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 보호자는 살림부터 합니다

3화: 먼저 먹는 사람
수프 위의 얇은 기름막이 이미 굳기 시작했다.
리아는 숟가락을 들지 않았다. 식탁 끝에 펼쳐진 실사표와 서현의 수첩을 차례로 보던 아이가 조용히 말했다.
"계약서를 다시 보여 주세요."
카엘이 들고 있던 서류 뭉치에서 시선을 들었다.
"지금입니까."
"지금이요."
리아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또렷했다.
"보호자는 우리 재산을 대신 관리할 수 있죠. 그러면 식량도 마음대로 정할 수 있어요? 오늘은 수프만 먹으라고 하고 내일은 아무것도 주지 않아도 계약상 괜찮은지 물어보는 거예요."
노아가 손을 멈췄다. 미나는 식은 수프를 내려다보며 리아의 소매만 쥐었다.
서현은 계약서를 받아 들었다. 손등의 인장이 희미하게 달아올랐다. 글자는 읽혔지만 생계라는 단어 옆에서 번역이 한 번씩 미끄러졌다. 부양과 유지와 적정한 보호가 같은 뜻인지 그는 확신할 수 없었다.
"제가 아는 범위만 말하면 안 됩니다."
리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모르겠다는 거예요?"
"현지 법률 표현은 확인해야 합니다. 모르는 걸 아는 척하면 너희 쪽이 손해를 봅니다."
서현은 카엘에게 계약서를 내밀었다.
"생계 보전 조항과 피후견인 동의 조항을 원문 뜻에 가깝게 읽어 주십시오."
카엘은 한 박자 늦게 종이를 받았다.
"계약 보호자는 피후견인의 재산에서 생활비를 집행할 수 있습니다. 단, 건강과 연령에 맞는 생계를 이유 없이 축소하거나 포기할 수 없습니다."
"이유가 있으면 줄여도 돼요?"
"기근이나 질병처럼 피할 수 없는 사정이라면 일시 조정은 가능합니다."
카엘은 다음 줄을 읽었다.
"그 경우 보호자는 사유와 기간을 남기고 피후견인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알릴 의무가 있습니다. 일상 참여는 본인이 원할 때만 허용합니다."
리아는 자신의 손가락을 내려다봤다. 잉크가 묻은 손끝이었다.
"그럼 아까 이름표를 쓴 건요?"
"네가 원해서 했고 언제든 그만둘 수 있는 일입니다."
서현이 답했다.
"그 종이를 썼다고 해서 네 식사나 잠자리와 바꾸지 않습니다."
"말은 누구나 해요."
"맞습니다. 그래서 말 말고 표를 만들겠습니다."
서현은 수첩을 식탁 가운데로 밀었다.
"오늘 남은 식량으로 어떤 음식을 몇 번 낼 수 있는지 적습니다. 누가 무엇을 못 먹는지도 적고요. 줄일 일이 생기면 이유와 기간을 씁니다. 네가 확인할 수 있게."
"제가 확인해도 당신이 안 지키면요?"
"카엘 씨와 마리엔 씨도 같이 봅니다. 보호자가 혼자 숨길 수 있는 표가 아니게 하죠."
마리엔이 팔짱을 풀었다.
"주방 일이 또 종이 산이 되겠군요."
"그래도 하겠습니다. 대신 무엇을 적을지는 마리엔 씨가 정해 주십시오. 제가 아이들 입맛은 모르니까요."
리아가 끝내 물었다.
"그 표에 아이들이 먼저 먹는다고 쓸 수 있어요?"
"쓸 수 있습니다. 다만 정확히 씁니다. 아이는 성장에 필요한 몫을 먼저 확보합니다. 성인은 남은 것을 억지로 먹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일할 사람까지 쓰러지면 내일 식사가 끊기니까요."
"그러면 결국 똑같잖아요."
"아닙니다. 아이 몫을 성인 편의 때문에 먼저 줄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부족하면 외상 거래와 지출 조정부터 찾습니다. 아이가 굶는 걸 계산의 첫 답으로 쓰지 않겠습니다."
리아는 식은 수프를 손끝으로 밀었다.
"그걸 증명해 보세요."
마리엔은 남은 재료를 하나씩 꺼내 왔다. 작은 감자 바구니와 콩 항아리, 훈제육 여섯 줄이 조리대 위에 놓였다.
"그릇부터 세겠습니다."
"무게가 아니라요?"
"저울도 기준 무게도 없습니다. 오늘은 실제로 나갈 그릇 수를 기준으로 잡죠."
