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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바닥 전이자는 다시 산다2화

밑바닥 전이자는 다시 산다

밑바닥 전이자는 다시 산다

2화: 낯선 쓰레기장

처음에는 아직 역 바닥에 엎어져 있는 줄 알았다.

한서준은 눈을 뜨지 못한 채 손바닥으로 바닥을 더듬었다. 축축한 것이 손가락 사이로 밀려들었다. 콘크리트가 아니었다. 모래와 재, 진흙이 섞인 흙이었다.

숨을 들이마시자 썩은 냄새가 목 안쪽을 긁었다.

"윽."

몸을 돌리려는 순간 갈비뼈 쪽에서 통증이 터졌다. 서준은 옆으로 웅크린 채 기침했다. 입안에는 흙맛과 피맛이 같이 났다.

머리 위에서는 안내 방송도, 브레이크 갈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대신 멀리서 거친 목소리가 오갔다.

짧고 낮았다. 한국어가 아니었다.

서준은 반사적으로 휴대폰을 찾았다. 손끝에 금 간 액정이 걸렸다. 그는 급히 전원 버튼을 눌렀다.

화면이 한 번 희미하게 켜졌다.

검은 배경 위로 깨진 선만 번지더니 곧 꺼졌다.

"아니, 제발."

다시 눌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서준은 손이 떨리는 걸 숨기듯 휴대폰을 움켜쥐었다. 엄마의 이름도, 음성 메시지도, 배터리 표시도 보이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눌렀어야 했던 통화 버튼은 이제 어디에도 없었다.

그는 몸을 일으키려다 무릎을 짚고 멈췄다. 청바지 무릎은 찢어져 있었다. 피와 진흙이 엉겨 붙어 천이 딱딱했다. 왼쪽 어깨도 제대로 올라가지 않았다.

지갑은 주머니 안에 있었다.

서준은 주민등록증, 정지된 카드, 구겨진 지폐 몇 장을 확인했다. 손끝이 가족사진에 닿았다.

네 사람이 웃고 있었다.

엄마가 사진 속 서준의 팔을 붙잡고 있었다.

그는 사진을 오래 보지 못하고 지갑을 닫았다. 지금 보면 정말로 주저앉을 것 같았다.

주위가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쓰레기장이었다.

나무 상자 조각, 깨진 항아리, 썩은 천, 짐승 뼈 같은 것들이 진흙 속에 박혀 있었다. 검은 물웅덩이 위에는 기름막 같은 빛이 떠 있었다. 멀리에는 낮은 성벽의 그림자가 보였고, 성벽 위 불빛들이 바람에 흔들렸다.

성문처럼 보이는 곳은 닫혀 있었다.

"여기 어디야."

대답은 없었다.

대신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서준은 본능적으로 쓰레기 더미 뒤에 몸을 낮췄다. 하지만 숨을 곳이라고 하기엔 너무 얕았다. 깨진 나무판자 사이로 두 명의 아이가 나타났다.

아이들은 막대기로 쓰레기를 뒤지다 서준을 보고 멈췄다.

둘 다 말랐다. 한 아이는 한쪽 발에만 신발을 신고 있었다. 다른 아이의 손에는 녹슨 쇠꼬챙이가 들려 있었다.

큰아이가 뭐라고 외쳤다.

서준은 두 손을 들었다.

"잠깐만. 나 길을 잃었어요. 역이 어디예요? 경찰, 아니..."

말이 스스로 무너졌다.

아이들은 알아듣지 못했다. 큰아이는 서준의 운동화를 가리켰다. 작은아이는 그의 손에 들린 지갑을 보았다.

"이거? 돈?"

서준은 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 보였다.

작은아이가 종이를 빼앗듯 가져갔다. 그는 불빛 쪽으로 종이를 들어 올려 보더니 얼굴을 찡그렸다. 그리고 젖은 낙엽처럼 서준의 가슴팍에 던졌다.

그 행동이 이상하게 모욕적이었다.

"야, 그거 돈이야."

서준이 지갑을 다시 움켜쥐자 뒤에서 더 굵은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은 동시에 물러섰다.

남자 둘이 다가왔다.

하나는 털 달린 외투를 걸쳤고, 다른 하나는 허리에 짧은 칼을 찼다. 칼집 끝에 말라붙은 진흙이 덩어리져 있었다.

서준은 그 칼을 보고 숨을 멈췄다.

외투를 입은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 무슨 말을 했다. 뜻은 몰랐지만 요구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없어요. 진짜 없다고."

서준은 지갑을 주머니에 넣고 뒤로 물러섰다.

남자의 시선이 지갑에서 운동화로, 운동화에서 서준의 외투로 옮겨 갔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얼굴에 멈췄다. 길 잃은 사람을 보는 눈이 아니었다.

쓸 만한 것과 아닌 것을 가르는 눈이었다.

남자가 다시 말했다.

서준은 고개를 저었다.

"못 알아듣는다고요."

다음 순간 어깨가 밀렸다.

서준은 쓰레기 더미 위로 넘어졌다. 손바닥에 깨진 조각이 박혔다. 뜨거운 통증이 올라왔지만 비명을 참았다. 비명을 지르면 더 약해 보일 것 같았다.

남자가 다가왔다.

서준은 일어났다.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만 남았다.

그는 뒤돌아 뛰었다. 다리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도 달렸다. 누군가 웃는 소리가 났다. 아이들이 소리쳤다. 서준은 진흙에 미끄러져 낮은 둔덕 아래로 굴렀다.

어깨가 돌에 부딪혔다.

눈앞이 하얘졌다.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서준은 배수로 옆에 누워 있었다. 물은 검고 느렸다. 위쪽에서는 남자들의 목소리가 멀어지고 있었다. 성벽 쪽에서 종이 한 번 울렸고, 닫힌 성문 앞 불빛이 더 작아졌다.

