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바닥 전이자는 다시 산다

6화: 붉은 바닥의 규칙
지하 하역장은 숨을 쉬는 곳이 아니었다.
한서준은 계단 끝에서 그 생각부터 했다. 공기는 뜨겁고 낮았다. 오래 젖은 쇠 냄새와 썩은 물 냄새가 목 안쪽에 달라붙었다.
위에서 맡았던 피 냄새도 있었다.
여기서는 더 오래된 냄새였다.
천장에는 줄과 쇠고리가 빽빽하게 매달려 있었다. 그 아래로 손목패를 단 사람들이 자루를 끌고 움직였다. 자루가 바닥을 긁을 때마다 검은 물이 튀었다.
서준의 손목도 끌렸다.
앞줄의 마른 남자가 움직였기 때문이다. 둘 사이에 걸린 나무 막대가 삐걱거렸다. 서준이 늦게 한 걸음을 내딛자 손목 끈 안쪽의 쇠심이 살을 파고들었다.
"아, 좀..."
말은 끝까지 나오지 못했다.
막대 든 인부가 바닥을 쳤다.
쾅.
소리 하나에 주변 사람들이 동시에 고개를 숙였다. 서준만 늦었다. 인부의 시선이 그에게 닿았다.
서준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무슨 말인지 몰라도 저 소리가 설명이 아니라는 건 알았다.
앞의 마른 남자가 바닥의 붉은 자국 옆에 섰다. 선처럼 보였지만 칠한 것은 아니었다. 오래 밟힌 인주인지 피인지 모를 얼룩이 길처럼 굳어 있었다.
회색 끈을 단 사람들은 그 붉은 자국을 따라 섰다.
검은 끈을 단 사람들은 벽 쪽으로 빠졌다.
녹슨 쇠 조각이 달린 패를 가진 사람들은 눈도 들지 않고 자루 더미 사이로 들어갔다.
서준은 자기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회색 끈.
앞의 마른 남자도 회색이었다.
남자는 서준을 돌아보지 않았다. 그는 두 손으로 나무 막대를 잡고, 맞은편 자루 고리에 막대 끝을 걸었다.
서준은 한 박자 늦게 따라 했다.
자루가 생각보다 무거웠다.
들리는 것이 아니라 바닥에 붙어 있는 것 같았다. 젖은 모래인지, 쇠 조각인지, 죽은 짐승인지 알 수 없었다. 서준은 어깨를 들어 올리려 했지만 갈비뼈가 먼저 비명을 질렀다.
마른 남자가 움직였다.
서준이 늦었다.
자루가 비틀리고, 막대가 손목을 잡아당겼다. 끈 안쪽의 쇠심이 살을 찢듯 조였다. 서준은 이를 악물었지만 몸이 옆으로 기울었다.
뒤에서 무엇인가가 어깨를 쳤다.
막대였다.
"윽!"
무릎이 접힐 뻔했다. 그래도 넘어지지는 않았다. 넘어지면 자루와 앞사람까지 같이 끌고 갈 것 같았다.
인부가 뭐라고 소리쳤다.
서준은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발이 움직였다. 같은 회색 끈들이 왼쪽으로 붙었다. 검은 끈들은 숨듯 벽에 달라붙었다. 서준은 마른 남자의 발만 보았다.
발을 따라가면 덜 맞았다.
어깨 높이를 맞추면 자루가 덜 흔들렸다.
늦으면 손목이 찢어졌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몸이 먼저 알아들었다.
작업장은 규칙적인 소리로 가득했다. 자루가 끌리는 소리, 쇠고리가 천장 줄을 긁는 소리, 막대가 바닥을 치는 소리, 사람이 숨을 삼키는 소리.
서준은 그 사이에서 자기 숨만 너무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은 첫 자루를 낮은 판자 위에 올렸다. 놓자마자 서준은 허리를 접었다. 땀이 눈으로 흘러 들어갔다.
쉬고 싶었다.
