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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보호자는 살림부터 합니다2화

계약 보호자는 살림부터 합니다

계약 보호자는 살림부터 합니다

2화: 비어 있는 장부

카엘이 가져온 장부는 오래된 가죽 냄새가 났다.

표지는 닳았지만 안쪽 종이는 이상하게 깨끗했다. 자주 펼친 창고 장부라면 손때나 밀가루 가루나 기름 얼룩 하나쯤은 남아야 했다.

서현은 조리대 위에 장부를 내려놓고 만년필을 꺼냈다.

"지금부터 하는 건 수사가 아닙니다."

카엘의 눈썹이 희미하게 움직였다.

"그럼 무엇입니까."

"실사입니다. 남은 것을 확인하고 오늘 밤 먹을 양을 정합니다. 책임을 따지는 건 그다음입니다."

마리엔이 냄비 뚜껑을 덮었다.

"책임을 나중으로 미루면 밥이 나옵니까?"

"밥은 지금 나눕니다. 책임은 기록해 둡니다. 둘 중 하나만 하면 내일 또 비어 있을 겁니다."

서현은 수첩 첫 줄에 날짜를 적으려다 멈췄다. 이곳의 월 이름은 계약 인장이 어렴풋이 옮겨 주었지만 법정 기한으로 쓰기에는 불안했다.

"오늘 날짜를 현지식으로 말해 주십시오."

"아르벨력 겨울 두 번째 달 열나흗날."

카엘이 건조하게 답했다.

서현은 그대로 받아 적었다.

아르벨력 겨울 둘째 달 14일. 헤르윈 공작가 식량 창고 1차 실사.

리아는 주방 문가에 서 있었다. 노아와 미나는 그 뒤에 붙어 있었다. 졸음과 추위 때문에 셋 다 어깨가 굳어 있었지만 방으로 돌아가려 하지는 않았다.

"아이들은 식사부터 해야 합니다."

서현이 말했다.

리아가 바로 물었다.

"우리만요?"

"먼저요. 성인 몫은 남은 양을 보고 정합니다."

"그렇게 하면 사용인들이 싫어할 수 있어요."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요?"

"피후견인 생계가 제 첫 책임입니다. 다만 성인들이 굶으면 내일 집이 멈춥니다. 그래서 줄이는 순서도 기록해야 합니다."

리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믿는 얼굴은 아니었다. 그래도 말끝을 물고 늘어지지는 않았다.

마리엔은 묽은 수프를 작은 그릇 셋에 먼저 덜었다. 바닥에 가라앉은 감자 조각을 숟가락으로 건져 아이들 그릇에 하나씩 넣는 손놀림이 자연스러웠다.

서현은 그 장면도 적었다.

아이 몫 선배식. 주방장 임의 조정으로 보이나 생계 보호 목적.

마리엔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것도 적습니까?"

"나중에 누가 아이들이 굶었다고 말하면 반박할 근거가 됩니다."

마리엔의 입술이 다물렸다. 불쾌함은 남았지만 수프를 젓는 손은 멈추지 않았다.

서현은 창고 문 앞에 섰다.

"문을 닫고 다시 엽니다. 지금부터 들어가는 사람을 모두 적겠습니다."

"저택 창고에 봉인을 하겠다는 뜻입니까."

카엘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마법 봉인은 못 합니다. 대신 종이와 잉크로 합니다."

서현은 수첩에서 종이를 길게 찢어 문고리와 벽 사이에 붙였다. 접착제는 없었다. 그는 촛농을 조금 녹여 종이 양 끝을 눌렀다.

리아가 그 모습을 보다가 물었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죠?"

"뜯으면 흔적이 남습니다."

"몰래 뜯고 다시 붙이면요?"

"그 가능성도 적습니다. 그래서 완벽한 봉인이 아니라 오늘 밤의 기준선입니다."

"기준선."

"네. 언제부터 없어졌는지 알기 위해 지금 남은 양을 고정하는 겁니다."

창고 안의 공기는 더 차가웠다. 서현은 마리엔에게 항목을 불러 달라고 했다.

"밀."

"큰 자루 셋. 반 자루 하나."

"콩."

"항아리 둘. 하나는 바닥이 보입니다."

"소금."

"작은 통 하나. 반 조금 넘습니다."

"훈제육."

"끝부분 여섯 줄. 아이들 수프에 쓰면 이틀."

"감자."

"바구니 셋. 언 것 빼면 둘 반."

서현은 각 항목 옆에 상태를 적었다. 먹을 수 있는 양과 도려내야 할 양을 나눴다. 훈제육은 냄새를 맡고 표면을 잘라 봐야 했다. 감자는 언 부분을 제거하면 죽에는 쓸 수 있었다.

"절약식 기준 사흘. 장작 부족으로 조리 횟수를 줄이면 나흘까지 가능. 아이 식사량 유지 조건."

