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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결혼인데 시부모님이 너무 좋아해13화

계약 결혼인데 시부모님이 너무 좋아해

계약 결혼인데 시부모님이 너무 좋아해

13화: 들꽃의 꽃망울

콰장창!

대리석 바닥 위로 정교하게 세공된 크리스탈 페이퍼웨이트가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투명한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며 날카로운 파열음을 냈으나, 신성그룹 부사장실의 넓은 집무실 안은 이내 질식할 것 같은 정적에 휩싸였다.

“강지혁…… 이 오만한 자식이 감히 내 목을 치려 해?”

강지성 부사장의 얼굴은 피기가 싹 가셔 퍼렇게 질려 있었다. 그의 바르르 떨리는 손에 들린 태블릿 PC 화면에는 신성그룹 감사실로부터 송부된 ‘신성물류 배차 취소 경위 규명 및 직권 남용 혐의 예비 감사 개시’ 통보서가 선명하게 떠 있었다.

비서실장이 조아린 이마에서 솟아난 식은땀을 연신 훔치며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보고했다.

“부사장님, 상황이 매우 좋지 않습니다. 양평 시제품 공장의 원료 수송을 일방적으로 중단하라고 신성물류 대표실에 하달하신 내부 지시문건 중 일부가 준법지원팀과 감사실로 유출된 모양입니다. 게다가 어제 지혁 전무 측에서 경기도 영농조합의 소형 탑차들을 긴급 배차해 원료를 공장으로 정상 수송해 버렸습니다. 현장 농민들에게 통상 운임의 2배를 즉시 지급한 탓에, 농가 여론마저 지혁 전무와 리테일 본사에 극도로 우호적으로 돌아섰습니다. 이사회 내부에서도 부사장님이 후계 다툼을 위해 그룹 공용 물류망을 사적으로 남용했다며 성토하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멍청한 놈들! 위약금 물어주고 적당히 배차 오류 핑계를 대면 될 일을 왜 빌미를 잡혀!”

지성이 소리를 지르며 책상 위에 놓여 있던 결재 서류철들을 허공으로 쓸어버렸다.

건설 부문에서 감사 폭탄을 맞으며 입지가 흔들리던 차였다. 그래서 리테일 부문의 신규 친환경 브랜드인 ‘들꽃’의 시제품 라인을 무산시켜, 지혁의 경영 능력에 회복 불가능한 흠집을 내려 했다. 하지만 지혁은 몸을 사리기는커녕 감사 청구라는 예리한 칼날을 지성의 목덜미에 정면으로 들이밀었다.

지성의 머릿속에 양평 현장에서 지혁의 곁을 든든하게 지탱하던 서은우의 냉정하고 명석한 얼굴이 떠올랐다.

“서은우…… 그 여우 같은 년이 결국 내 판을 다 뒤엎는구나.”

지성은 이를 갈았다. 학벌도 배경도 없는 낙하산 며느리 주제에, 사람의 본능을 읽고 판세를 흔드는 능력 하나로 지혁의 가장 예리한 검이자 방패가 되어 있었다. 에어핏 사태를 라이브 검증으로 돌파하더니, 이번 물류 마비조차 모세혈관 같은 소형 차량 연합망을 직조해 우회 돌파해 냈다.

그녀가 지혁의 옆에 붙어 있는 한, 신성의 왕좌로 가는 길은 매 순간 걸림돌이 될 것이 뻔했다.

지성은 거칠게 넥타이를 풀어 헤치며 헐떡였다. 그의 눈동자에 비열하고도 잔인한 독기가 차올랐다. 그는 책상 위에 나뒹굴던 개인 전화를 집어 들고 손가락이 부러질 듯 힘을 주어 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린 뒤, 낮고 비열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새어 나왔다. 제일기안의 박상철 이사였다.

“박 이사. 신성물류 건은 지혁이가 감사실을 움직여서 내 숨통을 죄어오고 있어. 이제 그룹 내부 조직원이나 물리적 물류망을 흔드는 식의 단순한 방법은 안 돼. 서은우 그 물건의 목줄을 끊고, W&U 랩을 통째로 매장해야겠어.”

수화기 건너편에서 박상철이 낮게 낄낄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지독하게도 대중에게 도덕성을 파는 서은우다운 발상이지.”

박상철이 목소리를 극도로 낮추며 비열한 음모를 흘려보냈다.

