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 결혼인데 시부모님이 너무 좋아해

10화: 정면 돌파의 법칙
“지혁 전무님, 서 대표님! 큰일 났습니다. 방금 전 모 인터넷 경제 매체에서 악의적인 단독 보도가 송출되었습니다!”
최민규 과장의 사색이 된 외침이 넓은 대회의실의 차가운 정적을 깨뜨렸다. 그가 내민 태블릿 PC 화면에는 붉은색 경고등처럼 선명한 헤드라인이 박혀 있었다.
[단독] 신성그룹 후계 구도 싸움 점입경개…… 재벌 3세 강지혁 전무, 실적 쌓기용 ‘무리한 리콜 강행’으로 신성생활 파탄 위기 몰고 가나?
기사의 내용은 극도로 악의적이고 교묘했다. 제품의 미세한 오작동일 뿐인 사소한 이슈를, 후계자 자질 평가를 앞둔 강지혁 전무 부부가 자신들의 ‘정의로운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 리콜 사태로 과장했다는 프레임이었다. 이로 인해 죄 없는 소액 주주들과 수십 개의 협력사들이 줄도산 위기에 처했다는 자극적인 문구들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지혁의 서슬 퍼런 압박에 눌려 식은땀을 흘리며 리콜 서명서에 펜을 댔던 김성태 대표의 눈빛이 순간 비열하게 번뜩였다. 그는 쥐고 있던 만년필을 슬그머니 내려놓으며 삐딱하게 상체를 뒤로 눕혔다.
“거 보십시오, 전무님.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대기업의 리콜은 단순한 비용 문제를 넘어 가문과 주주들의 생계가 걸린 문제입니다. 이대로 리콜이 공표되면 신성생활의 주가는 폭락할 것이고, 이사회와 주주들의 소송이 빗발칠 겁니다. 지금이라도 이 결정을 취소하고, 기기 오작동에 따른 일부 소비자 과실로 보도자료를 다시 배포해야 합니다. 그래야 회사도 살고 전무님도 사십니다.”
회의실에 남아 있던 몇몇 임원들도 김 대표의 말에 동조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은근한 압박을 가해왔다.
지혁의 미간이 깊게 좁아졌다. 꽉 쥔 그의 주먹 위로 푸른 힘줄이 돋아났다. 지혁이 차가운 분노를 터뜨리며 그들의 주둥이를 닥치게 만들려던 찰나, 은우가 먼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녀의 표정은 태블릿의 가짜 뉴스를 읽기 전보다 오히려 더 차분하고 평온해 보였다.
“김 대표님, 정말로 리콜 결정을 번복하면 회사가 살고 전무님이 안전해질 거라고 믿으십니까?”
은우의 유리알처럼 맑은 목소리가 회의실에 울려 퍼졌다.
“지금 이 기사는 강지성 부사장님이 파놓은 빤한 덫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겁을 먹고 리콜 결정을 취소하거나 해명 보도자료를 내는 순간, 저들은 기다렸다는 듯 2차 공세를 펼칠 겁니다. ‘강지혁 전무가 억지 리콜을 억지로 덮으려 했다’는 또 다른 가짜 뉴스 말입니다. 해명은 해명을 낳고, 진흙탕 싸움이 길어질수록 대중은 신성을 비웃을 겁니다. 결국 승자는 법적으로 책임을 면한 대표님과, 지혁 전무님의 경영 자질 부족을 증명해 낸 부사장님뿐이겠죠.”
김 대표의 안색이 일순 경직되었다. 은우는 그를 가만히 쏘아보며 말을 이었다.
“우리가 취해야 할 전략은 해명이나 취소가 아닙니다. 적이 우리의 결정을 ‘쇼’라고 부른다면, 우리는 이것이 대중의 안전을 위한 ‘가장 진실된 행동’임을 입증해야 합니다. 해명문 몇 줄 대신, 가습기 결함의 진짜 위험성을 대중의 눈앞에 날것 그대로 보여주는 겁니다.”
지혁이 고개를 돌려 은우를 바라보았다.
“날것 그대로 보여준다니, 구체적으로 어떻게 말입니까?”
“신성생활 공식 미디어 채널을 통해 실시간 라이브 중계를 켜는 겁니다. 편집도, 가식도 없는 생방송으로 말이죠. 신성생활 기술 개발팀의 엔지니어를 카메라 앞에 세우고, 불량 부품으로 인해 실제로 스파크가 튀는 검증 실험을 라이브로 보여주는 겁니다. 그리고 동시에, 불량 부품의 유통 경로와 원가 절감을 위해 이를 승인했던 결재 라인의 실태까지 투명하게 공개하는 겁니다.”