마리엔이 낮게 웃었다.

"나흘이라니 말이 좋습니다. 넷째 날에는 수프가 아니라 물을 끓이게 될 겁니다."

"그래서 오늘 밤에 새는 곳을 찾습니다."

카엘은 창고 벽에 걸린 작은 열쇠 꾸러미를 바라봤다.

"새는 곳이 안에서 생겼다고 단정하지 마십시오."

"단정하지 않습니다. 가능성을 지우는 중입니다."

장부 원본과 구매 명세는 주방 옆 작은 장부방에 있었다. 카엘은 열쇠를 꺼내기 전 잠시 망설였다. 문이 열리자 차가운 잉크 냄새와 오래 묵은 종이 냄새가 한꺼번에 나왔다.

선반에는 빈 칸이 많았다. 몇몇 파일에는 제목표만 남아 있었다.

"빠진 문서가 있습니까?"

서현이 묻자 카엘은 곧바로 답하지 않았다.

"공작 각하 실종 뒤 정리되지 못한 문서가 있습니다."

"정리되지 못한 것과 사라진 것은 다릅니다."

"확인하겠습니다."

서현은 그 말도 적었다.

장부방 선반 일부 공백. 관리인 확인 예정.

창고 장부에는 겨울 밀 여덟 자루가 적혀 있었다. 날짜는 공작 실종 뒤 열흘째. 검수 서명은 카엘의 것과 비슷했지만 끝 획이 달랐다.

"이 서명 카엘 씨 것입니까?"

카엘이 장부를 받았다. 그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지만 손가락이 멈췄다.

"제 이름입니다."

"제 질문은 그게 아닙니다."

리아가 문가에서 끼어들었다.

"카엘의 서명은 마지막 획이 위로 올라가요."

카엘이 돌아보았다.

"리아 님."

"아버지가 서명 연습을 시켰어요. 집안 문서를 알아봐야 한다고 했으니까요."

리아는 입술을 꾹 눌렀다. 어른 흉내를 내는 목소리였지만 끝이 조금 떨렸다.

서현은 리아의 말을 그대로 적었다.

증언. 리아 헤르윈. 카엘 서명과 끝 획 상이.

"제가 말한 걸 믿습니까?"

리아가 물었다.

"믿어서 적는 게 아닙니다. 확인할 말이라서 적습니다."

"그러면 제 말도 의심한다는 뜻이네요."

"네."

리아의 눈이 차갑게 굳었다.

서현은 만년필을 멈추지 않았다.

"카엘 씨 말도 마리엔 씨 말도 제 판단도 의심합니다. 대신 같은 기준으로 확인합니다."

마리엔이 숨을 작게 내쉬었다.

"그건 좀 낫군요."

장부에는 훈제육 두 상자가 들어온 것으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마리엔은 그날 받은 것이 빈 상자 하나와 소금에 절인 껍질뿐이었다고 했다. 콩 다섯 항아리 옆에는 출고 표시가 없었다.

서현은 문장을 짧게 나눴다.

입고 기록 있음.

실물 없음.

출고 기록 없음.

검수 서명 의심.

날짜 잉크 색 다름.

그때 손등의 문양이 다시 뜨거워졌다. 잉크 선이 장부 가장자리로 흘러가는 것처럼 번졌다.

미나가 작게 숨을 삼켰다.

"잉크가 또 울어."

"어느 쪽이 더 아파 보여?"

서현이 묻자 리아가 미나를 뒤로 숨겼다.

"미나에게 그런 걸 묻지 마세요."

"강요하지 않겠습니다."

미나는 리아 치마를 잡은 채 고개만 조금 내밀었다.

"문 쪽."

"창고 문?"

미나는 고개를 저었다.

"차가운 문."

카엘의 얼굴이 굳었다.

"후문입니다."

"창고에 후문이 있습니까?"

"운송 통로가 있습니다. 지금은 쓰지 않습니다."

서현은 장부를 덮었다.

"보겠습니다."

"밤에 후문 통로를 여는 건 위험합니다."

"문은 열지 않습니다. 안쪽 바닥만 봅니다."

카엘은 한순간 거절하려 했다. 하지만 미나의 말과 장부의 서명 때문에 완전히 막을 명분이 줄어든 얼굴이었다.

운송 통로는 창고 뒤편 낮은 문으로 이어져 있었다. 카엘이 등잔을 들자 바닥의 돌 틈이 드러났다. 한동안 쓰지 않았다는 말과 달리 먼지는 고르게 쌓여 있지 않았다.

서현은 무릎을 굽혔다.

바닥 한쪽에 흰 가루가 남아 있었다. 밀가루였다. 더 안쪽에는 기름이 굳은 선이 길게 끌려 있었다. 훈제육이나 절인 고기를 담은 상자가 지나가면 남을 만한 자국이었다.