지성의 눈빛이 서늘하게 번뜩였다.

“농약이라니? 양평 농가는 이미 친환경 인증을 마친 곳이다. 게다가 지혁이가 어제 직접 공수해서 남양주 가공소로 직배송하지 않았나?”

박상철의 음성에는 은우를 향한 찌들은 열등감과 잔혹한 살기가 들러붙어 있었다.

지성의 가느다란 입술이 천천히 말려 올라가며 잔인한 미소를 그렸다.

“좋다, 박 이사. 자금과 실행 인력은 내 비서실을 통해 무제한으로 지원하지. 품평회 당일, 서은우와 강지혁 두 놈이 자신들이 파놓은 들꽃의 무덤 속으로 스스로 처박히게 만들어.”

통화가 끊기자 지성은 태블릿 화면을 꺼버렸다. 벼랑 끝에 몰린 독사가 독니를 들이밀 듯, 그는 지혁과 은우를 영원히 매장할 거대한 음모의 톱니바퀴를 굴리기 시작했다.


같은 시각, 마포구 골목 끝에 자리한 W&U 랩 사무실.

투명한 유리문 너머로 환한 불빛과 함께 생기 넘치는 웃음소리들이 밤공기를 뚫고 흘러나왔다. 어제 양평에서 12대의 소형 탑차들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구해낸 카모마일과 어성초 원료들은 남양주 가공소에서 밤새 세척되고 정밀 추출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들꽃 브랜드의 첫 번째 완성형 시제품 샘플이 되어 회의실 테이블 위에 나란히 도열해 있었다.

갈색 차광 유리병에 담긴 스킨과 로션, 크림 샘플들이 조명을 받아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어휴, 난 진짜 어제 낮에 양평에서 트럭 다 철수했다는 소리 듣고 심장이 발끝까지 떨어지는 줄 알았잖아. 그 귀한 꽃들이 꼼짝없이 썩어 문드러질 뻔했는데, 남양주 가공소에 원료 상자가 꽉 들어찬 걸 보고서야 겨우 숨이 쉬어지더라.”

한소라 실장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시제품 뚜껑을 열었다. 용기 입구에서 은은한 카모마일 향이 회의실 내부로 부드럽게 퍼져 나갔다.

“와, 인공 향료를 단 한 방울도 쓰지 않았는데 향이 정말 깊어요. 바르자마자 숲속에 들어온 기분이에요.”

신입 사원 임지선이 손등에 스킨을 톡톡 두드리며 눈을 반짝였다.

옆에 앉은 배윤주 수석 플래너 역시 크림 샘플을 손끝으로 가만히 롤링하며 제형의 완성도를 살폈다.

“발림성도 아주 훌륭해요, 대표님. 통상 유기농 화장품은 화학 합성 유화제를 배제해서 피부 위에서 겉돌거나 끈적이기 마련인데, 천연 대안 성분의 배합 비율을 기가 막히게 잡아냈네요. 연구원들이 밤을 지새운 보람이 있어요.”

테이블 모서리에 살짝 기대어 앉아 그들의 피드백을 듣고 있던 은우가 만족스럽게 입꼬리를 올렸다.

“다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하지만 제품력이 우수한 것과, 이것을 시장에 매력적인 브랜드로 안착시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마케팅 싸움입니다. 2주 뒤 열릴 공식 품평회에서 대기업 임원들과 까다로운 바이어들의 지갑을 열게 만들 들꽃만의 핵심 가치는 무엇이어야 할까요?”

은우의 질문에 회의실이 이내 진지한 침묵으로 가라앉았다. 소라가 턱을 괴며 아이디어를 냈다.

“요즘 오가닉 브랜드는 세상에 널려 있잖아. 그냥 ‘신성그룹이 보증하는 최고급 프리미엄 유기농 라이프’를 강조하는 게 안전하지 않을까? 대기업 로고가 주는 힘이 있으니까.”

배윤주 수석이 차분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엄마들의 심리는 다릅니다, 한 실장님. 주부들은 대기업의 화려한 엠블럼보다 ‘내 아이 피부에 직접 닿는 성분이 정말로 안전한가’에 백 배는 더 예민해요. 대기업이 품질을 보증한다는 말은 오히려 ‘공장에서 대량 생산한 화학 성분’이라는 거부감을 유발하기 쉽습니다. 우리는 대기업의 후광을 강조하기보다, 들꽃이 가진 날것 그대로의 ‘정직함’을 시각화해야 합니다.”

