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바닥 전이자는 다시 산다

13화: 한 닢의 책임
물통 앞의 손바닥은 아직 펴져 있었다.
한서준은 그 손바닥을 보지 않으려 했다. 판 위의 조각을 보려고 했다. 검은 조각, 붉은 찌꺼기, 젖은 조각. 그것들을 홈에 올리고, 틈이 닫히기 전에 손을 빼면 됐다.
그것만 보면 됐다.
딱.
소리는 여전히 났다.
회색 끈 노동자는 물통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손가락 사이에서 피가 흘렀다. 피는 손목을 타고 팔꿈치 아래까지 내려갔다.
물통 담당 인부는 피를 보고도 먼저 물을 뜨지 않았다.
손바닥을 폈다.
돈.
물.
천.
말을 몰라도 순서는 보였다.
서준은 옷 안쪽의 동전을 느꼈다.
한 닢.
그게 전부였다.
빵 반 조각도 있었다. 젖은 천 사이에서 눌려 부서지고 있었다. 동전을 내놓으면 다음 물이 없었다. 빵을 내놓으면 다음에 씹을 것이 없었다.
내가 시킨 게 아니다.
그 생각은 이번에도 빨랐다.
저 사람이 본 거다.
저 사람이 따라 한 거다.
나는 말하지 않았다.
말도 통하지 않았다.
막대가 등을 밀었다. 서준은 다시 판 앞에 섰다. 왼쪽 홈 가장자리에 피가 묻어 있었다. 방금 닫힌 틈이었다. 검은 물과 붉은 찌꺼기 사이에서 그 피만 밝았다.
서준은 고개를 돌렸다.
막대가 어깨를 눌렀다.
다시 보라는 뜻이었다.
조각이 내려왔다. 서준은 손바닥을 판 가까이 대었다. 이번에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판이 떨리는지, 자기 손이 떨리는지 구분되지 않았다.
딱.
그는 겨우 손을 뺐다.
다치지 않았다.
다행이라는 말이 머릿속에 떠오르자마자 물통 앞의 피가 다시 보였다.
다행은 누구한테 다행인가.
그는 그 생각을 밀어냈다.
물통 담당 인부가 더러운 천 조각을 들어 보였다. 회색 끈 노동자는 피 묻은 손으로 그것을 잡으려 했다. 인부는 천을 물렸다.
다시 손바닥.
회색 끈은 아무것도 내놓지 못했다. 그는 자기 손목패를 쥐었다. 그 손목패에도 선들이 있었다. 서준은 뜻을 몰랐다. 하지만 저 나무패가 돈이 아니라는 것만은 알았다.
마른 남자가 물통 옆에서 서준을 보았다.
그는 말하지 않았다.
자기 손목 안쪽을 눌렀다.
한 번.
그리고 물통 가장자리를 손가락으로 건드렸다.
아주 작게.
서준은 뜻을 알 수 없었다.
꺼내라는 건가.
숨기라는 건가.
지금 꺼내면 너도 기록된다는 뜻인가.
아니면, 네 손 때문에 저 손이 저렇게 됐다는 뜻인가.
모든 뜻이 가능했다.
그래서 아무것도 못 했다.
다음 조각이 왔다. 서준은 손을 움직였다. 일부러 회색 끈 쪽을 보지 않았다. 그런데도 회색 끈 노동자가 다친 손을 감싸고 다시 일어나려 하는 것이 보였다.
인부가 그를 판 쪽으로 밀었다.
회색 끈은 다친 손이 아닌 다른 손으로 조각을 집으려 했다. 피가 팔목으로 흘렀다. 손을 제대로 쥐지 못해 조각이 한 번 바닥에 떨어졌다.
막대가 그의 등을 찍었다.
서준의 속이 뒤틀렸다.
내 탓이 아니다.
그 말이 다시 올라왔다.
너무 편했다.
편해서 더 싫었다.
웃는 얼굴 하나가 스쳤다. 물과 빵을 주고, 잠자리를 주고, 결국 철문 안쪽으로 넘긴 얼굴. 그 얼굴도 이런 말을 삼켰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쩔 수 없었다고.
네가 믿은 거라고.
서준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다. 갈비뼈가 아팠다. 목은 말랐다. 배는 비었다.
동전은 아직 있었다.
그러니까 버틸 수 있었다.
그런데 회색 끈 노동자는 지금 조각 하나도 제대로 쥐지 못했다.
딱.
판이 닫혔다.
서준은 손을 뺐다. 이번에는 맞혔다. 감독이 보았다. 선별자가 판자 위에 무언가를 적었다.
맞혔다는 사실이 싫었다.
맞히면 더 시킨다.
틀리면 누가 다친다.
가만히 있으면 지나갈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물통 담당 인부가 회색 끈 노동자를 다시 잡아당겼다. 피가 너무 많이 떨어져 판 옆 바닥에 작은 점들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인부는 짜증 난 얼굴로 물을 아주 조금 떠 손 위에 부으려 했다.
그러다 멈췄다.
손바닥.
또 손바닥.
서준은 옷 안쪽으로 손을 넣었다.
손가락 끝에 동전이 닿았다. 차가웠다. 너무 작았다. 이것 하나로 천과 물이 될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내놓자마자 빼앗기고 아무것도 오지 않을지도 몰랐다.
그는 동전을 꺼내지 않았다.
못 꺼냈다.
마른 남자가 이번에는 눈을 내렸다. 더는 서준을 보지 않았다. 그게 더 압박처럼 느껴졌다.