회의실 안이 단숨에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김 대표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불량 부품의 결재 라인을 투명하게 밝힌다는 것은, 결국 자신이 강지성 부사장의 지시를 받아 저가 외주 업체의 부품을 억지로 도입했던 비리 사실을 대중 앞에 고발하겠다는 뜻과 다름없었다.
“미, 미쳤습니까? 회사 내부의 치부를 생방송으로 까발리겠다는 겁니까? 대기업이 그런 짓을 하면 브랜드 신뢰도는 바닥을 칠 겁니다!”
김 대표가 소리를 질렀지만, 은우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감추는 치부는 독이 되지만, 스스로 드러내는 치부는 신뢰의 발판이 됩니다. 결함을 숨기는 대기업과, 150억 원의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고객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치부까지 드러내는 대기업. 대중이 어느 쪽을 신뢰하고 선택할지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까? 게다가 이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가짜 뉴스를 유포한 매체와 배후 세력은 불량 부품의 위험을 묵인하려 한 파렴치한 범죄 공모자가 될 것입니다.”
은우의 논리적인 폭격에 김 대표는 더는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하고 입을 벙긋거렸다. 지혁은 은우의 당당하고 명석한 눈동자를 바라보며 깊은 전율을 느꼈다. 위험을 정면으로 돌파해 적의 무기를 아군을 지키는 방패로 치환하는 마케팅 감각. 이것이 바로 서은우가 가진 진짜 힘이었다.
지혁이 자리에서 일어나 단호하게 명령했다.
“즉시 준비하십시오. 최 과장, 신성생활의 홍보 스튜디오와 방송 인력을 총동원해. 대본도, 가식도 없는 진짜 라이브 검증 방송을 준비합니다. 남은 시간은 36시간. 오늘 저녁 8시, 온에어 불을 켜십시오.”
방송 준비를 위한 대기실 안은 긴장감으로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 같았다.
지혁은 팔짱을 낀 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넓은 등 위로 쏟아지는 노을빛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민규가 방송 장비와 엔지니어 섭외를 위해 밖으로 나간 터라, 대기실 안에는 은우와 지혁 두 사람뿐이었다.
지혁은 천천히 몸을 돌려 은우에게 다가갔다. 그의 무표정한 얼굴 밑으로 감출 수 없는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서 대표.”
“예, 전무님.”
은우가 노트북 화면에서 고개를 들어 지혁을 바라보았다. 지혁의 깊고 건조한 눈동자가 은우의 얼굴을 가만히 담았다.
“이번 라이브 방송은 너무 위험합니다. 만약 생방송 도중에 아주 작은 실수라도 나오거나, 여론이 예상과 다르게 흘러간다면…… 모든 비난의 화살은 전면에서 진행을 맡은 서 대표에게 쏠릴 겁니다. W&U 랩은 아직 제대로 시작하지도 못했는데, 재벌가의 월권 행위자라는 낙인이 찍힐 수도 있습니다.”
지혁의 목소리에는 평소의 냉철함 대신, 은우를 향한 진심 어린 걱정과 미안함이 짙게 배어 있었다. 단순한 계약 파트너를 대하는 태도가 아니었다. 그녀가 상처 입기를 원치 않는, 그 스스로도 통제하지 못하는 깊은 정서적 흔들림이었다.
은우는 잠시 지혁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입가에 엷고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전무님, 마케팅에서 리스크가 없다는 건 아무런 기회도 없다는 뜻과 같습니다. 그리고 W&U 랩의 가치는 이런 실전 위기 속에서 증명되는 법이죠. 저를 그렇게 약한 사람으로 보지 마십시오.”
은우가 서류를 정리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지혁의 곁으로 다가가 그의 셔츠 소매를 툭툭 다듬어 주었다. 아주 사소하고 일상적인 손길이었지만,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공기가 일순간 굳어졌다.
“그리고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제 곁에는 실패해도 책임을 함께 져 주겠다고 약속한 든든한 방패가 있지 않습니까. 저는 전무님을 믿고 가장 날카로운 검을 휘두를 생각입니다. 그러니 전무님도 저를 믿고 판을 지켜 주십시오.”
은우의 목소리는 흔들림이 없었고, 지혁을 향한 신뢰는 투명했다. 지혁은 순간 자신의 가슴 한구석이 세차게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비즈니스로 시작된 가짜 관계. 하지만 은우가 건네는 짧은 신뢰와 온기는 지혁의 오랜 소외감과 얼어붙은 내면을 사정없이 녹여내고 있었다.
지혁은 침을 삼키며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답했다.
“알겠습니다. 내 목숨을 걸고서라도, 당신의 뒤는 내가 완벽하게 지키겠습니다.”