“그 정직함을 디자인과 패키지에 어떻게 투명하게 반영할 수 있을까요?”

은우의 눈빛이 깊어졌다. 윤주가 준비해 온 기획서를 화면에 띄웠다.

“용기 자체를 플라스틱 코팅이 배제된 투명한 재활용 PCR 유리를 사용하고, 라벨지도 물에 쉽게 녹는 수성 접착제로 제작하는 겁니다. 그리고 화려한 일러스트 대신 전성분표를 라벨지 전면에 가장 큰 폰트로 인쇄하는 거죠. 브랜드 로고보다 성분이 먼저 눈에 들어오게 말입니다. 소비자들이 성분을 ‘읽는’ 행위 자체에서 신뢰를 느끼도록 말이죠.”

“아주 훌륭해요. 패키지 디자인 자체가 정직함의 증명서가 되는 거군요.”

은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칭찬하자, 옆에서 조용히 노트를 끄적이며 고민하던 임지선 사원이 손을 번쩍 들었다.

“대표님! 제가 마트 진열대에서 직접 손님들을 응대해 보니까요. 사람들은 숫자나 영문 성분표보다 내 눈으로 확인한 가치에 본능적으로 움직여요. 마트 주부님들은 화장품 뒤에 제품을 만든 농민들의 얼굴이나 고향 이름이 적혀 있으면 훨씬 쉽게 안심하시거든요.”

지선이 얼굴을 상기시키며 빠른 어조로 덧붙였다.

“이번에 양평에서 대기업 물류 트럭이 멈췄을 때, 동네 1톤 탑차들이 모여서 기적적으로 원료를 구해냈잖아요. 저는 그 긴박했던 이야기를 그냥 묻어두기엔 너무 아까워요. 제품 뒷면에 작은 QR코드를 넣어서 스캔하면, 양평 이대원 조합장님의 투박한 농사 철학과 원료를 싣고 빗속을 달렸던 소형 탑차 12대의 실제 이동 지도 노선이 팝업으로 뜨게 만드는 거예요. ‘12대의 작은 바퀴가 배달한, 거짓 없는 자연의 가치’라는 스토리로 캠페인을 여는 거죠!”

“탑차 12대의 배송 지도라니……!”

소라가 이마를 치며 감탄했다.

은우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도 묵직한 전율이 일었다. 스펙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기존 업계에서 소외되었던 지선이었지만, 그녀의 머릿속에는 소비자가 현장에서 느끼는 신뢰의 본질이 가장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은우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화이트보드로 걸어갔다. 그리고 흑색 마커를 들어 힘차게 단어들을 적어 내려갔다.

[들꽃: 가장 낮은 곳에서 피어난 정직한 숨결]
[작은 바퀴들이 배달한, 거짓 없는 자연의 가치]

은우가 팀원들을 돌아보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지선 씨의 현장 감각이 핵심을 꿰뚫었습니다. 거대한 대기업 물류망이 우리를 거부했을 때, 우리는 가장 작고 보잘것없는 바퀴들을 연결해 가치를 배달했습니다. 그 위기 극복의 상생 스토리가 바로 들꽃의 진짜 심장입니다. 들꽃은 척박한 땅을 뚫고 피어나는 강인함과 정직함이니까요.”

배윤주와 임지선의 눈빛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은우는 그들의 얼굴을 보며, 메이저 대행사 시절에는 결코 맛볼 수 없었던 진정한 동지애를 느꼈다. W&U 랩은 단순한 하청 회사가 아니었다. 편견에 맞서 실력으로 일어서려는 이들이 모여 튼튼하게 뿌리 내린 하나의 군락이었다.

“이 브랜드 스토리를 바탕으로 품평회 기획 피티와 패키지 최종 수정안을 완성합시다. 2주 뒤, 신성의 임원진들이 더는 우리를 취미 삼아 하는 낙하산이라 부르지 못하도록 완벽하게 증명해 보이는 겁니다.”

“네, 대표님!”

사무실 가득 울려 퍼진 씩씩한 대답과 함께, 들꽃의 꽃망울을 피워내기 위한 그들의 밤샘 작업은 뜨겁게 계속되었다.


밤 11시가 훌쩍 넘은 시각.