마리엔이 국자 하나를 들어 보였다.
"이걸로 죽을 뜨면 작은 그릇 열둘 반이에요. 감자를 손질하면 열세 그릇까지 나옵니다."
"아이들은요?"
"리아 아가씨는 한 그릇 반. 노아 도련님은 뜨거우면 안 드시고 미나 아가씨는 훈제육 냄새가 진하면 밤에 울어요."
미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연기 냄새. 침대까지 와."
"그러면 고기는 따로 삶겠습니다."
마리엔이 말했다.
"물을 더 넣어야 해요."
"우물은 얼지 않았다고 했죠. 장작을 아끼는 쪽으로 조정합시다."
서현은 새 표에 세 줄을 그었다.
아침. 묽은 콩감자죽.
점심. 남은 죽과 훈제육 국물.
저녁. 감자와 콩을 더 넣은 죽.
"이건 사흘을 버티는 표입니다. 외상 거래처를 찾으면 고쳐야 합니다."
카엘이 낮게 말했다.
"날이 밝으면 마을 쪽으로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명세를 먼저 보내야 합니다. 무엇이 필요하고 언제 갚을지 적어야 거래처도 답을 줍니다."
카엘의 표정이 굳었다.
"공작가에 신용이 없다는 말입니까."
"지금 창고에 사흘 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거래처는 그걸 봅니다."
노아가 자기 그릇을 앞으로 밀었다.
"나는 반만 먹어도 돼요."
서현은 수첩에서 고개를 들었다.
"왜요?"
노아는 대답하지 못했다. 손끝에 푸른 빛이 아주 희미하게 번졌다.
리아가 대신 말했다.
"노아는 많이 먹으면 난로가 뜨거워진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남은 게 적으니까요."
"난로가 뜨거워지는 건 기록할 일입니다. 밥을 덜 먹어서 해결할 일은 아닙니다."
서현은 노아 앞에 빈칸을 하나 만들었다.
노아. 뜨거운 음식이 힘든지. 먹고 난 뒤 손끝 반응. 잠든 시간.
"오늘은 식은 죽으로 반 그릇을 먼저 먹어 봅시다. 더 먹을 수 있으면 더 먹습니다. 못 먹으면 이유를 적고 다른 방법을 찾습니다. 네가 굶는 걸 기본값으로 두지 않겠습니다."
노아가 빈칸을 오래 바라봤다.
"기록하면 혼나지 않아요?"
"기록은 벌점표가 아닙니다. 다음에 네가 덜 무서운 방법을 찾는 표입니다."
노아의 손끝 빛이 조금 사그라들었다.
미나는 수프 냄새를 맡고 고개를 저었다.
"이건 싫어."
"그럼 고르세요. 감자만 으깬 것과 콩을 아주 적게 넣은 죽 중에 어느 쪽이 나아요?"
미나는 감자 바구니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하얀 거."
"좋습니다. 미나는 감자죽."
"그러면 마리엔 씨가 적어 주세요. 제가 틀리게 적으면 바로 고치고요."
마리엔은 수첩을 받아 들었다.
미나. 훈제육 냄새가 강하면 수면 불안. 감자죽 선호.
리아가 그 문장을 읽었다.
"그걸 남들이 보면 미나가 까다롭다고 할 거예요."
"그럼 이유도 같이 씁니다. 까다로운 게 아니라 잠을 지키기 위한 조정이라고요. 누가 비웃으면 그 사람이 잘못 읽은 겁니다."
리아는 더 말하지 못했다. 대신 자기 그릇의 수프를 노아 쪽으로 밀었다.
"저는 안 먹어도 돼요. 노아한테 주세요."
"리아."
"저는 열한 살이고 동생들보다 커요. 참을 수 있어요."
"참을 수 있다는 말과 참아야 한다는 말은 다릅니다."
서현은 리아 앞에 놓인 그릇을 다시 가운데로 돌렸다.
"오늘 네가 정말로 나누고 싶다면 막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오늘 밤 안 먹는다고 정하면 내일 아침에도 같은 선택을 할지 묻겠습니다. 네가 어지럽거나 잠을 못 자면 그 기록도 남깁니다."
리아의 얼굴이 붉어졌다.
"제가 거짓말할 거라고요?"
"아니요. 네가 너무 오래 참는 쪽으로만 결론을 낼까 봐요."
"아빠가 없는데 누군가는 해야 하잖아요."
그 말 뒤에 식당의 공기가 멎었다.
서현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리아는 울지 않았다. 울지 않으려는 아이의 얼굴이 더 단단해 보였다.