그 생각이 들자마자 마른 남자가 다시 움직였다.
"잠깐만."
서준은 한국어로 말했다.
남자는 멈추지 않았다.
막대가 다시 당겨졌다. 서준은 욕을 삼키며 따라갔다. 따라가지 않으면 손목이 먼저 대답했다.
두 번째 자루는 더 젖어 있었다.
바닥에도 물이 많았다. 검은 물 위에 붉은 얼룩이 떠 있었다. 누군가 그쪽으로 발을 딛자 바로 미끄러졌다.
넘어진 사람은 검은 끈을 단 여자였다.
여자는 자루 아래에 한쪽 다리를 깔았다. 소리가 짧게 터졌다. 주변 사람들은 보았지만 누구도 바로 손을 뻗지 않았다.
인부가 먼저 왔다.
그는 여자를 일으키는 대신 바닥을 쳤다. 그리고 자루를 가리켰다. 여자는 이를 악물고 기어 나오려 했다.
서준은 걸음을 멈췄다.
마른 남자의 몸도 같이 당겨졌다.
마른 남자가 처음으로 돌아보았다.
눈이 깊게 꺼져 있었다. 화난 얼굴은 아니었다. 부탁하는 얼굴도 아니었다.
그냥 멈추지 말라는 얼굴이었다.
서준은 숨을 들이켰다.
발이 다시 움직였다.
여자를 지나쳤다.
자기 발이 너무 쉽게 움직인다는 사실이 역겨웠다. 그런데 멈출 수 없었다. 멈추면 손목이 찢어지고, 막대가 내려오고, 자루가 자신을 눌렀을 것이다.
그는 바닥을 보았다.
여자가 밟았던 자리에는 진한 붉은 자국이 있었다. 그 위로 검은 쇳가루 같은 것이 번져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 자리를 아주 조금씩 비켜 갔다.
서준은 그제야 보았다.
바닥은 전부 같지 않았다.
어떤 얼룩은 밟아도 괜찮았다. 어떤 얼룩은 발을 잡아당겼다. 어떤 물웅덩이는 얕았고, 어떤 곳은 자루 밑에서 흘러나온 찌꺼기가 미끄럽게 깔려 있었다.
사람들은 말하지 않았다.
대신 발끝이 말하고 있었다.
여기는 밟지 말라고.
서준은 마른 남자의 발과 바닥의 얼룩을 번갈아 보았다.
세 번째 자루를 들 때는 조금 나았다.
조금.
그뿐이었다.
갈비뼈 통증은 더 심해졌고, 손목에서는 따뜻한 것이 흘렀다. 피인지 땀인지 알 수 없었다. 어깨는 이미 자기 것이 아닌 것 같았다.
그래도 막대는 한 번 덜 맞았다.
그 사실이 기뻐서 더 비참했다.
작업장 안쪽에서 낮은 판자가 내려왔다. 사람들은 그쪽으로 몰렸다. 자루를 실은 판자가 경사로 위로 끌려 올라가는 구조였다.
마른 남자가 그쪽으로 갔다.
서준도 끌려갔다.
경사로는 좁았다. 한쪽은 벽이고, 다른 한쪽은 자루가 쌓인 낮은 구덩이였다. 구덩이 아래에서는 누군가의 신음이 들렸다.
서준은 보지 않으려 했다.
앞만 보자.
마른 남자의 발.
붉은 자국.
줄의 당김.
중간쯤 올라갔을 때, 마른 남자의 무릎이 꺾였다.
막대가 한쪽으로 확 기울었다.
서준의 손목이 따라 당겨졌다. 그는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남자를 잡으려 한 것인지, 막대를 잡으려 한 것인지 자신도 몰랐다.
손끝은 막대를 먼저 붙잡았다.
자기 손목이 찢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야 남자의 어깨가 보였다.
"일어나. 일어나라고."
한국어는 아무 데도 닿지 않았다.