내일 있을 최종 검수 준비를 마친 소라와 팀원들을 먼저 집으로 돌려보낸 후, 은우는 홀로 어두워진 사무실에 남아 화이트보드의 기획안을 지그시 응시하고 있었다.

어깨를 짓누르는 거대한 중압감 속에서도 가슴속 밑바닥에서는 뜨거운 전율이 일었다.

그때, 고요한 공간의 정적을 깨며 철컥하는 유리문 개폐음이 들렸다.

은우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전혀 예상치 못한 훤칠한 실루엣이 어둠을 뚫고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깔끔한 다크 그레이 수트 차림에 안경을 쓴 강지혁 전무였다. 그의 커다란 양손에는 온기가 은은하게 뿜어져 나오는 종이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

“전무님? 이 늦은 시간에 여기까지 어쩐 일이십니까?”

은우가 깜짝 놀라 안경을 벗어두며 일어섰다. 지혁은 피로로 다소 해쓱해진 은우의 얼굴을 가만히 응시하더니, 입가에 부드러운 온기를 머금었다.

“퇴근하는 길에 창문 너머로 불이 켜진 게 보이더군요. 혹시 끼니는 챙겼습니까?”

“아…… 대충 샌드위치로 해결했습니다.”

“그럴 줄 알았습니다.”

지혁이 다가와 테이블 위에 쇼핑백에 담긴 따뜻한 카모마일 허브티 두 잔과 갓 구운 바삭한 샌드위치, 그리고 달콤한 초콜릿 타르트를 조심스럽게 꺼내놓았다. 기분 좋은 단 향과 향긋한 캐모마일 향이 회의실 내부의 삭막한 공기를 순식간에 녹여 나갔다.

“야식치고는 구성이 꽤나 섬세하네요, 전무님.”

은우가 작게 미소 지으며 마주 보는 의자를 권했다. 두 사람은 밤이 깊어 고요한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오늘 오후 4시를 기해 신성물류 배임 건에 대한 공식 감사 절차가 회장님 최종 결재를 거쳐 공식 발효되었습니다.”

지혁이 은우에게 차를 건네며 덤덤하게 승전보를 알렸다.

“강지성 부사장은 감사실의 소환 통보를 받고 내내 조사를 받았으며, 그를 동조해 우리 프로젝트를 흔들려던 리테일 일부 라인 임원들도 조용히 꼬리를 내렸습니다. 양평에서 물류를 차단했던 악의적인 공작이 도리어 그들의 숨통을 조이는 칼날이 된 셈입니다.”

은우의 눈에 반짝이는 빛이 서렸다.

“역시 전무님답게 물 샐 틈 없이 예리한 일 처리군요. 답답하던 속이 단숨에 풀리는 기분입니다.”

“내가 한 것은 감사실이라는 법적 펜스를 쳐둔 것에 불과합니다. 현장에서 소형 차량 연합이라는 대안을 도출해 내고, 들꽃의 소중한 원료들을 온전히 구해낸 것은 전적으로 서 대표의 능력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매 순간 당신의 담대함과 통찰에 감탄하고 있습니다.”

지혁의 단정하고 건조한 음성 밑에는, 차마 다 감추지 못한 묵직한 진심과 경외가 깊게 깔려 있었다. 안경 너머로 은우를 바라보는 그의 검은 눈동자는 어둠 깊은 곳의 심해처럼 끝이 없었다.

은우는 따뜻한 차를 마시며 미세하게 쿵쾅거리는 마음의 소리를 다독였다.

“전무님, 칭찬이 다소 지나치십니다. 우리는 철저히 비즈니스 파트너이자 계약 동업자입니다. 계약서 제3조 사생활 및 사적 감정 배제 원칙을 잊지 마십시오. 파트너에게 건네는 그런 간지러운 말은 계약 조항의 경계를 허무는 위험한 발언입니다.”

은우가 짐짓 쌀쌀맞은 어조로 두 사람 사이에 놓인 투명한 경계선을 환기시켰다. 그러나 지혁의 눈앞에 드러난 은우의 귓가는 이미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지혁은 피식 가벼운 실소를 터뜨리더니, 상체를 가볍게 숙여 은우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섰다. 그의 넓은 어깨 너머로 드리워진 그림자가 은우를 안늑하게 감쌌고, 그에게서 나는 은은한 숲 향과 단단한 체온이 은우의 호흡을 미세하게 흩뜨려 놓았다.

지혁의 짙은 눈동자가 은우의 눈동자에 똑바로 닿았다.