그는 그제야 손바닥을 보았다.

작게 찢어진 곳에서 피가 났다. 상처 안에 검은 재가 묻어 있었다. 닦을 물은 옆에 있었지만, 그 물에 손을 넣으면 더러운 것이 몸속으로 들어올 것 같았다.

"미친 거 아니야."

말을 해도 돌아오는 것은 자기 숨소리뿐이었다.

배가 아팠다.

처음에는 갈비뼈 통증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배고픔이었다. 편의점에서 내려놓은 삼각김밥이 떠올랐다. 그때는 자존심 때문에 내려놓았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돈이 없어서였다.

여기서는 자존심 같은 게 더 쓸모없었다.

서준은 주변을 뒤졌다. 젖은 천 조각 하나를 찾아 어깨에 감았다. 썩은 냄새가 났지만 추위보다는 나았다. 쓰레기 사이에는 딱딱하게 굳은 빵 같은 것이 있었다.

그는 한참을 내려다봤다.

안 먹으면 버틸 수 없을지도 몰랐다.

먹으면 탈이 날지도 몰랐다.

서준은 손끝으로 조금 떼어 입에 넣었다. 씹기도 전에 토기가 올라왔다. 그는 옆으로 고개를 돌리고 토했다. 나온 것은 거의 없었다. 목만 찢어질 것 같았다.

"집에 갈래."

입 밖으로 나온 말이 너무 어린애 같아서 더 비참했다.

갈 수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전화만 받았으면. 아니, 돈을 훔치지 않았으면. 아니, 그 전에 도망치지 않았으면.

생각은 거기서 자꾸 끊겼다. 끝까지 가면 전부 자기 쪽으로 돌아올 것 같았다.

서준은 휴대폰을 다시 꺼냈다.

화면은 죽은 돌 같았다.

그는 지갑에서 가족사진을 꺼냈다. 어둠 속이라 얼굴은 희미했다. 그래도 엄마가 자기 팔을 붙잡고 있는 손만은 보였다.

"받으려고 했어."

아무도 믿지 않을 변명이라는 걸 알았다.

그래도 말했다.

"진짜 이번엔 받으려고 했다고."

바람이 배수로를 타고 불었다. 젖은 천이 등에 달라붙었다. 서준은 사진을 지갑 안쪽에 밀어 넣고 품속에 넣었다.

잠들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런데 눈꺼풀이 내려왔다.

몸은 이미 한계를 넘긴 것 같았다. 추위와 통증이 한꺼번에 밀려오더니 어느 순간 멀어졌다. 서준은 그게 더 무서웠다.

그래도 눈을 감았다.

무언가가 발끝을 건드렸다.

서준은 튕기듯 깼다.

등불 하나가 가까이 있었다.

노란 빛 뒤에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단정한 옷, 얇은 장갑, 웃고 있는 입. 폐기장 냄새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남자는 서준과 거리를 둔 채 무릎을 낮췄다.

그가 뭐라고 말했다.

서준은 고개를 저었다.

"못 알아들어요."

남자는 잠시 생각하듯 서준을 보았다. 그러더니 자기 가슴을 가리켰다.

"마르코."

발음은 낯설었지만 이름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서준은 마른 입술을 움직였다.

"한서준."

남자는 천천히 따라 했다.

"한. 서. 준."

그 소리가 이상하게 사람 목소리처럼 들렸다. 서준은 울 것 같아 고개를 숙였다.

등불 뒤 어둠에는 다른 남자 둘이 서 있었다. 아까 본 사람들과는 달랐지만 눈빛은 비슷했다. 그들은 서준의 신발과 손, 얼굴을 차례로 훑었다.

마르코가 뒤돌아 짧게 말했다.

남자들이 입을 다물었다.

그 한마디로 주변이 조용해졌다.

서준은 그제야 마르코가 여기서 아무 힘도 없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느꼈다. 하지만 그게 좋은 뜻인지 나쁜 뜻인지는 알 수 없었다.

마르코는 품에서 작은 가죽 주머니를 꺼냈다. 물이었다. 이어 얇은 빵 조각을 내밀었다.

서준은 바로 받지 못했다.

칼을 찬 남자. 지갑을 보던 아이. 물건처럼 훑던 눈. 전부 떠올랐다.

마르코는 빵 끝을 자기 입에 조금 대 보이고 다시 내밀었다. 웃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서준의 손이 먼저 움직였다.

빵은 딱딱했고, 물은 비릿했다. 그래도 목으로 넘어갔다. 서준은 거의 울면서 삼켰다. 위장이 아프게 움찔거렸지만 손을 멈출 수 없었다.

마르코는 서준이 먹는 동안 기다렸다.

그리고 손을 내밀었다.

따라오라는 몸짓이었다.

성벽 쪽 불빛이 그의 등 뒤에 있었다. 닫힌 성문 옆으로 좁은 샛길 같은 어둠이 보였다. 그 길 끝에 무엇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서준은 일어나려다 비틀거렸다.

마르코가 팔꿈치를 받쳐 주었다. 얇은 장갑이 차가웠다.

도와주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일어설 수 없었다.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하지만 폐기장에 남아 있으면 다음에는 신발부터 벗겨질 것이다. 그다음에는 외투일 것이다. 그다음에는 자신이 알아듣지 못하는 말들 사이에서 어디론가 끌려갈지도 몰랐다.

서준에게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그는 품속의 지갑을 한 번 눌렀다. 가족사진의 딱딱한 모서리가 손바닥에 닿았다.

마르코가 다시 부드럽게 말했다.

뜻은 몰랐다.

서준은 그 목소리를 구조라고 믿는 척하며 첫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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