"최근입니다."

마리엔의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이 통로는 잠갔다고 들었습니다."

카엘이 열쇠를 꺼냈다. 손이 아주 조금 떨렸다.

"잠겨 있었습니다."

"잠긴 문으로도 물건은 나갑니다. 열쇠가 있거나 문이 잠기기 전 나갔거나 잠금이 의미 없었거나."

리아가 낮게 말했다.

"안에서 누가 도왔다는 뜻인가요?"

"아직은 아닙니다. 지금은 물건이 이 통로를 지나갔다는 뜻입니다."

서현은 문턱 아래에 낀 종이 조각을 발견했다. 반쯤 찢긴 꼬리표였다. 헤르윈 문장 일부와 낯선 약호가 함께 찍혀 있었다.

"읽을 수 있습니까?"

카엘은 등잔을 가까이 들었다.

"헤르윈 북부 창고 표식입니다. 뒤쪽은 남부 운송 조합에서 쓰는 약호와 비슷합니다."

"우리 거래처입니까?"

마리엔이 거칠게 물었다.

"공식 거래처는 아닙니다."

카엘의 답은 너무 느렸다.

서현은 꼬리표를 수첩 사이에 끼웠다.

"오늘 밤 결론은 세 가지입니다. 장부 재고는 실제와 다릅니다. 일부 입고 기록은 서명과 잉크가 의심스럽습니다. 최근 창고 후문 통로로 식량이 이동한 흔적이 있습니다."

리아가 말했다.

"그럼 이제 범인을 찾나요?"

"아니요."

리아의 얼굴에 실망과 분노가 스쳤다.

"왜요?"

"범인을 찾아도 내일 아침 밥은 생기지 않습니다. 먼저 남은 식량을 지키고 외상이라도 가능한 거래처를 찾습니다. 동시에 누가 빼냈는지 확인합니다."

"항상 동시에 할 수 있어요?"

"못 할 때가 더 많습니다. 그래서 순서를 정합니다."

노아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내가 난로를 뜨겁게 해서 상한 건 아니죠?"

그 질문은 너무 작아서 등잔 소리에 묻힐 뻔했다.

서현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노아 쪽으로 몸을 돌렸다.

"아닙니다. 이 자국은 상한 게 아니라 옮긴 겁니다."

"정말요?"

"정말입니다. 그리고 네가 불안해질 때 난로가 반응한다면 그것도 벌줄 일이 아니라 기록할 일입니다."

노아는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그래도 손을 등 뒤에서 조금 빼냈다.

미나는 졸린 눈으로 서현의 수첩을 보았다.

"잉크가 이제 조용해?"

서현은 손등을 내려다봤다. 통증은 여전했지만 번짐은 멈춰 있었다.

"조금."

마리엔은 아이들 그릇이 식었을 거라며 먼저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서현은 동의했다. 아이들이 후문 통로에 오래 서 있는 건 좋지 않았다.

주방으로 돌아오자 수프는 미지근해져 있었다. 마리엔은 다시 데우는 대신 그릇 밑에 뜨거운 물을 받쳤다. 장작 하나도 아껴야 했다.

서현은 식탁 끝에 실사표를 펼쳤다.

"리아."

리아가 경계하며 고개를 들었다.

"문밖에서 볼 수 있게 이름표를 접어 줄 수 있습니까. 창고 선반마다 붙일 겁니다. 안에 들어오지는 않아도 됩니다."

"그게 무슨 도움이 되죠?"

"없는 것을 없는 자리로 남겨 둡니다. 빈칸이 있어야 다음에 누가 거짓말을 할 때 보입니다."

리아는 오래 망설였다. 그러다 수첩에서 잘라 낸 종이를 받아 들었다.

"계약상으로는 아이에게 일을 시키는 건 보호자의 의무가 아니에요."

"맞습니다. 그래서 거절할 수 있습니다."

"거절하면요?"

"제가 접습니다."

리아는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펜 주세요."

서현은 만년필을 건넸다. 리아는 밀 자루 자리. 콩 항아리 자리. 훈제육 상자 자리라고 또박또박 적었다.

글씨는 반듯했다. 아이가 오래전부터 무언가를 대신 지키려고 배운 글씨였다.

카엘은 그 모습을 말없이 보았다.

서현은 마지막 줄을 적었다.

후문 꼬리표 보관. 남부식 약호 확인 필요. 아침 전 창고 재봉인. 외부 거래 가능성 탐색.

마리엔이 수프 그릇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그래서 새 보호자님. 이 집이 어디서 새는지 보이십니까?"

서현은 후문 통로에서 가져온 꼬리표를 보았다. 찢긴 가장자리에 기름이 말라붙어 있었다.

"아직은 아닙니다."

그는 수첩을 덮었다.

"하지만 새는 문이 안쪽에 있다는 건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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