“그렇다면 계약서 이면에 특약 조항을 하나 기필코 추가해야겠군요.”

“……특약 조항이라니요?”

“‘동업자가 과도한 업무와 압박으로 피로에 노출되었을 경우, 파트너는 합당한 영양 공급과 감정적인 지지를 건넬 의무를 지닌다.’ 어떻습니까? 지분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아주 타당한 보완책이라 생각하는데.”

지혁의 나직하고도 따뜻한 음성이 귓전을 간질이며 가슴 깊은 곳을 묵직하게 두드렸다.

은우는 더는 지혁의 뜨거운 시선을 피하지 못하고 붉어진 뺨을 채 감추지 못한 채 그를 쏘아보았다. 양평 흙먼지 속에서 셔츠를 더럽히며 원료를 실어 나르던 그의 어깨와, 석양 아래 다정하게 카모마일 꽃잎을 떼어내던 손가락 끝의 따스한 온기가 이 늦은 밤의 공기 속에서 더욱 선명하게 겹쳐졌다.

비즈니스로 조인한 계약 결혼이었지만, 은우는 난생처음으로 든든한 ‘내 편’의 존재가 주는 안도감을 온전히 느끼고 있었다.

“……그 특약 조항은 윤세라 변호사님의 공식 법적 검토를 통과해야 유효하겠네요.”

은우가 애써 태연한 척 샌드위치를 집어 들며 응수하자, 지혁이 눈매를 좁히며 낮고 부드럽게 웃었다. 그의 정갈한 웃음소리가 고요한 사무실 내부의 기류를 한결 부드럽고 따스하게 매만졌다.

“윤 변호사라면 내 말에 기꺼이 서명해 줄 겁니다. 서 대표의 건강을 보전하는 것이 W&U 랩의 가치를 수호하는 지름길이라는 점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테니까요.”

지혁은 은우의 손가락 옆으로 달콤한 초콜릿 타르트 접시를 조금 더 밀어주었다.

“단것 좀 드시고 하십시오. 이대로 쓰러지면 내 비즈니스가 멈춥니다.”

“알겠습니다, 전무님. 고맙게 잘 먹을게요.”

은우는 타르트를 잘라 입에 넣었다. 입안 가득 감도는 기분 좋은 단맛과 함께, 지혁이 흘려보낸 다정한 온기가 얼어붙어 있던 은우의 내면 구석구석을 아늑하게 물들여 나갔다.


하지만 깊어가는 칠흑 같은 새벽, 어두운 가상 공간의 구석에서는 보이지 않는 추악한 균열이 조용히 번져 나가고 있었다.

온라인 유입자가 가장 많은 국내 대형 뷰티 정보 커뮤니티와 젊은 주부들이 모인 핵심 맘카페 게시판에 동일한 제목의 고발 글이 순식간에 동시다발적으로 업로드되기 시작했다.

[제목: 충격) 대기업 신성리테일 신규 오가닉 브랜드 ‘들꽃’, 실상은 독성 농약 범벅?]

글의 내용은 고도로 계산되어 지극히 선동적이었고 악의로 채워져 있었다.

자신을 양평의 들꽃 원료 재배 농가 내부 관계자라고 소개한 작성자는, 들꽃 제품에 사용되는 카모마일과 어성초 원료에서 허용치 기준의 5배를 상회하는 맹독성 유기인계 살충제 농약 성분이 다량 검출되었다고 폭로했다.

글의 최하단에는 교묘하게 위조된 정밀 성분 분석 검사표 이미지와, 빨간색 경고 날인이 찍힌 신성 내부 검수 보고서 사본이 아주 그럴듯하게 첨부되어 있었다.

조작된 거짓 폭로는 사설 여론 조작 업체의 정밀 매크로 봇을 타고 실시간으로 수십 개의 육아 카페와 미용 포럼으로 삽시간에 파생되어 나갔다.

게시물의 조회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맘카페의 실시간 인기 게시글 상위권에 링크되었고, 배신감과 공포에 휩싸인 대중의 서슬 퍼런 조롱과 날카로운 분노가 겉잡을 수 없는 불길처럼 온라인을 태우기 시작했다.

W&U 랩의 첫 번째 도전이자, 가장 투명한 가치로 피어나고자 했던 들꽃의 잎사귀 위로 잔인한 먹구름이 조용히 드리우며, 폭풍우의 시작을 예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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