두 사람의 시선이 조용히 얽혔다. 계약서 너머의 무언가가 두 사람의 정서적 한계선을 야금야금 지워가고 있는 순간이었다.
저녁 8시 정각. 신성생활 본사 지하의 임시 스튜디오에 붉은색 ‘ON AIR’ 표시등이 켜졌다.
방송이 시작되자마자 신성생활 공식 유튜브 채널의 실시간 채팅창은 불이 붙은 듯 빠르게 올라갔다. 강지성이 사전에 뿌려둔 가짜 뉴스에 선동된 네티즌들이 가시 돋친 조롱을 쏟아내고 있었다.
- 재벌 3세의 쇼 시작하네 ㅋㅋㅋ
- 리콜로 실적 쌓기 하려다 딱 걸리니까 부랴부랴 방송 켰냐?
- 가식적인 대기업 사과 방송 안 본다 감성팔이 극혐
화면에 비친 은우는 검은색 단정한 수트 차림으로 차분하게 데스크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쏟아지는 악플들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카메라를 응시하며 나직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오프닝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신성생활 가습기 ‘에어핏’ 위기관리 브랜딩을 맡은 W&U 랩 대표 서은우입니다. 저희는 오늘 구구절절한 변명이나 격식에 맞춘 사과문을 읽기 위해 이 자리에 서지 않았습니다. 대중이 제기하시는 ‘무리한 억지 리콜’이라는 의혹에 대해, 날것 그대로의 진실과 안전 검증을 보여드리기 위해 실시간 생방송을 시작합니다.”
은우는 바로 옆자리에 앉은 신성생활 기술개발부의 정태호 수석 엔지니어를 소개했다. 평소 김성태 대표의 원가 절감 압박에 밀려 현장에서 소외되어 있던, 하지만 기술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정직한 베테랑 엔지니어였다.
카메라가 켜진 상태에서 에어핏 제품의 나사가 풀리고 내부 구조가 생생하게 드러났다.
“시청자 여러분, 화면에 보이시는 이 파란색 원형 부품이 에어핏의 핵심 부품인 콘덴서입니다. 원래 신성이 고집해 오던 고품질 규격 부품이 아닌, 최근 경영 효율화와 원가 절감을 목표로 갑작스럽게 교체된 저가형 부품입니다.”
정태호 수석이 장비를 이용해 테스트 내부 환경의 습도를 올렸다. 습도가 80%에 도달하자, 저가형 콘덴서의 틈새로 미세한 스파크가 파지직 소리를 내며 튀어 올랐다. 파란색 불꽃이 불꽃놀이처럼 카메라 렌즈에 선명하게 포착되었다.
순간 실시간 채팅창의 조롱 글들이 뚝 멈췄다.
- 어…… 진짜 불꽃 튀는데?
- 미친, 저걸 가습기 안에 넣었다고? 자다가 불나는 거 아님?
- 와 소름 돋는다 대박이네
- 억지 리콜이 아니라 진짜 불량 맞잖아! 가짜 뉴스 쓴 기사 뭐냐?
은우가 단호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향해 상체를 살짝 숙였다.
“보시는 바와 같습니다. 이것이 에어핏의 진짜 결함입니다. 누군가는 이 위험을 미세한 기기 오작동이라며 감추고, 몇십억 원의 언론 광고비로 덮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신성은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 150억 원의 리콜 비용을 아끼기 위해, 고객의 가정이 화재 위험에 노출되는 것을 방조하는 것은 신성의 철학이 아닙니다. 비록 뼈아픈 실책이고 우리의 치부이지만, 단 하나의 제품이라도 위험이 있다면 전량 회수하는 것이 대기업이 지녀야 할 진짜 책임입니다.”
은우의 목소리는 신성이라는 거대 기업의 권위 대신, 소비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안전을 걱정하는 진심 어린 언어로 채워져 있었다.
“이에 신성생활은 오늘부로 에어핏 전량 리콜을 공식 선언하며, 기존 구매자 분들께는 전액 환불 혹은 고품질 국산 부품으로 전면 재설계된 업그레이드 신제품으로의 교환을 약속드립니다. 또한, 더 이상의 실수와 은폐가 없도록 소비자가 직접 제품의 설계와 안전성 테스트를 감시하는 ‘시민 안전 검증단’ 500명을 모집하겠습니다. 검증단에 참여하시는 모든 분들의 성함은 업그레이드 버전의 안전 보증서에 영구히 기록될 것입니다.”
은우의 발표가 끝남과 동시에, 실시간 채팅창은 순식간에 수천 개의 댓글로 뒤덮였다.