마른 남자는 숨만 몰아쉬었다. 눈동자가 흔들렸다. 자루가 뒤에서 밀려 내려오고 있었다.
아래쪽 인부가 소리쳤다.
서준은 모른다.
모르는데도 알 것 같았다.
멈추면 맞는다.
넘어지면 깔린다.
한 사람이 무너지면 둘이 끌려간다.
서준은 막대를 양손으로 잡아당겼다. 손목 끈이 살을 더 파고들었다. 그는 비명을 삼키고 몸을 뒤로 젖혔다.
마른 남자가 조금 올라왔다.
그때 인부의 막대가 서준의 등 위로 떨어졌다.
숨이 끊겼다.
서준은 바닥에 무릎을 찍었다. 그래도 막대는 놓지 않았다. 놓으면 자기 손목이 끝난다는 생각뿐이었다.
남자는 그 틈에 한쪽 무릎을 세웠다.
둘은 거의 기어가듯 경사로를 넘었다.
자루가 판자 위로 떨어졌다.
쿵.
서준은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마른 남자도 옆에 쓰러졌다. 그의 입가에 거품이 묻어 있었다. 서준은 그걸 보고 손을 뻗으려다가 멈췄다.
도와야 한다는 생각보다 먼저 든 것은, 저 사람이 죽으면 나는 누구와 묶이는가 하는 생각이었다.
그 생각이 너무 선명했다.
서준은 자기 자신에게 질릴 시간도 없었다.
하역장 감독이 다가왔다.
검은 가죽 앞치마를 두른 남자였다. 그는 서준을 오래 보았다. 그리고 서준의 손목패를 손가락으로 들어 올렸다.
서준은 숨을 멈췄다.
감독은 붉은 얼룩 묻은 짧은 조각을 꺼내 패 뒤쪽에 선 하나를 그었다.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좋은 뜻일 리는 없었다.
감독이 마른 남자를 가리켰다.
인부 하나가 다가와 마른 남자의 얼굴에 물을 뿌렸다. 남자는 기침하며 몸을 떨었다. 살아 있었다.
서준은 안도했다.
그리고 바로 부끄러웠다.
안도한 이유가 그 사람이 살았기 때문인지, 자신이 혼자 묶이지 않게 되었기 때문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막대 든 인부가 다시 바닥을 쳤다.
쾅.
사람들이 움직였다.
서준도 움직였다.
이번에는 마른 남자의 발만 보지 않았다. 바닥의 붉은 자국을 보았다. 검은 쇳가루가 많은 곳을 피했다. 줄이 어느 쪽으로 당겨지는지 먼저 느끼려 했다.
살려면 봐야 했다.
봐야 덜 맞았다.
봐야 넘어지지 않았다.
서준은 주머니 속 사진을 만지고 싶었다.
하지만 손이 묶여 있었다.
대신 그는 이를 악물고 바닥을 보았다.
빨간 얼룩.
검은 물.
쇳가루.
사람들이 피하는 한 뼘.
그 작은 차이들이 여기서는 말보다 정확했다.
서준은 그 한 뼘을 외우려 했다.
방금 누가 넘어졌는지, 어느 자루가 새는지, 인부의 막대가 어느 쪽 어깨부터 내려오는지. 머릿속에 넣으려 하자 금방 뒤섞였다. 그래도 놓치면 손목이 대답했다.
외우는 것이 아니라 맞으면서 깎이는 것 같았다.
작업장 위쪽에서 또 다른 철문이 열렸다. 새 자루들이 쏟아졌고, 함께 누군가의 울음소리도 내려왔다.
서준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들면 늦는다.
늦으면 맞는다.
그는 눈앞의 발자국을 따라 한 걸음 움직였다.
그 순간 감독의 시선이 다시 손목패 뒤쪽의 붉은 선에 머물렀다.
서준은 그것을 보았다.
무슨 뜻인지는 아직 몰랐다.
하지만 손목이 먼저 차가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