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바닥 전이자는 다시 산다

12화: 옆문 안쪽의 값
딱.
옆문 안쪽에서 짧은 소리가 났다.
한서준은 숨을 반만 들이마신 채 한 칸 앞으로 밀렸다. 문은 낮은 문보다 더 좁았다. 어깨를 비틀어야 들어갈 수 있었고, 문틀 아래에는 검은 물이 말라붙어 있었다.
앞의 회색 끈 노동자가 손목을 배 쪽으로 숨겼다.
그 앞의 붉은 점 노동자도 고개를 더 숙였다.
서준도 손목을 감추려 했다.
막대가 바로 내려왔다.
그는 손목을 내밀었다. 젖은 나무패 뒤쪽에는 붉은 선, 붉은 점, 긁힌 자국, 그리고 새로 그어진 검은 선이 있었다.
인부는 손목패를 뒤집어 보았다. 그 다음 서준의 옷 안쪽을 보았다.
서준의 몸이 굳었다.
남은 동전 한 닢.
반쯤 남긴 빵 조각.
둘 다 젖은 천 사이에 있었다. 빵은 움직일 때마다 아주 작게 부서졌다. 동전은 살에 닿아 차가웠다.
들키면 빼앗긴다.
그 생각이 먼저 왔다.
회색 끈 노동자의 손이 떨리는 것도 보였다. 하지만 그건 뒤였다.
인부는 막대 끝으로 서준의 가슴께를 한 번 눌렀다. 깊게 찌르지는 않았다. 옷 안쪽까지 뒤지지도 않았다. 대신 손목패의 검은 선을 손톱으로 긁고 옆문 안쪽을 가리켰다.
서준은 들어갔다.
안쪽은 더 좁았다.
벽이 바로 어깨에 닿았다. 천장은 낮았다. 바닥에는 얇은 판들이 놓여 있었다. 판마다 홈이 세 줄씩 파여 있었고, 홈 끝에는 손가락 두 마디만 한 작은 틈이 있었다.
가장 앞 판에서 손 하나가 움직였다.
검은 조각을 올렸다.
빼냈다.
붉은 찌꺼기를 올렸다.
빼냈다.
젖은 조각 하나를 가운데 홈에 놓는 순간, 틈이 닫혔다.
딱.
노동자가 손을 늦게 뺐다. 손가락 끝에서 피가 조금 났다. 그는 입만 벌리고 소리를 삼켰다. 옆의 인부가 그 손을 밀어내고 다른 손을 판 앞으로 끌어왔다.
작업은 멈추지 않았다.
서준은 목을 삼켰다.
물과 빵이 조금 들어갔는데도 목은 여전히 말랐다.
말뜻은 몰랐다.
그래도 해야 할 일은 보였다.
조각을 든다.
홈에 놓는다.
빼낸다.
늦으면 다친다.
홈은 같은 박자로 떨렸다. 그러나 닫히는 쪽은 매번 같지 않았다. 어느 순간 한쪽이 아주 작게 끌어당겼고, 그 다음에야 딱 소리가 났다.
소리를 기다리면 늦었다.
눈으로 보면 늦었다.
그 사실만은 알 수 있었다.
하역장 감독이 안쪽 벽 옆에 서 있었다. 막대는 없었다. 대신 손에는 검은 조각이 있었다. 판자 든 선별자도 곁에 있었다. 그는 깨끗한 손으로 판자를 들고 있었다.
서준은 회색 끈 노동자와 같은 판 앞에 세워졌다.
회색 끈의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머리 옆에 젖은 찌꺼기가 말라붙어 있었다. 손등에는 흙이 묻어 있었다.
아까 벽틈에서 밀어낸 남자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인가.
알 수 없었다.
알아도 달라질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이 너무 빨리 떠올랐다.
첫 조각이 내려왔다.
회색 끈이 검은 조각을 들었다. 서준은 붉은 찌꺼기를 들었다. 찌꺼기는 돌도 흙도 아니었다. 손가락에 붙었다가 늦게 떨어졌다.
감독이 손짓했다.
회색 끈이 왼쪽 홈에 조각을 올렸다.
서준도 오른쪽 홈에 찌꺼기를 올렸다.
홈이 떨렸다.
딱.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두 번째도 같았다.
세 번째에서 판이 달랐다.
검은 조각이 홈에 닿기 전, 서준의 손바닥이 먼저 끌렸다. 아주 작은 끌림이었다. 눈으로 보면 가운데가 맞았다. 하지만 손가락 끝은 왼쪽을 느꼈다.
왼쪽.
그는 숨을 멈추고 왼쪽 홈에 놓았다.
회색 끈이 그를 보았다.
딱.
오른쪽 틈이 닫혔다.
왼쪽은 열려 있었다.
맞았다.
서준은 바로 안도하지 못했다. 맞혔다는 생각이 들자 더 무서워졌다.
맞히면 다음에도 해야 했다.
다음에도 하면, 언젠가는 틀린다.
감독이 서준의 손목패를 보았다. 선별자는 판자 위에 짧은 선을 그었다.
회색 끈은 그 뒤부터 판보다 서준의 손을 더 보았다.
서준은 그것이 싫었다.
보지 마.
그 말은 나오지 않았다.
말이 통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그렇게 말하면, 방금 맞힌 것이 자기 때문이라는 것까지 인정해야 했다.
다음 조각이 왔다.
서준은 손에 힘을 너무 많이 주었다. 그러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손목 통증만 커졌다. 그는 힘을 조금 풀었다.
그 순간 옷 안쪽에서 빵 조각이 움직였다.
젖은 천 사이에서 부스러기가 살에 붙었다.
떨어지면.
들키면.