"누군가는 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누군가가 열한 살짜리 한 명일 필요는 없습니다."
서현이 천천히 말했다.
"네가 동생들을 생각하는 건 네 권리입니다. 네 식사까지 포기하는 건 내가 대신 막아야 하는 일입니다."
리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계약상으로도요?"
"계약상으로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내가 정한 일로 네가 굶었다면 그 책임은 내 쪽에 남습니다."
서현은 새 종이를 꺼냈다. 맨 위에 크게 적었다.
헤르윈 아이들 식사 기록.
그 아래에 세 이름을 쓰고 각각 두 칸을 만들었다.
제공한 식사.
본인 선택과 상태.
"첫 줄은 제가 씁니다. 두 번째 줄은 네가 원하면 직접 쓰고 아니면 말로 해도 됩니다."
리아가 종이를 빼앗듯 받아 들었다.
"제가 확인할 수 있게 당신도 서명하세요."
"좋습니다."
서현은 보호자란에 자기 이름을 적었다.
윤서현. 오늘부터 아이 몫을 이유 없이 줄이지 않음. 조정이 필요하면 사유와 다음 확인 시간을 기록함.
리아는 한 줄을 더 썼다.
리아 헤르윈. 동생 몫을 원하면 말로 요구함. 몰래 내 식사를 비우지 않음.
"이건 오늘만이에요."
"오늘을 지키면 내일도 같은 표를 씁니다."
"내일 당신이 없을 수도 있잖아요."
서현은 잠시 멈췄다.
"그때도 표는 남습니다. 그래서 카엘 씨와 마리엔 씨 이름도 받겠습니다."
카엘은 펜을 받아 짧게 서명했다.
마리엔은 자신의 이름 아래에 덧붙였다.
아이들 접시는 식기 전에 먼저 낸다.
그 문장을 본 미나가 처음으로 숟가락을 들었다.
"먼저."
"그래. 먼저."
마리엔이 대답했다.
새 죽을 끓이는 동안 리아는 식탁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미나는 감자죽을 세 숟가락 먹고 고개를 끄덕였다. 노아는 식은 콩죽을 반 그릇 비운 뒤 손끝을 들여다봤다.
"안 뜨거워요."
서현은 그 말 옆에 작은 동그라미를 쳤다.
리아도 제 몫의 수프를 끝까지 먹고 종이를 접었다.
카엘이 창밖을 보았다. 아직 밤은 짙었지만 동쪽 유리창이 아주 조금 옅어지고 있었다.
"외상 명세를 정리하겠습니다. 날이 밝으면 마을로 보낼 사람을 구하겠습니다."
"저도 창고 봉인을 다시 확인하겠습니다."
리아가 바로 고개를 들었다.
"지금요?"
"아침 전에 한 번 더 봐야 합니다. 기준선은 자주 확인할수록 쓸모가 있습니다."
"저도 갈래요."
"안 됩니다. 동생들 곁에 있어 주세요. 그건 부탁입니다."
리아는 불만스러운 얼굴이었지만 미나가 손을 내밀자 그 손을 잡았다.
서현과 카엘은 등잔 하나만 들고 창고 쪽 복도로 나갔다. 서현의 손등이 찌르듯 아팠다.
문 앞에 붙인 종이가 바닥으로 떨어져 있었다.
촛농 한쪽이 깔끔하게 꺾여 있었다.
카엘이 숨을 죽였다.
"바람일 수 있습니다."
"복도 창문은 닫혀 있습니다."
서현은 문고리 쪽을 보았다. 종이의 찢긴 끝이 안쪽을 향해 말려 있었다.
"문을 열지 마십시오."
카엘의 손이 열쇠 앞에서 멈췄다.
"무엇을 확인하려는 겁니까."
"누가 들어갔는지부터요. 지금 열면 흔적이 섞입니다."
그때 식당 쪽에서 미나의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서현 아저씨."
미나가 리아의 손을 잡은 채 복도 끝에 서 있었다. 아이는 손등의 인장을 가리켰다.
"잉크가 차가워."
노아도 리아 뒤에서 창고 벽을 바라봤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저기 난로석이요. 아까보다 뜨거워요."
창고 안쪽 벽에서 푸른 빛이 한 번 번뜩였다.
서현은 문에서 한 걸음 물러났다.
"카엘 씨. 아이들을 식당으로 데려가세요. 아무도 이 복도로 오지 못하게 하고요."
카엘이 말했다.
"당신은요."
서현은 끊어진 봉인과 창고 문을 번갈아 보았다.
"남은 식량이 아니라 다른 것이 먼저 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