서준은 동전을 손가락 사이에 끼웠다.
직접 주면 끝이었다.
내가 냈다는 걸 모두 안다.
그는 몸을 숙이는 척했다. 판 옆에 떨어진 붉은 찌꺼기를 집는 척했다. 그리고 동전을 바닥에 놓았다.
굴리려 했지만 손이 떨렸다.
동전은 멀리 가지 못했다.
딸깍.
소리가 났다.
작았다.
모두 들었다.
서준은 얼었다.
물통 담당 인부가 동전을 보았다. 회색 끈 노동자도 보았다. 하역장 감독도 보았다. 선별자는 판자 위에서 손을 멈췄다.
우연처럼 보이지 않았다.
전혀.
인부가 동전을 집었다. 그는 서준을 보았다. 웃지 않았다. 고맙다는 뜻도 없었다. 그냥 물통에 바가지를 넣었다가 꺼냈다.
물은 아주 조금이었다.
천은 더러웠다.
그래도 회색 끈 노동자는 그것을 받았다. 물은 손을 씻는다기보다 피를 옅게 만드는 정도였다. 천은 피를 막는다기보다 피가 덜 보이게 감추는 정도였다.
회색 끈은 천을 감으려 했지만 손가락이 말을 듣지 않았다.
서준은 옷 안쪽의 빵 조각을 느꼈다.
내놓지 마.
그 생각이 먼저였다.
동전도 냈다.
더 내면 죽는다.
회색 끈의 입술이 하얬다. 그는 물을 마시지 못했다. 물은 손에 부어졌고, 천은 피를 먹었다. 배에 들어갈 것은 없었다.
서준은 빵을 꺼냈다.
반 조각이라고 생각했는데, 손에 나온 것은 부스러기에 가까웠다. 젖어서 뭉쳐 있었다. 그는 그것을 회색 끈 노동자 앞 바닥에 놓았다.
막대가 바로 움직였다.
서준은 손을 뺐다.
회색 끈은 빵을 보았다.
그 다음 서준을 보았다.
고맙다는 표정은 아니었다.
화난 얼굴도 아니었다.
그냥 지친 얼굴이었다.
그는 빵을 입에 넣지 않았다. 먼저 천을 감았다. 그 다음 빵을 손목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숨겼다.
서준은 그제야 알았다.
먹을 수 있을 때 먹는 것이 아니라, 빼앗기지 않을 때 먹는 것이다.
물통 담당 인부가 낮게 소리쳤다. 하역장 감독이 다가왔다. 감독은 회색 끈 노동자의 손보다 먼저 서준의 손목패를 잡았다.
서준은 저항하지 않았다.
저항하면 맞는다.
감독은 손목패 뒤쪽을 뒤집었다. 붉은 선, 붉은 점, 긁힌 자국, 검은 선, 검은 선 옆 흠.
그 옆에 선별자가 검은 조각 끝을 댔다.
서준은 숨을 멈췄다.
짧은 점 하나가 생겼다.
선도 아니고 흠도 아닌 점.
작았다.
그래서 더 싫었다.
내가 뭘 한 거지.
그 생각이 늦게 왔다.
좋은 일을 했다는 생각은 오지 않았다. 동전이 없어졌다는 생각이 먼저 왔다. 빵도 없어졌다는 생각이 그 다음이었다.
이제 물도 못 산다.
다음에는 아무것도 못 내놓는다.
그러면 이번보다 더 쉽게 숨을 것이다.
그게 무서웠다.
회색 끈 노동자는 천을 감은 손을 몸 쪽으로 숨겼다. 인부가 그를 뒤쪽 줄로 밀었다. 그는 서준을 보지 않았다.
서준도 보지 않았다.
보면 뭔가 받아야 할 것 같았다.
고맙다는 말.
욕.
왜 이제야 냈냐는 눈.
아무것도 받지 않는 편이 나았다.
하역장 감독이 서준의 어깨를 잡았다. 다시 원래 판 앞이 아니었다. 옆쪽, 더 좁은 줄이었다.
거기에는 피 묻은 조각과 붉은 찌꺼기가 따로 쌓여 있었다. 조각들은 다른 것보다 작았고, 젖은 빛이 더 진했다. 앞에 선 노동자들은 모두 손목을 배 쪽으로 숨기고 있었다.
서준은 발을 버텼다.
막대가 갈비뼈 옆을 눌렀다.
그는 움직였다.
마른 남자가 물통 옆에서 그를 보았다. 이번에는 아무 신호도 없었다. 손목도 누르지 않았다. 고개도 젓지 않았다.
그게 더 나빴다.
서준은 새 줄에 섰다.
손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동전도 없었다.
빵도 없었다.
그래도 회색 끈의 손에서는 피가 전처럼 흐르지 않았다.
그 사실을 되돌리고 싶지는 않았다.
되돌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겁이 났다. 이런 생각을 하면 다음에도 내놓아야 할 것 같았다. 다음에도 내놓으면, 마지막에는 자신이 남지 않을 것 같았다.
안쪽에서 낮은 떨림이 올라왔다.
이번에는 바닥이 아니었다.
손바닥도 아니었다.
가슴 안쪽, 심장 근처에서 아주 작게 울리는 것 같았다.
서준은 숨을 반만 들이마셨다.
새 표시가 손목패 뒤에서 젖어 있었다.
그는 이제 한 닢도 없었다.
그런데 더 안쪽 문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