빼앗기면.
그쪽으로 생각이 튀었다.
딱.
판이 닫혔다.
서준은 늦게 손을 뺐다. 손끝은 닿지 않았다. 그러나 회색 끈은 놀라 검은 조각을 떨어뜨렸다. 막대가 그의 어깨를 찍었다.
서준은 고개를 숙였다.
내가 한 게 아니다.
그 말이 너무 빨리 떠올랐다.
나는 말하지 않았다.
손짓도 하지 않았다.
저 사람이 보고 따라 한 것이다.
그러니 내 탓이 아니다.
그 생각은 물처럼 쉽게 내려갔다.
너무 쉬워서 더 역겨웠다.
작업 박자가 빨라졌다.
이번에는 검은 조각 두 개와 붉은 찌꺼기 하나가 동시에 판 위에 올라왔다. 감독의 손짓도 짧아졌다. 인부의 막대가 바로 뒤에 있었다.
서준은 홈을 보았다.
아니, 보려고 했다.
오른쪽에서 먼저 끌림이 온 것 같았다. 손바닥이 오른쪽을 피하라고 말했다. 손목 안쪽이 뜨거웠다. 감독이 뒤집어 잡았던 자리였다.
통증이 오른쪽으로 뻗었다.
판의 떨림도 오른쪽에서 온 것 같았다.
빵 부스러기가 다시 옷 안쪽에서 내려앉았다.
동전이 살을 눌렀다.
서준은 그 모든 것을 구분하지 못했다.
그는 오른손을 먼저 뺐다.
회색 끈이 서준의 손을 보았다.
그리고 왼쪽 홈에 자기 손을 넣었다.
검은 조각을 밀어 넣으려는 동작이었다.
왼쪽 틈이 닫혔다.
딱.
이번 소리는 작지 않았다.
회색 끈의 손가락이 틈에 끼였다. 그는 소리를 내지 못했다. 입만 크게 벌어졌다. 다음 순간 손을 빼자 손가락 사이에서 피가 나왔다.
피는 검은 물보다 밝았다.
서준은 멍하니 보았다.
회색 끈이 서준을 보았다.
욕을 했을지도 모른다.
왜 그랬느냐고 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아무 말도 못 했을지도 모른다.
서준은 알아듣지 못했다.
알아듣지 못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이 들자 숨이 막혔다.
막대가 내려왔다. 이번에는 회색 끈의 등이 먼저 맞았다. 그는 피 나는 손을 움켜쥔 채 뒤로 밀렸다. 피가 판 위 홈에 떨어졌다.
서준은 입을 열었다.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내가 하라고 한 게 아니라고.
나도 틀렸다고.
왜 내 손을 봤냐고.
그런 말들만 머릿속에서 서로 밀쳤다.
그중 하나는 너무 낯익었다.
살려고 그랬다.
어쩔 수 없었다.
네가 믿은 거다.
서준은 그 말을 삼키지 못했다.
삼키면 진짜가 될 것 같았다.
하역장 감독이 다가왔다. 감독은 먼저 피 묻은 홈을 보았다. 그 다음 회색 끈의 손을 보았다. 마지막으로 서준의 손목패를 잡았다.
서준은 몸을 빼지 않았다.
빼면 맞는다.
그 생각도 먼저였다.
감독은 검은 선 옆을 보았다. 검은 조각 끝으로 나무패를 눌렀다. 선 옆에 아주 짧은 흠이 생겼다.
처벌인지.
기록인지.
쓸모 있다는 표시인지.
몰랐다.
모른다는 사실이 더 무서웠다.
회색 끈은 물통 쪽으로 끌려갔다. 손가락 사이에서 피가 계속 흘렀다. 그는 손을 쥐고 있었지만 피는 멈추지 않았다.
물통 담당 인부가 그를 보더니 손바닥을 폈다.
돈.
물.
천.
말을 몰라도 보였다.
피를 씻는 데도 값이 필요했다.
손을 감싸는 데도 값이 필요했다.
숨을 이어 가는 데도 값이 붙었다.
마른 남자가 물통 옆에서 서준을 보았다.
이번에는 고개를 젓지 않았다.
그는 자기 손목 안쪽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아까 빵을 숨기라던 때와 비슷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반대 같았다.
숨긴 것을 생각하라는 뜻인지.
꺼내라는 뜻인지.
아니면 꺼내지 말라는 뜻인지.
서준은 옷 안쪽을 느꼈다.
동전 한 닢.
빵 반 조각.
아직 있었다.
아직 그의 것이었다.
회색 끈 노동자는 물통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인부의 손바닥은 계속 펴져 있었다. 회색 끈은 아무것도 내놓지 못했다.
서준은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이면 들킨다.
내놓으면 없어진다.
없어지면 다음에는 자신이 쓰러진다.
내 탓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지나갈 수 있었다.
그는 정말 그렇게 생각하려 했다.
그런데 판 위 왼쪽 홈에 피가 남아 있었다.
서준이 틀린 쪽.
회색 끈이 서준의 손을 보고 믿은 쪽.
그 피가 닫힌 틈 가장자리에 묻어 있었다.
딱.
문 안쪽에서 다시 소리가 났다.
작업은 멈추지 않았다.
막대가 서준의 등을 밀었다.
그는 다시 판 앞에 섰다.
손바닥은 떨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판보다 먼저 자기 손이 떨렸다.
그 차이를 알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
물통 앞에서 물값을 요구하는 손바닥은 아직 펴져 있었다.
회색 끈의 피는 손목을 타고 떨어졌다.
서준은 숨긴 동전의 차가움을 느꼈다.
그 차가움이 어떤 떨림보다 먼저 왔다.