- 이게 진짜 대기업의 품격이지.
- 치부까지 라이브로 까발리면서 사과하는 기업 처음 봄 ㄷㄷ
- 에어핏 환불 안 하고 신제품으로 교환 신청한다. 신뢰성 최고네.
- 가짜 뉴스 퍼뜨린 놈들 진짜 벌 받아라. 신성 응원함!
스튜디오 밖에서 이 모든 과정을 숨죽여 지켜보던 최민규 과장이 주먹을 불끈 쥐며 환호성을 질렀다. 카메라 밖의 지혁은 은우를 바라보는 눈빛에 벅찬 경탄과 함께, 그 너머의 주체할 수 없는 애정을 느끼고 있었다. 대중을 흔드는 완벽한 스토리텔링, 그리고 적의 음모를 단숨에 찢어발기는 담대함. 서은우라는 여자는 참으로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다음 날 오전 9시. 강태준 회장이 제시한 48시간의 약속 시한이 단 3시간 남은 시각이었다.
신성리테일 전무실의 대형 모니터에는 실시간 경제 뉴스가 쉴 새 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급반등] 신성생활, 투명한 라이브 리콜 선언 이후 주가 폭등…… ‘위기 관리의 새로운 교과서’ 찬사 잇따라.
[여론] “오히려 신뢰 간다” 에어핏 자발적 교환 신청률 92% 돌파, 주가 하락세 완전히 멈춰.
김성태 대표가 강지성의 지시를 받아 저가 부품을 통과시켰던 내부 결재 서류 사본 역시 이사회를 통해 공식 감사 안건으로 상정되었다. 강지성 부사장은 이번 사태의 책임을 피하지 못하고 건설 감사에 이어 리테일 부문에서도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완벽한 대역전극이었다.
바로 그때, 지혁의 책상 위에 놓인 개인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려댔다. 발신자 화면에 뜬 이름은 ‘강태준 회장’.
지혁이 침을 삼키며 스피커폰을 켰다. 은우가 지혁의 옆으로 다가가 함께 귀를 기울였다. 전무실 안에는 숨 막히는 긴장감이 내려앉았다.
수화기 너머로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흐르더니, 이내 강태준 회장의 낮고 칼칼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지혁이냐.
“예, 아버님.”
- 서 대표도 옆에 있나.
“예, 아버님. 같이 듣고 있습니다.” 은우가 공손히 답했다.
- 48시간 안에 일을 수습하겠다는 약속은 완벽하게 지켰군. 150억 원의 리콜 비용을 아깝지 않은 브랜딩 투자로 둔갑시키고, 지성의 얕은 꾀를 이사회 감사 안건으로 되받아치다니…… 내가 사람을 보는 눈이 아주 틀리지는 않은 모양이다.
회장의 무거운 음성 속에는 언뜻 희미한 만족감이 섞여 있었다. 자식에게도 좀처럼 칭찬을 아끼던 독재자 같은 아버지가 처음으로 은우의 존재 가치를 공식 인정한 순간이었다.
- 서 대표, 앞으로 지혁이의 곁에서 그 똑 부러지는 능력을 어떻게 펼칠지 지켜보마. 조만간 주말 성북동 본가에서 정식으로 식사를 다시 하지. 이번엔 칼 찬 손님들이 아니라 진짜 가족으로 말이다.
뚝.
통화가 끊겼다.
비로소 48시간 동안 은우의 어깨를 짓누르던 거대한 바위가 굴러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은우는 다리가 풀려 회장님 전화기 앞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런 은우를 바라보며 지혁이 천천히 다가왔다. 그의 건조했던 얼굴에 생전 처음 보는 깊고 부드러운 미소가 번졌다.
“서 대표. 우리가 해냈습니다.”
지혁이 은우의 손을 가볍게 쥐었다. 은우는 지혁의 따뜻하고 큰 손을 피하지 않고 마주 잡았다.
“아니요, 전무님이 제 뒤를 든든하게 지켜 주신 덕분입니다. 정말 최고의 방패였습니다.”
서로의 체온이 손바닥을 통해 심장으로 흘러들었다. 비즈니스 파트너이자 계약 결혼의 동업자. 하지만 48시간의 치열했던 전쟁이 끝난 자리에서, 두 사람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서로의 존재감은 이미 그 어떤 진짜 부부보다 더 단단하고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이제 약속된 투자금으로 W&U 랩을 정식 설립해야겠군요. 우리의 진짜 비즈니스는 이제부터 시작이니까요.”
은우가 싱긋 미소 지으며 지혁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계약서 위로 그어진 선은 여전히 유효했으나, 두 사람의 발걸음은 이미 그 경계선을 사정없이 밟고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