안 들었던 모든 핑계가 한 문장으로 정리됐다.

네가 만든 것은 회사 것이고 회사가 준 것은 은혜다.

은우가 들고 있던 봉투를 테이블 위에 놓았다.

“맞습니다. 회사가 제게 기회를 줬죠.”

박상철의 눈빛이 누그러졌다.

“그래. 이제야 말이 통하는군.”

“제 능력을 헐값에 쓰는 기회요.”

봉투에서 미끄러진 종이 위로 세 글자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사직서.

박상철이 눈을 크게 떴다.

“자네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제 가격을 다시 정하는 중입니다.”

“감정적으로 굴지 마. 이 바닥 좁아. 내가 마음만 먹으면 자네 받아 줄 회사 하나 없게 만들 수 있어.”

은우는 웃었다.

협박은 상대가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이 마지막으로 쓰는 설득이었다.

“이사님.”

그녀는 축하 화분 사이에 선 박상철을 똑바로 바라봤다.

“브랜드가 망하는 순간이 언제인지 아십니까?”

“뭐?”

“고객이 떠날 때가 아닙니다. 고객이 없어도 자기 가치는 그대로일 거라고 착각할 때죠.”

은우가 사원증을 풀어 사직서 위에 내려놓았다.

“제가 없는 제일기안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는 이제 이사님이 증명하시면 됩니다.”

“서은우!”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은우는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덕분에 아주 비싼 교훈을 공짜로 얻었으니까요.”

문을 닫고 나오자 2팀 직원들이 모두 일어나 있었다.

누군가는 울 것 같은 표정이었고 누군가는 당장 함께 그만두겠다는 얼굴이었다.

은우는 그들을 향해 고개를 저었다.

“다들 앉아. 오늘한끼 후속 캠페인 인수인계 파일은 공유 폴더에 올려놨어.”

“팀장님, 진짜 가세요?”

막내가 물었다.

“응.”

“그럼 저희는 어떡해요?”

“내가 없어도 돌아가게 만든 팀이 좋은 팀이야. 너희가 만든 성과는 너희 이름으로 남겨. 그거 뺏기지 말고.”

소라가 입술을 깨물었다.

“다음은 어디예요?”

은우는 잠시 대답하지 못했다.

갈 곳은 없었다.

대출 잔액은 선명했고 독립 회사는 아직 머릿속에만 있었다. 오늘부터는 매달 들어오던 급여도 제일기안이라는 거대한 간판도 사라진다.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숨은 더 잘 쉬어졌다.

은우는 노트북과 낡은 수첩을 상자에 담았다. 팔 년 동안 쌓인 짐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전, 그녀가 팀원들을 향해 말했다.

“다음은 내가 정해야지.”

문이 닫혔다.

일 층 로비를 지나 회전문 밖으로 나오자 한낮의 햇빛이 쏟아졌다.

은우는 사원증이 사라진 목을 한 번 만졌다.

휴대전화가 연달아 울렸다. 기자와 경쟁 대행사, 헤드헌터들이 벌써 소식을 들은 모양이었다.

그중 모르는 번호로 온 문자가 하나 있었다.

[서은우 팀장님께 정식으로 제안드릴 일이 있습니다.]

뒤이어 도착한 명함 이미지에는 신성그룹 로고가 박혀 있었다.

발신인의 이름은 최민규.

직함은 신성그룹 전략기획팀 과장.

은우는 메시지를 읽고 화면을 껐다.

지금은 다른 대기업의 부품이 될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알지 못했다.

그 제안이 채용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자신의 다음 직함이 팀장도 임원도 아닌 전혀 뜻밖의 것이 되리라는 것을.

은우의 인생에서 가장 이상하고 거대한 캠페인은 그렇게 그녀를 찾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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